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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9화 (28/275)

29화

애니쉬아가 그녀를 눈으로 좇았을 때.

도로시는 이미 한 대 뭉쳐 거대하게 변한 흑사(黑巳) 앞에 도달해 있었다.

역수와 정수로 쥔 도로시의 검이 맹렬하게 휘둘러졌다.

“기이이익!”

도로시의 검에 의해 흑사가 요동쳤다.

그러나 흑사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몸체에서 뜯겨 나온 뱀들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휘감아 오르며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태앵!

그러나 뱀들의 이빨은 도로시의 피부를 꿰뚫을 수 없었다.

청괴사의 강도 높은 비늘은 그들의 이빨로는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로시 쪽도 여유는 없었다.

마왕화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도로시가 마왕화를 유달리 꺼리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마왕화는 자신의 힘을 한계치까지 모조리 다 잡아먹는다는 거다.

그것도 도로시 의사와 상관없이 끝까지 말이다.

즉, 지금 이때 흑사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소리다.

그런 것을 눈치챈 건지.

흑사에게서 쏟아져 나온 뱀들이 도로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힘으론 도로시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시간 벌기를 할 속셈인것이다.

“야비하네!”

뱀들에게서 튕겨 나온 도로시가 이를 뿌득 갈았다.

이래선 정말로 기껏 쓴 마왕화의 시간이 끝나고 만다.

“로시로시!”

그 순간 애니쉬아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종유석을 타고 달리던 도로시의 시야에 양날 도끼를 거대하게 부풀린 애니쉬아가 보였다.

“흑사는 뱀 마수를 통솔하는 진짜가 있어! 거기로 전력으로 날려 줄 테니 너도 전력으로 날뛰어!”

자신을 믿으라는 듯 외치는 애니쉬아를 보고 도로시는 핫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종유석을 박찬 도로시가 순식간에 애니쉬아의 도끼에 안착했다.

마치 발판처럼 도끼 위에 앉은 그녀는 흑사를 노려보며 외쳤다.

“똑바로 날려 줘!”

믿음을 담은 그 외침.

그걸 듣고 환한 웃음을 지은 애니쉬아의 별빛이 거세게 빛났다.

“이야아아아아악!”

그녀의 전력을 담은 기합과 함께 태풍이 일어나듯 도끼가 휘둘러졌다.

휘둘러진 도끼를 박찬 도로시는 마치 포탄과 같이 흑사를 향해 날아들었고.

그녀는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검을 든 양손을 교차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분쇄기처럼 그녀의 몸이 회전하며 거대한 흑사의 몸뚱이를 갈라 버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흑사가 그녀를 막아 보고자 마구잡이로 뱀들을 휘둘렀으나.

도로시의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뱀을 통솔하는 녀석은.’

흑사를 모조리 뚫고 나가며 도로시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눈동자 속 포착된 것은 흑사 중에서도 가장 별의 힘이 강력한 별종이었다.

“죽어어!”

그놈을 발견하자마자 도로시의 칼날이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움직였다.

촤자자작!

짧은 외침과 함께 휘둘러진 그녀의 검에 뱀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기이이이이이익!”

그 순간 흑사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뱀의 형상을 이루던 뱀들이 모조리 터져 나가며 사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흑사 속에서 튀어나온 도로시도 벽에 부딪히며 나뒹굴었다.

그녀의 입에서 빛을 잃은 청괴사의 비늘이 툭 하니 떨어져 내렸다.

마왕화의 시간이 다 된 듯 그녀는 녹초가 되어 벽에 늘어졌다.

그러던 그때, 아직 힘이 남은 뱀 마수 한 마리가 도로시를 물어뜯고자 튀어 올랐다.

모든 힘이 다 빠진 도로시가 반응도 못 한순간.

콰직.

때마침 나타난 도끼가 뱀을 반 토막 내었다.

거기에는 애니쉬아가 있었고, 그녀는 미소와 함께 곧장 도로시를 부축했다.

“로시로시, 괜찮아? 마지막 다 소진해서 죽는 플래그 아니지?”

