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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4화 (14/275)

14화

‘이 양반 지금 뭐라고?’

서리스는 지금 자신의 양 귀를 의심했다.

하체펠 드웨이진.

이 양반이 어떤 인간인가.

한때는 하체펠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소드란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하체펠이 독주하게 되었다.

강기수식(强氣守式)이라는 금강잔월과 비슷하지만 다른 육체 강화 비기로.

7성 절정에 올라 ‘철벽(鐵壁)’이라 불리는 이명까지 얻은 그.

무엇보다 펜타니엄에서도 가장 우뚝 선 소가문 하체펠의 가주가 아니던가.

‘내 기억 속 이 양반은.’

소드란의 가주였던 적에는 단 한 번도 먼저 말 걸어 온 적이 없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신경조차 쓰지 않던 그런 사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오를레 녀석들과 비하면 대놓고 무시하던 사람은 아니었긴 했지만.

‘다짜고짜 하체펠의 뒤를 이어 볼 생각이 없냐고?’

서리스라서 태도가 바뀐 걸까.

꽤 오랜 세월 드웨이진을 알고 있던 서리스, 아니 울드렌은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감을 느꼈다.

“제가 뭔가를 잘못 들은 겁니까?”

“걱정 말거라. 펜타니엄에게는 내 잘 설명할 테니.”

마치 이미 결정까지 내린 듯 말하는 드웨이진을 보고 서리스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드웨이진은 릴리스의 아버지이니, 서리스에게는 외할아버지다.

핏줄은 확실히 이어져 있으니 하체펠을 잇는 게 문제는 없긴 하겠다만.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세상에 ‘갑자기’란 말은 없다. 나는 오늘 네가 소가문 회의에서 보여 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네 그 체격이.”

생각났다.

이 양반 체격 큰 사람 좋아하지.

체격이 좋은 천랑단주 하다크를 유달리 마음에 들어 하던 드웨이진이었으니까.

“내 핏줄도 섞여 있건만 락로드 님의 핏줄이 좋아서인 건지 릴리스의 자식들은 유달리 여리여리하더구나.”

“하지만 서리스, 너는 다르다. 그 체격은 분명 내 핏줄을 진하게 이었을 터! 너는 그야말로 하체펠에 어울리는 남자다!”

아니다. 이 양반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살이나 쪘지 체격은 전혀 좋지 못했던 서리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드웨이진 님.”

“외할아버지라 부르거라.”

“네, 외할아버지. 말씀은 감사하지만.”

소드란의 가주였던 자로서 아무리 그래도 한 때 라이벌 관계였던 하체펠의 가주가 되기에는 꺼림칙했다.

그렇기에 거절을 하려던 순간 드웨이진은 서리스 머리만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음, 거절은 일단 보류해 두거라.”

“네? 하지만.”

“나도 안다. 대가문인 펜타니엄에 비하면 우리 하체펠은 작기 그지없다.”

가주 자리보다는 천상사성 자리에 더 관심 있다만.

우선 서리스가 잠자코 듣고 있자 드웨이진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태평양 같은 가슴을 폈다.

“꿈은 중요하지. 목표는 클수록 좋다!”

열기를 띤 그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사람은 자고로 앞을 보고 달려가면서도 하나 정도는 예비해 두는 게 좋은 법이다.”

그게 하체펠이라 이건가.

“네가 달려가던 중 혹시나 넘어질 일이 있을지 모를 일 아니더냐?”

‘이 양반 어지간히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네.’

“아무것도 없는 자는 조바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든든한 배경이 있는 자는 걱정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지.”

드웨이진은 씨익 하니 웃었다.

“그러니 하체펠은 보류로 해 두어도 좋다.”

이어진 말에 서리스는 한 가지 깨달았다.

드웨이진 입장으로서 지금 제안은 서리스가 설령 가주가 된다 한들 딱히 나쁠 거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펜타니엄 가주가 된다면 드웨이진이 큰 힘이 되어 줄 거고.’

반대로 펜타니엄 가주가 안 된다 한들 하체펠의 가주가 될 수 있으니.

그에게 있어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하체펠은 위상이 높고, 당연히 가주에서 떨어진 직계들이 맡게 될 직책보다는 소가문 가주가 훨씬 더 위치가 높다.’

게다가 드웨이진은 외할아버지다.

직계 중 어느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는 없다.

확실히 서리스 입장으로서는 전혀 나쁠 거 없는 이야기였다.

