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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47화 (46/275)

47화

덜컹덜컹.

마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를레로 가는 데는 마차로 얼추 삼 일 정도가 걸린다.

그랬기 때문일까.

도착하기 마지막 날쯤 가만히 창문 밖을 바라보던 서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하하, 그래! 결판을 내자. 미니 직계, 당장 마차 밖으로 나오시지.”

“넌 서리스 형만 아니었어도 나한테 곤죽이 됐을 거다.”

한숨의 이유는 다름 아닌 도로시와 제로 때문이었다.

이 두 사람 삼 일 내내 저러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 걸까.

처음 몇 번은 경고하였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갔다.

그래서 서리스는 이제 귀찮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떤 의미론 저것도 잘 맞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며.

“지치지도 않는구나.”

아카펠도 같은 심정인 듯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제로와 죽이 잘 맞는 사람도 있었다.

“맞아. 서리스는 계속 노력해 왔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야.”

“동감이야. 난 아직도 서리스 형이 샬롯을 이겼을 때가 안 잊혀. 그때 세계가 달라진 기분이었다니까. 노력이 재능을 이기는.”

도로시와 싸우다 말고 제로는 어느샌가 서발광과 떠들고 있었다.

노력이 재능을 이겼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서리스 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노력을 부정은 않겠지만.’

서리스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검은별이라는 비상식적인 존재가 있으니.

그걸 오직 노력이라 말하기에는 본인 스스로도 이해 안 되었다.

‘아직도 검은별에 대한 해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마당이고.’

지금 알고 있는 거라고는 세계 침식을 계속 흡수하고 있다는 것뿐.

검은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서리스는 이번 출전이 내심 기대되었다.

왜냐하면 이번 출전은 다름 아닌 끝없는 초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은 곳도 끝없는 초롱이었으니까.’

검은별의 비밀을 파헤치기에는 제격일지도 모른다.

덜컹덜컹, 끼이이익.

그러는 사이 마차가 멈추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착했네.”

하염없이 창문 밖만 보던 아카펠의 목소리에 서리스도 고개를 들었다.

그의 말대로 오를레의 성벽 입구가 보였다.

성벽 너머 오늘도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연기들은 누가 보아도 오를레였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청랑단 지원입니다.”

그러는 사이 마부가 신원 증명을 마치고 다시금 마차를 움직였다.

오를레 쪽 성벽을 넘으니 특유의 약 냄새가 느껴졌다.

“으, 냄새.”

도로시와 제로는 적응 안 된다는 듯 코를 꽉 막았지만 서리스에게서는 익숙한 향이었다.

청림단 병사들의 부상 때문에 몇 번이고 약을 사러 온 곳이 오를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휘황찬란한 간판들을 거닐고 있는 몇 개의 약품점이 보였다.

그건 다름 아닌 만병약학주를 익힌 오를레의 직계들이 차린 가게들이었다.

오를레의 특이한 점 하나.

그건 바로 15살 이후 오를레의 직계들은 직접 가게를 차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를레의 가주가 되는 조건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가게의 매상이다.

그리고 매년 가문에 올리는 수제 제작한 약이 얼마나 뛰어난가다.

‘그 덕분에 오를레는 지금까지 쭉 성장해 왔다곤 하지만.’

아마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오를레 쪽도 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이.

‘소가문이라 한들 사람 사는 곳이니.’

서리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 왔습니다.”

마부가 말을 멈추자 서리스는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오를레의 저택 입구가 보였다.

마부가 마차를 주차하러 가는 동안 서리스는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가죽 옷 차림의 남성 한 명이 걸어 나오더니, 그녀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반갑습니다. 청랑단 여러분, 저는 오벨리스크 님의 셋째 제자 호베론입니다. 오늘 안내를 맡게 되었습니다.”

“청랑호법 후보 펜타니엄 서리스입니다.”

그의 인사에 맞춰 서리스가 대표로 인사를 하였다.

펜타니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든 그는 곧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펜타니엄 직계 분을 몰라뵈었군요.”

