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맞짱. >
날이 푸름 푸름 밝아왔다. 하지만 지하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나진-선봉의 두만강 역 지하다.
원래 두만강 역은 소련 시절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각종 무기를 지원받던 역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되면서 두만강 역은 벌목하러 시베리아로 가는 역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두만강 역은 더 번창해졌다.
러시아에 가서 달러를 벌어서 나오는 벌목공들에게는 이곳이 제일 먼저 발을 딛는 북한 땅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벌어온 달러를 뿌리며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그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 집집의 방을 개조하여 민박으로 만들고 나진이나 선봉에서는 많은 여인이 이곳에 와서 그들을 상대로 몸을 판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터지면서 대재앙이 일어난 곳이다.
어제 밤새 하산 일대에 퍼붓는 폭격 소리에 두만강 역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 지하에 모두 모여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밤새 고막을 터뜨릴 것 같던 폭격이 아침이 되자 일시에 멎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느 쪽이 이겼을까?”
누군가 한 말이 조용한 지하 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조용하던 지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군거림이, 조금 있자 큰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베리아가 이긴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아?”
“저기 보이던 깃발이 없어!”
지하실의 입구에서 보면 시베리아로 넘어가는 두만강 철교가 보인다.
인민군이 하산지구를 점령하고 그 철교에 있는 시베리아 깃발을 끌어 내리고 인공기를 걸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인공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펄펄 휘날리는 것은 시베리아합중국의 깃발이었다.
“저, 정말이네!”
“!!!”
사람들이 모두 충격으로 펄럭이는 시베리아 깃발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조용한 아침의 고요함을 깨트리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전차부대다!”
“시, 시베리아 전차들이 두만강 철교를 넘어온다!”
놀란 사람들의 외침에 모두가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았다.
북한군 천마 전차와는 다른 시베리아 전차(T-90A)들이 줄줄이 건너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콰르르르르르~
전차들이 맹렬하게 달려온다. 철교만이 아니다.
두만강으로 전차들과 장갑차들이 거침없이 건너온다.
그런데 모두 수륙양용차인지 두만강이 방해하지 못했다.
콰르르르~ 콰르르르~
이제 전차의 소리는 더욱 커지고 지하실이 흔들렸다.
그리고 시베리아 국경 쪽인 두만강 일대는 자욱한 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시베리아군의 북한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하늘에는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 비행기는 단 1기도 얼씬하지 못했다.
***
중국 북경 FCI 안가.
방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고 한 명은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하고 있었다.
“시베리아군의 전차가 1만 대나 넘어왔소. 하늘에는 전투기와 전폭기가 새카맣게 덮었소.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평양은 잿더미가 될 거요.
게다가 시베리아군은 나진-선봉지구와 청진을 점령했소, 그러고도 진격을 멈추지 않고 있소.
동해안을 따라 시베리아군의 1개 집단군이 함흥 쪽으로 진격하고 있고 다른 1개 집단군은 두만강 연안을 따라 백두산 쪽으로 전진하면서 종성, 회령, 무산까지 점령했소. 이게 겨우 3일간의 결과요. 대체 시베리아군이 공격해오면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나라들은 왜 움직이지 않는 거요? 말해 보시오.”
김정일의 특사로 온 장성택이 울분을 토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하산을 인민군이 점령했을 때만 해도 장성택은 환호를 올렸었다. 시베리아군이 절대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FCI의 배후 교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베리아군이 공세를 취했다. 그것도 무자비하고 혹독하게!
하산을 건너갔던 천마호 전차 2,500대는 모두 파괴되었고 포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산지구를 침공했던 40만 인민군 중 13만 명이 폭격에 죽었고 6만여 명이 부상, 21만 명이 포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시베리아군은 갑자기 밀물처럼 두만강을 건너 북한 땅으로 쳐들어왔다.
전차를 1만 대나 앞세우고! 북한으로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대체 저 1만 대의 전차를 무엇으로 막아낸단 말인가?
하늘을 뒤덮은 시베리아 공군기들은 또 어떡하고?
이제야 장성택은 북한군이 얼마나 취약한지, 남한에 뻥뻥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전쟁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남한이 화가 나서 전쟁을 일으켜 북으로 진격했다면 북한군은 패전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의 그 어떤 억지도 받아 준 것이다.
또 아무리 미워도 같은 민족이니까!
하지만 시베리아는 그딴 것을 생각하는 나라가 아니다. 특히 시베리아합중국 최고 의장 이준은 고려인이지만 호전성이 강하다.
진짜 공격도 못 하면서 한국에 위협이나 해대는 김정일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그는 하산을 침공했던 북한 인민군을 모조리 처치하고 북한으로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막지 못한다면 북한은 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베리아군은 무기도 질적으로 북한군을 압도하며 양으로도 앞선다.
시베리아에 전차만 해도 3만 대가 있다니 뭘 더 말하겠는가?
이건 북한이라는 토끼가 시베리아라는 코끼리에게 덤볐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성난 코끼리가 북한의 모든 것을 짓밟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북한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저들을 다그쳐서라도 시베리아군을 정지시킬 방법을 얻어내야 했다.
