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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6화 (16/275)

16화

펜타니엄 동쪽 영지 레일로.

끝없는 초롱과 가장 넓게 맞닿아 있는 지역이자 펜타니엄의 군사 요충지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년 열리는 청랑단 모집은 매년 화제였다.

펜타니엄은 물론 다른 영지에서도 입단을 위해 찾아올 정도로.

청랑단의 이름은 드높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러한 청랑단 참가자들이 모이는 날.

여기에는 때마침 접수를 마치고 대기실 강당으로 들어온 한 남성이 서 있었다.

흰색 피부 위로 깔끔하게 정돈된 청록빛 머리카락, 길쭉한 팔다리.

전설 속 엘프를 연상케 하는 그는 칸빌레 아카펠이라는 자였다.

칸빌레 가문의 직계 중 둘째인 그가 청랑단 시험을 위해 레일로를 찾았다.

‘다 시원찮은 느낌이네.’

시험을 위해 모인 참가자들을 보며 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둘러보아도 마땅한 실력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낙승이겠지.

비록 차기 가주 경쟁에서는 이지스에게 밀리긴 했지만, 실력에는 자신 있는 그였다.

“와, 이번 시험 펜타니엄 직계도 참가한다던데?”

“미친, 한 자리는 무조건 채워졌겠구만.”

아카펠의 귓가에 참가자들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카펠은 소가문인 칸빌레의 사람이다.

당연히 펜타니엄 쪽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으며 직계라면 더더욱 잘 안다.

‘지금 시기에 청랑단 시험을 칠 펜타니엄 직계면.’

청랑단 입단 나이는 16살부터다.

펜타니엄 직계 중 첫째는 이미 워너힐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고.

둘째는 그 아카데미 올해 입학.

넷째와 다섯째는 올해 15살이니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을 텐데.

‘설마?’

아카펠의 눈빛이 묘함을 띄웠다.

남은 건 셋째 펜타니엄 서리스 뿐.

그러나 작년 펜타니엄에서 열린 파티에 참가했던 아카펠은 기억하고 있다.

여식들에게 다가가 치근덕거리기만 하는 별 볼 일 없는 녀석을.

몰락하고 게으른 삼남.

그 말이야말로 서리스에게 딱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그런 펜타니엄 직계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놈이 청랑단 시험을 친다, 라.

세상이 두 쪽 나도 그럴 일은 없을 것만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지스 누님이.’

서리스의 과거 모습을 생각하던 아카펠은 문뜩 이지스가 지나가듯 흘린 말을 떠올렸다.

펜타니엄 서리스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런 놈이 달라져 봐야.’

아카펠은 코웃음을 쳤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될 것 같나.

기껏해야 망나니가 이런 거로 여자들에게 인기나 얻고 싶은 거겠지.

신경 쓸 가치도 없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때마침 또 다른 참가자 한 명이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저놈은.’

입구 쪽을 보고 있던 그를 보고 아카펠이 가볍게 탄성을 내뱉었다.

다부진 체격과 큰 키.

노련함이 돋보이는 걸음걸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고한 별의 기운.

아카펠은 그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실력자.’

나이는 20대 정도일까.

어린 시절부터 세계 침식을 다니며 경험을 쌓아 올렸을 것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아마 청림단에서 활동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는 가장 괜찮군.’

저 남자는 분명 시험이 끝날 때까지 무조건 남아 있으리라.

실력자의 등장에 아카펠이 만족했다.

문제는 그자가 다름 아닌 아카펠이 흉보았던 서리스였지만 말이다.

근 몇 개월간 금강잔월을 통해 폭풍 성장을 해 버린 서리스다.

작년 초에 서리스를 기억하고 있던 아카펠로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변화.

그가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시원찮구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서리스도 아카펠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사람 보는 눈은 뛰어난 서리스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린 탓에 세세하게 볼 수는 없지만. 실력이 뛰어난 자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1등이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낙승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그의 고개가 우뚝 멈췄다.

왜냐하면 단상 뒤편에서 한 남자를 발견한고 놀랐기 때문이다.

“다들 많이 모였군.”

낮게 울리는 중후한 목소리가 강당 안으로 퍼져 들었다.

분명 누군가 조용하라고 소리친 것도 아니었건만, 모두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퍼진 침묵 속에서 단상 위로 올라선 한 사내가 있었다.

몸 전체를 아우르는 흉악한 흉터.

어느 누구든 압도될 만한 거대한 덩치.

펜타니엄 문양 아래 고개 낮춘 늑대가 그려진 문양을 제복 위에 자랑스럽게 새긴 그는.

청랑단주 하다크였다.

“반갑습니다. 지원자분들. 저는 청랑단주 하다크라고 합니다.”

산적같이 생긴 외모와 다르게 무척이나 정중한 말투가 이어졌다.

“지원자가 많긴 하나 청랑단은 정예 부대. 이번 시험에서 뽑을 인원은 4명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충 눈으로 보이는 인원만 해도 삼백여 명이다.

사실상 죄다 떨어진다는 소리와 같았다.

하지만 청랑단에 지원할 정도로 강단 있는 녀석들이기 때문일까.

지원자들 중 대부분이 눈을 번뜩였다.

“정식 시험이 치러지는 것은 내일 오후 2시부터입니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하셔서 오시길 바랍니다.”

긴 연설 없이 짧은 말과 함께 청랑단주는 강당 뒤편으로 사라졌다.

“와, 포스 쩐다.”

