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천벌. >
“저, 저게 뭐야?”
김정일과 김정은을 호송하던 분대장 남재원중사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골목골목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손에는 몽둥이와 빨랫방망이, 돌까지 들었다.
남재원중사는 머리를 휘리릭 돌려 동서남북을 훑어보았다.
어디든 사람 천지다. 모두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저기 있다! 김정일이다!”
“놈을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아!”
얼굴이 시뻘게진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남재원중사는 어쩔 줄을 몰랐다. 저들이 달려오는 목적은 척 봐도 알 수 있다.
저들의 목표는 김정일과 김정은이다. 한두 명도, 수십 명도 아니다.
벌써 수천 명이다. 그런데도 사방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달려오고 있다.
잠깐 사이에 버드나무 거리가 사람들로 인해(人海)를 형성했다.
‘큰일 났군!’
분대원들은 12명, 계속 불어나는 수천 명의 평양시민들을 막을 수는 없다. 발포를 하면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들은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호해주어야 할 평양시민들이다.
“중사님, 어떻게 할까요?”
부분대장 세르게이 코콜료브하사가 물었다. 하지만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런데 달려오는 시민들은 점점 더 가까이 몰려오고 있다.
‘어쩔 수 없군!’
남재원중사는 무전기를 귀에 댔다.
“사령부, 여기는 김정일 호송분대이다. 지금 수천 명의 평양시민이 거리를 포위하고 달려온다. 우리 분대 12명만으로는 김 씨 부자를 지킬 수가 없다. 명령을 바란다,”
<중사, 시민들이 가까이 오면 막는 척하다가 슬며시 빠져라. 알겠나?>
“예? 아니 그···.”
그 순간, 남재원중사는 번개같이 머리를 무언가가 후려치는 감을 느꼈다.
‘그렇군, 김 씨 부자를 평양시민들이 직접 처리하게 하려는 거야!’
평양사람들 치고 상위 10%만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김 씨들을 모조리 갈아 마시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군대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외국 기자들은 인권유린이라고 뉴스를 내보낼 것이다.
지금 평양에는 시베리아군을 따라 전 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온 기자들이 우글거린다.
혹시 지금 여기도 왔는지 모른다. 달려오는 군중을 살펴본 남재원은 머리를 끄덕였다. 진짜 기자들이 보였다.
각국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달려온다.
남재원은 몸을 홱 돌렸다.
“시민들이 달려들면 막는 시늉을 하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알겠나?”
“예썰.”
이제 병사들은 사령부가 김 씨 부자를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그때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당신들은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아니요? 우릴 버리면 저 폭도들에게 맞아 죽을 거요.
제발 이렇게 부탁하니 우릴 지켜주시오! 아니, 내 자식만이라도 지켜주시오.
부탁이오!”
김정일이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애원했다.
그 말에 남재원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생겨났다.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독재자도 자기 자식만은 살리고 싶은 모양이다.
그것이 어이가 없는 남재원이다.
그가 김정일에게 바싹 다가가 그의 귀에 대로 말했다.
“이 시발놈아. 넌 인권을 지켰냐?”
김정일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턱을 덜덜 떨었다.
“이건 네놈이 저지른 인과응보야. 그러니 네 인권은 네가 지켜라.”
그리고는 땅바닥에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때 평양시민들이 드디어 다 왔다.
“김정일을 죽여라!”
“찢어 죽여라!”
“때려죽여라!”
남재원과 그의 분대원들이 형식적으로나마 말렸다.
“여러분, 이러면 안 됩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어도 법의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법의 판결?”
“군대 양반, 저놈들은 법으로 판결할 놈들이 아니오. 저놈들은 지 마음대로 사람들을 죽였소. 공개적으로 모아 놓고 화형도 시켰고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소.
저놈들 때문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굶어 죽었소,
비키시오. 저놈들은 우리 손으로 판결하겠소.”
“옳소. 우리가 직접 판결하자!”
“와와와~”
사람들이 밀고 들어온다. 남재원중사와 분대원들은 못 견디는 척하며 뒤로 밀려갔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김정일의 멱살을 잡았다.
“이 개새끼야,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몰랐지? 네놈 때문에 내 아내와 딸이 굶어 죽었다. 내 아내와 딸의 이름으로 네놈을 판결한다. 받아라.”
중년인의 두툼한 주먹이 김정일의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퍽.
“컥.”
김정일의 코피가 터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 주먹에 맞은 입에서 하얀 옥수수들이 후두득 튀어나왔다.
“여러분, 이러지 마시오. 그래도 나는 당신들의 지도자요!”
그에 주민들이 폭발했다.
“때려 죽여라.”
“주둥이를 찢어라!”
그다음부터는 난타가 시작되었다.
빨랫방망이로 김정일과 김정은을 두드려 패는 아줌마들,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는 남자들, 몽둥이로 후려치는 청년들!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김정일과 김정은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김정일과 김정은을 계속 차고 밟았다.
외국 기자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두 놈을 광장에 매달아라.”
“옳소, 광장에 매달자!”
사람들은 김정일과 그 아들의 다리를 잡아 묶어서 끌고 갔다.
그 바람에 뒤통수가 찢겨 허연 머리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죽은 김정일과 김정은은 아픔을 몰랐다.
아마 그들에게는 그렇게 빨리 죽은 것이 다행일 것이다.
김일성 광장은 북한군이 열병식을 할 때 많이 사용하던 곳이다.