그때 FCI의 두 명 중 한 명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미스터 장, 곧 중국이 북한에 핵탄두 6발을 넘겨주게 할 것이오!”
“그, 그게 정말이오?”
장성택의 눈이 너무 커지다 못해 찢어질 것처럼 보였다. 너무 놀라서였다.
지금 핵탄두를, 그것도 6발이나 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핵탄두만 있다면 시베리아군을 협박할 수 있다.
더 이상 진격해오면 핵을 쏘겠다고 말이다.
한데 그런 협박이 시베리아에 통할까?
아니다, 아니야!
핵만 가지고는 이미 북한 땅에 들어선 시베리아군을 막아낼 수는 없다.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핵만 가지고는 저 시베리아군을 어떻게 멈춰 세운단 말이오?”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으로 진격할 것이오. 예전 1950년 6·25 때처럼!”
“6·25 때처럼?”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은 괴멸 상태에 빠졌다.
김일성은 진격해오는 미군과 한국군을 피해 압록강까지 도망쳤다. 그때 도와준 것이 중국군이다. 인구 대국답게 처음에는 30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또 30만 명, 3차로 40만 명이 밀려들었다.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백만 중국군에 열세에 몰린 미군과 한국군은 어쩔 수 없이 퇴각했다.
그때 중국군이 돕지 않았다면 지금 한반도에서 북한은 없어졌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 이제 또다시 중국군이 시베리아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북한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다.
“고맙소. 가브리엘선생, 시몬스 선생, 우리 공화국은 절대 당신들의 공을 잊지 않을 것이오!”
“미스터 장, 하지만 시베리아군은 그냥 물러서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빨리 북한으로 돌아가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국민들을 총동원하여 시베리아군을 막으시오.
막지 못하면 우리의 도움도 필요가 없어질 테니, 아시겠소?”
“아, 알겠소.”
그러자 시몬스가 말했다.
“곧 유엔 회가 열릴 것이오.”
“유엔 회의?”
“그곳에서 많은 나라들이 시베리아합중국을 규탄할 것이오. 그리고 북한 땅에서 물러나라는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오,
아직 시베리아 잠수함이 북한 유조선을 공격했다는 명분이 있으니 말이오.
그렇게 외부에서 압박을 가하고 내부에서는 중국군과 북한군이 손을 잡고 방어한다면 시베리아군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소.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방어하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이길 것이오!”
“알겠소이다!”
장성택의 얼굴이 환해졌다. 핵탄두도 얻고 시베리아군도 물리치고! 이것만 해도 김씨 가문의 우상화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리라!
그것은 곧 장성택의 아들 대와 손자 대에도 북한의 최상층 권력을 쥐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성택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중국 지부장 가브리엘과 시몬스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는 것은 자기들, FCI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베리아군이 북한 땅에서 물러나면 이준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다. 그리고 시베리아합중국의 국민들은 모두 이주민들이다.
순수하게 시베리아에 살던 원주민들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즉 1억4천8백만의 시베리아합중국 국민들은 이준이 자기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어야 따른다는 것이다. 같은 민족도, 같은 혈통도 아닌 이주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땅에서 물러나면 이준은 전 세계의 금융과 석유 카르텔, 무역 카르텔, 그리고 각국의 제재에 맞닥뜨릴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민간인 유조선을 공격한 것으로! 그렇게 되면 지금 왕성하게 발전하는 시베리아의 경제도 시들해질 것이고 시베리아 국민들의 이준에 대한 지지도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그때가 바로 FCI가 시베리아를 공략하는 시기였다.
압록강.
중화인민공화국 북부전구 사령관 왕바오창상장은 단둥과 신의주로 건너가는 제78 집단군의 느린 움직임에 이마를 찌푸렸다.
‘시베리아와 전쟁이라니?’
왕바오창상장은 중국군에 있는 늙은 장군들과는 다른 젊은 장군이다. 그가 보기에 시베리아와는 대결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같이 발전해야 한다.
중국은 개방한 지 이제 10년이다. 겨우 개방의 기초가 땅에 박히려는 이때 남의 전쟁에 끌려들어 간다면 자칫 개방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개방하고 수많은 나라의 투자를 끌어들여야 개방은 성공적으로 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공으로 날아 오를 수가 있다.
그런데 베이징에 있는 늙은 꼴통들은 “중-조 협정”을 들고서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빨리 뒈져야 할 꼴통들!’
왕바오창이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통신장교가 외쳤다.
“사령관 동지. 시베리아군 공군의 공격입니다.”
“뭣이?”
달려와 노트북을 본 왕바오창상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늘을 가득 덮고 시베리아 공군기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신형전폭기들이다. 그것도 수백 대 정도가 아니라 대략 3천 대 정도로 보인다.
노트북의 하늘이 비행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공군은 뭐 하고 있는가?”
“지금 즉시 이륙하고 있습니다.”
북부전구에는 공군기가 5천 대가 있다.
헤이룽장성, 내몽골성. 길림성, 요녕성에 있는 수십곳의 비행장에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날아오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으로 인해 중국군과 시베리아군이 맞짱을 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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