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이전. >
미국 대통령의 특사와 한국 대통령의 특사는 평양에 도착하자 고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베리아합중국 최고의장 이준이 면담에 대한 아무런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9시,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에서 평양의 창밖을 내다보는 한국 대통령의 특사이자 통일부 장관인 이석영이 중얼거렸다.
“놀랍군, 평양에서 야경을 볼 줄이야!”
이전에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할 때 대통령을 따라왔던 이석영이다. 그때 평양은 김일성의 동상이 있는 곳들만 불이 켜져 있었다.
나머지 평양의 아파트와 빌딩을 비롯한 모든 곳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말 그대로 암흑의 도시였다.
그런데 시베리아군이 점령하더니 온 평양에 불이 켜져 아름답다. 분명 시베리아합중국의 원료 공급으로 발전소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들어선 것은 이석영의 수행비서였다.
“장관님. 시베리아합중국 의장각하의 부관이 왔습니다.”
“의장의 부관?”
“예. 장관님께 전할 말이 있답니다.”
“들여보내.”
“들어오십시오.”
한 명의 장교가 들어섰다. 그런데 여 장교다. 미모의 여 장교 등장에 방안이 환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특사님. 최고 의장각하의 책임 부관 강소라 소령입니다.”
“아, 예.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소라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뇨. 특사님. 의장 각하께서 특사님을 비밀리에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 대사 모르게 조용히 저와 함께 호텔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아, 알겠소. 갑시다.”
잠시 후, 수행 비서 한 명만 데리고 이석영은 강소라가 타고 온 벤츠에 올라 주석궁을 향해 내달렸다.
미 대사는 그것도 모르고 시베리아 의장의 면접 통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평양 주석궁.
“어서 오십시오. 특사님. 내가 이준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의장 각하!”
악수를 한 이석영은 젊은 이준을 보며 감탄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이준이 한국계 시베리아합중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준이 어떤 사람인가?
러시아에서 태어나 온갖 인종적 차별을 이겨내고 재벌이 된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어린 나이에! 시베리아를 러시아에서 독립 시켜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또한 미국과 맞수였던 러시아를 이긴 장본이기도 하다.
이제는 중국과 북한의 합동 공격을 물리치고 북한을 점령해버렸다.
이미 김정일과 그의 아들이 평양 주민들에게 매를 맞아 죽었다는 내용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제2차 대전 때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처럼 죽었다고 세계의 언론은 김정일의 죽음을 동양 무솔리니의 죽음이라고 한다.
그 뿐인가? 시베리아군은 중국군을 밀어내고 동북 삼성을 점령했다.
지금은 만리장성까지 진출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곧 시베리아군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본토로 진격할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이미 중국은 시베리아군의 최신형 EMP탄 세례를 받아 모든 도시와 공장, 발전소가 멎었다.
거대한 중국 대륙이 밤이면 말 그대로 암흑 천지가 된다.
하지만 더 지독하게 당한 것은 중국군이다.
정보를 보면 중국군의 모든 핵 미사일과 일반 미사일, 로켓, 항공기와 전차를 비롯한 기갑부대가 모두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러니 무엇을 가지고 시베리아군의 전차군단을 막아낼 수 있을까?
중국을 혼쭐 내주고 북한을 파리처럼 때려잡은 사람이 바로 이준이다.
비록 시베리아합중국의 최고 의장이지만 그의 혈통은 단군의 민족인 한민족의 아들이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특사님. 북한영토 때문에 오셨지요?”
“예, 그, 그것이···.”
이석영은 말을 더듬었다. 북한을 점령하기 위해 시베리아 합중국은 엄청난 돈을 썼으리라! 또 시베리아군의 많은 피도 뿌렸을 것이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전쟁은 피를 안 볼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점령한 북한 영토를 한국 영토이니 한국이 가져야 한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미안하고 양심이 괴롭다.
“압니다. 특사님의 마음을, 그래서 말인데요. 특사님. 우리 이렇게 합시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북한 영토를 대한민국에 돌려주겠습니다.”
“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석영은 너무 놀라서 두 눈이 툭 튀어나올 것 같았다.
북한을 돌려주어도 엄청난 돈을 요구할 줄 알았다.
한데 이렇게 쉽게 주겠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예. 대신 한국의 기업들이 우리 시베리아와 만주에 대대적으로 진출해서 자동차 공장과 전자 공장, 조선소를 세우고 제품을 생산해주기 바랍니다.
이제 만주는 우리의 시베리아 땅이니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는 대지도 무상으로 대여해줄 것이며 세금도 절반으로 줄여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오, 마이 갓!’
이석영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건 특혜다. 이제 만주를 시베리아가 차지하면 많은 나라들의 기업들이 진출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에만 토지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세금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이, 이 사람은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주려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북한 땅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한국 기업에 그런 특혜를 줄 리가 없다. 하지만 이준도 생각이 있다.
북한 땅을 돌려줌으로써 한국인의 의무는 지켰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오직 시베리아합중국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을 것이다.
