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푸틴의 막내 동생-17화 (16/98)

제17화. 다섯쌍둥이.

대기실에 앉은 안드레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초조해졌다.

왠지는 모르지만, 불안감이 든다.

‘내가 정보국에서 손을 놓은 지 6년인가?’

최하층민인 노가다 생활을 너무 오래 한 후유증이다. 노숙자나 노가다는 눈치는 빨라야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표범이 토끼로 변한 것처럼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진다.

‘젠장. 망할!’

그가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문이 열리더니 블라디미르가 나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블라디미르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그 순간, 안드레에는 자기의 불안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곳에 취직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까, 라는 걱정이었다.

‘내가 이리도 속물이었나?’

6년 전, KGB에 사표를 던지고 나올 때 안드레이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아내와 자식들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부패한 지도부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 덕에 아내는 가정부로, 양로원 요양사, 거리의 미화원, 화장실 청소공으로 인생의 최하바닥 일이란 일은 모두 했다.

모두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한 피나는 싸움이었다. 그때 안드레이는 알았다.

가족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은 자기의 경솔함을!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 6년 동안 사표를 낸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더 블라디미르에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블라디미르의 얼굴은 밝았다.

“잘됐네, 어서 들어가 보게!”

“예? 아, 예!”

안드레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부터 했다.

“이전 소련 KGB 정보국 정보 제2과장이었던 안드레이 마시코프입니다. 사장님!”

안드레이는 그냥 숨도 안 쉬고 냅다 말했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그의 코앞에 다다른 이준이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세요. 안드레이 과장님. 이렇게 만나서 기쁩니다.”

“저, 저도 반갑습니다!”

안드레이는 이준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때야 얼굴을 들어 이준을 보았다. 그리고는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맙소사, 이렇게 어렸단 말인가?’

안드레이도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얘기를 들었다.

“신화창조 투자사”의 사장이 너무 동안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 어린 줄은 정말 몰랐다.

눈앞의 청년은 희고 맑은 피부에 훤칠한 키, 어깨가 쩍 벌어진 멋진 남자였다.

하지만 아직도 솜털이 돋아 있고 우유처럼 뽀얀 피부는 겨우 19, 20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FSB 방첩장교 사라 푸티나는 이 어린 사장이 옐친의 경제정책에 막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하여 아무리 어려도 20대 중반, 많으면 30대 중반은 됐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 보일 줄은 몰랐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무엇을 마시겠습니까? 안드레이 과장님.”

“전 커피를 좋아합니다.”

“그럼 커피 한잔과 차 한잔을 가져오세요.”

“예. 사장님.”

여비서가 나갔다가 커피와 차를 가져왔다.

둘은 한 모금씩 마신 후에 이야기에 들어갔다.

“안드레이 과장님. 제가 여러 회사와 은행을 통합하여 단군 그룹(Dangun Group), 약칭 DG 그룹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룹을 만들면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보입니다.

나는 우리 단군 그룹에 전략기획부를 설치하고 부장에 블라디미르 야첸코를, 정보국장에 안드레이 마쉬코프, 당신을 임명하려 합니다.

연봉은 1억 루블, 복지는 따로 있고 아이들의 학비는 대학까지 장학금제입니다. 어떻습니까? 나와 손을 잡고 DG그룹을 이끌어 나가고 싶지 않습니까?”

‘맙소사, 연봉 1억 루블이라니?“

도대체 1억 루블의 돈이 얼마만큼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때 이준이 쐐기를 박았다.

”어떻습니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나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건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오히려 사장이, 아니 앞으로 회장이 될 사람이 매달리는 형국이다.

안드레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부동자세로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무슨 일을 하든 써주기만 하면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보국장님!“

두 사람은 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준이 서랍에서 통장과 부동산등기부등본을 꺼내 안드레이 앞에 밀어 놓았다.

”통장에는 정보국장님을 스카우트하는 현금 300만 달러(러시아 돈으로 3억 루블)가 들어 있습니다. 가족의 생활비입니다. 그리고 건물 등기부등본은 국장님의 집입니다.“

등기부등본에 있는 집은 커다란 장원이다.

현재 모스크바에서 이런 장원을 살려면 수십억불을 주어야 한다.

안드레이는 사양하지 않았다.

집 없고 돈 없는 설움을 지난 6년 동안 뼈가 저리게 느낀 그다.

이제 더 이상은 아내에게 면목이 없는 남편이,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굳은 의지를 다졌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리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안드레이 국장님.”

“충, 성!”

안드레이는 눈물이 그렁해서 옛 KGB의 대령 때처럼 거수경례를 했다. 하긴 이제부터 그는 “DG그룹 전략기획부 정보국”국장이다.

계급장은 붙일 수 없지만, 정보국 국장이면 사실 소장급이다.

“이제야 정보국을 갖추게 되었군!”

제일 먼저 해야 했을 부서였다. 지금도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이준은 한시름 놓았다. 저들은 KGB에 있을 때의 인맥을 동원하여 자기들처럼 백수가 되어 있거나 막노동을 하는 유능한 요원들을 데려올 것이다.

하지만 이준이 할 일은 정보국을 꾸리는 것만이 아니다.

“이젠 러시아 과학자들이 외국으로 스카우트 당하여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소련에는 우주과학자, 전자통신 과학자, 항공 기술 과학자, 전차와 잠수함, 이지스함, 비행기를 비롯한 방위산업 과학자와 기술자가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많았다.

