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서리스와 도약한 그 순간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의 손길을 따라 바닥에서 날카로운 뼈들이 치솟아 올랐다.
촤자자자작!
땅들을 헤집으며 치솟은 뼈들이 서리스의 눈앞까지 다가온 순간.
서리스의 검이 뼈들을 순식간에 부숴 나갔다.
하지만 도로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뼈들을 움직여 나가기 시작했다.
뼈들은 마치 감옥과 같이 서리스를 감싸더니 곧이어 그를 조여 왔다.
‘압살이라도 할 속셈인가.’
도로시가 하나 더 발동한 마왕화의 대상은 백련골(白孌骨).
뼈를 자유자재로 소환하고 다루는 세계 침식의 주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이런 현실화 계통의 힘은 별이 엄청나게 소모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도로시도 힘들어 하는 기색이 보였다.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더더욱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더 촉박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서리스는 자신을 금방이라도 압살해 버릴 듯한 뼈를 눈앞에 두고.
그의 팔 근육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서리스의 그림자 검이 그어졌다.
콰직!
뼈들이 흩날린 그 순간.
서리스의 눈에 보인 것은 또 다른 뼈의 벽이었다.
뼈의 감옥을 부순 순간 그 위를 연이어 뼈들이 덮은 것이다.
서리스를 쓰러트리고자 도로시는 부서지는 뼈 위에 다시 뼈들을 쌓았다.
이러면 별을 엄청나게 소모할 텐데.
“뒤는 신경 안 쓰겠다는 거냐.”
당장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가 가득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의지가 꺾일 수준으로 뚫어 주면 그만이다.
서리스의 그림자 검이 서서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뼈를 갈라 나가기 시작하는 서리스의 검은 곧 난무가 되었다.
청운귀명도(淸雲晷銘刀)
삼식(三式)
귀영난무(晷影亂舞)
그림자 검격이 계속해서 뼈 감옥을 부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뼈는 계속해서 솟아 서리스의 앞길을 막았지만.
서리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귀영난무를 반복했다.
이제는 완전히 체력과 별 싸움이다.
그 순간 뼈의 벽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날들이 서리스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폐쇄된 공간 속 날아드는 뼈 가시의 맹공의 서리스의 귀영난무도 주춤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짧은 틈 뼈 감옥이 급속도로 조여들었다.
서리스의 윗옷을 찢을 듯 뼈 감옥이 죄어든 순간.
서리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의 전신을 뒤덮듯 치솟은 그림자가 폭발했다.
아까 전 델리티드의 그림자 폭발을 보고 순식간에 응용한 것이었다.
뼈 감옥의 파편이 휘날린 그 순간.
도로시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뼈로 된 날개로 전신을 뒤덮은 살아 있는 포탄이었다.
거기에 더해 공중에서 한 번 더 가속하더니, 분쇄기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왕기(魔王技)
백골익회(白骨翼回)
도로시의 전력을 짜낸 마지막 일격임을 서리스는 눈치챘다.
검을 휘두른 순간 그 회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서리스의 검이 도리어 튕겨 났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팔 일부분이 갈리며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콰가가가각!
그러는 사이 도로시는 다시금 궤도를 바꿔 서리스를 향해 몰아쳐 왔다.
별을 준비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몸 위로 그림자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콰직!
이어 그는 그림자 망토를 두른 채로 도로시를 직접 잡았다.
도로시의 날카로운 날개 뼈들이 회전하며 그의 몸을 짓이겼다.
하지만 서리스는 악착같이 버텼다.
식은땀과 핏방울이 같이 튀었다.
도로시도 계속해서 회전했지만.
서리스의 힘에 억눌려 회전력이 줄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서리스는 망설임 없이 날개째로 도로시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콰앙!
“흐악!”
거친 소음과 함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는지 도로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날개 뼈가 갈라지며 도로시가 솟아올랐다.
도로시가 두 개의 검을 휘두르며 서리스에게 달려든 것이다.
역수와 정수로 쥔 검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지금을 위해 서리스는 이미 준비를 마쳤었다.
백골익회를 정면으로 상대하며 악착같이 끌어모은 그의 별이 환하게 빛난 그 순간.
도로시는 짧게 실소했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이식(二式)
반월박살(半月撲殺)
내리친 일격 앞에 모든 게 박살 났다.
산산 조각난 뼈 사이로 튕긴 도로시가 바닥을 나뒹굴고, 나무의 등을 쿵 하고 부딪쳤다.
도로시가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의식을 잡고 있지만 거의 끊어진 듯.
그녀의 입에서는 빛을 잃은 뼈와 깃털이 툭 하니 떨어졌다.
도로시의 고개가 스윽 들어 올려졌다.
거기에는 상의 대신 검은색 그림자를 두른 서리스가 있었다.
“흐아, 진짜 강하네.”
“칭찬 고맙다.”
“그래서 조금 미워.”
벌써 앞에서 몇 명이나 싸워 왔을 텐데.
아직까지도 별이 남아 있다니 반칙이다.
하지만 왜인지 도로시는 마지막도 그렇고 지금도 웃고 있었다.
후련하다면 후련했다.
“앞, 으로도 계, 속 달, 려가.”
그리 말한 도로시가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쫓기, 는 기분 느, 끼게 해 줄거야.”
도로시다운 말이다.
기절한 그녀를 두고 서리스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라파즐리와 레가놀.
이제 두 사람만이 남았다.
* * *
참 운이 없는 날이다.
라파즐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계획한 대로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고.
나사 하나가 빠지기라도 했는지, 모든 일이 제멋대로 삐걱거렸다.
그리고 지금.
라파즐리는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무의 등을 기대고 검을 쥔 그의 앞에는 레가놀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꼬일 거라고는.’
