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
김현구중좌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은 저녁 11시였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신발도 벗지 못하고 대충 의자에 앉은 채 끄덕끄덕 졸던 중이다. 비몽사몽간에 뭔가 거대한 꿀벌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웅웅웅웅웅웅웅~
김현구중좌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웅웅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 소리는 설마···.”
어떤 예감에 김현구중좌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허업!”
검은 구름이 뭉개, 뭉개 흐르는 하늘에 거대한 폭격기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비상, 비상, 폭격기다. 비상,”
댕댕댕댕~
김현구중좌는 종으로 쓰는 철근을 힘껏 두드렸다. 막사에서 병사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은 생화학무기고 주위에 있는 대공포에 달려가 사격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목표, 적 폭격기, 거리 2700, 각도 022. 조준.”
대공포들이 하늘을 향해 돌아가고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조준 끝!”
“쏴!”
쾅, 쾅, 쾅, 쾅~
포탄들이 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라갔다. 하늘이 온통 예광탄으로 덮였고 포탄 수십, 수백 개가 맹렬하게 쏘아져 올랐다.
하지만 폭격기보다 먼저 전투기들이 대공포 진지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쐐애액, 쐐액~
투투투투투투~
전투기들이 대공포들을 향해 급강하하며 기총소사를 시작했다. 수백, 수천 개의 기총탄이 비질하듯 대공포 진지들을 휩쓸었다.
“크악, 아아악!”
기총탄이 대공 포병들의 온몸에 벌집처럼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 버렸다. 대공 포병들이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쓰러져갔다.
하지만 전투기들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다. 그들의 동체에서 시뻘건 화염과 함께 로켓들이 쏘아졌다.
쮸웅, 쮸웅, 쮸웅~
오렌지색 화염을 꼬리에 달고 쏘아져 온 로켓이 대공포 진지를 강타했다.
순간,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대공포와 포병, 진지할 것 없이 강렬한 폭발에 휘말렸다.
꽈꽈꽝, 꽈꽝, 꽈꽝, 꽝꽈르릉~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폭격기들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표 위치 확인!”
“폭탄창 개방!”
“벙커버스터 투하!”
철컹, 철컹, 철컹~
쐐애액, 쐐액~
벙커버스터가 폭탄창을 떠나 맹렬한 속도로 목표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리고 곧 그 결과가 나타났다. 흙으로 된 표피를 두부처럼 뚫고 들어간 벙커버스터는 거의 7미터나 되는 콘크리트벽을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자기의 몸속에 있던 분노의 화염을 터뜨렸다.
퍼엉~
거대한 화염이 화학 생물 무기고를 뒤덮었다.
순식간에 불길과 연기, 강력한 열기가 팽창했다.
뜨거운 열기는 한계점에 다다르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콰콰쾅, 콰쾅, 콰쾅, 쾅 콰르릉~
백린탄과 네이팜탄, 그리고 생화학드럼통 수천 개의 폭발은 마치 핵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수백 미터나 하늘로 치솟았고 폭발의 강력한 화염은 생물학무기를 지키던 인민군 부대를 순식간에 숯덩이로 태워 버렸다.
생화학무기고가 최후를 마칠 때 낙하산을 타고 내린 공수특전단원들이 사령부에 보고했다.
“목표 소멸, 주변의 공기는 오염되지 않았다. 오버.”
“알았다, 제2작전으로 넘어가라. 오버.”
“알았다. 오버.”
공수특전단은 즉시 집합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인민군 부대의 사령부를 찾아 소멸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생물학 무기고는 밤을 대낮처럼 밝히며 활활 타올랐다.
그 시각, 개성과 철원을 비롯한 모든 화학 및 생물학 무기고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뭐, 생물학 무기고가 모두 불타고 있다고? 막아. 어떻게 해서든 막으란 말이다.”
김정일은 악을 썼다. 하지만 대체 뭐로 막는단 말인가?
“이런 빌어먹을,”
와장창~
내던진 전화기가 박살이 났다. 김정일은 씩씩거리며 지하 궁전의 집무실을 이리저리 오갔다. 마치 우리에 갇힌 하이에나처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정일은 공화국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버지 김일성 때는 소련을 믿고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왔다. 자기의 대에 와서는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지원을 받았다.
공산주의라는 이념 속에서 소련과 중국, 북한은 같은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돕기 싫어도 중국과 소련은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무너지고 한반도가 통일되면 대한민국과 국경을 마주치게 된다.
한국은 미국과 혈맹 국가! 결국 한국과 국경을 마주 댄다는 것은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과 국경을 마주 대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니 싫든 좋든 김정일을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그렇게 양쪽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가를 유지해 왔다.
한데 영원할 것 같던 그 체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부르짖으며 자본주의사회에 나라를 개방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방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끝내 소련이 덜커덕 개방하고 말았다.
그에 따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이어 개방을 했다. 그리고 연이어 공산당을 해산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끝까지 개방 반대를 고수하다가 부하들의 총에 맞아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김정일은 오금이 저렸다.
그리하여 취한 행동이 더욱더 보위부의 국민 감시체제를 강화하고 조금이라도 개방에 대해 입 밖에 꺼내는 자는 본인만이 아니라 삼족을 멸했다.
