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쿠데타(1)
“뭐든지 하겠다고 했나? 아브라힘!”
“예,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소, 그러니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시오.”
아브라힘은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죽고 싶은 생명체가 어디 있겠는가?
하다못해 지렁이도 죽으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아브라힘은 엄청난 재산을 모은 재벌이다. 그로서는 재산을 모아 놓기만 하고 아직 맘껏 즐기지 못했다.
그게 인간의 욕심이다.
“여기에 사인을 해라. 그럼 널 살려주지!”
이준이 하나의 서류를 아브라힘의 앞에 던졌다. 철썩 떨어진 서류철을 집어 들어 펼친 아브라힘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것은 아브라힘이 가지고 있는 강철 주식회사의 주식 지분을 모두 이준에게 넘긴다는 매매합의서였다. 이건 매매함의서가 아니라 강도질이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아브라힘의 입에서 억울하고 분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브라힘이 가진 주식은 강철 재벌 주식의 74%로 100억 달러에 달한다.
그걸 공짜로 넘기라고 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준은 냉정했다. 그의 입에서 담담하나,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굳이 안 해도 된다. 너를 죽인 다음 지장을 찍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 그런···.”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아브라힘 자기도 다른 회사를 빼앗을 때 그런 방법을 썼지 않는가?
아브라힘은 자기도 재산을 빼앗긴 다른 재벌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이 순간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는 자기가 강자였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강자는 자기가 아니다.
바로 눈앞에서 보드카를 마시고 있는 이준이다.
“이걸 모두 뺏기면 내가 살아봐야 무슨 재미가 있겠소, 차라리 그냥 죽여주시오.”
그러자 이준이 냉혈 동물처럼 차가운 눈으로 아브라힘을 보며 말했다.
“너, 124억 달러를 비자금으로 영국 은행에 넣어두지 않았나? 그 돈도 부족해?”
“그···.”
맞다! 아브라힘은 영국의 <뉴잉글랜드 뱅크>에 124억 달러를 저축해 놓았다.
아무도 모르게...
‘저 귀신같은 새끼,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려운 게 아니다. 이준에게는 FSB의 방첩 과장 사라 푸틴이 있다. 그녀는 이준이 알아봐달라는 정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내어 알려준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그 상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법이다.
“아브라힘, 결심해라. 그 돈이면 네 가족들과 대를 이어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싫으면 여기서 내가 죽여주마!"
아브라힘은 머리를 푹 꺾었다. 결국 기업은 뺏길 수밖에 없다.
사인하지 않으면 저 악마 같은 새끼는 자기를 죽이고 지장을 찍을 테니 그건 개죽음일 뿐이다.
‘그래, 찍어주마, 하지만 두고 봐라. 언젠가는 반드시 이 치욕을 돌려줄 것이다.’
하지만 두고 보자는 소리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한국의 속담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아, 알겠소, 사인하리다!”
아브라힘은 체념했다. 다 빼앗기든가, 죽던가, 보다는 124억 달러가 있으니 그 돈으로 평생 잘살 수만 있다면 그 또한 행복에 겨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포기했다. 하지만 유대 국제 금융 카르텔(FCI)이 그를 그냥 놔둘까?
결국 아브라힘 강철 재벌은 그들의 돈으로 세웠는데···.
아마 비겁한 아브라힘을 반드시 암살할 것이다. FCI에게 끈 떨어진 신세가 된 아브라힘 하나 죽이는 것은 어린 아이 손목 비틀기나 같다.
하지만 지금 아브라힘은 그것을 생각해볼 새가 없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올인 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중으로 영국으로 떠나라,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그곳에서 다시는 러시아 땅으로 오지 마라. 내 말을 잊고 다시 러시아 땅을 밟는다면 너는 죽는다!”
섬뜩한 경고였다. 아브라힘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
<아브라힘 강철 주식회사, DG그룹에 지배주식 74%를 전격 매매!>
<아브라힘그룹을 인수한 DG그룹, 이로써 러시아 100대 재벌 중 최선두그룹을 차지!>
사실이다. 러시아의 강철 광산들은 대개가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에 분포되어 있다.
만약 제철소와 제련소가 시베리아로 옮긴다면 운송비를 엄청나게 줄일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강철의 단가로 낮출 수가 있다. 또 사람이 적은 시베리아에 인구를 증가시키는 기관차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강철 주식회사의 근로자만 해도 15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에 딸린 가족 100만 명이 동쪽으로의 대 이주를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살 집을 다 건설한 다음이겠지만...
이준은 DG그룹의 기본계열사들을 이르쿠츠크로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라고도 불리는 이름다운 도시다.
이르쿠츠크의 옆에는 육지 속의 바다라고 부르는 바이칼 호수가 있다. 바이칼 호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민물 호수이며, 수심 40m까지 내려다 보일 만큼 투명하여 '지구의 푸른 눈'이라고 불린다.
겨울에 얼었을 때 위를 걸으면 바닥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호수이기도 하다. 면적은 31,722㎢로, 세계에서 7번째로 큰 호수이며 평균 수심은 774m, 최대 수심은 1,637m로 무지막지하게 깊다.
바이칼 호수의 특이한 점은 강이다. 약 300개가 넘는 강이 전부 바이칼호로 흘러든다. 하지만 흘러나가는 강은 유일하게 단 하나, 바로 안가라강이다.