그리고 김정일과 김정은은 주석단에 올라 즐기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 두 사람은 밧줄에 두 다리가 묶여 장대에 거꾸로 매달렸다.
거꾸로 매달려 흔들거리는 부자(父子)!
“퉤. 잘 뒤졌다!”
“천벌을 맞았구나!”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악마 같은 놈들!”
시민들은 그 옆을 지나가며 침을 뱉었고 돌을 던졌다.
1945년 광복 후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오 세습해오던 김씨 가문의 사회주의 왕조는 끝났다.
이날, 전 세계의 티브이들은 김정일과 김정은이 김일성 광장의 높은 장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것을 일제히 보도했다.
***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 이석영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드디어 북한 땅에 들어섰다.
비록 대한민국의 힘으로 해방하지는 못했지만 김씨 가문의 통치는 무너졌다.
아직 시베리아합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이 굶주려 죽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벌써 시베리아합중국에서 100만 톤의 밀과 쌀을 들여와 주민들에게 배급을 준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졌다.
“미스터 리, 한국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오?”
같은 차를 탄 주한 미 대사 밥 호프가 의미 심중하게 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시베리아합중국이 북한 영토를 한국에 돌려줄까요?”
그 말에 이석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 한국 정부가 제일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북한을 점령한 것은 시베리아군이다.
그것도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이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베리아군은 피를 흘려 북한을 점령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을 실효 지배하는 것은 시베리아합중국이다. 만약 그들이 전쟁 배상금으로 북한영토를 합병하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번 전쟁에서 보여준 시베리아합중국의 힘은 전 세계 그 어떤 강대국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에 시베리아의 신무기는 그 누구도 감히 시베리아에 대고 뭐라 말할 수 없게 했다.
자칫 시베리아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그 거대한 파괴력을 가진 새로운 EMP탄의 공격을 받으면 나라의 문명이 18세기로 퇴보할 수 있었다.
북한을 지원하여 시베리아를 공격했던 중국처럼 말이다. 지금 중국은 말 그대로 18세기의 나라다.
그러니 감히 누가 시베리아합중국에 뭐라 할까?
“그야 의장을 만나봐야 알겠죠!”
“아, 시베리아 의장이 한국인이죠?”
“그렇긴 합니다!”
“그럼 돌려주지 않을까요? 의장이 한국인이니 말입니다.”
밥 호프의 말에도 이석영의 얼굴은 환해지지 못했다. 시베리아합중국 최고 의장 이준이 한국인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현재 시베리아합중국의 수장이다. 아무리 한국인이라지만 시베리아합중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영토를 돌려받는 것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글쎄요. 그분이 한국인이긴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시베리아합중국의 의장이니 시베리아의 이해관계가 우선일 겁니다.”
“그렇기도 하군요!”
밤 호프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힐끔 이석영의 굳어진 얼굴을 훔쳐보았다.
‘한국도 대책이 없군!’
이번 전쟁은 생각해볼 것도 없이 시베리아합중국의 승리다. 중국은 모든 미사일과 핵탄두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현대전은 사실 미사일 전쟁이다.
그런데 중국이 자랑하던 모든 미사일이 겉모습은 멀쩡해도 내부는 파괴되었다.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한다고 해도 효과가 없다.
중국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EMP탄을 공중에서 폭발 시키면 전자부품들이 모두 파괴된다. 미사일은 조준했던 목표로 날아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운명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한다.
밥 호프가 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이준을 만나러 가는 것은 중국의 처리 문제 때문이었다.
시베리아합중국이 중국을 모두 먹어 버린다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그럼 미국으로서는 새로운 강대국과 태평양을 놓고 대결해야 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이준을 만나 그의 생각을 타진해봐야 한다.
‘음. 이준!’
밥 호프는 신중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양 주석궁.
강소라소령이 주석궁을 나서자 병사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충, 성!”
“충성!”
화답해준 강소라는 자기의 전투용 지프를 몰고 주석궁 경내를 벗어났다. 하지만 주석궁을 지키는 이준의 친위대들은 누구 하나 그녀가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녀가 최고 의장 이준의 책임 부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간 그녀가 차를 세운 곳은 고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창광거리 찻집이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장교님.”
서빙이 곧바로 달려와 주문받았다.
“아메리카노!”
“예.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서빙이 가자 강소라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 37분이다.
그녀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젊은 남자 한 명이 찻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거침없이 강소라의 좌석 앞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조금 늦었지. 미안, 일이 너무 바빠서···.”
“괜찮아요. 뭐 마실래요?”
“아니, 우리 아버지가 소라씨를 보고 싶어 해. 결혼 전에 며느릿감을 꼭 보고 싶다는 거지, 지금 갈 수 있어?”
“그래요.”
소라가 일어섰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 강소라의 차에 올랐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남자가 말했다.
“국정원 2처 특수요원 한창복이오. 원장님께서는 소라씨가 이준의 책임 부관이 된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소,”
“나를 찾은 목적을 말하세요. 한창복씨.”
강소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님께서는 이준이 북한 영토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보라고 하셨소. 소라씨는 그의 책임 부관이니 알고 있으리라 믿소!”
“몰라요, 의장님께서는 아직 북한 영토 문제는 입 밖에 낸 적이 없어요!”
“이거 큰일 났군! 오늘 대통령님의 특사가 평양에 도착하는데 정보를 하나도 모르고 있으니···.”
한창복이 답답해하며 강소라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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