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진압.
쿠르르르, 콰콰콰콰콰코~
전차와 장갑차들이 아스팔트 위로 질주했다. 전차병과 스페츠나츠 장교들과 병사들 모두 왼팔에 흰 띠를 둘렀다. 거기에는 검은색으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시민군”
그렇다. 시민군이다. 스페츠나츠 102연대와 106연대가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국회의사당으로 가고 있었다.
국회의사당에는 러시아 대통령 옐친과 총리, 러시아 정부 각료들, 그리고 각 당의 국회의원들이 연금되어 있었다.
질주하는 전차의 맨 앞에 이준이 타고 있었다. 그는 전자포탑에 상반신을 내밀고 보무당당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전차에 길을 내주기 위해 옆으로 비켜선 모스크바의 수많은 시민이 그를 보고 열화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아르진 리다!”
“아르진!”
“아르진!”
“아르진!”
남자도, 여자도, 처녀도, 총각도, 시민군과 경찰들도 모두 아르진을 연호했다. 러시아 시민들을 항쟁에 일으켜 세운 사람은 바로 아르진 리이다.
그것도 무장한 스페츠나츠들이 지키고 있는 방송국을 단둘이서 공격해서 점령했다. 이런 사람이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란 말인가?
오늘의 일로 이준과 사라 중령은 러시아 민주주의 수호 전사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이다.
국회의사당을 지키고 있는 것은 스페츠나츠 제103연대와 제105연대였다.
한데 이들에게는 장갑차만 있었지, 전차는 없었다.
그런데 전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주해 오고 있었다.
“이런 젠장, 어떡하지?”
제103연대장 빅토르 대령이 제105연대장 막심 대령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제105연대장 막심 대령이 말했다.
“우리도 시민군이 되고 말지 뭐!”
“뭐, 시민군이 되자고?”
“그래, 우린 전차가 한 대도 없어, 재들은 전차가 22대나 되고, 넌 장갑차로 전차하고 한번 붙어 볼래?”
“내가 미쳤냐? 호박 쓰고 돼지우리에 들어가게?”
제103연대장 빅토르가 눈을 흘겼다. 그에 105연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살길을 찾아야지. 안그냐?”
“알았다. 시민군이 되자!”
무선 송수신기를 입에 대고 105연대장이 외쳤다.
“우리도 이 시각부터 시민군이 된다. 모두 흰 내의를 찢어서 팔에 띠로 둘러라. 실시.”
“실시!”
일제히 대답한 병사들이 내의를 찢어 시민군이란 글을 쓰고는 왼팔에 둘렀다. 국회의사당을 지키던 스페츠나츠 2개 연대는 그렇게 함락당하고 말았다.
곧 옐친과 총리, 정부 각료들과 국회의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준과 사라 푸틴 중령이 대통령 옐친에게 보고를 했다. 그러자 옐친이 이준을 와락 그러안았다.
“잘했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사라 푸틴 중령과는 악수를 하며 말했다.
“중령. 난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네. 이제 질서를 다시 찾고 나면 자네를 특진시켜주겠네!”
“충, 성!”
사라 푸틴 중령이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했다. 머리를 끄덕인 옐친이 전차 위로 올라갔다.
“옐친 대통령이 연금에서 풀려났다!”
“옐친. 옐친. 옐친!”
군중들이 연호하는 소리가 모스크바를 쩌렁쩌렁 울렸다.
“존경하는 모스크바시민 여러분, 전국의 러시아국민 여러분, 나는 당신들이 선거로 뽑아준 합법적인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쿠데타 세력은 러시아정부 대통령인 나와 총리, 정부 요인들을 국회의사당에 연금시켜 놓았었습니다.
또한 저들은 소련 공산당 서기이며 대통령인 고르바초프에게 대통령직을 강제로 이양하라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고 DG그룹 회장 아르진 리와 러시아 국가보안국 장교인 사라 푸틴 중령이 제2 방송국을 점령하고 모든 국민에게 쿠데타의 진실을 알렸습니다.
사랑하는 러시아국민 여러분,
나는 오늘 알았습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은 소수라는 것을요!
절대다수의 국민은 새로운 사회. 시장경제를 도입하며 우리 러시아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여 나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 이 자리에서 국민이 준 대통령의 권리로 명령합니다. 모든 경찰과 러시아 보안국, 시민군과 러시아군대는 쿠데타 세력을 체포하십시오.
이건 대통령인 나, 옐친의 명령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러시아를 행복과 웃음이 넘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듭시다.
러시아공화국 만세. 위대한 러시아국민 만세. 민주주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시민군과 모스크바 경찰들이 떨쳐 나서 쿠데타 세력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라 푸틴 중령은 시민군 1개 중대를 데리고 크렘린으로 쳐들어갔다. 그에 크렘린을 지키던 스페츠나츠들도 모두 총구를 돌렸다.
“겨우 1일 천하였나? 큭큭큭.”
부통령 겐나지 야나예프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권총을 뽑아 철컥 장전했다.
“그래, 너희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믿듯이 나도 공산주의를 믿는다. 이겼으면 내가 너희들을 모두 죽였겠지만 난 졌다. 그러니 난 스스로 내 목숨을 끊는다.
위대한 공산주의 만세!”
만세를 부르고 난 그는 권총의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털써덕.
총성과 동시에 그의 몸이 나동그라졌다. 총탄은 입천장을 뚫고 뇌를 관통했다. 부서진 뇌에서 피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콸콸 흘러나왔다.
시민군은 쿠데타 세력을 이틀에 걸쳐 모조리 체포했다.
