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수사자.
“야, 니들, 대장을 살리고 싶으면 총을 내려놔.”
하지만 마피아들은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준은 부관장 하벤스키 목을 한 층 더 옥죄이면서 말했다.
“쟤들, 너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해주지, 그랬냐? 쯧쯧!”
이준의 말에 하벤스키의 얼굴이 삶은 돼지 간처럼 벌겋게 변했다. 조직의 이인자로서 부하들 관리를 잘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보다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는 하벤스키에 그말은 모욕이었다.
‘시벌. 개새이들!’
수치와 분노로 부관장 하벤스키의 귀에서 연기가 났다. 마치 용광로의 굴뚝처럼!
그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어느 새끼가 아직 총을 들고 있냐? 당장 내려놓지 못해? 이 새끼들아!”
“어, 어떻게 할까요? 대장님.”
행동대장 호티넨코의 심복인 야로치가 물었다.
그 순간, 호티넨코는 저도 모르게 부관장의 얼굴을 봤다. 비록 목은 이준에게 잡혀 있지만 그의 두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것 같은 살벌함이 느껴졌다. 자칫했다가는 부관장 하벤스키에게 찍힌다.
부관장은 사실상 “MIS”의 참모장과 같다. 그건 조직의 넘버투라는 뜻이다. 만약 넘버투에게 찍히면 조직 생활을 참으로 힘들게 해야 한다. 그건 절대 사양이다.
호티넨코가 부하들에게 버럭 소리쳤다.
“뭘 물어, 새꺄, 당장 총을 내려놔.”
“예. 대장님!”
부하들은 철컹 총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철컹, 철컹, 철커덩~
50명의 마피아가 서로 경쟁하듯이 잽싸게 총들을 내던졌다.
“음. 그래도 아주 인심을 잃은 것이 아니었군! 좋아. 널 살려주지.”
이준은 조이고 있던 하벤스키의 목을 놔주었다.
“컬럭, 컬럭!”
‘빌어먹을!’
무슨 놈의 손아귀 힘이 그리도 강할까?
놈이 목을 놓아주었는데도 아직 목이 놈의 손에 잡혀 있는 느낌이 났다.
게다가 어린놈인데도 아우라가 광휘처럼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타고난 리더십인가?’
“이름이 뭐냐?”
“하, 하벤스키요!”
“MIS의 넘버투라? 하벤스키, 니, 대가리에게 전해. 내가 오늘 저녁에 혼자 간다고.”
“알···.았습니다!”
하벤스키는 어린놈의 말만 들어도 온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자들이 부하들의 무기를 회수하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하벤스키는 저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경호원들이군!’
경호원들이지만 하나같이 팽팽한 군기가 잡혀 있다. 저들은 자기의 행동대 같은 부류가 아니다.
삶과 죽음의 숲을 수없이 넘나든 전사의 기상이 풍겼다.
‘음! 신화창조 투자사는 마피아와는 다른 무서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하벤스키는 겉으로는 표정을 관리했지만, 속으로는 경악하고 있었다. 그도 한때 스페츠나츠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 때문에 스페츠나츠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며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인지 너무도 잘 안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자들이 부지기수다.
만약 저런 자들이 100명만 있어도 이곳은 용담호혈이 분명했다.
***
“뭐, 무기까지 뺏기고 개처럼 쫓겨 왔단 말이냐?”
“MIS”회장 지지킨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의 행동대 50명이 모두 무기를 빼앗긴 채 비루먹은 당나귀들처럼 쫓겨왔다.
그것도 대낮에···.
상대는 단 한 명, 아르진 리라는 놈에게 겁을 먹고, 말이다.
이 사실이 마피아 세계에 퍼져 나가기라도 한다면 “MIS”는 문을 닫아야 한다.
일개 투자사 사장에게 조직의 기본 싸움꾼들인 행동대 50명이 통째로 당했으니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
워낙 마피아 세계는 하이에나의 세상이나 같다. 상처를 입고 부상을 당하면 아무리 우두머리라도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새로운 하이에나가 나타나서 우두머리를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해지고 부상을 입은 하이에나는 무리에서 떠난다.
