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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33화 (32/275)

33화

여관의 공터.

별을 전부 소진해 지친 아카펠이 바닥에 누운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리와 팔이 후들거리는 게 한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개운한 표정이었다.

“서리스.”

아카펠의 부름에 서리스는 제복에 묻은 먼지를 털며 돌아보았다.

“고마워.”

작게 중얼거리는 감사 인사.

답답했던 게 풀린 듯 아카펠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나 청랑단을 그만둘까 했었어.”

“그건 네 마음이니 뭐라 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다 보는데.”

“하하, 다행이네.”

아카펠은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겸연쩍게 웃었다.

“정말로 다행이야. 청랑단에 들어오고 너희들을 만나서.”

아카펠의 표정이 바뀌었다.

인생은 언제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경험은 어느 것이든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법이니까.

“서리스, 나 끝까지 할 거야.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네 옆에 한 번쯤 서 보고 싶거든.”

“기대하고 있을게.”

“기대에 부응할게.”

그렇게 아카펠과 서리스가 동시에 웃었을 때였다.

콰당!

누가 넘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서발광과 도로시가 있었다.

“찾았다!”

“미안, 서리스.”

아무래도 도로시의 주위를 돌리는 게 한계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은 잘 맞춰 줬다.

어차피 아카펠과의 일은 다 끝났으니.

“활쟁이, 직계님이랑 뭐 했어. 그리고 표정은 왜 그래. 우중충하지 않으니까 이상해.”

그런 순간 도로시의 말을 듣고 서리스와 아카펠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도로시도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은 바뀌는 거구나.”

“나 놀리는 거지?”

“산짐승 같은 게 눈치는 빠르네.”

아카펠이 조용하게 감탄했을 때 도로시는 눈치 빠르게 아카펠에게 달려들었다.

“두, 둘 다 그만.”

“착쁜놈, 너도 나 빼돌렸지. 이리 와!”

공터 바닥을 나뒹구는 53기를 보며 서리스는 무심코 따라 웃고 있었다.

소드란 시절에는 겪을 수 없던 10대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이런 사소한 것들이 즐거웠다.

도로시나 아카펠 그리고 서발광만이 아니다.

청랑단 53기에 애착이 생겨 가는 것은 서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소속감이라는 것은 그 또한 알지 못했던 것이니까.

그들 중 누구보다 서리스도 변해 가고 있었다.

서리스가 그걸 자각했을 때는 청랑단에서의 1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 * *

어느새 또다시 봄이 다가왔다.

봄 냄새와 함께 여기저기 피어오른 꽃들이 봄을 반겼을 때.

서리스는 불을 전부 끈 방 안에 홀로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은 그는 별문신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별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1년 전 서리스의 외할아버지, 드웨이진이 일깨워 주었던 것.

육체는 하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를 곱씹는 사이 몸 깊숙하게 들어온 별의 힘이 전체로 퍼져 갔다.

그와는 별개로 근래 서리스가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서리스의 검은별은 가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서리스의 몸은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별을 불러들이고 있었고.

이것은 검은별에게도 똑같이 해당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검은별의 힘을 쓰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판단한 서리스였지만.

최근에 와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검은별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밖으로 흘러나오려 한다.’

시간이 갈수록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검은별의 힘은 서리스에게 쌓이고 있다.

만약 서리스가 검은별의 힘을 누르지 못하고 전부 흘러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폭탄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 침식의 폭탄.

서리스에 의해 농축된 세계 침식이 도시 한가운데서 터진다 생각하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최근 더욱 단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검은별의 힘을 저 스스로 억누를 수 있도록.

그의 육체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키와 덩치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침식의 흡수가 오히려 검은별을 억누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고 있어.’

세계 침식을 흡수하면 서리스의 육체는 보다 강해졌다.

검은별도 강해지는 건 같았으나, 더불어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니 되레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이는 마치 그릇의 크기를 키워 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세계 침식자가 맞을 거다.’

검은별이 폭발하는 순간,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 침식이 생길 거라고.

서리스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절대로 터지지 않아 주마.

‘그러기 위해서 나는 더 강해져야만 한다.’

서리스의 눈이 번뜩였다.

짧은 호흡과 함께 흘러들어온 별들이 강하게 빛났다.

몸 안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빛이 서리스의 숨을 한순간 멈추게 했을 때.

그의 목뒤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별의 힘이 느껴졌다.

5개의 별의 힘이 전신을 타고 느껴졌다.

서리스가 5성에 오른 순간이었다.

“하아.”

입에서 기다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땀이 옷을 가득하게 적시고 있었다.

“……올랐다.”

고작해야 발을 들여놨을 뿐이지만.

서리스는 드디어 5성의 벽을 넘었다.

거의 일주일을 가부좌를 튼 채 있었기 때문일까.

몸이 녹초가 되어 엉망이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전에 없던 힘이 몸 전신을 타고 흘러나왔다.

‘5성.’

서리스의 몸을 타고 전율이 일어났다.

대가문 펜타니엄 내에서도 17살에 5성에 이른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속도다.

천재란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은 수준에 오른 것이다.

“새삼 느끼지만.”

