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1화 (11/275)

11화

눈가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반복적으로 내쉬어지는 숨.

등 뒤에서 느껴지는 침대 시트의 감촉.

서리스는 눈을 감은 채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 살아 있네.’

분명 심장이 보일 만큼 가슴팍이 뻥 뚫리는 즉사 급의 부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은 어떻게 살아 있는가.

‘설마 다른 몸인가.’

설마 또 누군가의 몸으로 빙의를 한 걸까.

그런 생각 때문에 서리스는 섣불리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만약 정말로 다시 빙의한 거라면 또다시 살아가면 되는 거다.

결심한 서리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리스 님!”

그 순간 천랑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차례 눈을 깜빡인 서리스는 제 몸이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 대신 방이 못 보던 곳이었다.

“천랑후, 여기는?”

“엘리자 관리분의 집입니다.”

그렇군.

곰곰이 천랑후의 말을 곱씹던 서리스의 눈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자신의 옷이 갈아 입혀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옷 아래로 손을 넣어 봤는데, 상체에 뚫려 있어야 할 구멍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직도 가슴이 뻥 뚫린 그 느낌이 선명한데.

그런데 웬걸 통증은커녕 흉터조차 없는 느낌이었다.

“천랑후, 상황 설명 좀 해 줄 수 있을까?”

“예.”

서리스의 물음에 천랑후는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 침식 속에서 천랑후를 포함한 모두가 정신 오염으로 기억의 일부가 완전히 잘려 나갔다는 것.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세계 침식이 없어진 것.

그리고 서리스를 발견했는데, 옷이 전부 피투성이라 급히 이송했다는 것 등을 말이다.

“치료는 이곳에서 해 준 거야?”

“아닙니다. 확실히 옷에 묻어난 피는 상당했지만, 서리스 님은 전혀 상처가 없으셨습니다.”

상처가 없었다.

그 말에 서리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 상처는 절대로 회복될 수준이 아니었다.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건.’

목 뒤가 뜯어질 정도로 달아올랐던 검은별이 무언가 했다는 것.

마지막 순간 자신의 경지를 완전히 초월해 버린 최후의 일격도 그렇고, 당시 서리스는 분명 비이상적으로 강해졌었다.

“서리스 님은 무언가 기억하고 있으신 게 있습니까?”

“나도 애매해. 마지막에 쓰러지기 직전, 인면공의 머리를 향해 달려든 것밖에 없었으니까.”

서리스는 우선 당장은 얼버무리기로 결심했다.

‘어, 잠깐만 그것보다.’

그러던 도중 서리스는 자신의 옷이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옷을 갈아 입혔다.

그건 무슨 뜻이냐.

당연히 목 뒤에 새겨진 별문신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천랑후, 혹시 내 옷을 갈아입힌 사람이 누군지 알아?”

“제가 했습니다.”

서리스의 몸이 바짝 굳었다.

한 차례 침묵이 흘렀다.

서리스가 천랑후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서리스 님, 제가 묻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죽이려는 건가.

지금 당장 천랑후의 검이 목으로 날아올 것 같은 상황에 서리스는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천랑후와의 대련에서 서리스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으니까.

“목 뒤.”

서리스가 천랑후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었을 때.

“별 문신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만, 그게 어떤 건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한 개?

긴장하고 있던 서리스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천랑후, 별문신이라면?”

“예, 펜타니엄 별문신 옆에 있는 것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깨달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검은별은 천랑후와 같은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하늘 위에 있는 검은별과 같이.

‘죽는 줄 알았네.’

설마 검은별이 남들 눈에 안 보일 줄이야.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서리스는 이제 소드란 가문별에 관해 설명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쪽도 설명하기에는 꽤 까다롭지만, 검은별 일이 있어서인지 마음이 훨씬 편했다.

“암살당할 뻔한 그날부터 생겼다는 것이로군요.”

“응.”

서리스는 세간에 잠깐 난리 났던 새로운 별이 자신을 간택했다는 것.

그래서 그 힘을 토대로 최근 이렇듯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이 가문별이 다시 일어날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하자 천랑후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서리스의 변화는 누가 봐도 비이상적이었으니까.

“이건 다른 분들에게는 최대한 비밀로 하는 게 좋겠군요.”

“그렇지.”

펜타니엄의 직계가 다른 가문별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입에서 무슨 말이 오르내릴지 모른다.

