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평양 탈출 작전. >
쿠웅, 쿠웅, 쿠웅, 쿠웅~
폭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170미터 지하인데도 은은히 들려오고 벽체들이 부르르 떨렸다. 김정일은 지하 궁전의 집무실을 오락가락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평양시 각 곳에서 들어오는 보고는 절망적이다.
집무실과 연결된 통신실에서는 끊임없이 긴급통신이 날아들고 있었다.
“사령부, 사령부, 여기는 호위총국 사령부, 호위총국 사령부. 적들의 거센 공격으로 우리의 대전차포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더 이상 적을 막을 수 없으므로 20km를 퇴각하여 다시 방어한다. 이상.”
“사령부, 여기는 국가 보위사령부 야전 지휘부다. 광복거리가 놈들의 집중 포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10만 청소년 결사대는 무너지는 시멘트와 아파트의 잔해에 묻혀 전멸했다.
그래도 아직 적위대와 교도대, 여맹군(아줌마부대)이 200만에 달하니 끝까지 싸워볼 것이다. 이상.”
“대성산 75만 병력 중 45만이 부대를 탈출, 부대가 대혼란에 빠져 퇴각 중이다. 퇴각 중이다!”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던 김정일이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군!”
김정일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새벽녘이나 내일 오전이면 평양시 전체가 점령되리라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믿어볼 것도 없었다. 중국은 만리장성에서 시베리아군을 방어하며 겨우 숨을 돌리고 있다.
그들은 구하러 갈 수는 없으니 스스로 탈출하여 중국으로 오란다!
‘개새끼들!’
필요할 때는 뭐든지 해줄 것처럼 굴다가 정황이 바뀌니 자기들 살기에만 급급하다.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것이 세상일이니까!
김정일이 집무 탁자에 가서 앉더니 수많은 버튼 중에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나, 김정일이다!”
<명을 내리십시오, 지도자동지!>
“우리 가문의 친척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
지금 이 지하 궁전에는 2,674명의 남녀노소가 모여 있다.
김씨 가문의 직계와 외가, 그리고 방계들이다.
지난 80년 동안 백두혈통이라고 최고의 특권을 누리던 자들이다.
“그들 중 내 아들 김정은만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하라. 한 명도 살아 있어서는 안된다. 알겠는가? 대좌.”
<옙, 명을 받듭니다.>
“당장 집행하라.”
<예.>
김정일은 이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면 모두 죽여야 한다. 특히 김씨 가문의 친척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아서는 안 된다.
어차피 그들은 잡히면 온갖 굴욕을 당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지하 궁전 최하층의 어느 한방.
담벼락이 하얀색으로 빛나는 그 방은 크고 넓기는 하지만 어떤 장식도 없었다.
“이게 무슨 방이고?”
“글쎄요. 아무 장식도 없는 것이 말 그대로 백색의 방이네요!”
“이유가 있으니 여기로 모이라고 했겠지?”
“그럼 그럼, 지도자동지께서 모이라고 했잖은가?”
이른바 북한 최고의 계급, 백두혈통들이 저희끼리 주고받으며 백색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도 있었고 젊은 아가씨,어린 학생도 있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백두혈통으로 거만하고 도도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하지만 가슴 앞에 총을 멘 친위대원들은 아무 말도 없이 복도마다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스피커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 친애하는 백두혈통 여러분, 나 김정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백두혈통으로 모든 특권을 누려 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 값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인민군은 거의 괴멸 상태고 내일 오전쯤에는 이 지하 궁전이 시베리아군에게 함락될 것입니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우리 인민군이 괴멸 상태라니?”
백두혈통들은 눈이 휘둥그레서 소란을 떨었다. 그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나라가 건국하고 망하는 것은 역사에 필연적으로 있는 일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그 나라의 왕족들은 모두 잡혀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죽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결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마지막으로 명령합니다. 모두 자결하시오. 그것이 백두혈통의 존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럼 약을 나누어 주어라.”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친위대원들이 쟁반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쟁반에는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알약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것은 독약이다. 한 알만 먹으면 즉시 숨통이 끊어지는 무서운 극독, 백두혈통들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굶주리며 하루, 하루를 지옥 같은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자살이 절대 두렵지가 않다. 하지만 백두혈통들은 다르다.
북한 최고의 신분으로 최고의 쾌락을 즐기며 살아왔다.
이들에게 천국은 바로 북한이었다. 그런데 죽으라니 죽고 싶은 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아, 아무리 지도자라고 해도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소. 왜냐하면 우린 지도자와 똑같은 백두혈통이기 때문이오!”
“옳소. 우리에게 죽음을 요구할 수는 없소!”
“당장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 주시오.”
백두혈통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말로 죽기가 싫었다. 태어나서부터 북한 최고의 특권층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자기들의 집을 나서서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보았지만 상관없었다.
이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냥 노예의 숫자에 불과했으니까! 노예주가 노예의 죽음을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기들보고 죽으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들과 핏줄이 같은 김정일이가!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스피커에서 김정일의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죽기 힘들어하니 내가 도와주겠소. 친위대는 나의 친인척들이 백두혈통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라.”