그리고 연금에서 풀려난 고르바초프는 크렘린으로 돌아와 선언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의 선언.
1.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국가를 해산한다.
2. 소련 공산당을 해산한다.
3. 소련 공청단을 해산한다.
4. 이번을 계기로 새로운 나라, 러시아의 대통령을 선거로 국민이 선택한다.
1991년 8월 30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이로써 1917년 레닌이 무장 폭동으로 세웠던 소비에트연방은 군사쿠데타로 몰락했다. 이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국민에게서 쫓겨났다.
그리고 국민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축하하네. 사라 푸틴 준장!”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사라 푸틴이 거수경례를 했다. 그녀는 이번 쿠데타 저지에서 세운 공으로 준장으로 승진했으며 국가보안국장이 되었다.
“이보게. 아르진, 자넨 선거에 나와야지?”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각하.”
이준이 질색했다.
“난 경제인이지 정치인이 아닙니다. 선거는 대통령 각하가 나서십시오.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사람은 각하뿐입니다.”
“자네 참. 선거에 나가면 당장 당선 될 텐데···.”
“내 지지표를 각하께서 모두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저에게는 정치에 정자도 얘기하지 마십시오. 난 기업인으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각하.”
“좋아. 아르진, 자네가 성공하도록 내가 힘껏 밀어주겠네. 하하하.”
사실 이번 쿠데타를 진압한 후, 옐친은 골머리를 앓았다. 대통령 호감도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아르진 리가 32.8%. 옐친이 25.6%. 고르바초프가 21.8%, 기타가 19.8%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준이 정치는 절대 안 한다고 하자 옐친은 한시름 놓았다.
이준이 자기를 지지한다고 티브이에 나가서 한마디만 하면 그의 표가 자기에게로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대통령 선거는 확실하게 자기가 이긴다.
‘대신 저 친구가 바라는 경제문제를 확실하게 밀어주어야겠어!’
옐친이 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온 나라가 선거운동으로 바쁘게 돌아갈 때 이준은 시베리아의 파리인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틀 후, 울란우데에서 중국행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향했다. 중국은 1980년부터 개방을 시작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곡식이 썩어날 지경이다.
땅을 가지게 된 농민들은 국가에 세금만 바치고 나면 나머지가 모두 자기 것이다.
그러자 농사를 열심히 지어 협동농장 시대보다 2배의 곡식을 생산한 것이다.
그로 인해 쌀과 밀, 옥수수와 콩이 수출할 곳이 없어서 아우성치게 되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개방 이후, 농업을 망쳤다.
그 바람에 식량난이 도래하기 직전이었다. 이준은 이전 1991년 겨울부터 1993년 봄까지 극심했던 러시아의 식량난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리 중국의 식량을 독점하기 위해 북경으로 향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러-중 친선을 위한 평화회담의 옐친 특사로 가는 중이었다.
중국 북경시 중남해.
중남해는 북경시의 중앙부에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와 국무원의 소재지다. 바다 해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해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북경의 중심, 바로 자금성의 옆에 있다. 이곳에는 사회주의 중국의 최고 실력자의 관저와 집무실이 있다.
면적은 100만 제곱킬로미터로 청와대의 4배나 된다. 이곳의 경비는 엄청 삼엄하다.
일반인은 이곳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어느 순간에 총알을 맞을지 모른다.
이곳에는 그 악명 높은 “중앙경위국” 즉 8341 특수임무부대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지하에는 모든 집무실과 관저와 연결되는 핵전쟁 대비 지하터널이 뚫려 있다.
중남해 중국 공산당 군사위원회.
“그러니까 아르진 리라는 자가 조선인이란 말이지?”
소파에 앉은 중국 공산당 군사위원회 주석 덩샤오핑이 물었다. 그의 옆에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양상쿤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사진을 내려놓았다.
탁자에 놓인 사진에는 이준이 모스크바 제2 방송국에서 연설하는 모습과 울란우데 역에서 북경으로 오는 열차에 오르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사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덩샤오핑의 옆에서 앉지도 못하고 굽실거리는 양상쿤이 최고의 권력자여야 한다.
그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공산권 국가들이 그렇듯이 무력을 가진 자가 실권자다.
중국에서도 덩샤오핑이 군사위원회 주석이다. 따라서 실제적인 실권자는 덩샤오핑이다. 양상쿤은 주석이라는 자리에 앉았지만,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총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모텍동의 말이 이들의 구도에서도 확실히 나타난다.
“상당히 어리군, 몇 살인가?”
“26살입니다.”
“어려, 그런데 러시아의 제1의 재벌이고 옐친의 최고 신임을 받는 자란 말이지?”
“예. 게다가 이번 쿠데타 때 바로 이 아르진 리라는 자가 판을 뒤집었습니다.
그 때문에 옐친과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자들이 살아났고 러시아 국민에게는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 안전국(MSS) 국장의 대답에 덩샤오핑은 이준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자 뒤의 이 여장군은 뭔가?”
기차를 타는데 여장군의 군복을 입은 사라 푸틴이 서 있는 것이 사진에 찍혀 있었다.
“예, 러시아의 국가보안국(FSB) 국장으로 아르진 리의 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직접 이번 우리 중국 방문에 같이 옵니다.”
“흠, 아예 따라다니면서 직접 호위하는가?”
사라 푸틴 준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덩샤오핑이 피식 웃었다.
“예쁘긴 하군. 암튼 양동지.”
“예. 주석 동지!”
양상쿤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자를 극진히 환영하게. 어차피 러시아에 곡식을 팔아먹으려면 이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주석 동지.”
덩샤오핑의 지시에 따라 이준은 귀빈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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