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터미네이터. >
이르쿠츠크 워스토츠카야 8번지.
서늘한 밤 날씨가 약간은 차갑게 느껴진다. 역시 시베리아의 중부인 이르쿠츠크 날씨는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하다.
쉬익. 척!
갑자기 가로등이 적은 아파트단지 뒷길에서 검은 형체가 점프하여 아파트에 척 붙었다. 그런데 그 높이가 무려 30m가 넘는다.
단번에 9층 정도를 점프하여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아파트 벽을 타고 재빠르게 올라갔다.
그것은 마치 바퀴벌레들이 올라가는 것처럼 거침이 없다. 옷은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몸에 딱 붙은 검은색 일색이다.
“다 왔군!”
18층에 도착한 검은 인형은 베란다의 문을 열고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서서 내부의 기척을 살폈다. 그러더니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하다!’
검은 옷의 주인은 바로 이준이다. 오늘 낮, CFSB 국장 사라는 긴급 보고했다. 이르쿠츠크 “스카이 트레이드(하늘무역)”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오늘 낮, 몽골을 통해 들어온 컨테이너 중 1개 컨테이너가 수상하다.
그들은 이 컨테이너를 검사 없이 통과시키려고 담당자에게 무려 10만 달러를 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컨테이너길래 10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한단 말인가?
마침 세관에 있는 통역원이 부랴트인으로 CFSB의 민간 정보요원이었다. 그는 이 이상 상황을 즉각에 보고했다.
하지만 그때는 벌써 컨테이너의 안에 있던 내용물이 치워진 상태였다.
감시를 여러 곳에 붙여 놓았지만 따돌리는 수법이 대단히 노련하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스카이 트레이드”가 어느 소속인지, 어떤 자가 뒤에 있는지 정보국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에 이준은 밤에 슬쩍 시내에 들어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방안을 감지하는 센서를 움직여 보니 뭔가 이상했다.
‘사람은 두 명, 그런데 흐릿한 이것은 뭐지?’
이준의 몸에 장착된 센서 신경세포는 활성화되면 목표인 방 안에 있는 생물체를 탐지한다. 그런데 두 명은 확실한 남녀이다.
아마도 “스카이 트레이드”의 사장과 애인일 수 있었다. 스카이 트레이드의 사장은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 주변에 있는 물건도 아니고 사람의 생체반응 비슷한 “그 무엇”들이었다.
‘일단 봐야 알 것 같군!’
이준은 다시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가 벽에 붙었다. 그리고 사장이 있는 침실의 창문으로 벽을 타고 갔다.
아무래도 무엇인지 모를 이상한 “그무엇”들 10여 개가 마음에 찝찝했다.
창문에 붙어선 이준이 문을 열려는 순간이다.
갑자기 침실 안에서 기관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륵~
그것도 일반 기관총이 아니라 미니건이다.
빗발치는 총탄이 침실의 커다란 창문을 산산 조각냈다.
와장창~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준은 아차 하는 순간, 깨진 유리창과 함께 추락했다. 이준은 급히 허공을 차며 아파트 벽에 붙어섰다.
하지만 그의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륵. 드르르륵~
산산이 깨어진 침실 창에서 총탄이 빗발처럼 쏘아져 내렸다. 머리를 든 이준은 과거로 회귀한 후 처음으로 눈을 부릅떴다.
‘저건 설마 터미네이터?’
분명하다. 미래에 인간은 두 개의 방향으로 인간의 발전을 연구했다. 그중 하나는 이준처럼 유전자 조작 강화 인간이다.
다른 하나는 로봇의 발전, 즉 사이보그이다.
처음에는 겉도 속도 다 기계로 만들었지만, 차차 로봇공학이 발전하면서 사이보그, 즉 속은 기계이지만 겉은 인조 세포로 감싼 터미네이터가 나온 것이다.
보통 터미네이터 들은 군사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원래는 사이보그지만 이미 전에 영화 터미네이터가 나왔으니 사람들은 전투용 사이보그들을 모두 터미네이터라 칭한 것이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들은 유전자 강화 인간에 비하면 성능이 한참 떨어졌다.
그런데 그 터미네이터들을 오늘 여기서 보다니?
이준이 경악할만한 일이다. 지금은 1995년, 절대 터미네이터가 나올 때가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 한다!’
이준이 오른손을 들었다. 순간, 새하얀 빛이 손가락으로 모여들었다.
핑, 핑, 핑, 핑~
에너지의 방울, 즉 지 풍이다.
그 어떤 것도 모두 녹여 버리고 태워버리는 에너지 빛이 섬전처럼 쏘아졌다.
퍽, 퍽, 퍽, 퍽~
사이보그들의 총격이 멎었다. 그리고 정지했다. 이준의 얼굴에 회심이 피어났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올라가려는 순간이다. 하얀 섬전이 번쩍하더니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 콰쾅, 콰쾅, 콰콰쾅~
‘아뿔싸!’
이준은 신음을 내질렀다. 자칫 아파트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데 다행이다. 사이보그들은 폭발했지만, 아파트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아파트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화재 경보가 울리고 사람들이 집집마다에서 뛰쳐나왔다.
‘어쩔 수가 없군!’
사람들이 담벽을 타고 오르며 점프를 30미터씩 하는 자기를 보면 외계인 취급을 할 것이다. 벌써 사람들이 아파트 밑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준은 아파트 벽을 걷어차고 반대편 아파트를 향해 쏘아져 갔다.
척!
이준이 붙어선 곳은 3층의 어느 집 창문이었다. 그런데 반쯤 열린 창문에는 웬 여자가 내다보고 있었다.
참으로 재수가 없는 여자라고 해야 할까?
