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펜타니엄 서리스의 거처.
청송관.
그곳 전용 수련장에서 모조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주인은 청송관 수련장에 자리한 두 사람이었다.
“신기하네. 셋째 도련님이 벌써 3개월째 수업을 꼬박꼬박 받으시다니.”
“얼마 전까지 우리한테 술 먹고 추파나 던지던 분이 어느샌가 저렇게 바뀌셔선.”
마침 수련장을 지나치던 하녀 두 명은 그 광경이 신기한 듯 서리스를 바라보며 대화했다.
그들 말대로 몰락한 게으른 삼남이었던 서리스는 3개월 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처음에는 모두가 며칠 안 갈 거라며 뒤에서 비웃었다.
몰락하고 게으른 삼남.
그게 바로 서리스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노력은 하루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벌써 3개월째.
주위 사람들도 점차 서리스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삼남이 바뀌었다.
청송관의 하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보다도 훨씬 더 서리스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서리스와 맞서고 있는 그의 집사 천랑후였다.
‘검술이 3개월 만에 3성 이류까지 올라왔다, 라.’
천랑후는 눈앞에서 맹렬히 모조 검을 휘두르는 서리스를 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3개월 전, 서리스에게 다시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천랑후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다.
왜냐하면 서리스는 2년 전 가르쳤을 때와는 달리 완전히 다르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건 10년 이상 세계 침식에서 싸워 본 자들이나 가능한 것인데.’
근육을 어떻게 써야 보다 효율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는지부터.
호흡, 보폭 모든 것이 투박하긴 했으나 절묘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최근 서리스의 육체 근력과 체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늘어 가고 있었다.
고작 3개월 만에 서리스는 15살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선명한 근육을 만들어 내었다.
그 탓에 최근 옷 시중을 들던 하녀들은 서리스를 보고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서리스의 육체 성장 속도는 스승이자 전용 집사인 천랑후에게도 비이상적인 것이었다.
‘무언가 나에게 말하지 않고 숨기시는 게 있는 모양이군.’
그 순간 아래에서 급습하듯 서리스의 검이 천랑후의 목을 노렸다.
꽤나 매서운 검이나 아직은 천랑후에게는 턱도 없는 일격이었다.
채엥!
“하아, 하.”
도리어 제 목에 검이 겨누어지자 서리스는 양손을 들어 항복 의사를 보였다.
“시도는 좋으셨으나, 아직 동작으로 이어지는 속도가 너무 느리십니다. 연결성을 좀 더 강화해야겠군요.”
“천랑후, 네가 너무 강해서 그래.”
툴툴거린 서리스가 잠깐 숨을 돌리려는 양 벽에다가 검을 기대어 두는 동안, 천랑후는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벌써 5시간째 대련만 했다.
그런데도 서리스는 지치지도 않는 듯 멀쩡히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3개월 전의 출렁이는 살은 어디 가고, 근육질이 선명한 팔로 말이다.
“서리스 님, 오늘도 체격이 좀 더 커지신 거 같습니다.”
“응? 아, 그런가? 개인적으로도 단련을 좀 하고 있었거든. 성장기인 것도 있을 거고.”
땀을 닦아 낸 서리스는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며 씨익 웃어 보였다.
3개월 전.
암살을 당할 뻔한 이후. 서리스는 천랑후에게 수업을 받기로 한 시간을 제외하곤.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서리스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금강잔월의 기초 술식 운성조식(運星調息)이었다.
별의 힘을 내부에 쌓는 과정 중 하나인 운성조식.
서리스는 이러한 운성조식을 통해서 별을 쌓았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설마 펜타니엄의 가문별 힘까지 흡수할 수 있을 줄은 몰랐지.’
가문의 사람들은 가문별의 힘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다.
금강잔월은 별의 힘에 매우 많이 기대는 비술.
그렇기에 금강잔월은 별의 힘을 축적하는 비술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펜타니엄 가문별도 덩달아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서리스는 신나서 운성조식과 같은 비술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해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었다.
‘두 개의 가문별.’
청운귀명도 3성.
금강잔월 2성.
분명 얼마 전까지 청운귀명도 2성에 금강잔월 1성이었던 그다.
별 하나를 더 얻는 데 재능 있는 이가 5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리스는 천재를 아득히 뛰어넘은 셈이다.
‘사기 치는 거 같구만.’
물병 하나를 들어 올린 서리스는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러나 이러한 그도 줄곧 걱정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 뒤 가장 아래에 새겨진 검은별의 존재다.
그날 이후 도서관을 다녀 세계 침식자에 관한 것을 찾아본 서리스지만.
마땅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드란의 존재.
우선 한 가지 확실한 건 소드란은 있었다가 사라진 게 아니다.
이 세계에서 소드란은 처음부터 존재치 않은 가문이었다.
대신 그 자리에 생긴 것은 칸빌레라는 새로운 소가문 하나.
현재 세계 주간 신문에 의하면.
서리스가 매일 보아 온 소드란의 별은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천체 관측자 녀석들. 괜히 이야기를 부풀려서 하기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별의 등장에 세계는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평생 받아 본 적 없는 주목을 우리 가문별이 다 받는다.
서리스는 괜스레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차라리 그것만이라면 괜찮았을 텐데.’
서리스는 힐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과거에 본 적 없던 검은별이 셀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많이 떠올라 있었다.
서리스는 처음에는 이것도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가 싶었지만.
