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푸틴의 막내 동생-32화 (31/98)

제32화. 모스크바 시민들.

1991년 8월 18일 오전 11시. 모스크바 시민들은 물론이고 러시아 전국의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때 모스크바 제2 티브이 방송이 갑자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아나운서가 나타나 특별방송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모스크바 시민 여러분, 전국의 국민 여러분, 우리 제2 티브이 방송사 직원들은 오늘 새벽 벌어진 쿠데타에 대한 확실한 자료를 얻었습니다. 하여 쿠데타 수뇌들의 대화가 녹음 된 자료를 공개하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을 끊으며 두 사람이 화면에 나타났다. 한 명은 정장을 입은 이준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장교복을 입은 사라 푸틴 중령이었다.

“존경하는 모스크바 시민 여러분, 그리고 전국에 계시는 러시아국민 여러분, 저는 DG그룹 회장 아르진 리입니다.

저는 지금 국회에 갇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대신하여 이곳을 점령하였고 국민들에게 오늘의 진실을 알리려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아침, 소비에트연방 부통령은 무장 폭동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스페츠나츠 특수부대들을 모스크바에 진주시켰습니다.

그들은 크렘린궁과 러시아 대통령 궁, 국회를 봉쇄하였으며 모든 티브이방송국과 신문사, 인터넷을 정지 시켜 언론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하지만 저 하늘의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준이 한 손에 소형 녹음기를 들었다.

“쿠데타 수뇌들이 쿠데타를 왜 일으켰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대통령직 이양을 요구한 내용과 회유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때였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방송실 직원들이 튀어 들어왔다. 그들은 한 손에 AK-74U자동 소총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티브이로 전국에 방영되고 있었다.

“회장님, 스페츠나츠들이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준은 침착했다.

지금 이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놈들이 더 올라오지 못하게 막으십시오. 이번 쿠데타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갑시다.”

그러자 방송사의 남자 직원들과 여성 아나운서들이 AK-74U자동소총을 들고 달려 나가는 장면이 생생하게 중계 되었다.

“저것들을 모두 죽여라. 방송국을 파괴해야 한다.”

악다구니를 쓰는 스페츠나츠 장교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방송으로 실려 나갔다.

“동지들, 막아라. 국민들에게 오늘의 음모를 알려야 한다. 목숨으로 지켜라!”

탓탓탓탓탓탓~ 콰콰쾅, 콰쾅, 콰쾅, 쾅쾅쾅~

스페츠나츠들이 돌격하며 외치는 소리, 방송사 직원들, 남녀가 한편이 되어 특수부대의 공격을 막고 있는 장면이 중계되었다.

그때 다시 이준이 연설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쿠데타 수뇌들의 음모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국민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녹음 된 그들의 대화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직을 양위 하고 영국으로 망명하시오, 고르바초프동지, 그럼 1억불의 돈을 줄 것이고 당신 가족들도 해치지 않고 보내주겠소···.>

“저, 저런 쌍놈의 새끼들!”

“저런 놈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놔두어선 안 돼!”

티비를 보던 사람들이 분노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준이 기름을 끼얹었다.

“국민 여러분, 모두 저들의 목적을 들으셨지요? 이것이 지금 쿠데타를 일으킨 놈들의 실체입니다.

놈들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돈과 권력에 미친 놈들입니다.

저런 놈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우리 러시아국민들은 스탈린 시대보다 더한 짐승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당신들의 아들과 딸이, 며느리와 사위들이 어느 날 행방도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더는 아무런 재판도 없이 야밤에 우리의 자식들과 부모와 형제들이 놈들에게 끌려가는 사회가 다시 오게 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짓밟힙니다. 모두 일어서세요, 손에 손을 맞잡고 거리에 떨쳐 나오세요,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해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러시아국민들입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린 이준이 외쳤다.

“위대한 러시아국민 만세. 쿠데타 세력을 타도하라. 우리는 바란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이상 DG그룹 회장 아르진 리입니다.”

방송이 끝났다. 하지만 군중들은 펄펄 끓는 용광로가 되었다.

“아르진 만세!”

누군가가 선창을 뗐다. 그러자 군중들이 일시에 외쳤다.

“우리의 아들, 아르진을 지키자.”

“아르진. 아르진. 아르진!”

모스크바의 집집마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서로서로 팔목을 걸고 거리로 행진 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번 폭발한 군중의 힘은 화산이 터진 것 같았다. 이번 쿠데타는 전 국민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다.

그냥 강 건너 불 보듯이 하면 또다시 그 지옥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거리로 떨쳐 나선 군중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쿠데타 세력은 물러가라!"

“우리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노, 소비에트!”

불과 한 시간여만이었다.

처음에는 50여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했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나자 모스크바의 거리란 거리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어깨와 어깨를 겪고 쿠데타군의 전차들을 향해 전진을 시작했다.

“아, 르, 진!”

누군가 외쳤다. 이제 아르진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의 자유와 민주주의 전사의 대명칭이 되었다. 군중들이 일제히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아르진!”

“아르진!”

“아르진!”

“아르진!”

처음에는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곧 사람의 홍수가 났다. 모스크바의 골목과 대로, 광장들이 발 디딜 틈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떨쳐나 크렘린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쿠데타 세력을 타도하라.”

“타도하라, 타도하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공산당은 물러가라.”

함성과 함께 크렘린과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스페츠나츠군사령관은 놀랐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도 아니다.

이건 아예 모스크바 시민들이 모두 떨쳐 나선 것 같다.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어깨를 겪고 전차와 장갑차 앞으로 겁도 없이 전진해 오고 있었다.

