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시베리아 경제 특구.
모스크바 크렘린 대통령 집무실.
“각하. DG그룹 회장님께서 면접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엄청 급한 문제라고 합니다.”
“아르진이?”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오려면 22시간이 걸린다. 정말로 다급한 문제가 아니면 이런 경로를 택할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이지?’
원래부터 아르진 리와 옐친은 관계가 좋았다. 물론 이준이 옐친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번 쿠데타 사건 이후, 옐친에게 있어서 아르진은 순수한 생명의 은인인 동시에 정치적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와 투표수가 비슷했을 때 아르진 리는 티브이 방송에 출연하여 옐친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그 때문에 전세가 급격하게 옐친에게 기울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르진은 그 어떤 특혜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치자금을 듬뿍 안겨주며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그래, 아르진과 나는 한 배를 탔다고 해도 무방하지!’
“들여보내게!”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이준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셨습니까? 대통령 각하.”
“어서 오게, 동생!”
옐친이 다가와 이준을 포옹하며 다정하게 동생이라고 불렀다. 선거에서 이긴 후부터 옐친은 늘 이준을 동생이라고 부른다.
“앉게, 그래 무슨 일인가? 22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다니?”
비서가 가져온 차를 마시면서 옐친이 물었다.
“FCI가 일을 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FCI라면 국제 유대 금융 카르텔을 가리키는 약자다.
그 자들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할 때 러시아 국적의 유대인들을 사주하여 러시아의 금융을 틀어 쥐었었다.
하지만 옐친이 그걸 알고 고르바초프와 함께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였다.
고르바초프와 정치적 견해는 달라도 유대금융카르텔에게 러시아의 돈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준은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무기가 되어 싸워준 강력한 대포가 되었다.
이제 이준의 DG은행은 러시아의 중앙은행이 되었고 정부의 요청에 따라 화폐를 찍어낸다.
한때 인플레이로 급격하게 하락하던 루블이 이제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것은 이준이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식량과 생필품의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DG그룹이 월급을 올리고 물가를 낮추자 다른 그룹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뒤를 따랐다.
아니면 국민에게 외면 당하고 상품 배척 운동까지 일어날 판이었다.
그렇게 싸워 이제 러시아의 사회가 차차 안정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유대 금융 카르텔이 또다시 머리를 들었단 말인가?
“그들이 북조선의 벌목지에 7만 명의 특수부대원을 직원으로 위장하여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자 철도노조를 사주하여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북한 특수부대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파업노조장의 집에서 북한임업 회사의 직원 3명을 잡았는데 그들의 입으로 자백한 내용입니다.”
이준이 소형 녹음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자기의 소속을 밝히는 특수부대원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음, 1개 회사에 1만 명씩 배치되어 있단 말이지?”
“예.”
그러자 옐친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이보게, 동생,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겨우 특수부대 7만 명으로는 우리 러시아에 타격을 입히지 못하네. 아니, 특수부대 70만이라도 상대가 안 되지!”
그 말은 맞다. 러시아는 지구 상에서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초 강대국이다.
그런 나라를 겨우 7만 명으로, 그것도 소총만 가진 특수부대원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하지만 각하의 시장경제를 뒤흔들 수는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 회사들을 공격한다면 결과적으로 시베리아에서 시장경제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시베리아에서 시장경제가 무너지면 각하의 정적들이 그 문제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각하가 무능하다는 것을 부각하고 자기들이 시장경제를 실행할 수 있다고 선동할 것입니다.
그때 유대 금융 카르텔이 달러로 밀어준다면 그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겠죠.
그런 자들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의 금융은 유대 금융 카르텔이 단시일 내에 장악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이준의 말을 들은 옐친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정적들은 옐친을 깎아내리려고 별짓을 다한다.
그런 자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 할까?
아마도 유대인들이 손을 잡자고 한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덜컥 손을 잡을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의 운명은 유대 금융 카르텔이 마음대로 쥐고 흔들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싹을 짓밟아 줘야겠군!’
옐친은 결정을 내렸다. 유대 금융 카르텔이 현재는 북한을 이용해서 자기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는 이준을 이용하여 시베리아에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다.
그러자면 이준에게 그에 걸맞은 자리를 주어야 한다.
또 힘도 주어야 하고···.
“아르진, 자네가 바라는 것이 뭔가? 이 형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최대한으로 자네를 돕겠네.
그러니 자네는 시베리아에 시장경제를 확실하게 뿌리 내리고 발전시키게. 그
것을 위해서는 군대와 경찰,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무슨 짓을 해도 난 자네를 밀 것이네.”
“알겠습니다. 각하. 대신 국회에 입법 시켜 우랄산맥 동쪽의 시베리아를 하나의 관구로 묶어 경제특구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시베리아 경제특구의 초대 의장에 저를 임명해주십시오.”
맙소사! 시베리아는 1,380만 7,037km2의 광대한 영토이다.
