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타이가 숲의 총격전. >
우랄산맥은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국경이다. 우랄산맥의 폭은 206km, 즉 오백십오리에 달한다.
수많은 험산 준령과 계곡,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숲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이 불과 1m 앞도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헉, 헉!“
한 사내가 30m 이상으로 자란 전나무숲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은 일반 숲이 아니다.
보통 30m 이상과 그 이상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랐다. 그리고 밑에는 거의 2~3m에 달하는 수천 종의 작은 나무들이 자란다.
예를 들면 싸리나무나 딸기나무, 시베리아산 야생 블루베리와 화이트 베리 나무가 틈새가 없을 정도로 자랐다.
게다가 지금은 9월 중순, 시베리아는 짙은 녹 색깔로 숲과 동물,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 속을 뚫고 나가는 사내는 다름 아닌 안드레이 파닌이다.
러시아에서 무소불위의 악마의 기관인 FSB의 방첩부장이며 러시아군 대령인 그가 사라 푸틴의 정보원 노릇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모든 출세와 부귀영화가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러시아가 원수로 여기는 신생 독립국인 시베리아를 위해 숱한 정보를 빼돌려 보내준 안드레이 파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라 푸틴과 함께 자란 초등학교 선배다. 사라 푸틴이 1학년일 때 안드레이 파닌은 6학년이었으니···.
처음에는 여동생으로 봤던 사라 푸틴! 안드레이 파닌은 그녀를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다.
한번 마음에 담으면 절대 다른 여자를 가슴에 담을 수 없는 순정파인 안드레이 파닌은 사라 푸틴이 시베리아로 떠날 때 따라가려고 했었다.
그때 사라 푸틴이 부탁했다. 도와달라고!
시베리아는 신 독립국이니 러시아의 정보를 미리 알아야 화를 피할 수 있다고!
그래서 파닌은 남았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정보를 사라 푸틴에게 보냈다. 사라 푸틴의 시베리아정보국이 시베리아에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던 러시아의 스파이 조직인 ”화이트 오케스트라“를 일망타진한 것은 바로 안드레이 파닌 덕분이다.
하지만 속담 틀린 적이 없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언제부터인가 FSB의 내부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알게 된 국장은 FSB 간부들에 대한 개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끝내 안드레이 파닌대령이 사라 푸틴에게 넘겨준 엄청난 정보의 양을 확인했다. 국장이 체포하려고 했을 때 안드레이 파닌은 먼저 알아차렸다.
그는 삼국동맹의 전쟁 계획서를 USB에 담은 다음 FSB를 빠져나와 시베리아 국경을 넘었다.
탈출할 때 안드레이 파닌은 핸드폰으로 사라 푸틴에게 공개적인 전화를 했다.
<내 정체가 탄로 났다. 삼국동맹의 전쟁 계획을 가지고 탈출한다. 푸른 새의 집으로 가겠다. 파닌!>
모두 공개적인 대화였지만 푸른 새의 집은 사라 푸틴과 안드레이 파닌만이 아는 비밀암호였다.
파란 새의 집! 그것은 우랄산맥의 어느 험산 계곡을 흐르는 씨니찌저라는 강에 있는 안가를 표현한 것이다.
그 안가는 국경을 넘은 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시베리아사람들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숲 속을 헤매다가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통나무로 사냥꾼 집을 지어 놓는다. 주인은 따로 없다.
어떤 사냥꾼이든 지나가다가 밤이 되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사냥꾼 집에는 흘레브(러시아식빵)도 있고 통조림이지만 여러 가지 반찬이 있다. 각 주정부가 자기주의 숲 속에 공공기관의 헬기가 날아와 식량을 비축해둔다.
다급하게 탈출하는 안드레이 파닌은 곧 자기 뒤를 초르나야 미스니크! 검은 도살자들이 추격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을 피하자면 기차나 비행기, 자동차를 타면 안 된다. 기차를 타면 기차를 폭파할 것이고 그건 비행기나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아니면 로켓포로 쏘아 죽이던가? 대낮에도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를 벌여 목표를 제거하는 미친 도살자들이 바로 초르나야 미스니크들이다.
