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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7화 (7/275)

7화

어머니와의 면담 이후 몇 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완전히 겨울이 찾아온 무렵 어느새 새해가 코앞이 되었다.

그렇게 새해를 준비할 무렵, 서리스는 펜타니엄 본관에 위치한 서재에 와 있었다.

말이 서재지 사실상 한 도시의 도서관 급은 되었다.

그렇게 거대한 책들의 산속에서 서리스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가 찾은 것은 세계 침식자와 관련된 서적이었다.

세계 침식은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어져 오고 있고.

그건 세계 침식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의미 없나.’

하지만 책을 읽어 봐도 서리스에게는 전부 아는 내용들 밖에 없었다.

서리스는 몇십 년간 세계 침식에서 살아왔기에 이쪽 방면으로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래의 세계 침식까지 알고 있는 서리스다.

오히려 최근 세계 침식 연구자들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소득이 전혀 없네. 나중에 소드란이 있던 영지라도 가 봐야 하나.”

쩝 하고 입맛을 다신 서리스는 서재를 나왔다.

별다른 득이 없었기에 괜히 목 뒤 검은별이 더더욱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서리스 님.”

서재를 나오자 때마침 천랑후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천랑후, 왔어?”

훈련 시간인 모양이다.

서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던 순간 그는 천랑후가 들고 있는 문서를 발견했다.

펜타니엄의 문양이 찍힌 문서였다.

“천랑후, 그건?”

“위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어.”

천랑후에게서 종이를 받은 서리스는 내용을 눈으로 쭉 훑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펜타니엄 북쪽 영지 엘리자에서.

3성급 세계 침식이 발생.

직계 중 참가 의사가 있는 자는 참가 요함.」

‘3성급이면 직계들의 경험 쌓기 용이군.’

펜타니엄은 최흉 중 하나인 끝없는 초롱을 막고 있는 대가문.

그렇기에 직계들을 낮은 수준의 세계 침식을 통해 성장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엘리자인가.”

서리스는 세계 침식 발동 장소를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엘리자는 고산의 극동 지역이다.

바다가 얼어 버릴 만큼 춥기에 겨울에는 가장 가기 꺼려지는 지역이었다.

하필 한겨울인 와중에 이곳에서 세계 침식 발생이라.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내가 세계 침식에 가 볼 만한 일이 거의 없을 거 같단 말이지.’

검은별은 분명 세계 침식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렇담 가장 좋은 건 세계 침식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다.

혹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검은별로 인해 문제 생기는 일은 사양이니.

미리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았다.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지.’

그렇게 결정한 서리스는 종이를 천랑후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천랑후, 나도 참가하겠다고 말해 줘.”

“예, 알겠습니다.”

대답한 천랑후가 공문의 답을 하러 가는 것을 보며 서리스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이걸 계기로 뭔가 알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 * *

세계 침식 직계 출전은 금방 결정되었다.

애초에 3성급 세계 침식 수준에 맞는 직계도 이제는 둘밖에 없는 상황이니.

시간 끌 거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둘은 당연히 서리스와 제로였다.

서리스가 복도를 걸어 마차가 준비된 출전 장소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를 노려보고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형님 처음 보냐?”

최근 서리스는 이제 몸만은 어른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큰 키와 체격을 지니게 된 서리스는 마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얼마 전까지는 나랑 눈도 못 마주치던 게!’

항의하듯 외치고 싶은 제로였으나 과거에 두들겨 맞은 기억에 무심코 찔끔했다.

그렇기에 그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슥 돌리고 말았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자신이 서리스에게 겁먹었다는 사실이 더 쪽팔렸다.

제로가 다시금 획 하니 서리스를 돌아봤을 때.

이미 그가 마차에 오른 뒤였다.

“개자식이.”

욕설을 내뱉은 제로도 자신의 마차에 오르자 덜컹 소리와 함께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마차로 엘리자까지 가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느긋하게 가부좌를 틀었다.