다행히 북한 사람들은 1945년 광복 이후, 단 한 번도 열린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조선왕조의 통치, 군국주의 일제의 통치, 그리고 김씨가문의 독재만을 겪어 보았다.
그 때문에 북한 국민 개개인의 머릿속에는 국가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티브이와 라디오도 오직 북한의 것만 들어왔으니 당연했다.
그들은 바깥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알면 자기 본인만이 아니라 삼대가 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막아도 바깥소식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북한 사회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독재와 정보통치를 강화하는 수밖에! 그래도 김정일은 북한의 상태라면 자식 대까지도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격을 받았다.
경계하던 남한이 아니라 시베리아합중국이 쳐들어온 것이다.
중국을 믿고, 국제 유대 금융계를 믿고 시작한 일이 실수였다. 시베리아합중국 최고 의장은 생각만큼 어린 자가 아니었다.
반대로 리더십도 강했고 과감하게 베팅을 할 줄도 아는 자였다.
‘놈이 중국과 전면전을 할 줄이야!’
김정일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중국이, 자기가 그렇게 믿었던 중국이 시베리아군에게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며 퇴각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김정일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매제 장성택이 튀어들었다.
“시베리아군이, 시베리아군이 순안비행장을 점령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김정일도 화들짝 놀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순안 비행장이라니?
그곳은 최후의 때가 닥쳐오면 중국으로 도망칠 곳이다.
그 때문에 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땅속 깊은 곳에 지하 비행장을 만들고 주석 전용기를 숨겨 둔 곳이다.
한데 그곳이 점령되었다면 최후에 중국으로 도망칠 길이 막혀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만이 아니오. 황주 비행장도 점령당했고 북창과 평성. 남포 비행장도 모두 점령당했소.”
김정일은 정신이 아찔했다. 그렇다면 평양의 동서남북이 모두 포위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야말로 평양은 완전하게 포위되었다.
한참 동안 평양 전도를 바라보던 김정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쿡쿡쿡, 하하하!”
장성택이 놀라 김정일을 바라보았다. 정신적 압박이 너무 심해서 돌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돌지도, 정신이 나가지도 않았다.
“매제, 현재 평양을 지키는 군대가 얼마나 되오?”
“오백만 명이오. 하지만 그들 중 80%는 소년근위대와 적위대, 그리고 여성보위대요!”
여성 보위대!
김정일은 평양을 지키는 군대로 평양시의 여인들을 모두 소집하여 총을 쥐여 주었다. 북한에 가장 흔한 것이 소총류이고 아줌마들이긴 하지만 총을 쥐면 적 한 명은 죽일 것이다.
총알받이로 끌려 나온 것이 아줌마들이다.
이미 평양 시내는 200미터마다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고 제일 앞에는 소년근위대, 그 뒤에는 청년근위대, 그 뒤가 정규군인 조선인민군 호위사령부 군부대들이다.
또 그 뒤에는 내무성(경찰청)의 내무원부대들이, 그 뒤에는 국가보위부 요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차지하고 있다. 맨 마지막이 주석궁을 지키는 친위대이다.
“매제, 여성 보위대든 소년근위대든 상관없소. 시베리아군은 주석궁까지 들어오려면 저들의 60% 이상은 죽여야 할 것이오. 그러면 평양이 점령된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소?”
“그건···.”
장성택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정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크크, 매제, 깊게 생각할 것도 없어, 시가전을 벌이다 나면 평양시 사람들의 3분의 2는 죽여야 할 것이오.
그럼 평양시 사람들은 가족 중에 최소 한 명은 죽은 자가 생기겠지. 시베리아군이 평양을 점령한 후, 평양시민들은 시베리아군에 대한 증오로 이를 갈 것이오.
가족의 원수니까. 흐흐흐!”
김정일이 기분이 유쾌한 듯 키득거렸다.
하지만 장성택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 미친 새끼가 히틀러처럼 자살하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평양이 완전히 포위되었는데 저리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장성택은 절대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난 25년 동안 장성택은 북한의 외화벌이를 책임진 장이었다.
그때부터 장성택은 스위스 은행에 비밀계좌를 만들고 돈을 저축했다.
그 비자금은 그 누구도 모르는 장성택만의 돈이다.
왜 비자금을 저축했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장성택은 북한의 정치는 언제 어느 때 전복 될지 모르는 살얼음 위의 정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북한은 국민을 북한이라는 드럼통에 가두고 거짓말 정치만 해왔다.
그들의 눈과 귀를 막고, 말이다.
그런 정치는 한순간 삐끗해서 밖의 세상이 북한이라는 드럼통 내부에 전해지면 폭발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아무도 모르게 비자금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장성택은 자살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김정일이 장성택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매제, 표정을 풀어, 다 죽어도 우리 김씨 가문은 죽지 않아. 이 지하 궁전에는 비밀이 있지. 우선 3만 톤의 TNT가 묻혀 있어,
내가 버튼만 누르면 쾅, 모두 끝이지, 그리고 또 하나가 있지.
바로 잠수함이야. 우린 평양 시가전을 구경하다가 마지막에 잠수함을 타고 대동강을 통해 서해로 빠져나가면 상황 끝이지.
이제 마음이 놓이나? 매제!”
‘오, 마이 갓!’
장성택은 속으로, 진심으로 신을 불렀다. 이제 살았다.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딱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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