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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50화 (49/275)

50화

다들 감동한 채로 영약을 먹은 후 서리스는 오를레 성벽을 찾았다.

끝없는 초롱과 맞닿아 있는 성벽에는 청림단들이 상주하고 있었고.

그들은 서리스 일행을 보자마자 경례를 올렸다.

청랑단은 그들의 상위 조직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청림단의 경례에 마주 인사하며 서리스는 성벽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곳에 방문하는 게 몇 년 만이더라.’

서리스의 몸으로 끝없는 초롱을 오는 건 처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긴장한 채로 성벽을 지난 그 순간.

끝없는 초롱이 펼쳐졌다.

한낮이었던 바깥과는 다르게 언제나 어두운 밤.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초록색의 빛을 내뿜는 초롱들이 반짝였다.

숲 깊숙한 곳 꺼림칙한 감각이 몸을 휘감고.

왠지 모르게 텁텁한 공기가 사람의 기분을 오묘하게 만들었다.

“여기구나.”

칸빌레 가문인 아카펠도 끝없는 초롱은 처음인 듯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칸빌레인 이상 언젠가 끝없는 초롱과 맞서 싸우겠지.

그리고 그건 제로나 서리스도 마찬가지였다.

펜타니엄 가문인 이상 그들은 끝없는 초롱으로부터 세계를 지켜내야만 했다.

‘왜일까.’

하지만 서리스는 그날따라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묘한 감각.

이건 끝없는 초롱의 맞서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서리스는 목덜미를 스리슬쩍 감쌌다.

혹시나 검은별에게 자신이 세뇌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어렴풋이 들었다.

“서리스?”

옆에 있던 서발광이 의아한 듯 서리스를 부르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가자. 구사조에게 가려면 아직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럼 얼른 가자! 나 지금 내 몸을 시험해 보고 싶어!”

“나도, 나도야!”

도로시와 제로가 신바람이 난 채로 외쳤다.

아무래도 조금 전 준 영약이 본격적으로 몸에 돌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거 막 먹었을 때 각성 효과니까. 너무 흥분하지 마라.”

“와아! 직계님, 뛰어, 뛰어!”

다시 뱉게 할까.

짧게 고민했던 서리스였지만, 끝없는 초롱을 상대로 의욕 넘치는 건 높게 샀다.

저래 보여도 도로시는 벌써 세계 침식을 몇 번이나 겪었다.

저쪽도 경력이 쌓인 만큼 겉보기는 저래도 방심하지는 않을 테니.

“그래, 간다 가.”

서리스가 끝없는 초롱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끝없는 초롱.

말 그대로 끝없이 펼쳐진 숲속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수가 살아가는 이곳은.

“끝이 없잖아!”

정말로 끝없이 마수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었다.

약의 각성 효과가 다 끝난 듯 도로시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카랑하게 울렸다.

그 이유는 아까부터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마주치는 마수들 때문이었다.

방금도 튀어나온 마수 여러 마리를 쓰러트린 도로시는 땀방울을 닦았다.

계속해서 일어난 교전에 서리스조차도 잠깐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중에서 세계 침식 경험이 가장 적은 제로는 벌써 무릎까지 짚고 있었다.

영약의 각성 효과가 있어도 그것만으로 끝없는 초롱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다들 다친 곳은?”

“나는 없어.”

“팔 쪽에 조금 부상이 있는데 방금 물약으로 치료했어.”

서발광과 아카펠이 바로바로 보고해 왔다.

도로시 쪽을 보니 체력이 빠져 한 손을 허리에 올린 채 땀만 닦을 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제로, 너는?”

“조금만 쉬면 돼.”

숨을 고른 제로가 등을 펴며 대답했다.

눈빛은 죽지 않았다.

옛날보다는 체력이 많이 붙었다는 증거였다.

이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

‘이렇게 안으로 들어 온 건 나도 처음인가.’

소드란 시절.