“한 번씩 옷을 갈아입으실 때 조금 수상하더니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들켰었군.

서리스가 무안해하고 있을 때 천랑후는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서리스 님만 무사하다면 괜찮으니까요.”

천랑후의 믿음직한 미소의 서리스도 안도했다.

그라면 믿을 수 있다.

“오래 잠들어 계셨는데 시장하시지는 않으십니까? 관리분께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말하겠습니다.”

“부탁할게.”

천랑후에게 고마움을 느낀 서리스가 미소 지어 답하자 그는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런 사이 서리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목 뒤를 점검해 보았다.

마지막 주인과 싸울 때 분명 검은별에서 별빛도 잡아먹을 만큼 강렬한 어둠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 어둠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서리스는 잠시 망설였다.

검은별은 예측 불가한 존재다.

혹여나 사용했을 때 세계 침식을 일으킨다든가 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얼버무리는 걸로 그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확인해 놔야 해.’

숨을 가다듬고 서리스는 목 뒤를 잡은 채 검은별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가문별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그 기묘한 감각에 몸을 맡긴 그 순간.

투둑.

목 아래로 먹물 같은 어둠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육체가 제멋대로 별의 힘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금강잔월이 육체를 제멋대로 부풀렸다.

그림자가 천장 끝까지 치솟을 정도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날뛰는 별의 힘 앞에 서리스의 얼굴 위로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이건 본래 서리스가 지닌 수준에 별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젠장.”

서리스는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곤 빠르게 운성조식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조절 못 한 별의 힘이 자신의 육체를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으득.

입술이 깨물어지고 피가 일부 새어 나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서리스는 운성조식으로 악착같이 별을 잠재우고자 노력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때 서리스가 번쩍 눈을 뜬 순간 그는 겨우 잠재워진 별의 힘을 느꼈다.

“이게 뭔.”

검은별이 뭔가 힘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별의 힘을 폭주시킬 줄은.

‘아니다. 이건 폭주라기보다는.’

다른 별과 공명한 것이다.

‘강화.’

검은별은 다른 별의 힘을 공명하며 강화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가문별과 검은별의 힘을 함께 사용하면.’

그때 주인에게 휘둘렀던 검과 같은 검술을 또 사용할 수 있다.

덜컹.

문이 다시금 열렸을 때 흠칫한 서리스는 급히 검은별을 꺼트렸다.

그러곤 고개를 뒤로 돌리자 거기에는 식사를 부탁하러 간 천랑후가 아닌 제로가 서 있었다.

“제로?”

“……살아 있었냐.”

자기가 와 놓고 하는 말이 저거인가.

역시 몇 대 더 쥐어박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팔을 걷어붙였다.

“그럼 다행이네. 그, 형님.”

그 순간 마지막 말끝을 흐린 제로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본 서리스가 어이없어하곤 들었던 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그때 해 준 말에 동질감이라도 느꼈나.’

자신과 같이 멸시당했던 서리스를 보고 이제야 깨달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참, 다시 생각해도 아직 어린아이라고 생각할 때.

때마침 천랑후가 돌아와 서리스는 식사를 하였다.

그 뒤 서리스는 몬드로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이번 세계 침식에서 사상자는 딱 한 명.

평소 세계 침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자들 입장으로서는.

이 정도 사상자가 나왔다는 건 칭찬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같은 청림단원들에게는 달랐다.

단장인 그가 죽었으니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듯 청림단원 몇 명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시되는 죽음이라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서리스는 관리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며 에툰산을 떠나는 마차에 올랐다.

“이번 세계 침식에 대한 건 펜타니엄 쪽에 보고를 넣어 놓았습니다. 아마 조만간 조사를 위해 전문 조사관이 파견될 겁니다.”

“그래.”

서리스는 이번 세계 침식이 흑마녀의 짓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건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어련히 알아서 전문 조사관들이 밝혀내 줄 것이니까.

단지, 앞으로 움직일 때는 이전 기억을 유의해야겠다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배웠다.

‘흑마녀라.’

자신과 같은 세계 침식자.

혹시 다른 세계 침식자들도 같은 걸 겪기라도 한 걸까.

여러모로 의문이 드는 상황 속에서 서리스가 탄 마차는 그렇게 펜타니엄을 향해 움직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