드웨이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거침없이 서리스에게 제안을 한 것일 터.

드웨이진을 한 번 바라보고 서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나쁠 거 없는 제안이다.

따지고 보면 득밖에 없는 제안.

서리스의 미소를 본 드웨이진이 호탕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을 때.

“거절하겠습니다.”

서리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서리스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흐음, 전혀 나쁠 거 없는 제안이라 생각하는데.”

드웨이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하체펠에 들어가기에는 내가 자존심 상하거든.’

서리스는 소드란의 가주다.

그런 그가 한때는 라이벌이었던 하체펠로 들어가는 건 아무리 그대로 자존심 상했다.

그래도 굳이 그의 심기를 거스를 마음은 없었기에 서리스는 적당히 변명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배경이 있단 건 오히려 저를 안도하게 하여 스스로 태만해질 같습니다.”

“핫.”

그러나 왜인지 드웨이진은 웃음을 흘렸다.

서리스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을 때 드웨이진은 호랑이 같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좋다! 그래, 배경 따위에 안주해서 쓰나! 패기가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지!”

방금까지 그에 관해 이야기했던 인간이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대체 자신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길래 저러는 걸까.

이제는 서리스도 무서워하며 그의 모습에 질려 했을 때.

드웨이진은 서리스의 어깨를 타악 붙잡았다.

“그렇다면 하체펠의 가주 자리는 신경 쓰지 마라.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서리스 네가 마음에 들어서 하는 일방적인 말이니.”

무슨 소리를 하려고.

“방금 전 네가 제 별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서리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한 번 보고 그걸 알아차린 건가.

서리스의 시선이 드웨이진에게 향하자 그는 씨익 하니 웃었다.

“서리스, 너는 선천적으로 별의 힘을 타고났다. 보아하니 별을 견디기 위해 육체가 지금과 같은 체격으로 성장했겠지.”

아니, 직접 키운 거다만.

“하지만 그럼에도 육체가 별을 견디기에는 모자라다.”

그러면서 드웨이진은 서리스의 어깨뼈를 툭툭 두드렸다.

“그렇담 육체를 더 강화하면 될 일.”

“그건.”

너무 단순무식이지 않나.

다소 황당한 소리에 서리스가 조금 얼빠져 있을 때, 드웨이진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말하는 건 근육이 아니다. 인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것. 뼈, 바로 뼈다.”

“네?”

“근육이 아무리 강해 봤자 뭐하냐. 근간이 되는 뼈가 견디지를 못하면 근육의 과도한 힘에 되레 부러질 뿐인데.”

그리 말하고 드웨이진은 한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꾸드드득!

그리고 그가 주먹을 쥔 순간 주변 분위기가 바뀌었다.

드웨이진의 손아귀에서 새 나오는 별빛 한줄기.

그걸 시작으로 그의 손으로 엄청난 힘이 몰려들었고, 그것은 대기가 일그러질 만큼 강렬했다.

그걸 본 서리스의 두 눈이 홀린 듯 흔들렸을 때 드웨이진은 그대로 주먹을 옆으로 휘둘렀다.

후웅!

그러자 폭풍이 지나가듯 강렬한 바람이 불었다.

서리스의 짧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손 위로 도드라진 뼈와 핏줄, 그리고 그걸 보강하는 근육.

강하다.

완성된 육체라는 게 이런 걸까.

서리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육체는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강의 육체는 모든 것이 밑바탕 되었을 때 도달 하는 법.”

드웨이진은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서리스를 휙 돌아보았다.

“하체펠의 가주들 모두가 역대 최고의 육체를 가질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이유…….”

말을 이어 가던 드웨이진이 목소리가 서서히 멈춰갔다.

서리스의 신경이 완전히 다른 데로 향해 있단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 그의 목덜미에서 강렬한 별빛이 후광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말에서 무언가 깨달았군.’

드웨이진은 서리스가 훈련장에 왔을 때 운성조식을 취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았었다.

서리스의 얼굴에 있던 것은 명백한 갈증.

타고난 별에도 불구하고 그걸 다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느끼는 맹렬한 갈증이었다.

그래서 힌트라도 줄 겸 말을 던져 보았건만, 아무래도 그게 기폭제가 된 모양이다.

드웨이진은 서리스를 두고 한 걸음 물러섰다.

서리스의 집중력을 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작됐군.’

