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푸틴의 막내 동생-12화 (11/98)

제12화. 인간의 마음.

“헉헉!”

냅다 달려온 디나는 이준이 손을 잡아주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이준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려 주며 말했다.

“숨넘어가겠다. 좀 천천히 오지 않고···.”

“이준씨가 말도 없이 또 어디로 갈 것 같아서요!”

이준이 디나에게 알리지 않고 독일과 스위스에 조용히 갔다 온 일을 말하는 것이다.

“알았어. 이젠 어딜 가면 꼭 디나에게 알려주고 떠날게!”

“진짜죠?”

“당연히 진짜지!”

“고마워요!”

“우리 좀 걸을까?”

“네.”

둘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었다. 디나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데이트하는 것이 처음이다.

23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뭔가 황홀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당장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준의 곁에 꼭 붙어서 매달리듯 잡은 팔을 풀지는 않았다.

디나의 행복에 잠긴 얼굴이 장밋빛으로 변했다.

“저기 커피숍이 있군, 우리 들어가서 한잔 마실까?”

“네.”

두 사람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음악이 울리는 실내는 무척 쾌적했다. 커피숍에는 서너 쌍의 커플들이 행복에 겨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뭘 마실래?”

“블랙우유차요!”

러시아에는 우유와 커피, 야생의 블루베리를 갈아 즙을 짠 차를 만든다.

시베리아에는 야생의 블루베리가 전 세계 블루베리 전체 재배면적보다 두 배나 많다. 그것도 순수 야생 블루베리밭이···.

그 때문에 블루베리는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야생 블루베리를 따다가 여러 가지 식품을 만든다.

“그럼 나도 같은 것으로 하지.”

“그럼 블랙우유차 두 잔으로 하겠습니다.”

서빙이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잠시 후 따뜻한 블랙우유차가 나왔다.

러시아인들은 여름에도 따뜻한 차를 마셨다. 이것 또한 러시아식 풍습이다.

뜨거운 김이 서리는 것을 후후 불며 한 모금씩 마시는 것도 운치가 있다.

“저기, 아르진씨.”

“응? 말해봐.”

“나, 취직할까 해요!”

“취직?”

“네. 이미 회계는 다 배웠고 더 이상 대학에서 배울 것은 없거든요. 그래서 취직하려고요!”

“음, 그것도 괜찮지. 그런데 어디 취직하려고?”

“아르진 제1 은행이에요!”

“컥, 컬럭!”

이준이 그만 목에 사례가 들렸다.

“여기, 손수건이요!”

그녀가 얼른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입술을 닦은 이준이 손수건을 들여다보았다. 첫눈처럼 새하얀 손수건에 새겨진 붉은 장미.

거기에 이준의 입술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아르진 제1 은행이라고?”

“네. 집에서도 가깝고 난 회계일을 배웠으니 적당한 것 같아서요!”

아르진 제1 은행은 바로 북부 행정구 은행을 말한다. 이준의 아르진 은행 본점이다.

"접수는 했고?"

“아뇨. 이준씨에게 물어보고 접수하려고요!”

“접수해. 그 은행 괜찮다고 하더군!”

“진짜죠?”

“응!”

디나 쿠르바코바! 모스크바 북부행정구 출신.

부, 세르게이 쿠르바코바. 러시아공화국 산업부 장관!

모, 안나 쿠르바코바. 모스크바 종합대학 정치학과 졸업생!

디나의 집은 원래 엘리트 집안이다. 디나는 모르고 있지만 이준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다는 것까지!

러시아공화국 정보국의 자료를 받기에 구체적이다. 디나의 사생활에는 질척거리는 올레그에 대하여서도 적혀 있다.

하지만 이준은 그런 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디나는 그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안다.

블랙우유차를 마시고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한 두 사람은 강변을 거닐었다. 벌써 해는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강가를 뒤덮었다.

강가의 유보도를 따라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들이 외롭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준 씨. 하나 물어봐도 돼요?”

“말해봐.”

“숨기지 말고 말해주어야 해요. 아시겠죠?”

“그래!”

“이준씨는 무슨 일을 해요?”

“난 투자가야. 견실한 기업인데도 빛 때문에 빼앗기게 된 회사들에 투자하지, 그럼 그 회사들은 살아나고 전보다 더 왕성하게 발전하고. 그게 내가 하는 일이야!”

‘역시 이준씨야!’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고 한다. 지금 디나가 딱 그짝이다.

23세까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어서 매몰차게 대시를 거절하던 얼음의 꽃! 디나 쿠르바코바가 사랑에 눈이 먼 것이다.

그녀에게 이준은 모든 것이 완벽한 사내다. 또한 이준이 하는 일은 뭐든지 좋은 일이다. 참 좋은 때다.

사랑이란 상대의 결함도 좋은 점으로 보이게 하는 마법의 힘을 지녔으니···.

“뭐야. 이거! 깔치가 이렇게 예뻐도 돼?”

이준의 팔을 끼고 행복한 생각에 잠겼던 디나가 화들짝 놀랐다.

눈앞에 찢어진 청바지에 빠쁘로스(러시아의 전통 담배)를 삐딱하게 문 7명의 양아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입이 귀밑까지 쭉 돌아갔다.

“야, 니네들 눈에는 저 깔치가 어떻게 보이냐?”

“숲속의 잠자는 공주 같습니다. 형님.”

“여신 같은데요!”

똘마니들이 발라맞춘다. 물론 디나가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지만 저런 양아치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오물을 쓴 것 같았다.

“이봐, 공주 아가씨. 난 여기 북부 모스크바강안의 주인인 전갈파의 두령이야. 이쪽으로 와. 공주라면 격에 맞게 놀아야지. 안 그래?”