하지만 소련이 멸망의 길로 내달리기를 6년째, 바로 1990년대부터 그들은 소련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 각국이 소련의 과학자, 기술자를 스카우트했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과학자의 대우는 공산당 간부보다 더 높았다.

그것은 제2차대전을 겪으면서 과학자가 국가의 흥망에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련이 멸망의 막장으로 들어가면서 월봉도 줄어들거나 몇 달씩 체불 되었고 대우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기회를 노려 전 세계 국가들은 소련의 과학기술자를 자기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지금은 9월, 아직 3개월이 남았다. 12월부터 과학자 쟁탈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전에 모든 과학자를 “DG그룹(단군그룹)”에 흡수해야 했다.

이준은 버튼을 눌렀다.

<예. 사장님.>

여비서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서실장을 들여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잠시 후 이준은 앞에 앉은 비서실장과 과학자, 기술자 스카우트에 대하여 토의하였다.

이틀 후인 1990년 9월 21일. 모스크바 북부 행정구에 “DG그룹(단군그룹)”이 세워졌다.

본사는 “신화창조 투자사”의 건물을 그대로 썼고 그룹은 계열사로 DG은행, DG 우주항공회사(인공위성, 유인위성, 정찰 위성, 공격위성, 우주로켓), DG전자반도체회사, DG 전차회사. DG 항공기회사(헬기, 전폭기, 수송기, 여객기), DG 잠수함회사. DG이지스선박회사. DG무역회사, DG 건설회사, DG 운수회사, DG 철도회사, DG 생물 연구소, DG 의약품 연구소, DG 경호회사 등 14개의 계열사로 이루어졌다.

모두 북부행정구에 있던 중대형기업 3,210개. 소형 기업 4만 개를 인수하여 계열사로 만든 것이었다.

9월 22일. 러시아의 모든 TV 채널들과 방송, 신문들에는 광고가 실렸다.

우리 DG그룹은 모스크바 북부행정구 로스짜야 거리 7-45번지에 있습니다. 과학자와 기술자는  아무리 등급이 낮아도 부인이나 본인의 출산부터 회복까지 모두 그룹이 돈을 대줍니다.

또 과학자와 기술자의 아이들은 몇 명이든 상관없이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룹에서 장학금과 그들의 생활비까지 보장합니다.

당신들이 살집을 무상으로 지급하며 필요하다면 개인연구소도 지어줄 것입니다.

오세요, 우리 DG그룹으로, 서로 손을 잡고 열심히 과학을 연구해봅시다.

1990년 9월 22일.

러시아공화국 DG그룹 회장 아르진 리.>

광고가 매일 각 TV에 실리자 러시아 전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렵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다.

월급도 몇 달씩 밀려 매 끼니를 걱정하던 과학자와 기술자가 너도 나도 모스크바 DG그룹을 향해 떠났다.

연봉도 억대이고 출산은 물론이고 집까지 주며 아이들의 대학까지 모든 비용을 담당한다고 하니 누구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광고가 나가고 열흘 후, DG그룹 본사는 사람 홍수가 났다. 전국의 과학자 기술자가 DG그룹으로 밀려든 것이다.

이준은 DG그룹의 간부진들을 총동원하여 그들을 면접하고 새로 산 집에 입주시켰다. 탈락은 한 명도 없다. 다만 과학과 기술 수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질 뿐이었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정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이준은 붉은 저녁노을이 물드는 창가에 서 있다가 인사과의 전화를 받았다.

“나, 회장입니다.”

그러자 수화기 안에서 숨 가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회장님. 여기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다섯쌍둥이가 나타났는데, 엇, 무슨 짓이냐?>

인사과장의 쉰목소리가 갑자기 고음으로 변했다.

그때 이준은 독특한 소리를 들었다.

“이봐요. 할아버지. 좀 조용히 하세요.”

맑고 낭랑한 여아의 목소리다.

<저기요. 그쪽이 단군그룹 회장 아르진 리인가요?>

목소리를 봐서는 아직 변성기에도 오지 못한 10세 미만이다.

이준은 흥미를 느꼈다.

“그래. 내가 DG그룹 회장, 아르진 리다. 너는 누구냐?”

<난 블라디보스토크의 고려인거리(옛. 신흥촌지구)에서 온 다섯쌍둥이의 첫째 누나인 최천주입니다. 러시아 이름으로는 타냐 초이고요!>

“음, 그렇구나! 그럼 묻자. 최천주.”

<예. 말씀하세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우리 다섯쌍둥이를 단군그룹 연구소에 입소시켜주세요. 그럼 회장 아저씨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후회하지 않는다?”

<당연하죠. 우리 다섯쌍둥이는 천재들이거든요!>

“허···.”

이준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그럼 올라와라. 기다리겠다!”

<오케이! 역시 아저씨는 회장 그릇이네요! 곧 만나요, 회장 아저씨.>

그리고 전화가 뚝 끊겼다. 이준은 풀썩 웃었다.

참으로 당돌한 애들이 아닌가? 그래도 밉지 않다.

천재가 아니라도 저런 애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밀어주고 싶다.

“그래. 내 자식들을 키우는 셈 치면 되는 거다!”

더구나 저 애들은 한민족의 아이들이 아닌가?

이준은 그들, 다섯쌍둥이를 기다렸다.

이준은 이때만 해도 짓궂은 어린애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품에 천년에 한 번 태어날까말까한 천재들이 무려 다섯 명이나 뛰어들었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 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