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약속. >
러시아 아스키노 레이더기지.
“스커드미사일(방사포) 수천 발이 포병대와 비행장, 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기지를 향해 날아옵니다.”
레이더 감시병이 기겁해서 소리 질렀다.
“뭣이?”
레이더 기지장 호티넨고대령은 화들짝 놀랐다. 미사일이라니? 이쪽에서는 미사일은 한 발도 쏘지 않았다.
철저하게 국지전을 하라는 상부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베리아군은 러시아가 공격하자 즉시 스커드미사일을 수천 발이나 퍼부었다.
마치 너희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화끈하게 한다는 선전포고 같았다.
“사령부. 사령부, 여기는 제7 레이더기지. 여기는 제7 레이더기지. 답변하라.”
<여기는 사령부, 무슨 일인가?>
“큰일 났다. 시베리아군이 스커드미사일 수천 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포병대와 비행장, 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기지들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다.
대책이 필요하다.”
<알았다. 곧 요격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오바.>
그리고 통화는 끊어졌다. 하지만 제7 레이더 기지장은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요격미사일로 스커드미사일을 잡을 수 있는 것은 30%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나 요격미사일을 선전한다. 적의 미사일이 자기 국가의 영토에 들어오면 100% 요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요격 수치는 30%밖에 안 된다.
그러니 7레이더기지장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얼마나 요격할 수 있을까?’
시베리아군이 가지고 있는 스커드(방사포)미사일은 수십 가지 종류다. 그중 레이더기지 같은 곳이 두려운 곳은 벙커버스터 미사일이다.
러시아의 벙커버스터 미사일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암벽이나 콘크리트 두께 2.8m를 격파한다.
더 큰 벙커버스터 탄도 미사일은 사일로에서 발사한 대형미사일이다.
그때 레이더 감시병의 외침이 들려왔다.
“제67 미사일 기지 폭파, 제103 미사일 기지 폭파. 제19 미사일 기지에 벙커버스터 탄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맙소사!”
레이더 기지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당시에는 극초음속 요격미사일은커녕 그 단어조차 모를 때다.
그러니 요격미사일의 격파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때 레이더 감시병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동남방 28km 지점의 적 미사일, 우리 기지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그 순간 기지장은 탄도 미사일이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맥이 탁 풀렸다. 이젠 막을 방법이 없다.
‘늦었다!’
“빨리, 빨리 밖으로 나가라!”
“아아아!”
요원들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의 달리기가 미사일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꽝꽈꽈꽝, 꽝꽈르릉~
거대한 섬광과 폭음이 기지 전체를 휩쓸어 버렸다. 기계도 사람도, 모두 강력한 화염에 순식간에 불에 타 사라져 버렸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쇠도 녹아서 쇳물 덩어리가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시각 우랄산맥에서 가까운 지역의 러시아군 비행장과 전차 기지들, 미사일 기지들이 우박 치듯 쏘아져 내리는 탄도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미사일은 미국과 러시아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핵 미사일을 제외한 일반 미사일은 사실상 러시아가 미국보다 더 많다.
그런 러시아의 미사일 중 70%를 시베리아군이 가지고 있다.
이유는 냉전 시대 미국과 가장 가까운 시베리아가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군사기지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미사일 공격을 받은 수천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전폭기가 불타오를 때 에카테린부르크시에서 80km 떨어진 페르보 국경 지역에는 러시아 전차들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맨 앞에서 돌진하던 전차들에서 갑자기 대 폭발이 일어났다.
꽝꽈꽈꽝, 꽈꽈꽝, 꽝꽈르릉~
“아앗. 으아악!”
T-90A전차는 승무원이 3명이다. 갑작스러운 하늘에서의 공대지 미사일의 공격은 전차병들을 패닉 상대로 몰아갔다.
한편 공중에서는 전폭기와 전폭기간의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생긴 것도 말하는 것도 똑같은 러시아인이지만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바로 시베리아 공군과 러시아공군의 공중전이다.
모두 똑같은 기종인 Su-34를 타고···.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푸틴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러시아군 총사령관 세르게이 베즈루코프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전투는 오후 4시 현재로 중지되었습니다.”
“그래, 적은 얼마나 죽었나?”
“그게, 시베리아군이나 우리나 대체로 비슷합니다. 전차도, 전폭기들도, 하지만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본 것은 레이더 기지들과 비행장, 미사일 기지입니다.
현재 우랄 국경 부근의 레이더 기지들은 한 곳도 남김없이 파괴되었습니다. 따라서 위성밖에는 시베리아군을 감시할 자산이 없습니다.”
“후!”
푸틴은 머리를 흔들었다. 새벽에 전투가 일어났을 때 푸틴은 보고를 받았다.
시베리아군이 미사일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붓는다는 것을! 그때 정말 놀란 푸틴이다. 똑같은 전차, 전폭기. 미사일을 가진 군대들이다. 훈련도 같은 형식으로 받았다.
그러니 서로 파괴가 비슷비슷하다는 보고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푸틴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시베리아 특구 의장 이준의 단호함과 과감성이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자마자 수십 개의 러시아 대공 레이더기지와 비행장, 전차 기지와 미사일 기지에 탄도 미사일과 스커드(방사포)미사일을 대량적으로 퍼부었다.
그러니 러시아 쪽이 손실을 더 많이 본 것은 필수였다.
‘빌어먹을, 아르진 리. 이 개자식!’
