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푸틴의 막내 동생-16화 (15/98)

제16화. 사라 푸틴.

“뭐, 실패라고?”

예후다 로스차일드는 어이가 없었다. MIS의 블러드 데빌은 악마 같기로 유명하다.

적으로 인정한 상대는 모조리 죽여버리는 그 잔인성 때문에 같은 전국구 마피아들도 꺼린다.

그런 블러드 데빌이 동원되고도 졌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르진 리에게는 블러드 데빌보다 더 강하고 무자비한 부하들이 있단 말인가?

“아르진 리의 경호원들이 강한가?”

“아닙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짜 강한 자는 바로 아르진 리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각하. 이번 싸움에서 신화창조 투자사는 오직 아르진 리, 한 명만 나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 답답하군, 빨리 말해봐라.”

“예. 각하. 아르진 리는 한번 도약하면 100미터를 날아가고 주먹으로 한번 치면 콘크리트 담벼락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너무 빠르고 너무 강해서 블러드 데빌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MIS회장 친위대도 항복했다고 합니다.”

콰앙~

예후다 로스차일드가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 위에 있던 꽃병이 허공에 떴다가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예후다 로스차일드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욕질을 했다.

“언제부터 로스차일드가의 정보력이 이리도 한심해졌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100미터를 도약하고, 어떻게 사람이 주먹으로 쳐서 콘크리트 담벼락을 무너뜨린다는 황당무계한 일을 정보라고 보고한단 말인가? 대답해라. 야콥스키!”

“죄, 죄송합니다. 가주님.”

야콥스키는 납작 엎드렸다. 사실이지만 가주가 믿어주지 않으니 무조건 빌어야 했다. 영국 금융계의 왕, 예후다 로스차일드 공작은 영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실체 없는 그림자 정부의 보스다.

예후다 로스차일드가 한번 명령을 내리면 지구상 수십 개 나라가 내전에 휩싸이거나 대공황에 걸려 거덜이 난다.

실제로 전 세계를 통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위대한 가주가 러시아에 와서 한국인과 러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일개 혼혈아에게 번번이 헛물을 켜고 있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 가주님. 진정하십시오. 놈이 얼마 후에 중국의 할 빈에 간다고 합니다.”

“할 빈에?”

“예. 동방 무역권을 독점했으니 중국의 값싼 곡식과 채소를 대량으로 들여와 러시아 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할 빈에 우리 분점이 있나?”

“예, 우리 직계는 아니고 스위스에 있는 아합 로스차일드가의 분점인 라파엘뱅크가 있습니다. 각하.”

“지급으로 타전하라. 그곳에서 반드시 놈을 죽이라고, 방법은 무엇이든 가릴 것이 없다!”

“예썰!”

***

8월 한 달을 이준은 바쁘게 보냈다. 일단 접수한 마피아조직“MIS”를 전면 개편했다. 쓸모없는 개똘아이, 양아치들은 모두 내보냈다.

그들 중에서는 반항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항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준에게서 살인 면허를 받은 블러드 데빌은 이준의 명령에 반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여 땅속에 묻어버리거나 발에 무거운 돌을 달아 깊은 강이나 호수, 바다에 처넣어 버렸다.

블러드 데빌은 이제 완전히 이준의 심복들이 되었다. 그다음은 전국에서 정보기관에 종사하던 자들을 비밀리에 뽑았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도기,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이때는 수많은 정보국 산하의 요원들이 해직당했다.

그들은 백수로 살거나 아니면 마피아로 들어갔고 일부는 막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브레스트시의 쓰레기 처리장.

모스크바에서 브레스트시까지의 거리는 1,771km(4,450리)다. 또 브레스트시는 소련의 북서 국경도시로 사람이 북적거리는 관광의 도시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아서일까? 브레스트시에서 나오는 하루 쓰레기는 수백 톤에 달한다.

“휴식, 30분 휴식 시간이다!”

여기는 쓰레기 소각로가 있는 처리장이다. 남루한 옷을 걸친 일용직 노동자들이 온갖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장에 털썩털썩 주저앉아 물을 마셔 갈증을 식히고 있었다.

“이봐. 안드레이. 이 물 마시게!”

건장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하며 물통을 건네주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한 바퀴 돌며 마신 물통이다.

그래도 안드레이는 서슴없이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예전이라면 생각지도 못 할 일이다. 늘 너무 깔끔해서 결벽 주의자라고 불리던 안드레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결벽 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보였다.

“후우~”

물을 마시고 난 안드레이의 입에서 긴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제수의 병이 더 심해지고 있나?”

“그냥 그렇죠. 뭐!”

“으음. 이 형이 못나서 도움 하나 주지 못하네,  정말 미안하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후반의 남자, 블라디미르는 소련 시대 브레스트시의 KGB 지부장이었다.

또 안드레이는 KGB의 정보과장이었고! 소련이 멸망의 순서를 밟아 가면서 나라에는 뇌물 행위가 점점 노골적으로 일어났다.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상급자는 더 높은 상급자에게 뇌물을 바쳐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블라디미르는 정보에서는 밝지만 인맥 관계는 제로였다.