죽임을 당하기 전에···.
마피아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제 다른 마피아들이 호시탐탐 달려들 기회를 노릴 것이다.
전국구 넘버 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하지만 난 지지킨이다. 절대 넘버 원의 자리를 내줄 순 없다!’
지지킨은 명령을 내렸다.
오늘 저녁 “신화창조 투자사.” 사장 놈이 나타나면 무조건 목을 베라고!
그래야만 MIS의 체면을 살릴 수 있다.
그로 인해 지지킨은 MIS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야수들이나 같은 “블러드 데빌(피의 악마)”을 비상 소집했다.
“블러드 데빌”은 평소에는 삶을 즐긴다. 그들이 술독에 빠져 있던 도박을 하든 계집질을 하든 지지킨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풍족하게 쓸 돈만 대준다. 그러나 비상 소집을 하면 그들은 완전 무장을 하고 즉시 모여든다. 바로 지금처럼!
100명의 “블러드 데빌”이 지지킨의 앞에 정렬해 있었다.
그들을 보자 지지킨의 마음도, 투지가 살아났다.
예전 마피아 초기 때처럼···.
“잘들 있었나?”
“예, 보스!”
100명의 블러드 데빌이 힘차게 대답했다. 힘이 솟는다. 이들만 있다면 어떤 싸움이든 이긴다는 신념이 솟구친다!
“잘 들어라. 오늘 나의 행동대 50명이 한 놈에게 겁을 먹고 무장해제를 당하고 쫓겨왔다.”
그 말에 블러드 데빌들이 웅성거렸다. 자기들보다는 악도 깡도 부족한 것이 행동대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전국구 마피아의 전투부대이다.
그런 자들의 투지가 약할 리 없다.
그런데도 단 한 명에게 제압당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어떤 자인지 보고 싶다!
“그자가 오늘 저녁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통첩을 보내왔다. 나는 너희들의 보스로 이제 명령을 내린다. 받들겠는가?”
“예. 보스!”
“놈을 죽여라. 총으로 죽이든, 칼로 죽이든, 찢어 죽이든, 삶아 죽이든, 죽이는 방법은 상관없다. 놈을 죽여 떨어진 우리 MIS의 위신을 세워라.
나는 보스로서 이것을 너희들에게 명한다.”
“충!”
블러드 데빌이 충성을 외쳤다. 그리고 블러드 데빌 대장의 지시하에 사방으로 흩어져 잠복했다. 그리고 저녁이 왔다.
러시아의 겨울은 엄청 춥다. 하지만 여름은 적도 지방처럼 뜨겁다. 단 낮뿐이다.
밤이면 서늘한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그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은 낮에는 짧은 바지에 상체는 얇은 티셔츠 한 장을 입고 지낸다. 그래도 땀이 철철 흐른다.
하지만 밤에는 코트를 입는다. 밤낮의 기온 차가 무려 15도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자칫 몸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지독한 독감에 걸릴 수도 있다.
찌륵찌륵찌륵~ 쐑쐑쐑쐑~
사방에서 찌르러기와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났다. 이곳은 모스크바 교외의 커다란 장원이다.
원래는 제정러시아시절 귀족의 집이었지만 1917년 붉은 혁명 후, 소련 공산당 간부가 살던 집이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시작되고 몇 년 후, 공산당 간부는 이 집을 시장에 내놓았다.
경제가 망하고 나라가 무법 체제가 되자 공산당 간부들도 봉급을 받을 수가 없었다. 정부에 돈이 없어 월급을 내주지 못한 것이다.
공산당 간부들이 할 줄 아는 것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강의하는 것밖에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사회주의와 공산당의 이상에 대해 강의를 하면 눈이 초롱초롱해서 듣던 모스크바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공산당 강의를 한다고 통보해도 강의실에 모이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먹고사는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은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을 시민들은 깨우친 것이다.
