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초토화. >
“이 자는 그저 기지 안내원 역할만 했군!”
“스카이 트레이드” 사장의 몸을 뒤졌지만 나온 것은 핵사일로의 위치를 적은 사진과 핸드폰뿐이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이준은 판블료치를 나무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타타타타타타~ 투투투투투~
앙앙앙앙앙~
핵 사일로 기지에 비상이 걸렸다.
이준은 올 때 전화로 경비 대대에 최대의 경계 태세를 갖추라고 명을 내렸다. 기지 경비 대대는 지하로 내려가는 영구적인 방어선 입구에서 2중 3중 4중으로 지키고 있었다.
총 소리가 울리자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집중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들에게 콘크리트 참호에서 대항하는 인간 따위는 걸림돌이 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7.62mm 미니건을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두르르르르~ 두르르르르~
“머리를 바싹 숙이고 쏴라. 로켓을 쏴라!”
병사들이 RPG-7 로켓 발사기를 겨누었다.
어떤 것은 철갑탄이고 어떤 것은 고폭탄이다.
“발사~”
쿵쿵쿵쿵~ 쐐애액, 쐐애액, 쐐액~
로켓들이 꼬리에 화염을 달고 쏘아져 왔다. 그리고 터미네이터에게 명중했다.
순간, 밤하늘을 밝히는 섬광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꽈꽝, 꽈꽝, 꽈꽝, 꽝꽈르릉~
“명중이다!”
“맞았다!”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다. 하지만 곧 그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쿵, 쿵, 쿵, 쿵~
그들은 자기들의 앞에 괴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은빛의 뼈대로 뒤덮인 몸체, 번쩍이어서 더욱 위협적으로 보이는 해골 같은 머리통, 움푹한 해골의 눈동자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가는 붉은 투시체(눈알),
철갑탄도 튕겨내는 엄청난 방어력, 다만 금속체를 뒤덮었던 인조 피부는 뜨거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하여 녹아내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터미네이터의 동작이 느려지거나 작동이 어디 하나 고장 난 곳은 없었다.
그들이 다시 다가오자 병사들은 대대장의 명령 없이도 일제히 RPG-7에 로켓을 장전했다.
저들을 죽이지 못하면 자기들이 죽는다! 병사들은 본능으로 깨우친 것이다.
그때였다. 터미네이터들에게로 하얀빛이 쏘아져 왔다.
순간, 경비 대대를 향해 돌진하던 터미네이터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그들의 위기 시스템이 뒤의 적을 먼저 소멸해야 한다는 경고를 울린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 최대한 들키지 않고 가까이 접근한 이준의 손끝에서 6개의 에너지 탄이 쏘아졌다.
핑, 핑, 핑, 핑,핑, 핑~
에너지 탄은 그 속도가 거의 빛의 속도다. 터미네이터 따위가 피하고 자시고 할 순간적인 여유는 없었다.
퍽퍽퍽퍽퍽퍽~
에너지 방울들이 터미네이터의 몸속에 들어갔다. 마치 호박을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순간, 새하얀 섬광이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다.
그리고 병사들은 고막이 터지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폭발을 눈앞에서 보았다.
꽝꽈꽈꽝, 꽈꽈꽝, 꽝꽈꽈꽝~
6기의 터미네이터가 거의 동시에 폭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움푹 파인 구덩이들과 은빛의 금속 조각들 몇 개뿐이다. 그때 상공에서 사라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의장 각하!”
머리를 들어 보니 그때야 해동청이 도착했다.
하늘에서 특공대원들이 뛰어내렸다.
“왔어?”
마치 옆집에 마실을 온 것 같은 이준의 태연한 말이다. 달려온 사라는 이준의 몸부터 훑어보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때야 마음이 놓였는지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보다시피 난 멀쩡해!”
이준이 다가가 사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1995년 7월 3일 밤 2시.
