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폭풍전야. >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의 관문 도시, 차르 시대에 동방의 태평양에 만들어진 부동항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동쪽 관문으로 엄청난 규모의 무역 항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블라디보스토크는 항구 노동자들의 도시나 다름이 없다.
블라디 보스토크 차르스키거리 72번지.
방안은 너무 무더웠다. 마치 찜질방처럼!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담요로 꼭꼭 틀어 막아 불빛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면 불을 끄고 잠든 집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집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다.
너무 더워서 남자도 여자도 땀을 줄줄 흘리며···.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 항만 노조 간부들이다. 이들이 오늘 모인 것은 노조 위원장의 비상 모임 소집 때문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이번에 파업하면 우리 항만 노조는 앞으로 중앙 정부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동지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장기 파업을 해서 시베리가 특구 정부에 강력한 타격을 입혀야 합니다.”
노조 위원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짖었다. 그의 목에는 핏대가 서고 기름이 번질거리는 얼굴은 시뻘게졌다. 그런데 간부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이전 같으면 노조 위원장이 격렬하게 연설하고 나면 모두가 일어서서“단결, 투쟁, 타도!”를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다.
‘뭐야? 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그때 한 아가씨가 손을 들며 발언권을 얻었다.
“예. 7항구 노조위원장님, 발언하세요.”
블라디보스토크 항만 노조는 1 항구부터 10 항구로 나누어져 있고 항구마다 구역 노조 위원장이 있다.
7 항구는 물류를 포장하여 싣는 부두이므로 여인들이 7 항구 노동자의 80%를 차지한다. 그래서 노조 위원장도 여자다.
“제7항구 노조 위원장 타냐 아르쉬비치입니다. 나는 총위(총 노조 위원장)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 말해보시오.”
총 노조 위원장 예브게니 레오노프가 머리를 끄덕였다.
“방금 총위님께서는 크렘린의 청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건,”
“잠깐, 청탁이 아니라 제의요. 타냐 동무!”
총 노조 위원장 예브게니 레오노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청탁이라 한 것이 마음에 너무 걸렸다. 사실 이번 노조 파업은 푸틴의 청탁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청탁이다.
2개월 동안 전면 파업을 하여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마비 시킨다. 그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이 시베리아 경제특구 정부에 대한 무능함에 불만을 품게 한다.
그 대가로 푸틴은 노조에 기업 경영에 참여할 권리와 기업 간부들의 인사를 노조의 허락 없이 하지 못하게끔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기업은 이러한 파업을 허락할 수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인정하겠지만 시베리아 경제특구는 완전한 자본주의 경제이며 모든 기업은 공기업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 기업들이었다.
“제의라고요? 그럼 묻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파업을 일으키면 노동자들이 얼마나 우릴 따라 파업에 나설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타냐의 말에 다른 구역 노조위원장들이 수군거렸다.
현재 시베리아는 저 멀리 서쪽의 우랄산맥에서부터 동쪽 끝의 블라디보스토까지. 또 북쪽의 툰드라 지역부터 남쪽의 아무르강까지 모든 도시, 모든 마을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긴다.
경제가 활성화를 이루고 있고 그에 따라 물가는 싸다. 게다가 월급은 지금까지 최고 수준이고 비정규직이라는 직종 자체가 없다.
그러니 근로자들은 마음 놓고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고 행복한 가정의 삶이 보장된다.
이런 여건이니 과연 누가 파업에 따라 나설까?
타냐가 연속 공격했다.
“그리고 이번 파업의 목표를 무엇으로 정하겠습니까?”
“정하지 못할 것은 없소. 월급을 12% 올려줄 것, 근로자 복지를 지금보다 30% 더 늘일 것, 이것이면 되지 않소?”
그 말에 타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게 과연 말이나 되는가?
현재 시베리아 기업들의 복지는 전 세계 선진국들보다 더 잘 되어 있다.
특구 정부가 13조 달러의 돈을 시베리아 국민들의 복지와 삶에 50%나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민과 근로자의 복지는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가 있다.
월급은 낮다. 근로자 월급 대부분이 100달러부터 200달러 수준이다.
대신에 물가가 시베리아 어디를 가도 엄청나게 싸다.
그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 1천 달러의 월급을 받는 근로자보다 100달러를 받는 시베리아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더 높다.
그런데 월급을 더 올려라, 복지를 늘여라? 과연 근로자들이 이 구호를 따라 일어설 것인가? 근로자들은 쌈을 좋아하는 복서가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잘 키우고 학교에 보내 자식들이 앞으로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을 바라는 부모들이다.
삶이 안정되면 정부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설 때는 단 한 가지 경제가 무너지고 가족의 삶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다. 하지만 시베리아 국민은 어느 때보다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타냐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총위님은 그런 구호를 블라디보스토크 근로자들이 따라 외치며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를 것으로 생각하나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7 항구 노조는 승산 없는 이번 파업에 반대합니다.”
“뭐, 뭐라고?”
노조 위원장 예브게니 레오노프가 입을 떡 벌리고는 숨만 가쁘게 내쉬었다. 마치 두꺼비 배가 곧 폭발하기 직전 같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안정 시킨 레오노프가 말했다.
“반대해도 좋소.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책임진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더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오.
그래서 저, 자본가 놈들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뺏어내서 근로자들이 이익을 누리게 해야 하오. 그게 우리 노조 간부들의 임무요!”
하지만 타냐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총위님의 재산이 40억 정도 되는 것으로 알아요. 그렇다면 총위님도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가요?”
“뭐가 어째?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그러자 사람들이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렸다.