방금 집에 들어와 샤워를 했는지 사워 가운을 입었는데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그녀의 놀란 눈과 이준의 두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기겁을 한 그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갑자기 허공에서 사람이 쏘아져 들어오니 경악을 한 것이다.
“누, 누, 누, 헙!”
이준이 몸을 날리며 그녀를 덮쳤다.
다행히 창문이 열려 있었기에 유리창이 박살 나는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입을 가렸던 이준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순간적으로 복잡해졌다.
비밀을 위해 죽여 입을 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난 것이다.
한데 밑에 깔린 여인을 본 이준의 눈이 저도 모르게 커졌다.
“소라 누···. 님?”
이준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는 아차,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소라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이준은 입을 막았던 손을 치웠다.
그러자 소라의 경악한 말이 튀어나왔다.
“설마 이, 이준씨?”
‘이걸 죽여야 하나?’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감추려면 당장 죽여야 한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준은 끝내 하지 못했다.
코와 코가 맞닿을 정도로 서로 얼굴을 마주 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의 커다래진 눈을 보니 차마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젠장!’
“쉿!”
일단 이준은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소라가 재빨리 머리를 끄덕였다. 소라는 이준이 최고 의장의 신임을 받는 비밀 경호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오늘 일도 뭔가 비밀 작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준은 두건을 벗었다.
“진짜 이준씨네요!”
소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무엇을 생각했을까?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지며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간신히 말했다.
“이, 이준씨. 여, 옆으로 내려 주세요!”
“헛!”
그제야 이준도 화들짝 놀랐다. 그녀의 사워 가운이 완전히 펼쳐졌고 이준은 사실상 소라의 알몸 위에 엎드리고 있었다.
‘이런···.'
이준은 급히 옆으로 떨어졌다. 한데 그게 더 문제였다.
이준이 몸을 굴려 옆으로 떨어지자 그녀의 알몸이 불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난 몰라!"
강소라는 몸을 가릴 생각보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꿩이 다급해지면 머리만 수풀 속에 박는다더니 소라가 딱 그짝이였다.
이준은 얼른 다음 방으로 건너가면서 말했다.
"소라누님. 내가 저쪽 방에 갈 테니 옷을 입고 이쪽으로 나오세요!"
그 곳은 소라의 서재였다.
방에서 옷을 입는 소리가 나더니 소라가 한껏 붉어진 얼굴로 들어섰다.
그녀는 사워 가운을 벗고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미안해요. 소라 누님. 그런데 집이 여기였어요?"
"저번에 나를 태워다준 것이 바로 여기서 반대쪽에 있는 아파트단지 정문이에요. 워스토츠카 8번지 1동 316호, 저 아파트는 2동이고요!“
'하필 여기에서 살 줄은···.'
예전에 바에서 만났을 때 태워다주었는데 그동안 깜빡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렇게 만나다니 참 세상은 넓고도 좁다!
"저기, 소라누님. 내가 특별임무를 수행하다가,"
"알아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소라가 확실하게 다짐했다.
'그래. 날 의장의 비밀 요원으로 알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이준이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소라 누님."
“잠깐만 기다려요.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요!”
소라는 태연하게 움직였다. 조금 전에 알몸을 이준에게 보이고 어쩔 바를 몰라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차를 가지러 일어나는 그녀의 목덜미는 아직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참, 여자들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르겠군!'
이준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소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자칫 죽여 입을 봉했어야 할지도 모른 만남이었다.
***
“터미네이터라니? 그럼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사이보그 말이야?”
이준과 마주 앉은 사라는 두 눈이 툭 튀어나올 것만큼 놀라 몇 번을 되물었다. 그럴 만도 하다.
이제 영화에서나 나오는 공상 과학의 산물인 전투용 사이보그가 현실에 나타났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사라는 이준이 의장궁으로 돌아오면서 보낸 전화를 받고 급히 워스토츠카 8번지 아파트단지를 CFSB 1개 기동대(700명)를 보내 봉쇄했다.
그리고 샅샅이 수색했지만 그 집안에는 여인의 머리 없는 시신만 있을 뿐, 사장도, 사이보그들도 없었다.
“사실이야!”
“말도 안 돼. 어떻게···.”
머리를 흔들던 사라는 이준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에 신중해졌다.
“방안에 있는 것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회수하게 했어! 곧 과학 수사대로 가져갈 거야. 거기서 뭐든 분석해봐야지.”
“그리고 사라. 이르쿠츠크시의 모든 요원을 풀어서 그 사장의 뒤를 추적해.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해. 이건 그냥 사이보그 몇 기가 나타난 것이 아니야!”
그렇다! 만약 이것이 어떤 집단이나 국가가 생산한 것이라면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사이보그를 가진 국가와의 전투는 말 그대로 없는 나라에는 지옥이 되고 말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다! 사이보그가 나타난 것이 다른 곳이 아니라 이르쿠츠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들의 목표는 시베리아합중국이 아닐까?
지금 시베리아를 노리는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다. 하지만 북한의 기술로는 어림도 없다. 중국도 러시아도 아직은 만들 수가 없다.
그렇다면 두 개가 남는다. 하나는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FCI다. 미국은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마음만 먹고 정부가 비밀리에 2차 대전 때의 맨하탄계획처럼 밀어붙인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곳은 바로 FCI, 그들이 수년간 또는 수십 년간 최고의 과학자들과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면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 빨리 나온 것이 이준은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암튼 테러 발령을 내리고 자동차와 기차를 비롯한 모든 운수 수단을 검문 검색하고 요원들을 총동원하여 놈들을 찾아봐. 그리고 머리 없어진 시신이 누구인지도 알아보고!”
“응, 알았어!”
너무 중요한 문제다 보니 사라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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