도착할 때까지 금강잔월을 단련할 속셈이었다.

“서리스 님은 항상 가부좌를 틀고 계시는군요.”

“청운귀명을 보다 잘 다루기 위한 명상이랄까.”

실제론 운성조식을 운용하는 것뿐이지만.

소드란 가문이 사라진 지금 운성조식은 아무도 모르는 비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강 얼버무리자 천랑후는 미소와 함께 그와 같이 가부좌를 틀었다.

“그럼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서리스 님께서 단련하시는데 저라고 혼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마음은 고맙다만.

서리스는 한쪽 눈꺼풀을 살짝 떠 천랑후를 잠깐 바라보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천랑후씩이나 되는 인물이.

어째서 서리스에게 이토록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집사 일이야 결국 펜타니엄 가문에서 내리는 거라고 해도.’

이 정도로 열심히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천랑후,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서리스는 참을성이 좋은 성격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차피 둘만 있는 마차 바로 물어보기로 하였다.

“예, 물어보시지요.”

“네가 날 이렇게 따르는 이유가 뭐야? 너라면 나는 물론, 펜타니엄 소속이 아니어도 뭐든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혹시나 서리스가 빙의되기 전 삼남이 이미 물어봤을 수도 있다.

만약 이미 물어봤다면 재확인한 거라고 얼버무리자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천랑후를 바라보았다.

“그게.”

잠시 동안 뜸을 들이던 천랑후는 한 차례 머리를 긁적였다.

“서리스 님은 천체 관측장 성위(星位)님을 알고 계십니까?”

‘노망난 영감탱이.’

워너힐 아카데미 총장이자 매일같이 예언이다 뭐다 하면서 천체 관측사들을 괴롭히는 영감이다.

서리스도 이렇게 되기 전 그와는 딱 한 번 면식이 있었고.

그 경험으로 그를 노망난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그 양반이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뭔가 기분 나쁜 거긴 했는데.’

하지만 연식이 되는 만큼 별에 관해서는 그가 가장 잘 아는 것도 사실.

그렇기에 아는 건 꽤 많은 영감이다.

“예, 어느 날 그분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제 별의 운명이 펜타니엄 직계 삼남과 맞닿아 있다고. 언젠가를 위해 그의 곁에 계속 있어야 한다면서 말이죠.”

“그런 영감탱이 말 하나 믿고 내 곁에 있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의심하지 않은 거 아닌가.

“그 무렵에는 세계 침식으로 팔 쪽을 조금 다쳐 당분간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천랑후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더군다나 때마침 서리스 님 집사로서 배정받았기도 했으니까요.”

천랑후는 흉터가 남은 팔을 들어 보였다.

“최소한 팔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해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최근 2년간은 조금 긴가민가했지만 말입니다.”

아쉽게도 그 2년간의 기억은 서리스에게 전혀 없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말로 제 운명이었나 하고요.”

“감개무량하겠네.”

서리스는 허탈이 웃었다.

‘나는 서리스가 아니긴 하다만.’

빙의된 입장으로서 저 이야기는 꽤나 탐탁지 못한 부분이었다.

‘성위 그 영감탱이가 별들을 통해 뭘 봤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때를 예견한 거라면.’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인 영감이니.

‘나중에 찾아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워너힐 아카데미라.

서리스는 짧게 생각에 잠겼다.

세계 모든 가문과 나라의 주요 인재들이 모이는 아카데미.

세계 침식에게서 세계를 지켜 내고자 하는 배움의 터가 바로 워너힐이다.

입학시험 난이도가 터무니없으나 워너힐 아카데미를 나오기만 하면 어디서든 주요한 자리를 맡는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에게는 기회의 장이자 대가문의 차기 가주들은 반드시 졸업해야 하는 곳이었다.

‘소드란 때는 생각도 못 했던 거지만.’

지금은 서리스의 몸이다.

들어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것도 생각해 둬야겠는데.’