“자수성가의 본보기잖아. 펜타니엄 별도 굳이 안 새겼다더라.”

“소문으로는 6성이라던데, 끝내주네.”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서리스는 하다크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하다크, 저 인간 이때는 아직 머리카락이 있었구만.’

새삼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깨닫는다.

소드란의 가주가 되고 하다크를 만났을 당시에 그의 머리는 너무도 황량했었으니까.

아무리 자수성가해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는 거겠지.

‘머리 관리 잘하자.’

나는 안 빠지겠지.

“이봐.”

그런 순간 서리스는 들려온 목소리의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카펠이 서 있었다.

하지만 서리스는 아카펠을 알아볼 수 없었다.

칸빌레 가문은 미래에서 없던 가문이었기에 그의 얼굴을 몰랐던 탓이다.

“형도 꽤 실력자인 거 같은데. 잘해 보자고. 우리 왠지 라이벌이 될 거 같으니까.”

뜬금없는 말을 남기고 아카펠은 당당히 돌아섰다.

그것보다 형이라니.

청랑단 최소 나이가 16살인 만큼 자신보다 연하일 리가 없는데.

“뭐지, 저놈.”

잠깐 어이없어하던 서리스는 발길을 돌렸다.

시험이 내일인 만큼 오늘 하루 쉴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천랑후가 따라다니면 부정행위가 될 수 있어서 홀로 왔으니.’

오랜만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될 예정이었다.

‘레일로는 내가 다 꿰고 있지.’

왜냐하면 소드란 또한 레일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레일로를 두른 성벽이 보였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성벽.

그리고 서리스가 울드렌 시절 몸을 던져 지켰던 그 성벽이 말이다.

비록 한참 뒤에 일이라도 언젠가 저 성벽은 태악룡에게 한 번 더 무너질 위기에 처하겠지.

‘그때는.’

다를 거다.

볼품없는 소드란의 가주로서가 아닌.

대가문 펜타니엄의 직계로서 맞서 줄 테니까.

‘아직은 한참 먼 이야기지만.’

그런 생각을 품으며 서리스는 오늘 머물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날 저녁.

서리스는 레일로 토박이들만 알 수 있는 맛집이자 여관인 동의 쉼터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내가 이거 때문에 일 끝나도 바로 저택으로 안 가고 여기로 왔었지.’

끝없는 초롱에서 하루를 고단하게 마치고 왔을 때 피로를 풀어 주던 곳이다.

잘 구워진 고기 위에 갈색 양파 조림을 올려 먹자 서리스는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이곳이 레일로 임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는 맛이었다.

똑똑.

그런 순간이었다.

서리스가 입 안 가득 고기를 우물거렸을 때 누군가가 그의 탁자를 두드리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 안녕하세요. 앞에 앉아도 될까요.”

“누구냐?”

기분 좋은 만찬을 방해하는 녀석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을 때.

그는 미소와 함께 자기소개를 하였다.

“펜타니엄 서리스 님이시죠? 저는 골드라스 가의 둘째 자식 골드라스 로디오라고 합니다.”

인사를 올린 그는 의자를 빼 앉곤 알랑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오늘 서리스 님을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해서입니다.”

“제안이라면.”

“청랑단 시험을 치러오셨죠? 저도 거기 있었거든요.”

싱글벙글 웃던 로디오는 주머니에서 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청랑단의 문양이 새겨진 패에는 제 3호법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청랑호법이신 저희 삼촌 겁니다. 청랑단 시험 때문에 제가 부탁하여 빼 왔죠.”

이건 진짜다.

청랑단주 바로 아래 계급 청랑호법의 패였으니까.

서리스는 어딘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잠자코 말을 들었다.

“제 뒤에는 청랑호법이신 삼촌의 빽이 있습니다. 당연히 저라면 이번 시험도 낙승으로 들어갈 수 있죠.”

“그래서.”

“청랑단은 예로부터 실력주의, 펜타니엄 직계도 예외 없다고 하죠.”

그는 패를 쥔 채 씨익 하니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였다.

“그러니 제가 4명 안에 무조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번 시험에서 무조건 합격할 수 있도록 빽을 써 주겠다 이거냐.”

“그렇죠. 대신 저는 직계 분이랑 연 하나 쌓을 수 있고 누이 좋고 매부 좋죠?”

서리스는 그 말을 듣고 의자의 몸을 기대었다.

서리스가 씨익 하니 웃었다.

어딘가 만족스러운 그 표정에 로디오도 따라 웃었다.

아무래도 서리스가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확신한 모양이었다.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네?”

그 순간 방금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대답의 로디오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서리스의 눈동자가 귀찮은 것을 보듯 자신을 쏘아보고 있자 로디오는 당황했다.

“서리스 님에게는 미래 골드라스 영주와도 연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만.”

서리스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애초에 너 로디오가 아니잖아.”

“……그게 무슨 소리실까요?”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빼지 마라. 무슨 속셈으로 접근한 거냐?”

원래 펜타니엄 직계인 서리스는 영주의 자식을 몰랐을 것이다.

가주도 아니고 직계가 굳이 영주 자식들까지 알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서리스는 이전 소드란의 가주였다.

그가 가주로서 활동할 당시에는 지금의 자식들이 전부 주권을 잡은 상태.

이미 그들은 영주거나 혹은 주요한 요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로디오의 표정이 변했다.

“뭐야. 생각보다 눈치가 너무 빠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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