서리스는 검은별의 힘을 체감했다.

검은별은 분명 폭탄이다.

그러나 서리스의 힘에 검은별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앞에서 말했듯 서리스는 세계 침식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검은별이 흡수한 세계 침식의 힘은 온전히 서리스의 힘이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단의 열매인가.’

삼키면 삼킬수록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멈추지 못하는.

검은별을 그리 비유한 서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 동안 개인 훈련장을 빌렸던 만큼 이제는 비워 줘야 했기 때문이다.

끼익.

문을 열고 나오자 아침 햇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햇빛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서리스!”

그런 순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는 서리스가 개인 훈련장에 들어간 이후 매일같이 밥을 챙겨 왔던 서발광이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는 곧 기쁜 표정을 얼굴 가득 그렸다.

“해냈구나!”

“그래.”

개인 훈련장에 들어가기 전 모두에게 미리 말해 뒀었다.

세 사람을 챙기느라 잠시 미진했던 수련에 집중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 끝에 그가 원하는 바를 얻었음을 알아챈 서발광은 서리스 앞으로 달려왔다.

“축하해! 정말 축하해!”

“고마워. 내가 훈련장에 있던 동안 별일 없었지?”

개인 훈련장인 만큼 식사 빼고는 모든 걸 제한해 뒀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없던 일주일간의 바깥소식이 궁금했다.

“아, 곧 있으면 54기를 뽑는다고 해.”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 참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서리스는 문득 떠올렸다.

“그럼 아마.”

“응, 우리도 시험관으로 가게 될 거라 생각해.”

역시 그런가.

아무래도 새로운 막내들이 입단할 시간이 온 모양이다.

“그럼 나는 우선 씻고 올게.”

“알았어. 밥은 어쩔까?”

“방에 가져다 놔 주라.”

“그래.”

서발광은 마치 주인을 오랜만에 본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는 쪼르르 달려갔다.

키는 꽤 커졌는데, 여전히 작은 동물 같은 서발광이었다.

‘마침 저기 주인도 무는 개가 오네.’

“어, 직계님 나왔어?”

거기에는 도로시가 있었다.

아직 날이 쌀쌀한데도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던 그녀는 서리스를 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멋대로 먼저 강해지지 말아줘.”

눈치챘군.

“언제부터 내가 강해지는 데 네 허락을 받아야 했냐.”

“그럼 허락받아 줘.”

“그래, 그럼 허락받을 테니까. 바로 한판 붙어.”

“싫어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서리스에게 이긴 적 없는 도로시여서일까.

그녀는 질색하며 아이스크림을 물고 가버렸다.

그래도 1년 동안의 교육이 성과는 있는 모양이었다.

* * *

이후 서리스는 목욕탕에 도착했다.

방에 개인 욕실이 있긴 하나 일주일간 고생한 만큼 탕에서 몸을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증기가 자욱한 탕 안으로 들어온 서리스는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훈련으로 엉망이 되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요오, 서리스, 나왔구나.”

그런 순간 서리스는 익숙한 목소리의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목욕탕에 온 듯한 그는 52기 대표 라파즐리였다.

“와, 너 몸이 더 좋아진 거 같은데? 이제는 무서울 정도야.”

“매일 단련하니까요.”

“나도 매일 단련하는데 그렇게는 안 되거든.”

이제는 짐승 같다며 농담을 하던 라파즐리는 탕 속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그거 알아? 곧 청랑호법 중 한 명이신 아만다 선배님께서 은퇴하신대.”

못 들은 이야기였기에 서리스는 관심을 가졌다.

“꽤 오래 하셨다고 들었거든. 덕분에 곧 청랑호법 자리 중 하나가 공석일 예정이지.”

“그건.”

“맞아. 청랑호법 후보 한 명을 뽑게 될 거야. 그것도 기수 대표 중에서.”

‘재밌겠지?’라는 표정으로 라파즐리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어때? 최연소 청랑호법, 노리고 싶지 않아?”

역대 청랑호법이었던 이들의 평균은 대략 30대였다.

그런데 만약 17살인 서리스가 청랑호법이 된다면 어떨까.

청랑단이 발칵 뒤집힐 거란 건 안 봐도 뻔하다.

‘정신 연령을 생각하면 최연소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민망하지만.’

실력은 나이와는 무관한 법이니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서리스가 청랑호법이 된다 해도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입단한 기수인데, 괜찮을까요?”

“예외는 있는 법이지.”

서리스가 그 예외 중 한 명이라며 라파즐리는 웃었다.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거야. 48기수 대표가 괴물이거든.”

그 말의 서리스는 48기수 대표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사람은 만만치 않다.

청랑단주인 하다크가 직접 눈여겨보고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다음 청랑호법은 그 사람이 될 확률이 가장 높았다.

“물론 나도 있고.”

“도전하실 생각인가요?”

“도전해 볼 가치는 있거든. 그러니 조심해. 나한테 당할 수도 있어.”

히죽 웃은 라파즐리를 보고 서리스도 따라 웃었다.

“아, 그리고 서리스 너 시험관 대표 좀 해 주라.”

“잘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진 그의 부탁은 그런 서리스의 미소를 싹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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