“아뇨. 이번에는 청랑호법 후보로 온 거니 직계로 생각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서리스의 말을 듣고 오베론은 안도를 보였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곧장 말을 이었다.

“준비되어 있다면 바로 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오베론은 오히려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어 좋다는 듯 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 * *

오를레의 방 하나.

“누가 왔다고?”

연구실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약품을 만지던 남성이 조금 전 말을 하인에게 되물었다.

“예, 청랑호법 후보이신 펜타니엄 서리스 님께서 왔다고 합니다.”

펜타니엄 서리스.

이 남성은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는 2년 전 서리스의 암살을 사주했던 오를레 레투앙이었기 때문이다.

서리스의 사촌 펜타니엄 칼릭스의 심복인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 전에 뭐? 서리스가 청랑호법 후보?”

“네, 그렇습니다.”

칼릭스가 워너힐 아카데미 시험을 치르러 간 이후.

본가로 돌아왔던 레투앙은 최근 소식에 어두웠다.

서리스가 청랑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어렴풋이 듣긴 했었다만, 청랑호법 후보라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서리스의 멸칭 몰락한 게으른 삼남.

최근 다른 소문이 들려오고 있긴 했지만, 레투앙에게 있어서 서리스는 여전히 몰락한 게으른 삼남이었다.

그의 변화를 직접 본 적 없는 그의 입장상 서리스의 과거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파티에서 여자 하인한테까지 추파를 던지던 그 돼지 같은 모습은.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놈이 변해 봤자 일 텐데.’

청랑단을 상대로 권력이라도 쓴 걸까.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레투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손님이니 직접 보러 가지.”

그렇다고 한들 최근 소문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해 둬야겠지.

‘만약 칼릭스님의 적수가 됐으리라 판단되면.’

내 손으로 끝을 내 주겠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서리스 따위의 암살은 손쉬울 테지만 말이다.

밖으로 나온 레투앙은 곧장 서리스가 안내받았을 회의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지원 건은 꽤 중요한 거라 했는데.’

끝없는 초롱과 관련된 일인 만큼 청랑단 쪽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부탁했을 텐데.

어째서 서리스 같은 놈이 왔을까.

청랑단도 권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혀를 찬 그가 회의실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반대편 벽 쪽에서 다수의 무리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랑단의 옷차림을 한 5명.

그 옷차림을 보자마자 레투앙은 그들이 서리스 무리란 걸 알았다.

‘어디 돼지 같은 그놈이.’

서리스를 찾고자 눈을 돌리던 레투앙은 곧 눈꺼풀을 깜빡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억하던 서리스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순간 그가 당황했을 때 그의 앞으로 어느샌가 서리스 무리가 다가왔다.

그 순간 안내하던 호베론이 레투앙을 발견하곤 의아한 듯 물었다.

“레투앙 님?”

그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레투앙은 서둘러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손님이 왔다고 해서 왔다. 이분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서리스 님, 이분은 오를레 가문 둘째이신 오를레 레투앙 님이십니다.”

호베론의 입에서 서리스가 나온 순간 레투앙은 멈칫하고 시야를 올렸다.

그 순간 거기에는 시원하게 생긴 남성이 서 있었다.

성인인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그는 앳된 얼굴이 아직 살짝 남아 있지만, 미남인 흑발의 남성이었다.

“서리스 님이라 하면.”

“네, 펜타니엄 서리스 님이십니다.”

레투앙의 두 눈동자가 극심하게 흔들렸다.

서리스라고.

저게?

“반갑습니다. 소개받았듯이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서리스 쪽에서 먼저 악수를 청해 온 순간 레투앙은 얼떨떨해하며 받았다.

그러면서도 서둘러 자세를 곧추세웠다.

서리스라 한들 상대는 펜타니엄.

잘못해서 좋을 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깜짝 놀랐다.

악수를 한 서리스의 손이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고 거칠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태풍을 정면으로 맞서기라도 한 듯 그의 손아귀 힘은 일반인을 상회했다.

‘고작 악수인데?’