그의 발아래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펜타니엄 직계들이 한 단계 성장할 때 그들의 그림자는 주인을 지키고자 구와 같이 감싼다.

‘명경지수(明鏡止水).’

오로지 펜타니엄 직계의 성장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그림자 공간.

“드웨이진 님?”

“쉿, 조용해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천랑후가 드웨이진을 보고 놀랐을 때.

그는 입술 앞에 검지를 대곤 그를 조용히 시켰다.

“천랑후, 주위에 아무도 못 오도록 해라.”

천랑후는 명경지수에 빠진 서리스를 보곤 눈을 크게 뜨더니 곧 빠르게 훈련장 밖으로 나갔다.

그것을 보고 드웨이진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자, 얼마나 성장하고 나오는지 기대해 보자구나.”

얼굴에 여느 때보다도 더 진한 호탕한 미소를 그린 채로.

* * *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

그 속에서 서리스는 자신의 앞에 떠오른 세 개의 별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소드란의 별.

펜타니엄의 별.

그리고 검은별.

제각기 다른 별빛을 토해 내는 별들은 서리스가 뻗은 손끝을 타고 그의 몸속에 들어오고 있었다.

별빛이 손톱 하나하나를 타고 흘러들어 오는 이 감각 속에서 서리스는 그간 해 왔던 것과는 다른 감각을 느꼈다.

‘그동안 육체를 강화한답시고 근육만 늘리려는 멍청한 짓을 했었구나. 왜 이 부분을 지금까지 전혀 생각 못 했을까.’

이론과 현실은 새삼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서리스는 뼈 마디마디 깊숙이 파고드는 별의 환희를 느꼈다.

다르다.

이전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여태까지 해 왔던 금강잔월의 단련법은 전부 겉핥기였을 뿐이었다.

‘뼈만이 아니다.’

육체를 이루는 모든 근간.

뼈, 근육, 심지어 핏줄마저 인간에게 있는 모든 것에 별은 스며든다.

그리고 그것은 서리스의 내부에 쌓인 별도 같았다.

그저 쌓이기만 했던 별들이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싸며 합쳐져 가기 시작했다.

내부 깊숙이 별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의 별이 아니었다.

소드란의 별과 펜타니엄의 별 그리고 검은별까지.

모든 별빛이 서리스의 별에 깃들어 새로운 별이 되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 금강잔월.’

아니, 이제는 금강잔월을 넘어섰다.

세계 침식 주인을 베었을 때.

그때 도달했던 그 영역.

강렬한 갈증이 비로소 해소되었을 때 서리스는 눈을 번쩍 떴다.

‘4성.’

서리스가 또 한걸음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일어났느냐.”

서리스가 눈을 떴을 때 거기에는 드웨이진이 있었다.

어느새 하늘은 한밤중.

새벽녘 특유의 찬 공기가 서리스의 몸을 감쌌을 때.

“윽.”

서리스는 강렬한 악취를 느꼈다.

온몸에 끈적끈적한 검은색의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탓이다.

“그간 뼈 내부에 쌓인 탁한 것들이 빠져나온 게다. 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밖으로 밀어낸 거겠지.”

이런 걸 겪어 본 적 없었던 서리스는 신기한 표정으로 팔을 매만졌다.

이렇게 악취가 심한 게 그간 몸 안에 쌓여 있었을 줄이야.

과연 몸이 무거울 만도 했다.

“네가 성장할 때마다 몸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 계속 나오다가 끝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다.”

그때가 된다면 자신의 몸은 얼마나 강해지는 걸까.

성장이라는 쾌감을 막 배운 서리스의 가슴이 기대감에 제멋대로 쿵쾅거렸다.

“본래라면 7성의 경지에 올랐을 때에야 반골세수(返骨洗髓)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도 드웨이진은 그것이 마음에 든 듯하였다.

“아무래도 서리스 넌 타고난 별 탓에 그런 모양이다.”

그의 얼굴 가득 웃음이 그려졌다.

“그래서 어디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으냐?”

드웨이진은 한 손을 들어 올려 서리스에게 겨누었다.

하하, 이 양반.

“어디 전력으로 부딪쳐 보거라.”

서리스의 두 눈동자가 이채를 띠었다.

비슷한 비기를 다뤄서인지 생각하는 게 비슷한 경향이라도 있는 건지.

이쪽 마음을 너무 잘 알아 준다.

“다치셔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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