그들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광활한 타이가 숲과 험산 준령뿐이다. 하지만 우랄산맥의 폭이 500리가 넘어서 안드레이 파닌은 기진맥진했다. 추격을 받을 것을 예상한 그는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시계까지 버렸다.
또 FSB에서 입던 옷은 팬티가 홀랑 벗어 던지고 새 옷을 사서 입은 상태다.
그래서 시간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오랜 첩보원답게 그는 해의 상태를 보고 시간을 알았고 숲의 나무들이 자란 모양을 보며 동서남북을 분간했다.
”이제 한 시간쯤이면 안가에 도착하겠군!“
털썩 주저앉은 안드레이 파닌은 맑은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리고 조금 휴식을 취했다. 지친 육신을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한 30분 정도 잤을까?
따악~
갑자기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안드레이 파닌은 눈을 번쩍 뜨며 옆구리에 걸고 있던 미니 우지기관단총을 잡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정말 노련한 스파이다운 대응이다.
사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린 것이 사람인지 숲 속의 동물인지는 모른다. 워낙 시베리아 숲에는 동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드레이 파닌은 고급 스파이답게 즉시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피하며 미니 우지를 겨냥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적중했다.
두드득, 두드드드드~
소음기를 끼운 AKS-74U의 총탄이 빗발처럼 날아와 그가 등을 기대고 잠들었던 나무에 총탄이 박혀 들었다. 그리고 곧 조용해졌다.
쉬이잉~
숲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사람의 기척은 일절 들리지 않는다. 하
지만 안드레이 파닌은 안다.
도살자들이 숲 속에서 숨을 죽이고 이쪽을 주시한다는 것을!
먼저 움직이는 자가 죽는다!
안드레이 파닌은 미니 우지 기관단총(38짜리 탄창)을 앞쪽으로 향한 채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안드레이 파닌에 유리하다.
총소리가 울렸으니 숲 속의 안가에서 기다리던 시베리아정보국의 기동특공대원들이 자기를 구출하러 달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것을 안드레이를 추격하는 도살자들도 알아차렸다.
초르나야 미스니크 팀장인 키릴은 쓴 미소를 지었다.
”파닌, 이 새끼가 시간을 끌려는군!“
그렇다면 분명 놈이 시베리아정보국과 만나려는 장소가 여기서 멀지 않을 곳이다.
또 그곳에는 정보국 특공기동대가 와 있을 수 있다.
놈들은 최대 1개 기동전대(100명)는 될 것이다. 검은 도살자들은 60명,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이곳은 시베리아영토이기 때문이다.
'속전속결로 놈을 죽이고 철수한다!'
몇 명은 죽음으로 희생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은 도살자들에게 죽음은 늘 이고 사는 일이다. 대신 죽은 자의 아내와 가족에게는 평생 먹고살 보상금이 주어진다. 키릴은 무선 이어폰으로 명령을 내렸다.
<놈이 시간을 끌려고 한다. 적의 구출대가 오기 전에 놈을 사살한다. 1조는 좌측, 2조는 정면. 3조는 우측으로 공격한다. 돌격준비!>
<예썰!>
검은 도살자들은 즉시 AKS-74U안전핀을 해제했다. 돌격 준비란 일격에 덮쳐서 놈을 사살하는 전투방식이다.
도살자들도 이 방법이 몇 명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확실하게 놈을 죽이는 방법이다.
<돌격.>
검은 도살자들이 일제히 땅을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정면을 향해 내달렸다. 그 순간이다. 팀장의 예측대로 요란한 총 소리가 울렸다.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
거의 2m 정도의 연약한 식물들이 낫으로 벤 것처럼 쓰러졌다. 그리고 달려가던 검은 도살자 중에 희생자가 나왔다.
"컥. 윽!"
연이어 쓰러지는 다섯 명의 대원들! 하지만 그동안에 다른 대원들은 총탄이 쏟아지는 곳에 거의 다다랐다.
그 순간이다. 검은 도살자대원 라자레프는 달리는 자기의 무릎에 무엇이 툭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맹렬하게 달리던 속도를 멈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라자레프는 그것이 인계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폭탄과 폭탄을 설치 해놓고 양쪽의 안전핀에 꽂아 놓은 철선! 그것을 달리면서 걷어 냈으니 다음 순서는 뻔하다.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폭탄이."