푸틴은 벌떡 일어나 방안을 이리저리 오갔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더 이상 공격의 수준을 높이면 그땐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의 도시들에 탄도 미사일이 떨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시베리아의 도시들도 러시아의 탄도 미사일 공격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푸틴과 다른 것은 이준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네가 나를 건드리면 나는 너를 몇 배 밟아 줄 것이다! 이런 무지막지함이 느껴졌다.
‘아니, 선거판을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성공했다!’
맞다, 성공했다. 하지만 그 값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푸틴은 한 가지를 정확히 알았다. 아르진 리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라는 것을!
그 어떤 나라도 러시아와 전쟁을 한다면 꼬리를 내린다. 하지만 아르진 리는 아니었다. 그는 한 방을 맞자 열 방으로 러시아를 때렸다.
그는 절대 러시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베리아가 있어서 이번 대통령선거는 자신이 이길 것이다.
오늘 낮, 선거 지지율은 57.8%로 자신이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시베리아와 전투가 벌어지자 러시아국민들의 잠재 의식 속에 있던 시베리아는 러시아영토! 라는 개념이 일어섰다.
그래서 많은 자들이 푸틴을 지지했다. 벌써 “대통령을 도와 시베리아를 다시 찾는 국민 회의”라는 조직이 만들어졌고 단 하루 동안에 수십만 명이 가입했다.
이 상태라면 선거는 반드시 이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전쟁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손해를 좀 봐도 국지전을 좀 더 벌려야겠군!’
푸틴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태블릿을 들고 들어섰다.
“대통령 각하. 시베리아 최고 의장의 이름으로 배달이 왔습니다. 검사해본 결과 폭탄은 장착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태블릿을 푸틴의 테이블에 놓고 절도 있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돌아서 나갔다.
“아르진 리가 나에게 왜 이런 것을 보냈지?”
잠시 생각하던 푸틴은 태블릿을 켰다. 무엇인지는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화면이 살아나고 한 가족이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본인의 신분을 말씀해주세요?”
기자로 보이는 자가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나는 모스크바 붉은별 병원 원장 이고리 페드렌코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전 러시아국민들이 모르는 한 가지 비밀을 밝히겠습니다. 이미 사망한 러시아 전 대통령 보리스 옐친 각하는 독살 당했습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이유가 뭐죠?”
기자인지 CFSB의 요원인지 모를 자가 물었다.
“그건 총리 푸틴이 내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했기 때문입니다. 푸틴은 옐친 대통령을 죽이지 않는다면 내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가족을 살리려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옐친 대통령에게 즉사하는 독을 주사하여 죽였습니다. 하지만 푸틴은 절 살려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암살자들을 보내 나와 내 가족을 죽여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친 다음 바다에 처넣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베리아 의장님께서 보낸 요원들에 의해 살아났습니다. 러시아 국민 여러분,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이 되면 안 됩니다.
국민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자가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대통령의 권좌에 앉으면 우리 러시아인들은 소련 시대처럼 말 한마디 마음대로 못 하고 KGB를 두려워하며 살던 그대로 회귀하게 될 것입니다.
절대 푸틴을 찍지 마십시오!”
화면이 끝났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준이 화면에 나타난 것이다.
“어떻습니까? 푸틴 총리 각하. 이 내용을 러시아 전국에 풀어 놓으면 과연 대통령이 될까요? 안될까요?”
“으드득!”
푸틴을 이를 갈았다. 요즘은 핸드폰이 대중화가 되었고 인터넷 역시 대중화가 되었다. 아르진 리가 마음먹고 저것을 풀어 놓으면 러시아 전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자기가 아니라고 우겨도 국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 57.8%의 지지율은 뚝 떨어져 바닥을 구르게 될 것이었다.
‘안돼. 그건 안돼!’
“방법을 하나 알려주죠. 잘 들으세요.”
그리고 이준이 말했다.
“이번 국지전으로 당신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으니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내가 저 내용을 풀지 않는 한···. 아닙니까?”
“요구가 무엇이냐?”
“요구는 간단합니다. 시베리아의 독립을 인정하면 됩니다.”
“어림없는 소리! 내가 시베리아 독립을 인정하면 대통령은커녕 총리 자리에서도 쫓겨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당신의 통치가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 시베리아의 독립을 인정하면 됩니다.”
꿀꺽!
푸틴은 침을 삼켰다. 저자의 말대로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푸틴은 시베리아의 독립을 절대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시베리아가 러시아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러시아는 자원 부족으로 다른 나라처럼 수출을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
하지만 자원이 너무 비싸면 상품의 값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면 러시아인들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그건 대통령인 자기, 푸틴의 정치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기간이다. 저자가 선거기간만 저것을 풀지 못하게 하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다.
'그래, 선거기간만 저자의 말을 듣는 척하자. 그러면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된다!‘
푸틴이 말을 이었다.
“좋다. 그렇게 하지. 약속을 어기지 마라.”
“당연히 약속을 지킵니다. 하지만 총리 각하. 당신도 약속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방금 당신과 나의 대화는 모두 녹음이 되었습니다.”
“이, 이런 교활한···.”
푸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이준인 빙그레 웃었다.
“각하가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이건 영원히 묻히게 될 것입니다. 선거에서 꼭 당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화면이 캄캄해졌다.
“아르진 리. 널 반드시 죽여 없앤다. 나, 푸틴의 이름을 걸고···.”
푸틴이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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