이르쿠츠크시는 바로 이 안가라강 옆에 세워진 도시다. 안가라강이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 나가는 강이기에 호수가 오염될 염려도 없다.
인구 70만 명의 이 도시에 DG그룹의 강철 계열사가 이동하면서 인구 100만이 합쳐지면 단숨에 170만 명의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몇 년 안에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가장 큰 도시로, 또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성장하게 될 것이었다.
DG그룹은 이르쿠츠크시에 100만 호의 집과 공장 지대를 건설합니다. 여기에 그룹의 DG 건설사가 투입 됩니다. 따라서 DG 건설사는 새로운 사원들을 받아들입니다. 새로 입직하는 분들은 정년퇴직까지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보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DG그룹의 건설사와 함께 할 분들은 사원 모집에 참여하십시오!
DG그룹 건설사 인사부.
1991년 7월 25일.>
이준이 한창 시베리아의 중심도시로 이르쿠츠크시를 확대 건설할 때 모스크바의 소련 KGB에서는 쿠데타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소련을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망하게 한 8월 사변이다.
모스크바강의 KGB 안가.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 가지로 뒤덮인 안가는 사람이 없는 집처럼 조용했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시각, 이 집 마당에 들어서면 소음기를 끼운 저격수의 총탄에 단박에 쓰러졌을 것이다.
안가를 중심으로 수십 명의 저격수가 배치되었고 KGB 특수임무대 300명이 주변에 비트를 파고 들어가 매복해 있었다.
“동지들, 우리는 지금 1917년 레닌 동지께서 10월 혁명으로 세운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으며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방안은 화끈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약 30명의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소비에트 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
국방부의장 드미트리 야조프,
KGB 의장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
KGB 스페츠나츠 부대 사령관 올레그 바클라노프,
소비에트 내무부장 보리스 푸고,
소련 공산당 부 총서기 발렌틴 파블로프,
그리고 모스크바 군구의 기갑부대 장군들과 사령관들이었다.
“동지들, 우리 공산당에 숨어들었던 반동 분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은 회색분자인 고르바초프가 총서기가 되면서 일시에 일어나 사회주의 체제를 뒤집어 버리고 있습니다.
놈들은 공산당원이라는 가면을 쓴 바퀴벌레들입니다.
우리는 적백내전의 불길 속에서 1천만 명의 피로 세운 사회주의 체제를 허물려는 저들을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에 나는 소련 공산당 부 총서기로서 선언합니다. 혁명(쿠데타)을 일으켜 배신자들을 모두 쓸어 버리고 사회주의를 고수해야 합니다. 찬성하십니까?”
“옳소.”
“찬성합니다.”
“지지합니다.”
그리하여 8월 비상 혁명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비상 혁명 위원장에 현 부통령인 겐나디 야나예프.
비상군사령관에 국방부의장 드미트리 야조프,
비상내무 위원장에 스페츠나츠 사령관 올레그 바클라노프가 임명되었다.
혁명 개시일(쿠데타)은 고르바초프가 크림반도로 휴가를 간 이틀 후인 8월 18일 새벽 6시로 정하였다.
쿠데타 병력은 모스크바 군관구의 제327 기갑군단, 98 전차 군단, 스페츠나츠 부대 3만 명. 모스크바 군관구 제5 보병집단군 25만 명이었다.
“그런데 제5 보병집단군 병사들이 우리 혁명에 동조할까요?”
소련 공산당 제2 비서가 물었다.
그러자 모두의 눈이 비상 혁명 위원장 겐나디 야나예프에게로 집중되었다.
사실 이번 쿠데타에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레닌이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때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때 혁명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97%가 문맹자였고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루 일하고 집에 돌아가 아내와 자식들과 밤을 자고 다시 출근하던 사람들이 바로 10월 혁명의 주체였다.
그들은 공산당 선동원들에게 쉽게 감화되었고 자기들이 잘 살려면 부자들을 모두 쓸어 버려야 한다는 말에 무기를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다르다. 모두가 고등교육을 받았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인구의 30%에 달한다.
또한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텔레비전과 방송, 인터넷을 통해 자유와 인권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이런 형편이니 과연 병사들이 혁명에 동조할지 근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군대란 상명하복이오. 집단군 사령관과 각 부대장은 우리 혁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명령을 내리면 군대는 움직이게 되어 있소.
일단 움직여서 크렘린을 포위했을 때 실상을 알아차려도 그때는 늦었지,
모든 병사는 그 상황에서 배신하면 야전에서 총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혁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소!”
“그럼 혁명이 일어나는 날까지도 병사들에게 실상을 알려줄 수 없군요?”
“그렇소, 처음에는 훈련으로 밀고 갈 것이고 모스크바의 크렘린과 방송국을 점령한 다음, 그때 알려줄 것이오, 혁명이라고!”
“으음,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각 부대의 장군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날짜는 하루하루 흘러갔다.
1991년 8월 16일, 고르바초프는 공식 일정에 따라 여름 휴가를 위해 크림반도로 가족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에 부통령이며 비상혁명위원장인 겐나디 야나예프가 대통령 대리가 되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18일 아침 6시, 크림 반도에 있는 대통령 별장으로 KGB의 스페츠나츠 2개 연대가 쳐들어갔다. 쿠데타의 시작이었다.
200명의 고르바초프 경호원들은 장갑차를 앞세운 6천명의 스페츠나츠부대원이 밀려들자 반항도 못해보고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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