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푸틴의 막내 동생-45화 (44/98)

제45화. 침투.

경쾌한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나, 의장입니다.”이준이 전화를 받았다.

<각하. 이르쿠츠크역 통역원 유가람씨가 찾아왔습니다.>

“통역원 유가람?”

이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3개월 전, 이르쿠츠크역에서 마피아의 총에 맞은 것을 각하께서 구해주셨다고 합니다.>

“아!”

생각난다. 당시가 생각났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총에 맞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얼굴도 볼 새가 없었다.

<유가람씨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왔다고 합니다. 각하!>

“그럴 필요는···.”

이준은 멈칫 말을 멈추었다. 자기는 시베리아경제특구의 의장이다!

옛날 같으면 시베리아의 왕이나 다름없다.

왕이 백성이 고마움을 표시하러 온 것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

이준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그녀를 들여보내세요.”

<알겠습니다. 각하.>

전화를 끊기자 이준은 생각에 잠겼다.

“유가람씨라···.”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스르르 문이 열리고 한 아가씨가 들어섰다.

이준의 눈앞이 환해졌다.

'굉장하군! 엄청난 우물이야!'

이준은 많은 미인을 보았다. 그중에서 단연 발군은 디나 쿠르바코바와 사라 푸틴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녀들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서양식이다.

그런데 오늘 동양의 미인을 보았다. 이건 그냥 미인이 아니다.

한마디로 우물이랄 수밖에 없는 굉장한 동양 미인이었다.

'전설의 양귀비가 환생 했나?'

속으로 중얼거린 이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피부 한 겹 차이일 뿐이다.

어떤 아름다운 여자도 피부 밑에는 살과 피가 흐른다.

“안녕하세요. 의장 각하, 너무 늦게 인사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녀가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혔다.

그러자 굽실굽실 기다란 머리칼이 앞으로 좌르르 흘러 넘어왔다. 삼단같이 풍성하고 윤기가 반짝이는  머리칼이다.

“여기 와서 앉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유가람이 사뿐사뿐 걸어서 이준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유가람은 모든 것이 큼직큼직한 글래머이다. 머리를 드는 그녀와 이준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유가람의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어쩔 바를 몰라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숨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빨리 인사하고 싶었지만, 총에 맞았던 다리가 이제야 다 나았습니다. 용서하세요!”

“아, 아닙니다. 무슨 보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니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이준이 손을 흔들어 마음을 표시했다.

그러자 유가람이 작은 마분지곽을 하나 꺼냈다.

“저, 이건 고마운 마음에 제가 뜨개질로 만든 방한 장갑입니다. 변변치 못하지만 받아주세요!”

안된다고. 괜찮다고 하려던 이준은 그녀의 커다란 두 눈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이준은 차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험, 험.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곽을 연 이준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건 삼족오?”

털실을 재료로 뜨개질 해서 만든 손가락 장갑이다. 새까만 털실로 만든 장갑은 섬세했다. 저 장갑을 끼면 아무리 시베리아가 추운 땅이라고 해도 추위를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준이 감탄한 것은 뜨개질 솜씨가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장갑의 손등에는 DG그룹의 사기(社記)가 정밀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바로 삼족오 깃발이다.

“솜씨가 대단하군요! 이렇게 수를 놓다니?”

“그냥 부족한 솜씨를 부려봤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감사합니다. 의장 각하!”

유가람이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고맙게 잘 쓰겠습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각하, 중국의 왕자오 외무부 차관이 비밀리에 와서 각하를 뵙고 싶다고 합니다.”

“왕자오 차장이?”

“예.”

“가만 중국어를 하는 통역이 있나?”

“급히 수소문해보겠습니다. 각하.”

“아냐, 중국 외무부 차관이 비밀리에 왔다면 내용도 비밀일 거네. 자칫 믿을 수 없는 사람을 통역 시켰다가 큰일이 날 수가 있어. 이거 빨리 통역을 모집해야겠군!”

그때 유가람이 말했다.

“저, 의장 각하. 제가 통역하면 안 될까요? 저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할 줄 압니다.”

“아, 그렇지!”

이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왠지 이 여자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아름다운 외모여서인지 아니면 같은 민족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여자를 통역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머리가 가리키고 있었다.

“좋아. 왕자오를 들여보내세요, 통역을 유가람씨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각하.”

***

왕자오는 반들반들한 대머리와 뚱뚱한 거구의 남자다.

그는 이준의 집무실에 들어와서 반갑게 악수했다.

그리고 차를 한잔 마시고 나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의장 각하. 나는 중국 국가 주석 장쩌민 동지께서 의장 각하에게 드리는 제안서를 가지고 온 비밀 특사입니다.”

이준의 옆에 앉은 유가람이 통역했다.

“어떤 제안서입니까?”

“이것입니다. 한번 봐주십시오.”

왕자오는 가방에서 밀봉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이준이 봉투를 뜯었다. 그러자 한자(漢字)가 빼곡히 적힌 서류가 보였다.

유가람이 즉석에서 번역하며 읽었다.

<시베리아경제특구 의장 각하에게.

안녕하십니까? 중국 공산당 주석 장쩌민입니다. 나는 이 기회를 빌려 사업에 바쁜 의장 각하에게 개인적인 인사를 보냅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중국에는 인력이 많습니다. 동북 삼성(만주)에는 조선족이 250만 명이나 되고 실업자가 1천만 명이 넘습니다.

