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MIS.
13화.MIS
모스크바에는 전국구 6대 마피아 조직이 있다. 마피아는 권총은 당연한 소지품이고 자동소총과 기관총, 유탄포, “알라의 요술 방망이”라고 소문난 휴대용 로켓포까지 보유하고 있다.
만약 마피아들끼리 전쟁이 나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싸움도 진행된다.
오죽하면 외신들이 모스크바를 마피아의 수도라고 했을까?
6대 마피아 중 가장 세력이 강한 마피아는 “머설러스너스(mercilessness)”,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조직을 표현한 바로 “무자비”란 뜻이다. 마피아는 물론 일반인들도 머설러스너스를 약칭“MIS”라고 불렀다.
“보스. 큰 건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오전 10시, 모스크바 본부에 출근한 “MIS” 보스 지지킨이 흐릿한 눈동자로 부하를 바라보았다.
개혁 개방을 선언한 초기 소련의 법이 혼란에 빠지자 마피아들은 너나없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격전을 벌여 거리를 피로 물들였다.
더 많은 기업을 차지하여 보호 비를 받으려면 영역 싸움이 불가피했다.
매일 밤, 중무장한 마피아 간에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경찰은 마피아 간의 싸움이 일어나면 머리 박은 꿩처럼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군대는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이때 왜 군대가 마피아들을 진압하지 않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소련군 총사령관이 한 말이 절묘했다.
“군대는 나라를 지키는 방패요. 즉 국가의 영토와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오. 마피아도 역시 국민이오, 기자 선생!”
이로써 군대는 마피아의 싸움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마피아도 국민이라서 진압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했다. 진실은 달랐다. 마피아들이 군 장성들에게 엄청난 돈을 뇌물로 먹였기 때문이다.
무법이 판을 치는 사회! 대낮에 지하철에서 여대생을 강간 해도 못 본 척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거의 15년 동안 벌어진 러시아의 상황이었다.
한데 요즘은 조용하다.
마피아 6대 조직이 전국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에 늘 심심하던 지지킨이였다. 그가 시들하게 물었다.
“무슨 건인데?”
“이번에 12개의 은행을 인수한 아르진 리라는 자가 생각나십니까?”
“아, 그자? 생각나지!”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마피아의 사자를 그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은행을 인수했으니 보호비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대 러시아에서 마피아를 외면하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유대 금융 계열에서 청부가 들어왔습니다. 청부 금은 2억 불, 청부 내용은 아르진 리라는 자를 잡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주물러 놓으라고 합니다.”
“이상하군! 2억 불이면 엄청난데, 고작 은행 12개를 가진 자에게 그런 큰돈을 쓸 리가 없지 않은가?”
지지킨이 머리를 갸웃했다. 역시 전국구 마피아의 보스 자리는 주먹으로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에, 그게, 옐친이 아르진 리라는 자에게 화폐 발행 권한을 주었답니다.”
“왜?”
“모르죠. 아직은···.”
“뭐야? 혹시 아르진 리라는 새끼가 옐친의 사생아냐?”
“글쎄요?”
부하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면 중앙은행에서 발행해도 될 화폐를 고작 12개의 은행을 가진 자에게 권리를 주었을까?
“하벤스키, 어쨌든 아르진 리라는 자를 잡아다가 말랑말랑하게 주물러 놓으면 2억 불이 우리 돈이 된단 말이지?”
“예. 보스!”
“그럼 뭐, 됐네. 하벤스키. 그놈을 잡아 와. 그리고 고문 전문가를 데려다가 놈이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하지만 보스, 그자가 진짜 옐친의 사생아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큰일은 개뿔, 인마. 정치가들은 이미지 관리가 기본이야. 설사 자기 사생아라고 해도 전면으로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잡아다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주면 된다면서?”
“예.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뭘 걱정해. 잡아 와 일단···.”
그리고 돌아서던 지지킨이 갑자기 다시 돌아섰다.
“그자가 화폐를 찍는다고 했지?”
“예.”
“우리 러시아에서 화폐를 찍는 자는 그자가 유일하고?”
“예.”
“좋았어!”
지지킨은 턱을 매만졌다. 그가 턱을 매만질 때는 뭔가 심사숙고할 때이다.
지지킨의 참모장 격인 부관 하벤스키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화폐 발행 권한이라면 러시아의 돈은 모두 그자가 마음대로 찍거나 불태울 것이 아닌가?’
화폐는 그 나라의 힘이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군대든, 검찰이든, 깡패든 일반인이든 자본주의 사회는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피아 간의 시가전도 사실은 돈을 버는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벌이는 짓이다.
그런데 화폐 발행권리를 가진 자를 손안에 넣는다면 러시아의 돈은 다 자기 것이다!
‘오케이!’
지지킨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가 흥분하거나 신이 났을 때 저도 모르게 부는 휘파람 소리다.
“하벤스키,”
“예. 보스.”
“놈을 하나도 다치지 않게 곱게 모셔 와라. 알겠냐?”
“모셔 오라고요?”
“그래.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어서 가.”