서리스는 늘 뒤에서 보좌하는 역할이었기에 끝없는 초롱 끝에서만 돌아다녔다.

그의 역할은 주로 성벽까지 밀려 나온 낮은 수준의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이었으니까.

‘오늘 온 건 청랑단으로서이니.’

새삼 자신이 끝없는 초롱에서 이런 깊숙한 곳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서리스, 얼마나 더 가야 해?”

서발광이 다가와 묻자 서리스는 미리 받아 둔 지도를 펼쳤다.

“앞으로 2km 정도.”

“정말 크구나.”

꽤 오래 들어왔는데, 아직도 거리가 많이 남았음을 보고 서발광이 살짝 질려 했다.

나중에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인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가까운 편이야. 나중에 큰 주인들을 상대한다면 며칠을 이곳에서 묶어야 할 테니까.”

“이런 곳에서 며칠이라니.”

칸빌레 소속인 아카펠에게는 언젠가 다가올 일이다.

그는 벌써 피곤하겠다는 듯 쓴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이동하자.”

어느 정도 휴식을 취했기에 서리스가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속이 울렁거려.”

“별로 보호해. 끝없는 초롱의 침식 증상 중 하나니까.”

제로에게 충고하며 서리스도 별을 둘렀다.

끝없는 초롱은 사람을 계속해서 현혹한다.

실제로 별과 전혀 연관 없는 자들이 끝없는 초롱의 불빛에 홀려 어딘가로 사라진 일화는 꽤나 유명했다.

그렇기에 끝없는 초롱을 높은 성벽으로 둘렀다.

혹여나 누군가 불빛에 홀리지 않게 하고자.

“불빛을 계속 보지 마. 봐서 좋은 거 없으니까.”

나무 사이로 튀어나온 마수의 목을 가르며 서리스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갔다.

얼마 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어디선가 각양각색의 맹금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강한 소리에 서리스가 나무 위로 오르자.

저 멀리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새가 거세게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울음소리의 방향은 서리스 쪽이 아니었다.

숲 저편.

무언가 다가오는 이에게 경고하는 듯한 울림이었다.

“설마.”

불안감을 느낀 서리스가 재빠르게 나무 아래에서 내려왔다.

“아카펠, 성안을 좀 사용해 줄 수 있겠어?”

“방향은.”

“구사조가 보고 있는 방향.”

서리스의 말을 듣자마자 아카펠은 그 즉시 성안을 발동시켰다.

그럼과 함께 그는 숲 저편을 뚫어지라 쳐다보았고, 곧 무언가 발견했는지 서리스를 불렀다.

“검은색 털로 뒤덮인 커다란 원숭이가 있어.”

“가후야. 썩을, 벌써 움직였을 줄이야.”

구사조와 가후가 다툼이 있었기에 서리스 일행이 지원을 온 상황이긴 했지만.

설마 이 타이밍에 둘이 다시 맞붙게 되리라곤 생각 못 했다.

‘구사조를 먼저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이대로 맞부딪쳐 승부가 안 나고 힘만 뺀다면 최고긴 하나.

만약 한쪽이 패배해 먹힌다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패배한 놈을 삼킨 녀석이 큰 주인으로 성장해 버릴 테니까.

‘그렇다고 당장 무턱대고 한 놈을 미리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세계 침식 내에서 침입자는 우리다.

분명 타겟이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변경되리라.

‘젠장, 그렇다면.’

서리스가 방법을 모색했다.

이쪽이 다치는 일 없이 가장 괜찮은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문뜩 서리스가 무언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이거라면 성공했을 때는 최고겠지만.’

서리스가 모두를 돌아보았다.

혼자라면 불가능할지 몰라도 여기에는 모두가 함께 있다.

“다들 모여 봐.”

서리스의 부름에 모두가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그러곤 귀를 기울이자 서리스가 자신이 생각한 걸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계획은 간단하지만 리스크가 가장 큰 것이었다.