악수라는 건 분명 힘 조절을 한 것.

지금 서리스가 내려는 작은 힘이 이 정도라는 소리지 않는가.

‘아, 아니, 겉모습은 번지르르해졌지만.’

속은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러는 순간 레투앙은 서리스와 함께 온 이들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눈치챘다.

‘뭐, 뭐야. 펜타니엄 제로에다가 칸빌레 아카펠, 그리고 이 녀석은 제나디아 도로시 아닌가?’

칼릭스의 심복으로서 귀족 관계는 확실하게 꿰고 있던 그는 화들짝 놀랐다.

서리스만이 아니라 후에 펜타니엄을 지탱할 여러 인물이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놈은 맹인이지만, 저놈한테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칼릭스의 시험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길래.

레투앙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서리스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도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럼 서리스 님, 바로 이번 건 이야기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에 관한 설명을 일임받은 호베론은 곧장 지도를 꺼내 들었다.

그건 다름 아닌 끝없는 초롱의 지도였다.

비록 내부 깊숙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도에는 인류가 확인할 수 있는 최대의 영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선 이번 문제가 된 장소는 이 두 곳입니다.”

호베론이 가리킨 장소에는 작은 주인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5대 최흉 중 하나인 세계 침식.

끝없는 초롱.

끝없는 초롱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그건 펜타니엄의 영지보다도 더 큰 세계 침식이라는 점이다.

끝없는 초롱이 발생한 시점은 이미 역사에서도 체크 못 할 만큼 긴 시간.

그렇기에 끝없는 초롱은 커지고 또 커져 지금에 이르러서.

다른 곳에서는 세계 침식의 주인이 될 마수들마저 생물군을 이룬 최악의 세계 침식이다.

“우선 작은 주인 중 하나 구사조(九社鳥)입니다.”

보통의 세계 침식은 주인이 하나다.

그러나 끝없는 초롱은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서인지 수많은 주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끝없는 초롱은 구역마다 가장 위협적인 놈들을 따로 주인으로 분류해 두었다.

작은 주인 구사조.

“5성급이군요.”

다른 곳에서 등장했다면 도시가 궤멸했을 급의 주인이나.

끝없는 초롱에서는 작은 주인 정도로 분류되는 놈이었다.

‘큰 주인급은 태악룡 같은 진짜 괴물들이니.’

큰 주인 녀석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애초에 청랑단 호출이 아니라 펜타니엄 쪽에 직접 호출이 갔을 거다.

“그리고 가후(假猴)입니다. 이 둘이 세력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놈도 마찬가지로 구사조와 같은 작은 주인이며 5성급이다.

둘의 세력 다툼을 듣고 서리스는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한 놈이 이기는 순간 더 위험한 게 탄생하겠군요.”

“아, 네, 맞습니다. 서리스 님은 끝없는 초롱에 들어가 본 적 있으셨습니까?”

“아뇨. 개인적으로 공부했을 뿐입니다.”

호베론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끝없는 초롱의 특이점 중 하나.

그것은 바로 마수들끼리 서로서로 잡아먹으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잡아먹고 그들의 별을 흡수해 더 강한 개체로 성장한다.

그것이 끝없는 초롱의 가장 위험한 점이었다.

지금과 같이 작은 주인들끼리 부딪쳐 한 녀석이 승리해 잡아먹게 된다면.

즉, 새로운 큰 주인이 탄생할 수도 있는 건이었다.

“그럼 두 녀석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해 보죠.”

서리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자 호베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을 와 준 쪽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니 기쁠 따름이었다.

둘의 회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사이.

그 상황을 멍하니 보고 있던 레투앙이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시작한 회의지만, 한 눈에 확신할 수 있었다.

‘변했다.’

서리스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걸.

그리고 서리스가.

‘칼릭스님의 적.’

반드시 칼릭스님의 적이 되리라는 것 또한.

‘처리해야 한다.’

서리스의 변화를 깨달은 레투앙이 위기심은 느꼈지만.

그는 한 가지 깨닫지 못했다.

서리스가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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