내몽골에도 많은 내몽골 인이 일자리가 없어서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족이나 내몽골인이나 근면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알기로 각하께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복선화와 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건설은 아무리 기계화를 해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분야입니다. 나는 이 부분을 서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업자들을 보내 각하의 일손에 도움을 주고, 나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월급은 100달러(위안화, 800원, 당시 중국 근로자들의 한 달 월급은 300원이었다)면 충분합니다. 중국에서 버는 돈의 거의 3배이니까요.

그들은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이로써 나는 동북 삼성과 내몽골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각하는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서로 윈윈하는 것이지요.

구체적인 방법은 제가 보낸 왕자오차관과 협의하면 됩니다.

모쪼록 양국에 이롭게 되면 감사겠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장쩌민.>

'흠. 아주 좋은 일이긴 한데···.'

유가람의 통역으로 왕자오가 온 이유를 알게 된 이준은 잠시 생각하였다.

그리고 왕자오에게 말했다.

“차장 각하. 이렇게 하시죠.”

“예. 각하. 말씀하십시오.”

“나는 중국의 소수민족만 받고 싶습니다. 어차피 중국에서도 소수민족이 없어지면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위험한 자다!'

이준의 말에 왕자오는 심장이 철렁 했다. 사실 중국에는 56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장족 같은 경우에는 2천만 명, 만주족은 1천만 명이며 내몽골 쪽은 700만 명에 달한다.

그 외 소수민족은 300만, 500만 등으로 중국 공산당이 날카롭게 주시하는 형편이다.

개방 후에 자유를 맛본 소수민족들이 중국인의 통치는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모두 시베리아로 보낸다면 중국의 정치상황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될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준이 위험하다. 이자는 단번에 그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쩌민에게 받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각하께서는 몇 명이나 받을 수 있습니까?”

“1억 명도 받을 수 있습니다.”

'크크크, 이건 대박이다!'

중국 소수민족은 중국인의 10%에 달한다.

그것은 거의 1억 5천만 명이 소수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들을 처리만 한다면 중국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할 것이다. 그들이 독립하겠다고 하면 중국은 갈가리 찢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모두 온다고 해도 시베리아는 넉넉히 품어 줄 수 있는 광활한 영토이다. 현재 시베리아 인구는 3천만 명! 그것도 철도 연선에만 산다.

하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이 5천만 명이나 1억 명 정도 오면 시베리아의 광활한 영토도 인구가 불어나게 될 것이다.

이준에게는 그것이 좋았다. 그 정도 인구면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유가람의 통역으로 회담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중국 소수민족의 시베리아 이주에 관한 계약서.

1: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중국에 사는 56개 민족 중에서 자원하는 사람들만 시베리아로 이동 시킨다.

2: 이동하는 모든 비용은 중국 정부에서 이주민들에게 지급한다.

3: 시베리아경제특구는 중국의 소수민족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며 일자리를 준다.

4: 월급은 1인당 한 달 200달러이다.

5: 이주민들의 취업은 그들의 취향에 맞게 자유를 선택한다.

6: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들은 농지를 무상으로 내어준다.

7: 어떤 직장이든 남녀평등을 법으로 보장한다.

8 : 5년 후에 시베리아에 남을 사람들은 시베리아 국적을 준다.

9: 마피아, 조직폭력, 깡패는 죄의 경중에 따라 시베리아 특구의 권한으로 총살형까지 집행할 수 있다.

10: 위에 적인 모든 조항을 중국과 시베리아경제특구는 준수한다.

1993년 6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외무부 차장 왕자오.

시베리아경제특구 의장, 이준.>

이로써 이준은 시베리아에 중국 소수민족이 올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앞으로 시베리아에는 순수한 러시아인보다 56개의 동양 민족이 뒤덮을 것이다.

“유가람씨.”

“네? 네, 의장님.”

“우리 정부에서 통역관으로 일해볼 생각은 없나?”

이준의 말에 유가람은 머리를 푹 숙였다.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으러 오다니?

그는 속으로 쾌거를 불렀다. 그는 이 표정이 이준에게 들킬새라 머리를 푹 숙였다.

하지만 이준은 그것이 거부의 표시인 줄 알았다.

“미안하오, 내 생각만 하느라 유가람씨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권고했소.”

“아뇨. 의장님께 도움이 된다면 곁에서 보필 하겠습니다.”

“고맙소, 통역관 유가람씨. 이제 나의 사람이 됐으니 악수라도 해봅시다.”

“네? 아, 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이준의 단단한 손바닥에 유가람의 부드러운 손이 쏙 들어갔다.

이날 밤. 이르쿠츠크에서 한통의 무전이 날아갔다.

<보통강 앞, 대동강은 잉어의 옆에 자리를 잡았음!>

“으하하. 됐어, 이제부터 시작이다!”

북한 주석궁의 집무실에서 승냥이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정일이 무전 문을 쥐고 너무 좋아서 너털웃음을 지은 것이다. 곁에 붙었으니 이제 이준을 유혹만 하면 된다.

이준은 올해 27세다. 하지만 겨우 20살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소유자다. 젊은 청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여자친구이다.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올 것이다.

중국 소수민족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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