그러니 누가 강의를 듣겠다고 모이겠나? 없다. 단 한 명도! 그래서 처음에는 값비싼 가구들을 내다 팔았다.
다음에는 당장 입을 옷만 남겨 놓고 나머지 옷가지들을 전부 팔았다. 공산당 간부 시절에 입던 옷들이기에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겨우 몇 푼씩 싸게 팔렸다. 그다음이 귀고리와 반지를 비롯한 금붙이다. 그것 다 팔고도 견디기 어려워지자 마지막에는 장원을 내놓은 것이다.
그렇게 나온 장원을 MIS회장 지지킨이 사들인 것이다. 그때부터 이 집은 지지킨의 저택이 되었다.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곳, 하지만 오늘 지지킨의 집은 사원처럼 조용했다.
인기척 하나도 없다. 사방에서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 대문을 넘어서는 자는 단번에 수십 발의 총탄을 가슴에 맞고 쓰러질 것이다.
지붕과 담장 위 그늘진 곳. 나무 위와 땅속의 비트에서 “블러드 데빌”대원들이 숨을 죽이고 저격용 총을 겨누고 있었다.
떼엥~
밤 12시. “신화창조 투자사”의 사장이 오겠다고 한 시간이다. 바싹 긴장해진 블러드 데빌들이 조준경에 눈을 딱 붙이고 정문을 주시했다.
삐거~덕.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긴장으로 침을 꼴깍 삼킨 저격수들이 뚫어지게 대문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오지 않는가?’
저격수들이 의아해서 조준경에서 눈을 떼고 직접적인 시야로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핏~핏~핏~핏~핏~.
갑자기 대문으로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르다. 미처 시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블러드 데빌의 대장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예!”
모든 블러드 데빌 대원들이 총을 쥐고 사방을 감시했다.
***
대문을 지나면 정원의 중심에 사람 다섯 명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껴안아야 손이 잡히는 거대한 밤나무가 있다.
그 밤나무 위에서 저격수 5명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컥”
뚜드득. 콰직, 퍽석~
블러드 데빌 들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생겨났다. 그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 소리가 무엇인지 잘 안다.
그것은 목이 뒤로 돌아가면서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 가슴의 흉곽 뼈들이 어떤 둔중한 쇠뭉치에 가격을 당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 머리가 함몰하는 소리다.
철써덕, 털썩, 털서덕~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저격병 다섯 명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수십 명의 사람이 일직선으로 줄을 섰다.
아니다. 그것은 이준이 나무에서 지붕으로 점프한 모습이다.
속도가 너무 빨라 블러드 데빌들의 눈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줄을 지어 선 것처럼 보였을 따름이다.
“오, 마이 갓!”
“설마, 저게 사람의 움직임이란 말인가?”
블러드 데빌들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을 때는 이미 지붕 위에서 일이 끝난 상태였다.
뼈가 부서지고 뭔가 둔중한 것에 맞아 함몰하는 소리가 나더니 저격병들이 거의 동시에 정원으로 굴러떨어졌다.
모두 다섯 명! 블러드 데빌 대장이 배치했던 숫자다.
“놈이다. 지붕을,”
블러드 데빌 대장이 격분했다. 은신해 있던 곳에서 튀어나오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는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저격용 총에 맞았다.
피융~
퍽석~
블러드 데빌 대장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이 터지듯 박살이 났다. 사람은 아직 선 채로 팔을 들어 지붕을 가리킨 자세다.
하지만 머리는 폭발해서 진한 피비린내와 허연 뇌수 덩어리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블러드 데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문가다!’
‘완성된 프로! 노출되면 죽는다!’
MIS의 최후의 무력, 블러드 데빌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두 눈알만 뱅글뱅글 돌리고 있었다.
이제 이 싸움터의 주도권은 단 한 명인 이준에게로 넘어갔다. 그것은 전장을 지배하는 강렬한 젊은 수사자의 광포한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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