꽈꽈꽝, 꽝꽈꽈꽝~
강력한 폭발과 함께 주변 100여 미터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안드레이 파닌은 강력한 C4를 묻어 놓았던 것이다.
오직 앞만 보고 돌진하던 대원 중 11명이 쓰러졌다.
8명은 즉사, 3명은 다리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놈은 어디에도 없다.
”안드레이 파간, 네놈을 잡아 심장을 씹어 먹을 테다!“
숲이 떠나가게 외친 키릴이 다리가 잘려서 누워 있는 세 명의 부하에게 말했다.
"가족에겐 충분한 보상금이 돌아가게 하겠네!"
"감사합니다. 팀장!"
"그동안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명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키릴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탕탕탕~
단 세 발, 하지만 모두 헤드삿이다. 머리에 총알이 뚫린 세 명의 중상자는 그렇게 갔다. 키릴이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놈은 분명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 2인 1조로 이곳은 수색한다. 발견 즉시 사살하라. 사살 후 보고하라. 알았나?"
"예썰!"
"실시!"
스스스스스.
2인 1조가 된 검은 도살자들이 반달형으로 펴진 채 넓은 부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16명의 동료를 잃은 검은 도살자들은 분노로 치를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 검은 도살자로 살아오면서 늘 죽이는 것은 자기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도망치는 토끼에게 사나운 늑대가 16명이나 죽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다.
그들이 이를 갈면서 수색하고 있을 때 사라 푸틴은 CFSB의 기동특공대 1개 전대를 데리고 숲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받은 후, 즉시 헬기 5대로 두 시간이나 날아와 이곳 파란 새의 집 주변에 낙하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요란한 폭발 소리가 타이가 숲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 사라 푸틴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파닌이다!'
파닌이 추격을 받는 것이다. 그 즉시 사라 푸틴은 기동 특공대원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파닌, 조금만, 조금만 버텨줘. 조금만!'
안드레이 파닌에게는 늘 미안한 사라 푸틴이다. 그녀는 파닌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의 사랑을 이용해 정보를 요구했다.
안드레이 파닌은 사라가 이준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해주겠다고!
그런 그가 노출되었고 탈출한다고 하자 직접 기동특공대 1개 전대, 100명을 데리고 왔다. 그것은 안드레이에게 보내는 사라 푸틴의 속죄의 마음이었다.
탕탕탕~
타타타타타~ 타타타타~
바로 코앞이다. 갑자기 요란한 총 소리가 터져 올랐다.
순간, 사라 푸틴은 보았다. 벌떡 일어선 안드레이 파닌을!
”안드레이! 엎드려.“
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
기동특공대원들이 돌격하며 총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아니?“
사라 푸틴은 안드레이 파닌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울컥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안돼. 안드레이!“
사라는 앞뒤를 판단할 새가 없었다. 안드레이에 대한 죄책감에 그녀는 정신없이 달려갔다.
”안됩니다. 국장님!“
하지만 사라 푸틴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미 안드레이에게 거의 다가갔다.
”전원 국장님을 엄호하라!“
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
총탄이 빗발처럼 교차했다.
그때 달려간 사라 푸틴이 쓰러지는 안드레이를 가슴에 않았다.
”안드레이. 죽으면 안 돼!“
안드레이가 핏물이 흘러나오는 붉은 입으로 가까스로 말했다.
”올 줄 알···. 았어. 사라. 오랜만에···. 보니 너, 더 예뻐졌구나!“
그리고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그 USB야. 거기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
“안드레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러자 안드레이 파닌이 떨리는 손을 들어 사라 푸틴의 얼굴을 쓸어 보았다.
“이···. 젠 됐다. 너의 품에 안겨서 죽을 수 있어서,”
툭~
그의 목이 축 늘어졌다,
“안돼. 안드레이!”
그 모습을 나무 뒤에서 숨어 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검은 도살자부대의 팀장 키릴중령이다. 그가 AKS-74U를 겨누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사랑했다면 저승에 가서 함께 살아라.”
그의 손에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 제98화. 타이가 숲의 총격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