그의 신념은 하나,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직장을 유지하랴! 어느 날, 블라디미르와 안드레이는 똑같이 실직당했다.

그리고 지금 KGB에서 일하는 자들은 정보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인 거죠!”

“그 사람”이란 안드레이의 아내다. 올해 37세인 그의 아내는 심장병으로 오늘내일한다. 심장을 바꾸지 못하면 곧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심장을 바꾸어줄 돈이 없다. KGB에 있을 때 부정 축재를 범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안드레이가 KGB에 있을 때 다른 사람처럼 부정 축재를 했다면 지금쯤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지금은 노가다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정말 자넬 볼 면목이 없군!”

블라디미르가 중얼거릴 때였다. 새카만 고급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쓰레기장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노가다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장 썩는 것 같은 온갖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 소각로에 최고급 승용차가 들어온 것도 괴이한 일인데 문이 열리고 내려서는 사람을 본 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내려선 사람은 뜻밖에도 미모의 모습에 소위의 계급장을 어깨에 붙인 묘령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노가다들이 퉁방울눈이 되어 쳐다보든 말든, 냄새가 나든 말든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녀는 똑바로 걸어 블라디미르와 안드레이가 앉아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연분홍빛 입술이 열렸다.

“블라디미르님과 안드레이님이시죠?”

“아가씨는 누구요?”

블라디미르가 물었다. 그러자 아가씨가 증명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맑게 웃는 사진이 붙어 있는 증명서는 “FSB(러시아정보국)”의 신분증이다.

“전 FSB의 방첩장교, 소위, 사라 푸틴입니다. 선배님들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척!

그녀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도 안드레이도 그녀가 온 것이 별로 시답지 않은 태도다.

그동안 수많은 곳에서 그들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모두 거절한 두 사람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사라 푸틴의 해맑은 얼굴에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안드레이선배님. 이건 신화창조투자사의 사장님께서 쓴 편지입니다. 읽어 보십시오.”

그녀가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주었다.

“신화창조 투자사?”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님께서 직접 명령하셔서 제가 왔습니다.”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라면, 설마, 옐친?”

“왜 아니겠어요. 그분이 맞습니다.”

안드레이가 편지의 겉에 적힌 글을 보고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이 신화창조 투자사 사장이란 사람은 뭐요?”

“그냥 민간 기업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더 묻지 마세요. 제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예요!”

사라 푸틴이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조금은 차가운 느낌이던 사라 푸틴의 얼굴이 도도하면서도 차가움과 따뜻함을 주는 아네모네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크, 사내 몇십 명을 작살낼 미모로군!’

블라디미르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오랜 정보요원으로서 본능적으로 자기를 감추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후다닥!

편지 봉투를 뜯어서 내용을 읽던 안드레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블라디미르가 화들짝 놀랐지만 지금 안드레이는 그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게 사실이오? 내 아내의 심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말이오?”

그러자 여장교, 사라 푸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마 사실일걸요! 난 그 사장을 만나보지 못해서 잘 몰라요. 하지만 하나는 알죠. 이 러시아 땅에서 가장 돈 많은 갑부가 그 사람이란 것을요!”

“이분, 혹시 올리가르(신 재벌)히요?”

“아뇨. 하지만 올리가르히들도 그 사람에 비하면 상대가 안 돼요. 돈이 워낙 많은 사람이니···.”

“으음!”

“왜 그러나? 안드레이!”

“이걸 보십시오, 형님.”

“뭘 보고 그리 놀라는 게야? 헉!”

편지를 받아 읽던 블라디미르의 눈이 커졌다. 그가 편지를 봉투 안에 넣고 말했다.

“일단 가세,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해볼 새가 없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형님.”

이날, 안드레이와 블라디미르는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모두 비행기에 올랐다. 이 비행기는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직접 보내준 대통령 전용기였다.

‘대체 신화창조 투자사의 사장은 어떤 자일까?’

두 사람보다 더 궁금한 것은 FSB의 방첩 장교 사라 푸틴이었다. 그녀는 오늘 갑자기 대통령이 불러 갔다.

그 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는 명령을 받았다. 자기의 전용기를 타고 가서 두 사람을 데려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편지를 한 통 주었는데 편지는 옐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물었다.

“각하. 이건 무슨 편지입니까?”

“보다시피 신화창조 투자사 사장의 편지일세!”

“그니까, 대통령님께서 일개 투자회사 사장의 편지를 왜 갖고 있냐는 것입니다.”

“그야 그 사장이 부탁해서지!”

당돌하게 묻는 사라 푸틴의 말에도 옐친은 더 이상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 전용 비행기를 내주었고 자기의 고급승용차도 내주었다.

‘뭐지? 이 자식은? 혹시 옐친의 사생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녀가 대통령 전용기에 오를 때까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르진 리라는 사장은 26세이며 모스크바 종합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부모는 국경 장사를 하다가 차 사고로 죽었고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바이칼 주변에 거대한 금광맥을 발견,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금광 하나만으로 러시아 최고 갑부가 될 수 있을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아무래도 조사를 해봐야겠어!’

사라 푸틴, 끈기의 결정체인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때부터 사라 푸틴은 자기의 직위를 이용하여 이준을 끈질기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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