성위는 노망난 영감탱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통에.

워너힐 아카데미가 아니고서야 만나기 쉽지 않다.

만나려면 아카데미로 가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 알았어.”

천랑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더 캐물을 이유는 없다.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운성조식을 다시 시작했다.

* * *

눈이 쌓인 메마른 가지가 겨울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때.

그 아래로 펜타니엄 문양이 선명히 새겨진 두 개의 마차가 지나갔다.

마차가 멈춘 곳은 엘리자의 산맥 중 하나인 에툰이었다.

꼭대기는 사시사철 만년설로 덮여 있는 산으로 유명한 에툰은.

아래에서 보기에도 끝없이 위로 이어져 있었다.

하필 겨울이다 보니 주위가 온통 눈투성이인 그곳에 옷을 두껍게 입은 서리스가 걸어 나왔다.

‘금강잔월 덕분인가. 별로 안 춥네.’

천랑후가 추위를 위해서 입힌 옷이긴 했지만 서리스는 그다지 추운 날씨를 못 느꼈다.

금강잔월의 기본 모토는 별을 이용한 육체 단련.

금강잔월로 단련된 육체는 냉기와 더위에도 강하다.

최고 경지에 다다를 시 만년설의 얼음 속에서도 냉기를 견딜 수 있다고 하니.

이 정도 추위를 버티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으, 뭐가 이렇게 추워.”

그런 방면 서리스보다 옷을 두껍게 입고도 덜덜덜 떠는 제로가 있었다.

‘쯧쯧, 몸이 저렇게 허해서야.’

서리스는 제로에게 신경 끄고 마차 쪽으로 다가오는 엘리자 쪽 관리를 돌아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관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목청 크게 외쳤다.

그러곤 제일 앞서 있는 서리스와 제로 둘을 번갈아 보더니 사무적인 미소로 물었다.

“직계 두 분이 오신다는 것은 들었습니다만 확인 차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펜타니엄 제로다.”

“펜타니엄 서리스입니다.”

제로는 하대하는 말투로.

서리스는 관리를 존중하는 말투로 각자를 소개했다.

그러자 둘의 소개를 들은 관리의 눈이 서리스를 보고 아쉬운 듯한 반응이 되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노골적으로 탐탁스럽지 않은 기색을 내비치는 관리.

아무래도 변방까지 몰락한 게으른 삼남의 소문이 퍼져 있는 듯하였다.

“세계 침식은 현재 에툰 중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리는 서둘러 표정을 고치고 설명을 하였다.

“안내는 저희 쪽 청림단들이 함께할 테니, 일단 그들에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관리는 곧바로 임시로 세워진 나무 숙소로 안내했다.

안에서는 난로를 떼고 있는 듯 따뜻한 공기가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한 무리의 청림단 병사들이 있었다.

두꺼운 모피를 입고 있던 그들 대부분은 상태가 해이해 보였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군. 다들 경험도 적어 보이고. 하긴, 엘리자는 좌천 지역이라 불릴 정도니.’

끝없는 초롱과 맞닿아 있는 동쪽 영지인 레일로와 달리.

북쪽인 엘리자에서 세계 침식은 그리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침식이란 말에도 다들 긴장감 없이 풀어져 있었다.

‘이거, 조금 위험할지도.’

그러는 사이 체격이 좋은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펜타니엄 직계 분들을 뵙습니다.”

맨 앞에 있는 남성이 이쪽 청림단 대표인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보고 제로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갯짓하곤 가장 좋아 보이는 상석에 털썩 앉았다.

“몬드로, 이쪽은 펜타니엄 제로 님, 그리고 이쪽은 펜타니엄 서리스 님일세.”

뒤따라온 관리의 소개와 함께 서리스를 보는 청림단 병사들의 표정이 한숨섞인 얼굴로 변했다.

관리와 같이 그들도 서리스가 삼남이 몰락한 게으른 삼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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