“도로시는 천하무적이거든.”

평소와 같이 도로시가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은 다 빠졌는지 그녀는 애니쉬아에게 기대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애니쉬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응, 돌아가자.”

진짜 청랑단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애니쉬아와 도로시가 복귀하던 때.

동굴 벽 쪽에서 그런 둘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리스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팀 쪽에 새로운 마수가 나타나 상황이 급박해졌다는 소식과 함께 1팀은 곧장 2팀으로 합류했다.

2팀의 상황은 꽤나 처참했다.

새로 등장한 마수는 다름 아닌 세계 침식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청괴사와 세계 침식의 주인,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다 보니.

사망자가 없는 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2팀은 전멸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망자가 없지만, 실종자 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애니쉬아와 도로시였다.

“서리스, 미안해. 네 부탁 지, 키지 못, 했어.”

합류한 서리스를 보고 모든 체력이 다 소진해 서지도 못하는 서발광이 말했다.

도로시가 위험할 것 같으니 봐 달라고 했던 서리스의 부탁을 서발광은 끝까지 지키려 했다.

새로 등장한 주인에게 당한 도로시가 공간 왜곡으로 떨어질 때.

애니쉬아 말고도 서발광도 같이 뛰었었다.

그러나 이미 청괴사를 상대하느라 체력을 많이 소진했던 서발광은 왜곡에 닿지 못했다.

턱까지 차오른 숨과 무거운 다리가 발목을 잡아 공간 왜곡이 먼저 닫혔기 때문이다.

도로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또 한 번 절실히 느낀 서발광은.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딴, 이딴 몸만 아니었다면 도로시는.”

도로시가 죽었을 거라 생각한 건지 악을 쓰는 서발광을 보고.

빠악!

서리스는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깜짝 놀란 서발광이 새빨갛게 물든 눈으로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애니쉬아 선배님이 같이 갔다며. 그럼 괜찮아. 네가 다한 최선은 이미 잘 아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 아직도 둘 다 돌아오지 않았어.”

“확인 해보지도 않은 결과로 두려워하지 마라. 그게 가장 쓸데없는 짓이야.”

그리 말한 서리스는 서발광을 안전한 장소에 데려다주고 그림자 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한 부탁 내가 지키러 갈 거니까. 걱정마.”

서리스는 서발광을 두고 바닥을 박찼다.

그러곤 부상 당한 2팀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던 1팀으로 돌아갔다.

“클로나 선배님, 실종자 두 명 있습니다. 그 둘을 구하러 가도 되겠습니까?”

주인을 그림자로 가까스로 묶어 둔 클로나는 식은땀과 함께 눈웃음을 지었다.

“후배님, 우리도 꽤 벅찬 상황인데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허락한다!”

그녀가 단번에 허락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저기 부들 사이로 보이는 한 남자와 그를 뒤따르는 무리가 이쪽으로 맹렬히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번 임무를 맡은 청랑단의 주 전력인 청랑호법 다트론과 48기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선물 가져와 줘!”

선물은 실종자 두 명을 무사히 구해 오는 거면 되겠지.

그 생각과 함께 서리스는 공간 왜곡을 찾았다.

세계 침식의 공간 왜곡은 본래 제멋대로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그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지만, 서리스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본래라면 서리스도 어쩔 도리가 없는 공간 왜곡이지만.

서리스에게는 딱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검은별.’

어째서인지 서리스는 공간 왜곡을 보자마자 알았다.

자신이 마음먹는다면 닫힌 공간 왜곡도 열 수 있을 거라고.

“하, 진짜 세계 침식자 다 됐네.”

몸이 자연스럽게 아는 게 무섭지만, 도로시와 애니쉬아를 구하려면 이 방법에 기대야 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검은별의 힘을 빌렸다.

먹물 같은 별빛이 그의 목 아래에서 뚝뚝 흘러나온 그 순간.

서리스의 앞에 닫혔던 공간 왜곡이 입을 벌렸다.

자신이 봐도 꺼림칙한 힘을 느낀 채 서리스가 공간 왜곡으로 뛰어든 순간 주변 경치가 바뀌었다.