지금 이준의 요구는 그 광대한 영토를 하나로 통합하고 그곳을 통치하는 통치자로 자기를 앉혀 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쿠데타 이전이라면 옐친은 단호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옐친은 이준과 자기는 한 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한다.
항해하다가 침몰하면 둘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공생공사의 운명이다.
그러니 뭐든 해주려고 한다. 특히 국제 유대 금융 카르텔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강대국들을 추동질하여 러시아를 공격할 수도 있고 전 세계의 테러 단체들이나 전투 용병들을 러시아에 투입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옐친의 자본주의 전환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공격이 시베리아로 집중된다면 그동안에 러시아 본토는 완전하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있다.
물론 시베리아는 발전이 늦어지고 많은 사람이 죽긴 하겠지만···.
“좋아. 자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겠네. 시베리아를 따로 독립 시킬 것이고 자네를 의장에 임명하지.
또한 정치, 경제, 군사, 사법의 모든 지휘권을 의장에게 집중 시켜 주겠네.
대신 내가 시베리아 쪽은 신경 쓰지 않도록 하게. 할 수 있나?”
“각하의 신임에 모든 것을 바쳐 해내겠습니다.”
“좋아. 믿겠네!”
쨍.
술잔을 마주친 둘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1992년 1월, 새해가 되자마자 옐친 대통령은 비중 있는 국회의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무언가를 협의하였다.
그렇게 각 계파의 국회의원들을 만나자 여러 가지 소문들이 정계에는 떠돌았다. 하지만 누구도 시베리아가 하나의 거대한 관구로 통합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였다.
1992년 1월 17일.
국회에 시베리아에 대한 안건이 제출되었다.
내용은 “시베리아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경제특구를 개설할데 대하여.”이었다.
그 내용은,
<첫째: 우랄산맥 동쪽의 모든 영토를 시베리아 경제특구로 명명한다.
둘째: 시베리아경제특구는 러시아공화국의 자유시장경제 지구이다.
셋째: 시베리아경제특구의 최고 수장은 초대 의장만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임기는 10년이며 두 번째 의장부터는 시베리아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다.
넷째: 시베리아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와 입법과 사법의 총수는 의장이다.
다섯째: 앞으로 50년 동안 시베리아는 모든 활동을 의장의 뜻대로 한다.
여섯째: 그러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1992년 1월 17일.
러시아공화국 국회의원 일동.
대통령 보리스 옐친.>
이로써 시베리아의 거대한 반 독립적인 지역이 되었다. 이 당시는 옐친이 대통령에 취임한 초기였고 쿠데타를 제압, 그 선동 분자들을 숙청 할 때였다.
아직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력이 매우 부족한 국회의원들은 소련 시절의 타성대로 옐친의 입맛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한 5년이 지나면 이들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고 옐친에게 반기를 들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아니었기에 쉽게 시베리아의 특구법이 쉽게 통과되었다.
이로써 이준은 가장 이른 시일 안에 시베리아 특구의 대통령보다 더 권한이 센 의장이 되었다.
***
시베리아 특구 의장이 된 이준이 첫 번째로 한일은 시베리아 특구 보안국(CFSB)의 수장으로 사라 푸틴을 임명한 것이다.
사라 푸틴은 준장에서 소장으로 한 계급 특진하고 “CFSB”의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녀를 임명한 것은 정보부를 이준의 손안에 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DG그룹 전략기획실은 해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보 능력을 더욱 강화했다.
정보란 아무리 많아도 나쁘지 않은 법, 그 때문에 두 개의 정보국을 운영하여 정보의 정확성을 기획한 것이다.
두 번째로 한 것이 시베리아 철도 보안국의 창설이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그 총길이가 9,288km에 달한다. 더욱이 1년에 6개월 동안은 폭설에 덮여 있다.
또 사람 한 명 없는 무인 지대 수천 킬로가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다.
보안국은 그런 철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창설되었으며 그 총수인 보안국장은 이준이었다. 보안대원들은 새로운 유니폼을 만들어 입혔다.
이준은 DG그룹 경호 회사의 간부들을 뽑아 러시아 전역에서 보안대원들을 뽑게 하였다. 그 대상으로서는 군 전역자를 기본으로 하고 이전에 조폭 출신이지만 건전한 자들로만 뽑게 했다.
그리고 1992년 2월 1일. 시베리아 특구 철도보안대는 60만 명으로 출발하였다.
이날, 이르쿠츠크는 명절 분위기에 휩싸였고 축포가 울리는 가운데 철도보안대원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2월이지만 시베리아 날씨는 아직 한겨울이다.
그래도 함박눈이 오는 날은 날씨가 푸근하다.
자욱하게 내리는 함박눈 사이로 한 쌍의 남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이준과 디나 크루바코바였다.
그녀의 털코트와 담비 털모자에도, 이준의 옷과 모자에도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려 쌓였다.
“저 커피숍이요?”
이준이 뽀얀 함박눈 사이로 네온등이 명멸하는 커피숍을 보고 물었다.
“네. 저기예요.”
오늘은 디나 크루바코바가 청하여 커피숍에 오는 길이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데이트 한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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