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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31화 (30/275)

31화

“지금부터 잘 들어. 서발광.”

“예.”

존대를 붙이며 서발광이 고개를 숙이자 서리스는 자세를 낮췄다.

곧이어 서리스의 손끝에 별빛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너에게 심어 주려는 별문신은 나 말고는 어느 누구도 모르는 별이야.”

지금 서발광에게 심으려는 것은 다름 아닌 소드란의 별이다.

천랑후 말고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소드란의 별.

그것을 서발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소드란의 별문신을 심은 시점에서.’

서발광은 이제 완전히 서리스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비밀을 지킬 수 있겠어?”

“저는 이제 서리스 님의 수하니까요.”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발광을 보고 서리스는 그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지금부터 별문신 하나를 새길 거야. 기존에 있던 별 위에 덧씌울 거니 알아 둬.”

그에 서발광이 대답 대신 윗옷을 내려 목을 드러내었다.

그의 목에는 검호의 별이 새겨져 있었고, 서리스는 그 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소드란의 별을 새겨 보는 것은 서리스도 난생처음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소드란의 별을 원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별을 다루지 못하는 시점에서 원하는 이가 있어도 새길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처음이라서일까.

서리스도 긴장한 모습으로 서서히 별문신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소드란의 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있어 서리스 이래로 두 번째인 이가 소드란의 별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윽.”

별이 타고 흐르는 감각 때문인지 서발광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서리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별을 움직였고, 몇 분이 흐른 뒤 그는 땀을 닦고 있었다.

“다 됐어.”

서발광의 목뒤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별의 문신.

소드란의 별이 서발광에게 새겨졌다.

서발광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이걸로 해결된 거냐는 듯이.

“서발광,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걸 따라 한다. 알겠지.”

서발광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그의 앞에서 가부좌를 틀었고, 곧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어갔다.

“천천히 별을 불러들여라. 그리고 별을 타고 흘러들어온 그 힘을 몸 전체에 고르게 퍼트려.”

이미 지금까지 별을 수없이 다뤄 온 서발광이다.

이 정도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었다.

그렇기에 서발광은 서리스의 말을 따라 금방 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 예전과는 달랐다.

흐르는 별이 무언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목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묵직한 감각.

서발광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별과는 너무나 다른 감각이었기 때문이다.

“서리스 님.”

“계속 받아들여. 호흡을 하면서 몸 전신으로 고르게 다 퍼트려야 하니까.”

서발광은 반박하지 않고 계속해서 별을 받아들였다.

‘빠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서리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발광이 별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자신보다도 빨랐기 때문이다.

‘내부가 텅 비어 있으니까.’

서리스의 육체에는 예전부터 이미 청운귀명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반면 서발광이 새긴 것은 임시로 새긴 검호의 별이다.

집단의 별은 많은 이가 새기는 만큼 가문의 별보다 효력이 약하다.

그렇기에 텅 비어 있던 서발광의 속이 금강잔월의 별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서발광을 받아들이는 건 역시 정답이었어.’

그라면 강해질 거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 온 서발광의 성격이라면 반드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줄 것이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발광은 어딘가 다른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훈련으로 인해 늘 피로감이 느껴지던 몸이다.

그러나 오늘따라 왜인지 몸이 생동감 있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일어나 봐. 서발광.”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서리스를 보고 서발광이 따라 일어났다.

그 순간 이전과 달리 가뿐하게 몸이 일어나졌다.

서발광의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 서리스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네가 심은 별의 이름은 소드란, 소드란은 금강잔월이라는 비기를 가진 가문이다.”

“소드란이요?”

자신의 변화에 놀라면서도 소드란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봤다는 듯.

낯선 이름에 당황한 서발광이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본 적 없을 거다.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돼.”

이 세계에서 소드란은 없는 존재니까.

“하지만 별은 확실하게 존재한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금강잔월의 힘이 크니까.”

그러면서 서리스가 쥔 주먹 위로 별이 깃들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오른팔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육체의 극의를 보여 주듯.

그의 근육은 너무도 선명하게 별로 타오르고 있었다.

“금강잔월의 모토는 별을 이용한 육체 단련과 흐름.”

서발광의 눈이 번뜩였다.

소드란의 별을 새겼기에 알 수 있다.

지금 서리스의 육체가 금강잔월로 인해 얼마나 단련되어 있는지.

“네가 얼마나 단련하는가에 따라 소드란은 그만큼 보답을 해 줄 거다.”

서발광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뛰어났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 단련, 단 하나.

“더 이상 네게 육체의 제약은 없어.”

그는 날아오를 것이다.

쌓아 올린 기술이 육체 위에 날개를 펼치고, 화려하게 비상하겠지.

그 순간, 서발광이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함께 서발광은 오열을 토해 내었다.

“……감, 사합니다. 서리스 님. 고마, 워요.”

단 한 번의 운성조식.

그걸로 서발광은 변화를 체감했을 것이다.

이거라면 자신도 바뀔 수 있다.

평생의 한을 풀어낼 수 있다.

천추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이다.

서리스는 그 기분을 안다.

평생 동안 육체라는 한계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삶이.

한순간에 바뀌는 그 감각을.

그렇기에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그 눈물은 그동안의 한을 털어 내는 눈물이었을 테니까.

“당분간은 운성조식을 반복해. 그것만으로도 변화를 체감할 테니까.”

“저 열심히 할게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그리고 보답할게요.”

서발광은 눈가를 손으로 열심히 닦아 내며 대답했다.

믿음직스러운 그를 보고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말 놔도 돼. 너랑 나는 같은 청랑단 기수니까.”