곧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세계 침식자니까.’
검은별을 지니고 있기에 볼 수 있는 세계 침식자의 하늘.
다른 가문별들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 같은 검은별의 존재는.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어우, 흉측해.’
꼴도 보기 싫다며 서리스는 눈을 돌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며칠 지내본바 일반 세계 침식자들과 달리.
서리스는 자기 주위를 딱히 세계 침식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가능하면 이대로 앞으로도 쭉 조용했으면 좋겠다.
“와, 진짜로 서리스가 검술 훈련을 하고 있잖아?”
그런 순간이었다.
서리스는 수련장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못 보던 소년이 있었다.
서리스보다 조금 어린 듯한 소년의 이름은 펜타니엄 제로.
서리스의 여동생 펜타니엄 샬롯과 쌍둥이었다.
“머저리같이 검 놓고 매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술이나 마시던 망나니가 어쩌다 다시 검을 들었데?”
“하하, 그냥 여성분들에게 잘 보이시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맞죠. 그렇지 않고서야.”
제로가 비아냥거린 순간 옆에 있던 그의 추종자 두 명이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추종자라 한들 펜타니엄 직계에게 저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서리스는 몰락한 게으른 삼남.
이미 오래전부터 서리스는 추종자들에게는 헐뜯기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서리스는 그런 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이 꼬맹이는.’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너무 가소로워서.
이래 보여도 평생 무시당해 온 경력을 지닌 서리스다.
혹독한 현실을 아는 그에게 꼬맹이의 비아냥거림은 그냥 우스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펜타니엄 직계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거든.’
서리스의 두 눈동자가 마치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야, 제로 뒤에 따라온 두 명. 뒤지고 싶냐? 감히 펜타니엄 직계에게 그따위 말을 지껄여?”
전에 없던 호통에 냉랭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제로의 추종자들의 얼굴이 갑자기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항상 무시해 오던 삼남이 설마 갑자기 저렇게 돌변할 거라 고는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그, 그것이.”
“어, 어.”
서리스에게 빙의한 울드렌은 원래도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적에게는 한없이 악독한 것이 본래 그의 성격.
가문의 이미지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서 그간 성격을 참아 왔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려 대가문 펜타니엄의 직계!
비록 몰락한 게으른 삼남이라는 멸칭이 붙어 있긴 하나, 그래도 직계는 직계다.
그 때문인지 그의 본 성격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장 무릎 꿇어. 머리 뽑히기 싫으면.”
서리스의 서슬 퍼런 말이 이어진 순간 추종자들은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 서리스, 네가 미쳤구나?”
그런 순간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로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음소리를 낸 것이.
“네가 뭔데 내 부하들에게 그런 말을 지껄여?”
열이 받은 듯 제로의 발밑 그림자가 그의 감정을 따라 일렁거렸다.
마치 벌레에게 손가락이 물리기라도 한 양 그는 굉장히 기분 나빠 하고 있었다.
추종자들은 제로의 반응에 곧장 기세를 되찾았다.
그들이 등을 꼿꼿이 세우자 서리스는 이번에는 제로를 돌아보곤 곧 헛웃음을 흘렸다.
“제로, 아까부터 형한테 말이 짧지 않냐?”
“허어?”
서리스는 제로에게도 예외 없었다.
애초에 진짜 표적은 제로였다.
시비를 걸어 와줬으니 그에 상응하여 응대해 주는 게 인지상정.
“형한테도 똑바로 못하니 밑에 애들이 저 꼴이지 않냐. 야, 너희들 내 말 안 들리냐? 어딜 등 펴. 꿇으라고.”
“꿇지 마!”
서리스의 말에 제로가 소리를 내질렀다.
“둘 다 무릎 꿇은 순간 내 얼굴에 먹칠하는 건 줄 알아!”
“내 얼굴에는 먹칠해도 된다는 거냐? 안 되지. 그럼 무릎 꿇지 말고 그냥 목이라도 날려 보실까. 그럼 자연히 꿇을 것 같은데.”
두 직계의 기 싸움에 끼인 두 추종자의 얼굴이 서서히 울상이 되어 갔다.
괜히 제로의 말에 한마디 더 덧붙여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다.
슈웅!
그 순간 제로의 그림자가 치솟았다.
치솟은 그림자는 새까만 흑도가 되었다.
그런 흑도를 쥔 제로는 일그러진 눈으로 서리스를 노려보았다.
“검을 뽑아라. 서리스, 대련이다.”
검을 겨눴다는 건 이쪽도 검으로 응대해도 상관없다는 소리다.
“서리스 님.”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천랑후가 말을 걸자 서리스는 미소 지었다.
“괜찮아.”
괜찮지 않습니다.
천랑후는 속으로만 그 말을 삼킨 채 한숨을 내쉬었다.
서리스는 2년 동안 검을 잡지 않았다.
아무리 3개월 동안 검술 수련을 하긴 하였다지만, 서리스는 그동안 검을 놓았다.
그에 비해 제로는 줄곧 검을 휘둘러 왔으며 최근에는 세계 침식 원정까지 참가하고 왔다.
그런 둘의 격차는 세상 어느 누가 보아도 이미 다 알 수 있는 상황.
‘감히 서리스 따위가 나를 우롱해?’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제로는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면 천랑후의 한숨은 다른 의미였다.
‘부디 너무 심하게 하지는 않으셔야 할 텐데.’
다름 아닌 제로를 향한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