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쿠데타(2)
그러나 모든 경호원이 항복한 것은 아니었다. 외곽 경호원들은 꼼짝 못 하고 손을 들었지만, 별장 내부의 친위 대원들은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스페츠나츠 제12연대장은 기세 좋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경호원들이 항복했다. 별장으로 들어가 고르바초프와 가족들을 잡아라.”
“예썰!”
신이 난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별장 내부로 진입했다. 그런데 이 별장은 스탈린이 살아 있을 당시 지어진 별장이다.
그 때문에 들어가는 입구가 S자형으로 되어 있었다. 적들의 공격에 있다면 반드시 이 S자 통로를 따라 들어와야만 내부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 S자 통로의 중간과 끝에 친위대원들이 기관총을 걸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를 잡아라.”
“혁명 만세!”
우라~ 우라~
스페츠나츠 부대원들이 기세충천해서 S자 통로를 따라 돌격해왔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촬영한 1917년 10월 혁명과 적백내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자란 세대들이다.
그 미화되고 각색 된 영화를 보면서 심장이 거세게 뛰던 세대들, 직접 혁명에 참여했다는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여 그들은 미친 듯이 만세를 부르며 돌격해 들어갔다.
나도 이 시대 혁명의 주인공이라 자부하면서···.
하지만 여러 정의 기관총이 불을 뿜자 이들은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투투투투투투투~ 타타타타타타타타~
“아앗, 으악!”
그건 끔찍한 도살의 시작이었다. S 자형 통로에 시신들이 겹치고 엎쳐 쌓이게 되었다. 기관총을 설치한 것은 높은 곳이어서 S 자형 통로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그러니 통로에 들어서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스페츠나츠 대원들은 그냥, 날 죽여 주세요, 하고 달려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약 20여 분의 돌격에 370명에 달하는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쓰러졌다.
통로는 콘크리트이기에 피가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 덕에 콘크리트 통로에는 피가 수조처럼 차올랐다. 핏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시신들, 스페츠나츠 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동안 이들은 수많은 만화와 게임을 통해 전쟁에 대해 알았다. 하지만 이들의 전쟁은 게임일 뿐이었다. 게임에서는 본인 자체가 주인공이다.
적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좋은 무기로 무장해도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실전 게임은 달랐다.
우박처럼 퍼붓는 기관총탄에 십 년 이상을 베프로 지냈던 동료들이 온몸이 갈가리 찢겨 죽어갔다.
그들이 죽어가면서 외치는 단말마의 비명, 폭발하는 터지는 머리통들, 푸줏간의 돼지고기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떨어지는 인간의 육편들은 구토를 불러일으켰다.
“돌격하라고, 이 새끼들아!”
연대장이 전차에 앉아 고함을 질렀지만 스페츠나츠 대원들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집단적으로 공포에 빠져 패닉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야, 전차포로 통로를 포격하여 파괴하라.”
“예썰.”
전차포들이 빙그르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스탈린시대 때 핵전쟁을 참고삼아 지은 별장이다.
그 때문에 엄청 단단하게 지은 집이다.
하지만 집은 단단하게 지었을지 몰라도 통로는 아니다.
펑펑펑펑~
쐐애액, 쐐액~
전차 포탄들이 포신을 떠나 대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통로를 타격했다.
꽝꽈꽈꽝, 꽈꽈꽝, 꽝꽝꽝~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귀청이 멍멍했다. 통로 쪽에는 자욱한 연기와 먼지가 솟구치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포사격이 끝나고 30분쯤 흐르자 포격의 성과가 나타났다.
S자 통로는 완벽히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장교들은 들어라. 즉시 돌격을 개시한다. 알았나?”
“예썰.”
연대장의 독촉에 장교들이 병사들을 돌격으로 내몰았다.
“통로가 부서졌다. 모두 일어나 돌격 앞으로,”
순간, 또다시 귀청을 찢어발기는 기관총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투투투투투~ 타타타타타타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통로가 제거됨으로 인해 기관총 좌에 직접 전차 포탄을 퍼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쒸익쒸익~
포탄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기관총 좌가 폭발의 섬광에 휩싸였다.
꽝꽈꽈꽝, 꽈꽈꽝~
기관총들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기관총 사수들의 찢긴 팔, 다리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돌격, 돌격하라.”
우라~ 우라~
이제 기관총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병사들이 정신없이 달려가 별장 내부로 진입했다.
탓탓탓탓탓탓~
“아앗. 크악!”
제일 처음 별장으로 돌입한 병사 두 명이 온몸을 춤을 추듯 흔들어대더니 털썩, 털썩 쓰러졌다. 별장의 복도 끝, 구부러지는 곳에서 친위 대원들이 AK-74 U로 총격을 가해 왔다.
“쏴라. 놈들을 쏘란 말이다!”
장교들의 외침 소리, 동료를 잃은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악에 받쳐 집중 사격을 했다.
탓탓탓탓탓~ 타타타타타~
총탄이 빗발처럼 교차하고 양쪽에서 사상자가 났다.
“아악. 크악!”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고르바초프의 친위대원들이 점점 열세에 몰렸다.
쿠데타 병사들은 6천 명이 넘는데 고르바초프의 친위 대원들은 소수이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하나둘 죽어갔다.
“부관. 당장 흰 기를 걸게.”
“예? 안 됩니다. 대통령 각하.”
고르바초프는 더 이상 친위대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관은 완강히 반대했다.