델리티드가 제때 도착했다면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델리티드와 레가놀이 맞붙는 양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계획은 서리스 때문에 어긋나 버리고 말았다.
‘설마 서리스랑 부딪칠 줄을 어떻게 알았겠어.’
델리티드가 생각 이상으로 빨리 움직인 탓에 겹쳐 버린 동선.
그 뒤는 모른다.
델리티드 쪽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레가놀이 자신을 습격하고 있었으니까.
그 뒤로는 팀원들에게 맡기고 도주, 또 도주.
그러나 그 도주도 이제는 끝이었다.
다리와 옆구리에서 핏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다리 쪽이 잘못 베었는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라파즐리, 끝이다.”
“끝이라니. 섭섭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네요.”
작게 숨을 내쉬며 라파즐리는 한 차례 머리를 굴렸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해라.”
그리고 레가놀이 마지막을 고하는 듯한 말을 들었을 때.
라파즐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외통수.
라파즐리는 분명 실력으로 레가놀을 이길 수 없다.
그를 쓰러트릴 몇 가지 방법을 준비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라파즐리는 검을 들어 올렸다.
레가놀의 눈이 살짝 떠졌다.
“포기할 리가 없잖아요?”
남은 건 끝까지 응전하는 것뿐.
라파즐리의 의지를 보고 레가놀은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곧 그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래, 너도 청랑호법을 목표로 했으니.”
그의 의지를 높이 산다는 듯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 순간 레가놀 쪽이 먼저 움직였다.
정교하게 이루어진 그의 검술이 라파즐리를 향하자 라파즐리도 급히 그의 검을 맞받아쳤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숲속에서 울려 퍼졌다.
“라파즐리, 네 검은 너무 가벼울 때가 있다.”
“알아요!”
확실히 레가놀의 비하면 라파즐리의 검은 가벼웠다.
팔랑거리는 나비와 같은 느낌의 검술.
실제로 청운귀명도를 다루는 라파즐리의 검은 매우 얇기 그지없었다.
반면 레가놀의 검은 묵직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쇠못과 같았다.
한 번 내려찍어 올 때마다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강렬한 충격이 맺혔으니.
라파즐리는 충격에 금방이라도 자신의 검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라파즐리도 노림수는 있었다.
계속해서 휘둘러지는 검에 달린 너무 얇아 보이지 않는 그림자 끈.
그 끈들이 서서히 레가놀을 묶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쨍그랑!
레가놀의 검과 라파즐리의 검이 맞부딪친 순간.
결국 충격을 견디지 못한 라파즐리의 검이 깨지며 조각조각 났다.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레가놀이 검을 내질렀을 때.
휘익!
그의 팔이 갑자기 옆으로 뒤틀렸다.
레가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의 몸이 그림자 실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운귀사(淸雲晷糸).
라파즐리가 만들어 낸 독자적인 그림자 실 비기.
이 비기로 대표 자리까지 따냈었던 라파즐리는 이날을 위해 청운귀사를 갈고 닦았다.
‘마지막 기회.’
라파즐리의 몸이 마치 뱀처럼 휘어 들어갔다.
깨졌다고 생각한 그의 검은 날카로운 단도가 되어 있었고.
라파즐리는 그 즉시 레가놀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찌르기만 하면 끝.
그 생각을 품고 내지른 마지막 일격 앞에.
레가놀의 별은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났다.
꽈드드드드드득!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파즐리가 검을 내지른 그 순간에 맞춰 픽픽 하고 끊어지는 청운귀사와 함께.
레가놀의 팔이 다시금 움직였다.
하지만 라파즐리의 눈은 오롯이 레가놀의 목에만 꽂혀 있었다.
퍼억!
둔기에 맞은 듯 라파즐리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바닥을 뒹군 순간 이 몇 개가 빠진 듯 입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짓이겨진 입술을 바닥에 댄 채 라파즐리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뼈가 몇 군데 부러진 듯했다.
“그윽, 윽.”
어떻게든 일어나고자 이마를 바닥에 찧은 라파즐리였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졌기 때문이다.
라파즐리의 시선 속에 레가놀이 비췄다.
마지막 일격은 분명히 닿았다.
그러나 그의 목에는 얇은 검로가 남아 있을 뿐.
그를 끝낼 수 있는 상처는 전혀 아니었다.
“왜, 안 쓰, 러지고, 난리세요.”
“내 가문 비기니까.”
끝없는 초롱과 맞닿아 있는 동쪽 영지 레일로.
레일로의 둘째 아들인 그가 익힌 레일로의 비기는 용호결수(龍護結守)다.
회복력을 극한까지 올려 내는 비기로서 레일로 가문이 펜타니엄에서 동쪽 영지를 부여받은 이유다.
소가문과는 다른 의미로 펜타니엄을 지키고 있는 가문이 바로 레일로였으니까.
그렇기에 레가놀은 라파즐리의 검에 분명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해 버린 것이다.
“호패는 가져가겠다.”
“하, 하하, 젠장.”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거란 짧은 후회와 함께 라파즐리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레가놀이 그런 라파즐리의 품에서 호패를 가져가려던 순간이었다.
콰가가가가각!
갑자기 날아든 그림자 검격이 나무와 바닥을 부서트렸다.
레가놀은 검으로 검격을 맞받아치곤 시선을 옮겼다.
뚜벅뚜벅.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흙먼지 사이로 레가놀이 시야를 좁혔을 때 거기에는 그도 잘 아는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생각보다 빨랐군.”
거기에는 서리스가 있었다.
레가놀이 짧게 눈살을 찌푸렸을 때 서리스는 얼굴에 당찬 미소를 그렸다.
“인사 올립니다. 선배님들.”
후배가 하극상 좀 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