“……서리스, 이건 자칫했다간.”

“그래,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어.”

아카펠이 우려를 표하자 서리스도 동감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어. 나도 이게 최선이라 생각해.”

서발광이 의견에 동참해 왔다.

“하면 되지. 직계님, 우리가 못할 게 있어?”

도로시 쪽이 자기 손바닥의 주먹을 부딪치며 당차게 대답한 순간 서리스도 마음을 굳혔다.

“그래, 하자.”

청랑호법으로서 첫 작전 시작이다.

* * *

검은색 원숭이 가후.

근육질로 전신이 뒤덮여 있는 마수는 거대한 돌기둥을 들고 코를 팽 풀었다.

3m 가까이 되는 거구.

몸 상태는 최고조.

털도 윤기가 좔좔 흐른다.

오늘 새로운 놈을 만찬으로 삼고 도약하기 딱 알맞은 날이었다.

상대는 아홉 개의 새 머리를 가진 구사조.

소리만 꽥꽥 질러대는 시끄러운 놈을 보고 가후는 코웃음 쳤다.

그 순간 구사조 쪽이 선수를 쳤다.

녀석의 머리 중 세 개가 불을 내뿜은 것이다.

치솟은 불길이 끝없는 초롱의 숲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걸 본 가후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호기롭게 돌기둥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그 순간 날아든 불길이 가후의 돌기둥으로 일어난 바람에 의해 사방으로 퍼졌다.

조금의 불길도 닿지 않은 가후는 노성과 함께 바닥을 박차 뛰어올랐다.

“커흥!”

가후의 돌기둥이 휘둘러진 순간, 구사조의 다른 머리 세 개가 그의 돌기둥 앞에 얼음 기둥을 세웠다.

쩌엉!

졸지에 얼음 기둥을 쳐 낸 가후가 눈을 부라렸을 때.

구사조의 나머지 머리가 번개를 내뿜었다.

곤두선 가후의 털이 번개를 버텨 내며 가후는 공중을 박차고 올랐다.

그럼과 함께 미친 듯이 돌기둥을 휘둘러 오자 구사조도 그에 맞서 싸웠다.

그야말로 재앙들의 전투.

숲이 터져 나가고 어쩌다 휘말린 마수들이 도륙당했다.

두 괴수의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열해졌고.

가후와 구사조는 서로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남겼다.

“크흥!”

콧바람을 내쉰 가후가 불타 버린 털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 분노했다.

또 한 번 노성과 함께 가후가 구사조를 공격했다.

가후에 의해 머리 세 개가 망가진 구사조는 그의 맹공에 맞섰지만, 점차 밀렸다.

이긴다.

이 승부는 이긴 승부다.

그 사실을 확신한 가후는 더더욱 구사조를 몰아쳤다.

그리고 놈의 머리를 두 개 더 터트린 그 순간 가후가 승리를 확신했다.

가후의 돌기둥이 회전하듯 구사조의 남은 머리를 모조리 터트리려는 찰나였다.

가후가 반사적으로 돌기둥을 들어 올렸다.

그의 거대한 몸집이 마치 포탄에 얻어맞은 듯 뒤로 밀렸고, 가후가 눈을 부릅떴다.

가후의 눈동자 속 가장 꺼림칙한 감각이 솟구쳤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확 나빠지는 별의 덩어리.

세계 침식의 마수로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존재.

거기에는 인간이 있었다.

검은색 그림자 망토를 휘날리며 검을 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가후에게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구사조 쪽에도 네 명의 인간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속 가후는 자신이 다 이긴 전투에 누군가 개입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크흥!”

그러나 그의 외침을 듣고 상대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강렬한 별의 기운.

그는 다름 아닌 서리스였다.

“시끄럽다. 원숭이.”

가후가 분노하든 말든 서리스는 조용하게 악의적인 웃음을 지었다.

“곱게 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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