시베리아의 동쪽 끝, 하산지구는 고요했다. 조선인민군이 시베리아의 하산지구를 점령하고 난지 꼭 1개월 23일이 되는 날이다.
인민군 장교들과 병사들은 참호에서, 또는 숙소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시베리아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전쟁이었다. 마치 시베리아합중국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하산지구 쪽으로는 사람도 군인들도 한 명 와보지 않았다.
그래서 인민군 하급 장교들이나 병사들은 아마도 북한과 시베리아 정부가 전쟁보다는 평화회담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장교든 병사든 전쟁 초반의 경계심과 긴장이 해이해졌다. 그들은 밤이면 맘 푹 놓고 잠을 잤다. 오늘 밤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하늘 위로 3천기의 전투기와 대형 폭격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웅웅웅웅웅웅~
까마득하게 높이 뜬 거대한 대형 폭격기들은 Tu-22 ‧ Tu-22M ‧ Tu-160 등, 8.5톤, 12톤, 최대 27톤의 각종 포탄과 로켓을 싣는 초음속 전략 폭격기들이다.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전투기들은 수호이 초음속 전투기들로 미국의 F-22와 맞먹는 스텔스 공격기들이다.
감히 북한으로서는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항공 전력이 이 밤의 고요를 깨트리고 있었다.
나진-선봉 레이더기지.
레이더기지에는 코 고는 소리만 요란했다. 당직 장교도 병사도 의자에 비스듬히 머리를 걸치고 잠들어 있었다.
거의 두 달이라는 평화로운 시간이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생각을 망각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망각은 죽음이라는 보답을 받게 되었다.
하늘 높이 떠서 날아온 수호이 공격기들이 레이더 기지들을 노리고 있었다.
“목표, 선봉 레이더기지. 4번기가 공격한다. 오바!”
“알았다, 오바!”
유유히 날아가던 편대기 중에서 4번기가 이탈하더니 지상을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나머지 수호이들은 청진, 나진, 서수라. 함흥, 그리고 함경도의 산맥들에 숨어 있는 레이더 기지들을 소멸하기 위해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쐐애액, 쐐애액~
공대지 미사일 두 발이 수호이에서 빛살처럼 쏘아져 내렸다. 그런데 아직도 북한군 레이더기지는 잠잠하다. 그야말로 잠 속에서 바로 황천으로 직행하게 되었다.
“이건 너무 쉽군!”
시베리아 수호인 조종사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레이더기지에서는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꽝꽈꽈꽝, 꽈꽈꽝~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직 장교도 병사들도, 레이더기지도 산산이 부서지고 찢겨 고온의 열에 뜨겁게 불타올랐다.
살아남은 병사는 0%, 선봉 레이더만이 아니었다. 함경도의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모든 레이더가 시베리아 공군의 대폭격 10분을 앞두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그때는 이미 하산지구에 공중의 거대한 폭격기들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목표, 맡은 구역마다 폭탄을 투하하라. 오바.”
“알았다. 오바!”
폭격기들의 폭탄창이 스르르 열렸다. 순간, 엄청난 양의 폭탄들이 지상을 향하여 쏟아붓든 떨어져 내려갔다.
처음에 비 오듯 쏘아져 내려가는 폭탄은 열압력탄, 진공폭탄이었다.
진공폭탄은 종래의 폭탄과는 반대로 거의 화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산화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인화점과 휘발 점이 낮은 가연성 기체 혼합물이 탑재되어 있다.
진공폭탄이 목표물에 닿거나 근처에 가면 신관이 작동한다.
이때 소형 폭약 등으로 1차 확산시켜 수십~수백 입방미터의 분무운을 살포한다. 이걸로 개방 공간 증기운 폭발(UVCE)이라는 현상을 일으킨다.