“예.”
철커덩.
“으아아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해서 입을 떡 벌려고 저마다 뒤로 물러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출입문 입구에 총신이 4개인 14.5mm 대공기관포가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이 기관포는 대공포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포신 4개를 수평으로 눕히고 돌격해오는 보병들에게 사격 하면 빗질한 것처럼 초토화 된다.
왜냐하면 분당 6,000발의 14.5mm 기관 포탄이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전 역사에서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바로 이 대공기관포로 쏘아 갈가리 찢어 죽였다.
그 대공기관포가 바뀐 역사에서는 김정일의 친인척을 쏘아 죽이는 살인 무기로 나타났다.
“사격 준비!”
친위대 장교가 외쳤다.
철커덕.
대공기관포가 장전되었다. 그리고 나팔 주둥이같이 생긴 4개의 총신이 백두혈통들을 겨누었다.
그 시커먼 나팔 주둥이가 점점 커지더니 거대한 악마가 입을 쩍 벌린 것 같았다.
“안돼!”
“난 죽기 싫어!”
하지만 이미 죽음의 사신은 그들을 뒤덮고 있었다. 친위대 장교가 한쪽 팔을 마치 검처럼 내려치며 외쳤다.
“쏴!”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4개의 총신에서 총탄이 빗발처럼 쏘아져 나갔다.
“아악. 으아악!”
인간의 육체는 총탄 앞에서 너무도 무기력했다. 14.5mm 총탄에 맞으면 인간의 육체는 그대로 터져 나간다.
총탄에 실린 막강한 운동에너지를 육체가 감당하지 못한다. 하얀 방이 순식간에 찢긴 인간의 살과 부서진 뼈로 뒤덮였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출렁였다. 친위대 장교가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 장전하며 명령을 내렸다.
“들어가서 시신들을 하나하나 뒤집어서 살펴보아라. 그리고 살았건 죽었건 머리에 무조건 한 방씩 총탄을 쏘아 박아라. 알았나?”
“예!”
“시작하라!”
“예.”
병사들이 핏물을 철퍽이며 달려들어가 시신들을 하나하나 뒤집으며 머리에다 한 방씩 총탄을 쏘아 박았다.
탕, 탕, 탕, 탕, 탕~
김정일 집무실.
방에는 김정일과 김정은 둘이 있었다. 그들은 상황판을 통해 눈앞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것처럼 똑똑히 보고 있었다.
“봤느냐?”
“예. 봤습니다.”
“때로 통치자는 무자비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이 아비가 왜 저들을 모두 죽였는지 알겠느냐?”
“예. 적에게 포로가 되면 저들은 온갖 정치적 음모에 이용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신처럼 묘사된 백두혈통이 사실은 보통 사람과 똑같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려두지 말고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역시, 넌 내 후계자답다!”
김정일이 만족한 듯 김정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부관을 불렀다.
“가서 잠수함 출발 준비를 확인하라.”
“예.”
척, 절도 있게 돌아선 부관이 방을 나갔다. 부관이 방을 나가자 문을 잠근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말했다.
“이걸 보아라.”
지이잉~
밋밋한 벽에서 네모난 통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통이었는데 밖으로 나오자 스르르 척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순간, 김정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안에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들이 가득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4대 보석이었다.
“이, 이렇게 많은 보석이 어떻게···.”
김정은이 경악하는 표정을 본 김정일이 피식 웃었다.
“이건 너의 할아버지 김일성시대부터 모아 온 보석들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내가 보석을 모았지.
이 땅에서 나는 금과 은을 비롯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수출했다.
지어는 명태와 조개까지, 그래서 주민들은 생선을 1년에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렇게 수출하여 달러로 번 다음은 비밀리에 보석을 사들였다.
금은 왜 없냐고? 금은 부피가 크다. 하지만 보석은 부피가 작지, 또 이동할 때 움직이기도 쉽다.
하여 네 할아버지와 나는 지난 80년 동안 보석을 모았고 바로 여기, 이곳에 보관해 두었다.
남들처럼 스위스의 은행에 두지 않은 것은 중립국 은행이라 해서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보석은 모두 4천억 달러 어치에 달한다. 너와 나는 이것을 가지고 잠수함을 타고 인도로 떠난다. 그곳에서 때를 기다린다. 정은아.”
“예. 아버님.”
“이걸 얼굴에 써라.”
“이게 뭡니까?”
“정교하게 만든 면구다. 그걸 쓰면 누구도 네가 김정은인 것을 알아볼 수 없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면구를 썼다. 그것은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술로 만든 면구였다.
그것을 얼굴에 쓰니 감쪽같이 김정일과 김정은은 사라졌고 40대 중반의 남자와 20대 중반의 평범한 남자가 생겨났다.
“자, 가자. 이젠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김정일은 김정은을 데리고 잠수함에 탔다.
그리고 10분 후, 잠수함 3척이 지하 궁전에서 출발하여 대동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평양 탈출 작전이 시작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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