전갈파의 두령 사보치킨의 말에 똘마니들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그럼, 여신이라면 당연히 우리 두목과 격이 맞지. 흐흐흐.”

디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준의 팔을 잡은 그녀의 팔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준의 피가 서서히 차가워졌다. 마치 냉혈 동물처럼!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꺼져!”

그러자 두목인 사보 치킨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똘마니들에게 말했다.

“야, 나보고 꺼지란다. 이 전갈 파의 두령님에게 말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

“저놈, 몸에 총알구멍을 내서 강에 처넣어 버리겠습니다.”

“아예 목을 잘라 땅속에 파묻어 버리죠.”

똘마니들이 저마다 목청을 돋워 아부했다. 하지만 사보 치킨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어쨌든 저 여신이 잠깐이라도 저 애송이와 함께 지냈으니 평화적으로 협상을 해봐야겠지.”

그리고는 이준에게 말했다.

“애송아. 난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우리 이렇게 하자.”

마치 세상에서 제일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는 듯이 사보치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애송아. 네 깔치, 딱 7시간만 빌리자. 내가 한 시간. 우리 애들이 한 시간씩 놀려면 7시간은 되어야겠지? 한데 걱정하지 마, 죽이지는 않겠다.

우리 일곱 명과 한 번씩 한다고 해도 네 깔치에게는 흔적도 안난다. 그럼 네 깔치도 살아서 좋고 애송이 너도 살아서 좋고, 캬, 이거 아주 죽이는 협상안이다. 그치, 애송아?”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될 쓰레기들이었군!”

이준의 차가운 말에 사보치킨이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냐?”

“그 답은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들어라.”

팟~

갑자기 세상이 영화처럼 변했다. 저 앞에 있던 이준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보치킨의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사보치킨의 가슴을 툭 쳤다. 하지만 소리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퍼억~

“컥!”

사보치킨의 허리가 새우처럼 앞으로 꼬부라졌다. 그는 입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준이 근육들이 내는 힘은 최고로 상승했을 때 10톤의 힘이 주먹에 가해진다. 말하자면 10톤의 해머로 맞은 것과 같은 강력한 타격이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간 사보치킨의 가슴은 이미 움푹 함몰되었다.

가슴의 뼈란 뼈는 다 부서졌고 심장은 부서진 뼈에 구멍이 몇 개나 뚫렸다.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사보친은 이미 즉사였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똘마니 6명이 사보 치킨처럼 훌훌 날아올랐다. 딱 한방씩 맞고!

“으악. 크아악!”

쉬익~

놈들이 허공에 날아 올라가서 아직 추락하기도 전에 이준은 디나를 안고 그곳에서 100m의 떨어진 강둑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옷 앞섶에 붙어 있는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뒤처리를 부탁합니다.>

<예썰!>

이준의 뒤에는 러시아정보국의 특수부대원들이 늘 따라다니며 보호한다.

물론 앞으로 옐친과 사이가 나빠지면 그들은 보호가 아니라 감시원으로 바뀔 테지만 지금은 이준이 편이다.

후드득, 털썩. 쿵쿵~

놈들이 그때야 떨어져 내렸다. 그곳으로 승합차 한 대가 질주해왔다. 문이 열리더니 특수기동대원들이 튀어나왔다.

한 사람이 쓰러진 자들의 경동맥에 손을 대보았다.

“죽었다. 모두 차에 실어, 멀리 가져가서 돌을 달아 강물에 수장시킨다.”

“예썰!”

부하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죽은 일곱 명의 양아치들을 보며 경호 대장 아나톨리는 머리를 흔들었다.

‘손속에 단 한 점의 인정도 두지 않았다!’

그동안 이준을 호위하면서 아나톨리는 놀라운 장면을 몇 번 보았다.

그것은 이준의 능력 중 극히 일부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나톨리를 전율하게 했다.

‘하긴 한 주먹에 아름드리나무를 부러뜨리는 손에 맞았으니 뒈질 수밖에···.’

아나톨리는 러시아정보국의 특수부대 중령이다.

그는 수많은 대소전투에 참여했던 베테랑 장교다. 정보국에서는 이준의 호위를 맡기면서 가장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로 모아주었다.

이준이 자기의 경호원들은 직접 봉급을 준다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서였다. 한데 상상외였다.

정보국에는 연봉 6천이라고 보고했지만, 실제는 연봉 1억 5천만 원이다. 이건 국회의원들도 받을 수 없는 연봉이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연봉을 올려 주자 경호원들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준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산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경호 대장 아나톨리부터 평 대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각은 하나였다.

‘죽어도 살아도 보스와 함께한다!’

이들은 정보국이 이준을 감시하라고 하면 사표를 던질 생각이다.

***

밤이 깊어져 12시가 되었다. 이준과 디나는 걸어서 어느덧 그녀의 집 앞 100미터 떨어진 곳까지 왔다.

“이젠 들어가.”

“네. 오늘 정말 좋았어요.”

아쉬운 듯 몸을 돌려 두 발 정도 뗀 디나가 갑자기 홱 돌아섰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와 이준의 목에 두 팔을 걸치고 기습적으로 키스를 퍼부었다.

첫 키스라 상당이 서툴었다. 하지만 서툰 것이 대순가?

그녀가 자기의 마음을 키스에 담아 표현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사랑해요. 이준씨!”

간신히 말을 뱉은 디나가 도망치듯 냅다 달려갔다.

“사랑한다라···.”

이준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곳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강력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향기로운 체향이 오래도록 코에서 머물렀다.

“디나!”

이준이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리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전혀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전쟁에서도 이준은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이번 생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품으로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것도 여신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절색의 새가···.

늘 전투준비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이준의 육신에 부드러움이 생겨났다.

단 한 명의 여인, 디나 때문에 전투 병기에게 인간의 마음이 찾아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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