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사실 서리스는 어느 정도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다.
도로시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분노하던 서발광.
그의 표정은 누가 보아도 반드시 일이 터질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름 서발광의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서리스는 훈련 중에 서발광에게 드문드문 조언을 계속해 왔고.
그 결과 그의 몸도 바뀌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금의 변화에 그칠 뿐.
서발광의 본질적인 육체적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 겹친 상황이 너무 나빴어.’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를 평생 동안 발목 잡았던 육체적인 한계로 인해 서발광은 도로시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도 최악은 면했지만.’
만약 그녀가 죽었다면 서발광은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천만다행히 애니쉬아 덕분에 도로시는 무사했고,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도로시가 살아 돌아왔어도 그가 느꼈을 책임감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육체적 한계라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큰 단점에 의해 누군가를 잃을 뻔했으니까.
소심한 서발광은 그에 대한 죄책감을 더 크게 느끼겠지.
“착쁜놈 어디 갔어.”
그러는 순간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있던 도로시가 빈 병실로 왔다.
“도로시 네가 여기까지 오고 웬일이냐.”
“착쁜놈이 아까 자꾸 수상쩍게 봐서 와 봤어.”
아카펠의 물음에 도로시가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꿀떡 삼키곤 말했다.
서발광과 도로시의 사이는 꽤 서먹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 둘의 사이는 쉽게 좋아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카펠, 나 찾아보고 올게.”
“아, 그래, 찾아야지.”
“착쁜놈, 도망쳤어?”
아직 회복이 덜 된 도로시를 두고 서리스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맡은 바 직책이 대표다.
문제가 더 생기기 전에 찾아내야겠지.
‘서발광 성격이라면 청랑단을 떠나지는 않았을 거다.’
청랑단 건물을 돌아다니면서도 서리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다 비슷한 곳이었다.
본래 성격 자체가 소심한 서발광은 돌발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적다.
그리고 이번 건에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당연히 그 문제를 보완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을 것이다.
‘지금 하는 돌발 행동은.’
어디까지나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범벅 되어 스스로가 견디지 못하고 한 돌발 행동.
서발광의 문제는 이미 앞서 말했으니.
“여기 있군.”
아니나 다를까, 훈련하기 좋은 곳에 와있었다.
청랑단 근처 초목이 있는 공터.
눈이 보이지 않기에 다른 감각이 예민한 서발광은 수련을 위해 혼자 있을 장소를 선호하곤 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거겠지.
“서발광.”
서리스가 부른 순간 서발광의 고개가 돌아갔다.
귀가 예민한 서발광이다.
이쪽이 다가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겠지.
서발광을 슥 둘러보니 그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땀으로 범벅된 상태로 거친 호흡을 뱉고 있는 건 둘째치고.
기껏 봉합해 놓은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와 병원복을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육과 뼈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서리스.”
서발광의 목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울분을 담은 듯.
그는 스스로가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나는 왜 이런 걸까.”
그의 검이 땡그랑 하고 떨어졌다.
굳은살이 터져 핏물이 흐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양 고개를 숙이며, 그는 이를 깨물었다.
“대체 왜 이딴 몸으로 태어난 걸까.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변하지를 않아.”
육체적 한계.
“무슨 노력을 해도 보답받지를 않아.”
오늘 그것을 더 뼈저리게 느낀 듯 서발광은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자신의 몸이 너무도 밉다는 듯 그의 손톱은 팔을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 이게 노력하는 거냐.”
서리스가 묻자 서발광의 몸이 움찔거렸다.
지금 서발광이 하는 행위는 자신의 몸을 망치는 행위다.
노력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화풀이만 있을 뿐.
“네 육체의 한계를 잘 아는 네가 자기 몸을 망쳐서 어쩌자는 거냐.”
“너는 모르잖아!”
그 순간 서발광이 소리를 내질렀다.
평소 소심하던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벼랑 끝으로 몰려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외침이었다.
“나처럼 살아 본 적이 없잖아.”
눈도 보이지 않는다.
몸도 왜소하고 약하기 그지없다.
최악의 조건을 다 가진 서발광은 오열하며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살아 본 적 없다, 라.”
그리고 서리스는 가볍게 웃었다.
마치 지금 그따위 소리를 자신한테 하냐면서.
“서발광, 그 말 그대로 되돌려 주지. 너야말로 나처럼 살아 본 적 있냐?”
서발광의 몸이 움찔거렸다.
내가 너를 모르듯 너도 나를 모르지 않냐고.
서리스가 되물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한때 너보다 더 처절했다면? 검술이라도 익힐 수 있는 네가 차라리 부러웠던 인생이었다면?”