저대로 두면 곧 전차와 장갑차는 사람들의 바닷속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전차와 장갑차 병들은 들어라. 즉시 기관총 사격과 포사격을 준비하라. 포탄은 파편 유산탄이다. 발사 준비!”

맙소사! 전차병들과 장갑차 병들, 그리고 전차 앞에 AK-74 U를 쥐고 서 있던 스페츠나츠 부대 장교들과 병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사격 준비라니?

지금 부대장은 모스크바 시민들을 향해 총과 폭탄을 쏠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스페츠나츠 연대장 예고르 블라지미르 대령은 머리를 흔들었다.

오늘 진압하러 들어온 모스크바 군관구 장교와 병사들은 거의 90%가 모스크바에 가족과 친지들을 두고 있다.

저들에게 총과 포탄을 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아내와 전역하면 결혼하기로 한 애인들의 가슴에 총탄을 쏘아 박는 것이 된다.

‘아냐. 그럴 수 없어!’

세차게 머리를 흔든 예고르 대령이 사령관을 찾았다.

“중장님, 중장님.”

<말하라, 나 중장이다!>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십시오. 이건 우리 부모·형제의 가슴을 쏘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 예고르, 너, 이 건방진 새끼. 네가 감히 항명하려는 것이냐?“

”예. 항명입니다. 우리의 부모·형제들에게 총포탄을 쏘라는 당신의 명령은 비정상입니다.“

<야, 이 좆같은 새꺄. 좆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사격해. 아니면 널 군법으로 즉결 총살하겠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스페츠나츠 제106부대는 이 시간부터 중장님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간부터 우리 부대는 시민군입니다."

전화가 그것으로 끝났다.

”야, 예고르, 예고르. 이 죽일 놈의 새끼.“

콰앙,

수화기를 내던진 사령관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자기 직속의 스페츠나츠 102연대장을 찾았다.

”제라르. 예고르가 배신했다!“

”뭐라고요, 배신을 해요?“

”그래. 놈이 우리를 버리고 폭도들에게 넘어갔다. 당장 전투 준비를 하라. 폭도들을 쓸어 버려야 한다!“

”예, 사령관님!“

제라르 대령이 장갑차의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내려 섰다.

그때 신호가 울려왔다. 예고르 대령이다.

”예고르, 어떻게 된 일이냐?“

”군중을 향해 총과 전차포를 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난 내 부모·형제에게 총포탄을 쏘려고 군대에 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전차를 탄 것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리고 예고르는 목이 메여 말을 삼켰다. 잠시 후, 예고르가 말했다.

”제라르, 너 저 시민들에게 총을 쏠 수 있어? 저기에 내 여동생, 네 애인이 있는데?“

제라르 대령은 예고르 대령의 여동생과 연인 사이다. 그러니 정말 총을 쏠 수는 없었다.

군중들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때 예고르의 격한 목소리가 울려 왔다.

”제라르. 난 총구를 돌리기로 결심했다.“

“총구를 돌리다니? 너, 설마···.”

“그래, 난 국민과 함께하련다. 제라르, 너도 총구를 돌려라. 모르겠니? 쿠데타 세력은 저 국민들을 못 이겨!”

“하, 하지만 이건···.”

제라르는 군에 충실한 장교다.

그런 그에게 총구를 돌린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내가 내 상관들에게 총을 겨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떡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아니, 어떤 예감이 그의 온몸을 덮쳐왔다.

제라르는 함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저, 타, 타냐?”

“쿠데타군을 타도하자.”

“타도하자. 타도하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자.”

“지키자. 지키자!”

대학생들이 어깨를 겪고 다가오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모스크바 대학생들이!

그런데 그들의 맨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걸어오며 구호를 선창하는 여대생은 타냐였다. 예고르의 동생이며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타냐다!

그녀는 머리에 흰띠를 질끈 동여맸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자유를 얻지 못할 바에는 죽고 말겠다는 신념의 외침이다. 제라르는 총구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오는 타냐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자기라면 저렇게 했을까?

권총 한 자루 없이 맨몸으로 전차포와 기관총, 자동소총이 겨눈 곳으로 저리도 당당하게 걸어왔을까?

그리고 제라르는 그 순간, 깨달았다. 다시는 비인간적인 소비에트 시대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노예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저들의 의지가 총검 앞으로 돌진할 원동력을 준 것이다. 그때 참모장의 명령이 들려왔다.

“연대, 사격 준비.”

순간, 제라르가 외쳤다.

“참모장,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폭도들을 진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눈엔 저들이 폭도로 보이는가?”

“저들이 폭도가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뭐, 뭐라고?”

“전장에서 지휘관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장교는 즉결 처형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군법에 따라 연대장님을 처단합니다.”

철컥.

어느새 권총을 꺼내든 참모장이 장전했다. 그때다.

타다당~

짧은 점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윽!”

참모장이 권총을 툭 떨어뜨리고 가슴을 움켜잡았다. 등에서부터 심장을 뚫고 들어간 총탄에 피가 샘물처럼 콸콸 흘러나왔다.

털서덕!

참모장이 쓰러지자 그를 쏜 병사가 나타났다. 바로 참모장의 연락병인 앳된 청년이었다.

“연대, 전원 총구를 돌린다.”

병사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라르를 쳐다보았다.

“우리도 이제부터 모스크바 시민들과 함께한다. 알았나?”

“예썰!”

신이난 병사들의 외침이 모스크바의 하늘 가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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