“그만, 총위님도 타냐 씨도 그만 하세요.”
그때 노조 서기가 일어섰다.
“여러분, 의견이 서로 엇갈리니 이렇게 합시다. 10일 동안 충분히 생각한 후에 다시 모여 결정합시다.”
“그게 좋겠소!”
“그럽시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노조 비상 회의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차를 타고 집으로 달리던 타냐 아르쉬비치가 한적한 도로의 한쪽에 공중전화가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전화 부스 안에 들어간 타냐가 동전을 넣고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설원 꽃집입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꽃 배달이 필요합니다. 하얀 곰 집의 부인이 해산을 했거든요. 큰 꽃 바구니를 선물해주기를 바랍니다. 주소는···.”
그녀가 주소를 불러주자 저쪽에서 대답이 왔다.
<보내는 사람의 성명을 알려주세요.>
“블라디보스토크의 이스라지(눈 속에 피는 꽃)입니다.”
<알겠습니다. 20분 내로 정확히 배달 될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안녕히!”
타냐는 전화 부스를 나와 차에 올랐다.
부르릉~
차가 핸들을 틀어 도로를 달려갔다.
한데 그때였다. 국도 옆에서 차의 보닛을 열고 무언가 수리하던 운전기사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로 연락했다.
“미행부의 12호입니다. 타냐 아르쉬비치가 76호 휴게소에서 4킬로 지점에 있는 공중전화를 걸었습니다. 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계속 미행하라. 전화부스에서 전화한 내용은 우리가 알아보겠다.>
"알겠습니다."
"타냐 아르쉬비치. 아무래도 냄새가 나는군!"
12호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는 보닛을 내리고 차에 시동을 걸고는 천천히 타냐가 간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르쿠츠크 특구 정부 청사.
이준은 여러 사람과 앉아 있었다.
지금 사라 푸틴이 나서서 열심히 현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이스라지의 연락을 받은 후, 저희 CFSB에서는 시베리아 전국의 고정 첩자들에게 명령을 받았습니다.
시베리아의 각 도시 노조 간부들이 폭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시베리아 총 노조는 이르쿠츠크에서 일단은 파업과 시위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삼일 후에 경찰에 의해 사람들이 다치면 그것을 명분으로 무장 폭동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집니다. 여기에 각 도시의 마피아들까지 가담했습니다.“
"마피아나 노조가 그 정도로 과격하게 나온다는 것은 뒤에 뭔가가 있다는 것인가?"
이준이 조용히 하는 말이 앉아 있는 사람들의 귀에 똑똑하게 들렸다.
'그렇군, 노조나 마피아들이 감히 60만 보안대와 40만 경찰을 가지고 있는 특구 정부에 도전하고 있어. 이건 뒤에 누가 없다면 감히 상상치도 못 할 일이다!'
방에 있는 특구 정부의 모든 요인이 하나같이 하는 생각이었다.
”극동군 사령부는 어찌하고 있나?“
”그들은 중립입니다. 앞으로 시베리아에 외세가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그저 지켜만 볼 것입니다. 의장 각하.“
이준은 시베리아 전도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마피아와 노조의 뒤에 거물이 있는 것 같군! 일단 파업을 시작할 때까지 놔두시오. 파업이 벌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명령을 내리겠소."
"예썰."
"그럼 모두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그리고 보안대 사령관님과 경찰청장님은 은밀하게 비상사태로 전환하고 경찰과 보안대에 완전 무장을 시키시오.
아무래도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 것 같소!"
”예, 썰.“
발뒤축을 딱 붙여 소리를 낸 보안대 사령관과 경찰청장이 밖으로 나갔다. 그때 사라가 소리 없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분명 아빠의 짓이에요. 미안해요, 오빠!"
둘만 있을 때는 오빠다. 그녀가 죄를 지은 기분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준은 개의치 않았다.
'걱정하지 마. 우리 시베리아 특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서류를 접어 책상 안에 넣은 이준이 말했다.
"일단 CFSB의 모든 요원에게 비상을 걸어. 총리의 의도가 곧 밝혀질 테니까!"
"알았어!"
미안하고 죄스러워하는 사라 푸틴의 괴로운 얼굴이 이준의 눈에 잡혔다.
이준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자, 팔목을 껴라. 가자."
"파, 팔목을 끼라고요?"
"그럼, 남친과 여친이 팔목을 끼는데 뭐가 어째서?"
"알았어요. 오빠!"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청사의 정문을 나섰다.
블라디보스토크 차르스키이 거리. 72번지.
노조 위원장이 수십 장의 서류를 들여다보며 치를 떨고 있었다.
"이런. 타냐, 이년이 첩자였군!"
그의 앞에 놓인 서류에는 타냐의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놀랍게도 타냐는 유년사관학교(러시아에는 아이 때부터 군사 학교에 다니며 전문 군인으로 키우는 학교가 있다)를 다녔고 12살부터 21살까지 모스크바 정보국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노련한 첩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푸틴의 정보국이 아니라 이준의 정보국 요원으로 일한다는 것이었다.
"년을 죽여야 한다. 서기."
"예. 위원장 동지."
"흑창을 보내 년을 깔끔히 제거하라."
"예썰."
흑창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는 FSB의 행동대원들이다.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인간들이다.
그중 두 명만 가도 타냐는 밤새 지쳐 실신 할 것이다. 흑창들은 살인할 때 여자라면 그것이 소녀든 유부녀든, 할머니든 상관없이 윤간하고 처참하게 죽인다.
그들이 타냐의 집으로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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