그럼 어쩔 거냐고.
서리스가 의문을 던졌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서발광은 사람의 감정을 목소리로 읽는다.
사람이 말하는 어조와 거기에 담긴 감정에 보다 예민한 것이 서발광이었다.
그런 그가 듣기에도 지금 서리스는 진심을 담아 얘기하고 있다.
평생의 한이 깃든 그 목소리는,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발광, 네 인생만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별이 깃들기는커녕 검조차 휘두르지 못하는 최악의 육체.
서발광보다도 더한 육체를 지녔던 것이 바로 서리스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싸우는 누군가에게 금강잔월 열화판을 걸어 주는 것뿐.
별을 다룰 수도 없고, 무기를 들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소드란의 가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서리스는 모진 말들을 담담히 받아 내었다.
그러는 동안.
그 속은 대체 얼마나 썩어 나갔는가.
“나는 우연한 기회가 있어 바뀐 거다. 너처럼 노력조차도 할 수 없는 인생이었으니까.”
노력이 무의미한 세계가 있다.
서발광처럼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는 세계가 아닌, 발버둥조차 칠 수 없는 세계가.
서리스는 그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서리스, 너 대체 뭘.”
겪었기에 그런 지독한 감정이 담긴 거냐고.
서발광은 자신이 하던 말도 잊고 멍 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서발광에게 있어서 서리스는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에게는 없는 너무나도 부러운 재능.
그러나 서리스는 그것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서발광, 자신의 노력을 보답받고 싶다고 했지.”
서발광은 홀린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자신의 노력을 보답받고 싶어 하는 것은 같다.
서리스는 그저 기연으로 그 기회를 쥐었지만.
이번에는 서리스가 서발광에게 기연이 되어 주기로 결정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쉽사리 내줄 생각은 없었다.
서리스의 앞길은 험하다.
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분명 펜타니엄 내에서도 움직임이 생길 것이다.
저번과 같이 웃어넘길 수준의 약한 암살자가 아니라 직계들이 직접 움직일 테니까.
그가 당장 가주 자리보다 강해지는 것만이 목표라고 한들.
강해지는 이상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서리스가 지닌 검은별부터, 그가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는지까지 모든 의문을 풀어 내려면.
앞으로 수많은 위험을 지나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험을 지나칠 수 있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는 녀석이 필요하다.’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인 이상 그도 쉬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자신의 뒤를 지켜줄 패를 원하고 있었다.
그 패 중 하나가 천랑후.
하지만 눈앞에 지금 그 천랑후보다 크게 성장할 재목이 있다.
그것도 아직 약하고 여러 서리스가 집어삼키기에 가장 적합한.
‘이 순간을 지금까지 노린 것은 아니지만.’
서리스는 서발광의 지금 상황을 기회라고 여겼다.
맹인 검사 서발광이라는 패를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조건이 뭐야?”
아니나 다를까, 서발광이 미끼를 물었다.
정신적으로 몰린 지금, 육체적 재능을 타고난 서리스가 한 말이니.
그로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리고 서리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밑으로 들어와라.
자신의 심복이 되라는 그 말에 서발광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마치 굳이 자신을 밑으로 들일 이유가 있냐는 듯이.
“너는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달라.”
검술로는 서리스를 능가할 정도의 재능.
이미 개화 중인 그 재능이 후에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서리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해질 거다. 그렇기에 내가 가는 길에 넌 반드시 도움이 돼.”
서리스는 서발광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제안하는 거야. 네가 내 수하로 들어온다면, 나는 너를 확실히 책임질 거니까.”
반대로 거절한다면 도움은 없다.
수하가 되어 주지 않을 녀석에게 굳이 은혜를 입힐 이유도 없으니까.
서리스의 말을 듣고 서발광의 표정이 흔들렸다.
“내가 해결해 줄게. 네가 더 이상 육체적 한계를 느끼지 않도록, 기필코.”
서리스는 확신 섞인 어조로 말했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확신에 찬 말투에 서발광이 당황했다.
그러나 서리스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봐 온 서리스는 어느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어느새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태양 사이로 노을빛이 그들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자리 잡은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 속 노을빛이 완전히 서발광을 물들였을 때.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서리스, 아니.”
서발광은 자신의 부름을 정정했다.
“펜타니엄 서리스 님.”
서발광의 말투가 바뀌었다.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그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도 경건하게 바뀌었다.
“당신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미래,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던 맹인 검사 서발광이.
서리스에게 수하가 되겠다고 했다.
그런 서발광을 내려다보는 서리스의 얼굴 위로 담담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그날 그렇게 맹인 검사 서발광이 서리스의 수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