“각하.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군이 올 것입니다. 여기서 총 소리가 계속 울리니 크림 주둔군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곧 공격해올 것입니다.”
“부관, 전투가 벌어지고 1시간 반이 흘렀다. 지원하러 오려면 벌써 오고도 남았어야 해! 그런데 그들은 오지 안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나?”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것이야! 주둔군도 한패야!”
“각하!”
부관이 침통하게 외쳤다.
이미 전파 장애파가 주변을 휩쓸고 있어서 핸드폰도 무전기도 연락할 수가 없다. 전화선은 모두 잘려서 전화도 불통이다.
그러니 모스크바는 물론 그 어디에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버텨봐야 도와주러 올 부대도 없다. 아까운 친위대원들만 죽을 뿐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항전은 무익한 짓이야! 사격을 중지하고 흰 기를 걸어! 이건 명령이네!”
“예. 각하.”
잠시 후, 흰기가 걸리고 스페츠나츠부대원들이 몰려들어 친위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했다.
모스크바 크렘린.
소련 부통령이며 이번 비상 혁명위원회의 위원장인 겐나지 야나예프는 승리자의 어조로 전화를 했다.
“안녕하십, 아니, 죄송합니다. 고르바초프동지.”
그는 아예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붙이지 않았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쿠데타군의 포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바로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평화롭게 자기에게 이양하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고 쿠데타로 대통령이 감금되었다는 소식이 퍼지면 시장경제파들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것을 미리 막자면 방법은 하나, 바로 고르바초프가 스스로 대통령직을 이양하는 것이었다.
<부통령. 이게 무슨 짓인가? 쿠데타라니?>
“고르바초프동지, 당신은 개혁과 개방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 공산당의 혁명 선열들이 피 흘려 세운 사회주의를 무너뜨렸소.
이제 소련은 없어졌고 당신도 대통령이지만 통치 할 나라도 없소, 모두 독립해 버렸으니 말이오, 위대한 레닌 동지가 이 사실을 알면 통곡을 할 것이오.
우린 당신의 그 실책을 되돌리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소.”
<이건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야! 겐나지 야나예프. 당신은 군대를 통한 쿠데타를 일으키고 합법적인 대통령을 연금 했어.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거다.>
뚜~ 뚜~ 뚜~
고르바초프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지만 겐나지 야나예프는 피식 웃었다.
“이자가 아직 기가 살았군! 자기가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면서. 훌훌훌!”
1917년 무장 폭동으로 러시아제국을 뒤집어엎고 소련을 세운 레닌부터 정치적 적수는 결코 살려둔 적이 없다.
레닌은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을 무자비하게 사살한 다음 땅에 묻어 버렸다.
또 적백내전 동안 소련을 세우는 데 방해가 되는 귀족들과 엘리트들을 교수형과 총살형에 처했고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하여 죽였다.
그 후 스탈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르바초프는 그것을 안다. 정치적으로 패배한 자는 소련 정부가 절대로 살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차피 대통령직을 이양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해도 자기와 가족은 몰살한다.
다만 오늘 죽는가, 한 달 후, 또는 1년 후에 죽는가가 다를 뿐이다.
그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절대 스스로 이양하겠다는 방송 성명서를 읽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시간을 끌어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는 그것밖에 없으므로···.
DG그룹 본사 회장 집무실.
‘역사는 변하지 않았군! 끝내 쿠데타가 일어났어!’
이준은 집무실의 창가에 서서 모스크바 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 8시, 모스크바 군관구 산하 전차부대들이 시내로 진입하였다.
KGB의 검과 방패 완장을 두른 스페츠나츠부대들이 크렘린궁을 빙 둘러 바리케이드를 쌓고 기관총들을 시내를 향해 설치하였다.
전차들 또한 상당수가 크렘린 방어에 동원되었다. 그들은 육·해군 합동참모본부를 점령하였고 중앙방송국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짤막하게 성명을 발표했다.
“불순한 세력이 무장 폭동을 기도하므로 군이 출동하였다”라고!
하지만 지금 모스크바 시민 중 그것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이건 군사쿠데타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 쯤 고르바초프를 회유하고 있겠군!’
원래 역사에서 쿠데타 세력은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 이양을 절대 허락하지 않자 1억 달러의 돈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망명하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대통령직 이양을 요구했다.
그때 DG그룹 본사의 정문으로 국가보안부 FSB 약장을 박은 SUV 한대가 맹렬하게 달려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삐이익~
SUV는 본사 청사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걸며 정지했다. 차에서 튀어 내려 달려들어 오는 사람은 FSB 중령 사라 푸틴이었다.
“왔군!”
이준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어제 저녁, 이준은 사라 푸틴에게 미리 도청 장치들을 부통령실에 설치하게 했다.
또한 부통령실의 모든 전화들을 도청하여 녹음하게 했다. 이 쿠데타를 뒤집어 엎기 위해서였다. 지금 달려오는 사라 푸틴을 보니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았다.
“아르진!”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이닥친 사라 푸틴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쿠데타가 일어날 걸 어떻게 알았어?”
“나에게도 정보 조직이 있으니까!”
“DG 전략기획부?”
“그것도 있고···.”
이준이 녹음기를 손에 들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부통령 겐나지 야나예브가 고르바초프를 협박하는 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사라. 나와 함께 국회로 가자.”
“구, 국회?”
사라 푸틴의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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