개방 공간 증기운 폭발이란 다량의 가연성 증기가 급격히 방출되어 증기운을 형성하고 점화되어 폭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효과에 의해 인화성 기체가 충분히 퍼질 때까지 '약간'의 시간차를 둔 뒤 그리고 곧이어 점화가 되면 폭발, 순식간에 수천 평 방에 발생하는 한편 폭발하면서 주변으로 고압의 충격파를 방출한다. 이 과정이 불과 0.3초 사이에 이뤄진다.
이때 유효 반경 안에 있는 생물체는 내장 파열 등으로 즉사하거나 순간적으로 불에 타 잿가루로 변한다.
전차나 콘크리트 구조물의 경우는 열압력탄 특성상 약한 관통력으로 인해 항공 폭탄 규모의 열압력탄을 사용한다.
이 경우 폭풍은 전차는 물론 콘크리트 벙커조차 하늘로 날려버린다.
그야말로 하산지구에 불의 지옥이 펼쳐졌다.
콰콰쾅, 콰쾅, 콰쾅, 쾅콰르르릉~
지상 100미터 이상까지 불 구름이 치솟았고 하산지구의 초원과 구릉, 인민군의 참호와 숙소들이 모조리 화마가 뒤덮었다.
“아악. 으악!”
저런 초열지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도 살아남는 사람은 있는가보다. 지독한 공포와 목이 터지는 듯한 비명이 들리는 것을 보면···.
보병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을 때 조선인민군 전차부대들도 맹렬한 폭격을 받고 있었다.
하늘에서 성형작약탄이 장착된 폭탄들이 우박처럼 떨어지며 전차를 향해 돌진했다. 이건 그냥 성형작약탄이 아니라 스마트폭탄이다.
당연히 전차를 찾아 자동으로 쫓아가 목표물을 때리는 것이다.
“폭탄이 떨어진다. 전차를 움직여라!”
기겁한 전차군단장들의 외침! 미친 듯이 자기들의 전차에 탑승하는 인민군 전차병들! 하지만 그건 죽음을 찾아가는 행위일 뿐이다.
스마트폭탄들은 똑똑하다. 전차의 가장 얇은 장갑이 부착되어 있는 공중으로부터 정확히 내리꽂혀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전차들이 무슨 성냥갑이 폭발하듯 산산이 부서져 그 잔재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이, 이것이 시베리아합중국의 힘인가?”
조선인민군 시베리아 원정 사령관 김이철대장은 불타는 지옥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시베리아군은 하산지구의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입체적으로 동시에 폭격했다.
그 바람에 조선인민군의 5천 문에 달하는 대포도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모두 파괴되었다.
3천 대의 전차는 그냥 수박이 터지듯 박살이 나서 파철이 되었다.
청진 비행장과 나진 비행장에 있던 인민군 비행기들은 떠보지도 못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었다.
“허허, 난 우리가 웬만한 나라 군대는 모두 물리칠 수 있다고 오산하고 있었군!”
휴전이 너무 길었다. 거기다가 북한은 늘 자기들이 강성대국이라고 사람들을 세뇌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세뇌하다 나니 자기 자신도 북한이 강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제 평양도 알았을 것이다.
하산지구와 나진-선봉지구가 초토화되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미사일을 쏘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한발의 미사일도 날아오지 않는다.
김정일은 이제야 깨달았다. 시베리아는 남조선에처럼 허세를 부려봐야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가 남아 있는 미사일을 쏜다면 평양은 시베리아군의 공격을 받아 지도상에서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김정일이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김정일은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170미터 지하에 있는 핵전쟁 지하 사령부에 들어가 있었다.
“으음!”
그는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되놈의 새끼들, 으드득!’
만약 시베리아가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면 중국군은 즉시 국경을 넘어 이르쿠츠크로 진격하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단 몇 시간 만에 북한군이 초토화되자 중국군은 국경을 넘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40km나 물러섰다고 한다.
‘핵폭탄, 핵미사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김정일은 피가 나게 이를 악물었다. 이제 김정일에게 남은 것은 항복뿐이다. 그러나 그 항복 전에 자기를 추동질한 FCI에게 반드시 받아낼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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