“하지만.”

마치 서리스를 은사처럼 여기듯 망설이는 서발광을 보고 서리스는 쓰게 웃었다.

서발광은 한 번 상하 관계를 정하면 철저하게 따르는 타입이었다.

“너와 내 관계는 당분간 비밀리에 붙일 거야. 우리 둘 다 아직은 약하니까. 대신.”

서리스는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그때가 되면 수하로 돌아와 줘.”

“알겠습, 아니, 알았어.”

그리 말하던 서발광은 무언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마치 말할 것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던 그였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우선 돌아가자.”

“아.”

이게 우선이었다.

서발광은 지금 자신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병실을 뛰쳐나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흠칫한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서리스는 개의치 말라는 듯 몸을 돌렸다.

이후 서리스와 서발광이 병실로 돌아온 뒤 소식을 들은 아카펠과 도로시도 병실로 왔다.

듣기론 둘 다 흩어져서 레일로까지 뒤지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왜 도망갔어?”

도로시가 대놓고 묻자 서발광이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 잠깐 생각이 많아져서.”

“찾았으니 됐어.”

도로시는 대수롭지 않다는 양어깨를 으쓱이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서발광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듯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서발광을 본 아카펠이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서발광의 표정이 이전과 다르게 많이 밝아졌단 걸 눈치챘다.

“잘 설득한 모양이네.”

서리스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날 그렇게 한차례 소동이 끝마쳤다.

* * *

그날 이후 꽤나 많은 것들이 변해 가기 시작했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도로시였다.

애니쉬아와의 일이 있었던 이후, 그녀는 처음으로 청랑단이라는 집단을 자각했다.

“도로시, 너 또 청소하다가 도망쳤지!”

“그 정돈 직접 해. 언제까지 내가 챙겨줘야 해.”

“내가 선배거든?”

“나는 후배라 그런 거 서툴러서 못해.”

“이게, 해보자는 거지!”

여자 방 쪽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울렸다.

최근 애니쉬아만이 아닌 다른 여자 기수들과도 잘 어울리기 시작한 도로시였다.

비록 본래의 성격은 여전한 그녀였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전에는 완전히 벽을 치고 지냈다면, 지금은 그 벽을 스스로 허물고 있었다.

고양이가 집사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느낌으로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슬슬 도로시를 대하는 법을 안 것도 있겠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덕분인지 적응이라는 압박감이 없어지자.

도로시도 실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서발광이 요즘 운동 빡세게 하냐? 몸 좋아졌네.”

“아하하,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 서발광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일단 최근 체중과 키가 늘었다.

원래도 워낙 왜소했던 서발광이라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서발광의 육체는 확실히 자라나고 있었다.

‘애초에 성장기였고, 이제야 육체가 활동을 시작한 거겠지.’

훈련 도중에도 서발광은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체력적인 부담이 갈수록 줄어드는 만큼.

이제 단시간에 전투를 끝내야 한다는 버릇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늠름해져 가도 내성적인 그의 성격 때문인지 여전히 귀여움 받고있는 그였다.

아카펠은 최근 조금 고민이 있는 듯하였다.

도로시와 서발광의 성장에 비해 자신은 딱히 큰 변화가 없었으니까.

그도 나름의 성장 과정을 겪고 있는 거겠지.

“서리스, 오늘도 나랑 대련 한 번 하자!”

잠시 지난날을 돌이키던 서리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에는 선배 기수들이 있었고, 훈련장을 가득 메운 그들은 서리스를 보고 눈을 번뜩였다.

그날 있었던 세계 침식 이후, 서리스는 선배 기수들과 더 친해졌다.

그래서인지 그의 실력을 높이 산 선배 기수들이 매일같이 대련하려고 안달이었다.

“또 깨지시려고요.”

“요놈 봐라. 선배를 우습게 아네. 하지만 이번에는 이긴다.”

눈을 번뜩이는 선배 기수를 보고 서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쪽도 전투는 환영이다.

“좋다.”

“응, 좋네.”

그리고 서리스가 선배 기수들과 어울리는 사이 그런 그를 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여자 단원들이었다.

“창창한 미래에다가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티도 나고, 늠름하면서 잘생기기까지. 정말 다 가졌네.”

“나도 16살로 돌아가고 싶다. 그럼 더 적극적으로 해 볼 텐데.”

속닥거리는 여자 기수들은 때마침 눈앞에 도로시가 지나가자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얼른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도로시, 서리스는 뭐 좋아하는지 알아?”

“아이스크림.”

“그건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대화 주제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 도로시를 보고 그녀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가까운 애가 어떻게 보면 제일 관심이 없네.”

“응, 우리 도로시는 아직 너무 어리니.”

“나 16살인데?”

도로시가 의아해하든 말든 아쉬워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뒤에서 한사람이 불쑥 나타나 둘의 허리를 손으로 둘렀다.

“아가씨들, 내가 이미 침 바른 거 알면서. 또 이러네.”

“클, 클로나.”

그녀는 다름 아닌 클로나였다.

눈웃음을 짓고 있지만 살벌함이 느껴지자 둘은 슬쩍 그녀에게서 빠져나가 도망쳤다.

“참,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언제는 자기 보고 연하만 보며 눈 돌아간다며 헐뜯더니.

잠깐 한눈판 사이에 저런다.

“도로시, 저런 애들이 다가오면 쳐내렴.”

“왜?”

“응, 앞으로도 그렇게 순순하게 있어 줘.”

윙크해 준 클로나는 서리스 쪽으로 쪼르르 가기 시작했다.

그런 여성 기수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도로시만이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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