“예. 보스.”
‘납치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곱게 모셔 오는 것이 되지?’
하벤스키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느라 낑낑거렸다.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창조와 신화 투자사!>
5대의 대형승합차가 “창조와 신화 투자사 앞에 와서 정지했다. 그 안에는 승합차마다 10명씩 50명의 ”MIS“ 행동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여기란 말이지?“
”예. 부관님.“
MIS 행동대 제1 대장 호티넨코가 즉각 대답했다. 행동대원들은 모두 기다란 가죽 롱코트를 입었다.
롱코트 안 한 쪽 어깨에는 AKS-74U자동소총이 걸려 있었다. AKS-74U는 전장이 450mm밖에 안 돼서 롱 코트 안에 감추기가 좋았다. 허리의 벨트에는 CZ-75권총 한 자루씩 꽂혀 있었다. 게다가 자동총이든 권총이든 관계없이 소음 장치를 했다. 그야말로 완전히 무장한 50명의 특공대원이라 할 만했다.
”자. 정면 돌파한다. 가자.“
”예썰!“
와르르~
승합차의 문을 열어젖힌 50명의 MIS 행동 대원들이 3열로 서서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척척척척척~
”정지. 좌로 돌아.“
처억!
행동대원들이 좌로 돌아섰다. 바로 ”창조와 신화 투자사“ 접수실이다. 그 안에는 이쁜 아가씨 한 명과 두 명의 경비원 할아버지가 있었다.
”어이, 아가씨. 여기가 창조와 신화 투자사가 맞나?“
하벤스키의 말에 머리를 든 아가씨가 쓰던 볼펜을 놓더니 말했다.
”네, 맞아요. 어디서 오신 분들이죠?“
“어, 우린 MIS 행동대원들이야!”
“지금 MIS행동대라고 했나요?”
“응, 맞아!”
그러자 아가씨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마피아들이 오면 무조건 순종하고 발로 비상 버튼을 눌러라.
그럼 경호대가 그대들을 구해줄 것이다!’
이것은 “창호와 신화 투자사”의 직원 보호 프로그램이다.
그녀의 발로 버튼을 살며시 눌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이 버튼을 누르면 사장실과 경호실에만 신호가 간다.
“이유가 뭐죠?”
아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하벤스키가 비릿하게 웃었다.
“너,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구나!”
“MIS가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는 모스크바사람도 있나요?”
“호오! 대단해. 역시 창조와 신화 투자사 직원답군!”
짝짝짝짝~
손뼉을 친 하벤스키가 갑자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흉악한 인상이 되어 물었다.
“사장 방이 몇 층 몇 호지?”
“그, 그건···.”
“빨리 말 안 하면 아가씨 예쁜 얼굴에 칼자리가 생긴다?”
“구, 구층 삼호요!”
아가씨가 겨우겨우 말했다.
“우로 돌아.”
처억!
“가자.”
척척척척~
마피아들이 보무당당하게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로비에 들어섰다.
로비는 칠색의 대리석을 깔았는데 저 멀리 중국 운남성에서만 난다는 특등품의 대리석이다. 그 끝에 4개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행동대원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도착하자 그들은 앞으로 총, 자세로 내려섰다. 하지만 9층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무지개색 대리석을 깐 화려한 로비다. 그러나 사장도, 하다못해 경비원이나 안내원도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단체로 도망을 쳤나?”
하벤스키는 고개를 갸웃하며 직선으로 3호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뒤를 50명의 행동 대원이 앞에 총, 자세로 따르고···.
3호실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문이 자동적으로 스르르 열렸다. 그 안에 젊은 남자 한 명이 사무 탁자 앞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다.
사진을 꺼내 보니 확실히 “창조와 신화 투자사”사장 아르진 리가 맞았다.
“네가 아르진 리냐?”
순간, 하벤스키는 화들짝 놀랐다. 약 4미터 정도 앞의 사무실 탁자에 앉아 글을 쓰던 아르진 리가 싯~하는 소리와 함께 없어지더니 바로 목을 졸려왔다.
“이, 이게 뭐냐? 캐캑, 캑.”
제1 행동대장 호티넨코는 어리둥절해졌다.
분명 사무실 안 책상에 앉아 글을 쓰던 사장이 언제, 어떻게 와서 부관의 목을 쥐고 허공에 들어 올렸는지 그는 보지 못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때 옆에서 행동대 부대장이 말했다.
“놈을 쏘아버립시다.”
“너, 이 새끼, 보스에게 뒈지고 싶냐?”
보스는 분명 저자를 곱게 데려오라 했다.
그건 중요하게 쓸 데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 사장의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왔다.
“어이, 깡패. 우리 내기 할까? 너희들이 쏜 총에 내가 먼저 맞는 것이 빠른지, 아니면 내가 이자의 목을 부러뜨리는 것이 빠른지.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냐?”
이준의 말에 50명의 행동 대원이 침을 꼴깍 삼켰다.
왠지 저자의 말에서 스산한 죽음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행동 대원들은 땀이 흥건한 손으로 총을 단단히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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