종유석이 듬성듬성 있는 동굴 속.

그리고 메아리치듯 멀리서 들려오는 병장기 소리.

서리스가 서둘러 소리를 쫓아갔을 때 거기에는 광장에서 싸우는 도로시가 있었다.

‘저건.’

세계 침식에 대해 자세히 공부했던 서리스는 마왕 아라만의 비기도 알고 있었다.

그의 비기는 너무 특수해서 한 번 들으면 바로 기억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의 비기를 도로시가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화를 사용한 도로시도 흑사를 상대로 아직 고전하고 있었다.

그걸 본 서리스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애니쉬아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올 필요도 없었군.’

애니쉬아와 호흡을 맞춘 도로시가 흑사를 쓰러트리는 것을 보고 서리스는 직감했다.

도로시가 변했다.

‘앞으로 달라지겠네.’

도로시가 누구와 협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의 성장을 의미하겠지.

사람은 누구든지 성장한다.

서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공간 왜곡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을 보고 서리스도 밖으로 나왔다.

그사이 다트론의 합류로 인해 주인과의 전투는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럼 사기 진작도 할 겸.”

실종자 두 명의 귀환이라는 선물과 함께 주인을 처치할 시간이다.

* * *

“모두 오늘 수고했다.”

이후 청랑단은 이번 세계 침식을 무사히 해결하고 귀환했다.

“오늘 고생한 만큼 내일 하루는 휴가다. 푹 쉬어라.”

다트론의 말을 듣고 청랑단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내일 하루 푹 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벌써부터 술집으로 가는 이들도 있었으니.

어지간히 휴가가 기쁜 모양이었다.

아니, 사실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큰 걸지도 모른다.

세계 침식 내에서는 매 순간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오늘만 해도 청랑단원들은 각자 한 번쯤 죽음의 위기를 지나쳤을 테니까.

그렇기에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회포를 푸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서리스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세계 침식의 주인을 모두와 함께 무사히 처치하고 난 뒤.

서리스는 자신에게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세계 침식의 주인이 죽은 순간, 놈에게서 흘러나온 검은색의 별빛 때문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어.’

오직 서리스만이 보이던 그 검은색 별빛.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소드란 시절 세계 침식 속에서 평생 굴러왔던 서리스조차도 본 적 없는 그 별빛은.

세계 침식의 주인이 죽은 후 새어 나와 그대로 서리스에게 몰려 왔기 때문이었다.

반응할 새도 없었다.

서리스의 몸을 휘감은 별빛은 곧바로 그에게 모조리 흡수되어 버렸다.

‘대체.’

검은색의 별빛이 흡수되자마자 서리스는 검은별의 힘이 전보다 강해졌음을 느꼈다.

분명 다음에 검은별을 사용하는 순간 이전보다 강한 힘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대체 검은별은 무엇일까.

이번 세계 침식에서 확인한 것이라곤.

서리스 자신이 세계 침식에서 무언가 흡수하고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젠장, 이런 식으로 강해질 마음은 없는데.’

강함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검은별같이 찝찝한 것에 기대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괜스레 찝찝함을 느끼며 목덜미를 매만졌다.

“서리스, 도로시와 서발광 보러 가려 하는데 갈래?”

그런 도중 아카펠이 말을 걸어왔다.

별과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탈진한 채로 먼저 이송된 두 사람이다.

아마 지금쯤 병실에 누워 있겠지.

“그러자.”

서리스는 생각을 돌릴 겸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별에 대한 해답이 풀리기에는 아직 너무 많은 게 부족했다.

즉 지금 알아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잠시 고뇌를 접어 두고 찾은 병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주사 놓으러 왔더니 없어졌네요.”

간호사의 곤란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텅 빈 병실 침대를 가리켰다.

병실 침대의 주인은 다름 아닌 서발광이었다.

그래, 맞다.

서발광이 사라졌다.

“한 녀석을 해결했더니 또 한 놈이 난리구만.”

내뱉은 말에 비해 서리스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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