한국 기업이 들어오면 만주와 내몽골, 그리고 이제 차지하게 될 북경과 천진, 하북성과 산동성을 가장 빠르게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1995년, 아직 중국은 상해나 선전, 해남도만 개방했고 내륙은 여전히 1949년에 정지되어 있었다.
이준은 한국 기업을 대대적으로 진출 시킴으로서 시베리아와 함께 새로 얻을 영토를 눈부시게 발전시킬 생각이었다.
한국 기업이 들어오면 대만과 일본도 서로 경쟁하듯 진출할 것이고 유대 금융 카르텔도 돈을 쏟아부을 것이다.
이전 역사에서 중국이 개방하고 20년이 지나자 엄청난 돈을 투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중국에서는 투자했던 돈의 3배를 벌어갔지만, 시베리아합중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이준은 유대 금융 카르텔이 대대적으로 돈을 투자하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투자했던 돈을 한 푼도 빼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 기업이 대대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었다.
“감사합니다. 의장 각하.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시베리아 합중국의 호의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영토 이전에 관한 협정서를 작성하시지요. 지금 당장.”
“예. 의장 각하!”
이영석은 그날 밤늦게까지 시베리아합중국의 전문가들과 협정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다 작성하고 나니 날이 푸름 푸름 밝아오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고 오히려 힘이 용솟음쳤다.
<영토 이전에 관한 협정서.
1. 시베리아합중국은 북한 땅이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임을 인정한다.
2. 시베리아합중국은 3개월 내로 시베리아군을 북한영토에서 전면 철수시킨다.
3. 3개월 후, 북한영토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귀속된다.
1995년 9월 30일.
시베리아합중국 최고 의장 아르진 리.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 이석영.>
이 협정서가 발표되자 고려 호텔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주한 미국 대사 겸 미 대통령 특사인 밥 호프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이럴 수가, 이석영, 이자가 나를 속였어!”
아침에 시베리아합중국 의장과의 면접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물었다. 그때 이석영은 시침을 뚝 떼고 모른다고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밤새 주석궁에 가서 영토 이전 협정서를 작성한 것이 분명했다.
“역시 한 핏줄이라 이건가?”
그날 오후,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을 인수할 실무자들 1,000여 명이 판문점을 통과하여 평양으로 들어왔다. 지금 한국에서는 난리이다.
이번 영토 이전으로 인해 이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모든 티브이 채널들과 신문, 방송들이 이준에 대하여 찬사를 쏟아 냈다.
<시베리아합중국 최고 의장 아르진 리, 그는 누구인가?>
<시베리아합중국 최고 의장, 아르진 리.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우리와 같은 단군의 피였다!>
<아르진 리, 그는 우리 한민족의 영웅이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이준의 인생이 공개되었고 엄청난 팬들이 형성되었다.
“사랑해요. 의장님!”
“나는 한민족의 영웅인 아르진 리의 아기를 가지고 싶다!”
이건 뭐, 이준이 시베리아합중국의 수장인지, 대한민국의 수장인지 분간이 안 되는 형국이다.
전 세계의 언론들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북한 영토를 이전해준 일로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이준은 주한 미 대사 밥 호프를 만나고 있었다.
... ...
“특사님. 이리저리 에도는 것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를 만나러 온 목적을 말씀하세요! 난 이미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준의 직선적인 말에 밥 호프가 얼굴이 벌게지며 입을 열었다.
“의장 각하. 우리 미국이 알고 싶은 것은 전후 중국의 처리입니다.”
밥 호프는 이미 시베리아합중국이 이긴 상황에서의 전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이다.
중국은 항복하던가, 아니면 시베리아합중국에 통째로 점령 당하던가!
둘 중 하나 뿐이었다.
“그건 비밀이랄 것도 없습니다. 첫째로, 중국이 항복하면 우리 시베리아합중국은 내몽고, 북경, 천진, 하북성, 산동성을 영구 할양받아 시베리아영토로 편입할 것입니다.
또 이번 전쟁의 배상금으로 1조 달러를 10년 동안 할부로 받을 것입니다.
중국은 영토도 크고 인구도 많아서 그 정도는 거뜬히 감당할 것입니다.”
밥 호프는 입이 떡 벌어졌다. 시베리아합중국이 만주와 내몽고, 하북과 산동성을 할양받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시베리아합중국이 곡창지대를 중국에서 빼앗으면 중국은 그만큼 힘이 약해진다.
또 시베리아합중국은 곡창지대를 확보함으로써 추운 시베리아합중국의 약점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와 막상막하가 될 것이다. 결국 미국이 바라는 대로 중국과 시베리아합중국, 러시아가 서로 견제하며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태평양의 주인으로 유유히 세 나라를 중재하기도 하고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미국은 언제나 시베리아합중국의 편입니다.”
기분이 흡족해진 밥 호프의 얼굴에 저도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우리 시베리아합중국과 미국이 영원한 우방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준은 안다.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를 시베리아합중국이 견제한다. 그러니 미국은 시베리아를 지지하는 것이다. 만약 시베리아합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단계까지 커지게 되면 그땐 달라질 것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서열 싸움은 아프리카의 사자싸움보다 더 잔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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