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디나 쿠르바코바.
“아르진 리, 네가 돈이 많다는 것은 안다. 물론 한동안은 계속 월급을 줄 수 있겠지,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될 것이다.
자넨 거지가 될 수도 있어, 그런데도 하겠나?”
옐친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이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준은 옐친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거지가 아니라 이득이 될 겁니다. 초기에는 돈이 좀 나가겠지만 동방 무역의 독점권을 가지면 지금 러시아에 가장 필요한 밀가루와 쌀, 콩을 비롯한 곡물과 각종 채소를 전 러시아에 팔 수 있습니다.
물론 가격도 지금처럼 비쌀 필요가 없죠. 원체 싼 가격에 가져오니까요.
그럼 러시아국민들은 배고픔이 사라진 것이 대통령님의 치적이라고 만세를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돈을 벌 수 있죠.
장사꾼이 돈을 벌면 되지 다른 것은 상관할 것 없지 않습니까?”
“흠, 그렇기도 하군!”
옐친의 호랑이 같은 얼굴에 비죽이 웃음이 피어났다.
이준의 말처럼 지금의 식량 사태를 풀기만 하면 국민들은 자기를 우상화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은 다른 어떤 고통도 능가하니까!
“그런데 어째서 화폐 발행을 요구하나? 그것도 돈 버는데 필요한 일인가?”
“지금 전 세계의 유대 금융 세력들이 우리 러시아의 은행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만약 그들을 막지 못하면 대러시아는 유럽이나 영국, 미국처럼 수십조 단위의 빚을 지게 될 것이고 유대 금융 세력들에게 매해 돈을 빌려 써야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이 러시아의 화폐를 장악하면 우리같은 토배기 은행가들은 모두 쓸려 나갈 테지요. 그럼 돈을 벌기는커녕 그들의 밑에서 허덕이게 될 것입니다.
절대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사실이다. 미 “연방준비은행”은 사실 미국의 중앙은행이 아니다. 그건 유대 금융 세력이 주인이다.
록펠러, 골드만삭스, 레먼, 로스차일드, 와벅, 라자드, 쿤롭, 시프 등 미국과 유럽, 영국의 8개 가문이 “미중앙은행”의 진짜 주인들이다.
아니, 그들이 바로 세계의 경제와 정치를 좌우지하는 가문들이다.
그것도 바로 유대인들의 가문! 이준의 말에 옐친도, 집무실에 있던 러시아공화국의 수뇌들도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단 하나, 화폐 발행을 우리 러시아인이 가져야 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검증된 러시아인이 말입니다. 혹시라도 그자들에게 매수된 반역자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좋네! 내가 자네에게 동방 무역독점권과 화폐 발행권리를 주면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러시아 국민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풀레이션을 잡을 것이고 앞으로 유대 세력이 절대 러시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각하께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틀렸습니까?”
“대통령은 정치가네, 정치가는 정치 자금이 많이 필요한 법이지!”
“제가 군대와 경찰, 검찰과 법무부, 국회 상하 의원들에게 지급하는 월급은 정치 자금의 몇십 배입니다. 그 이상은 더 해주기 어렵습니다.
저도 땅을 파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 말고도 러시아에는 재벌이 99명이나 있지 않습니까?”
러시아에는 가장 최고의 수위를 차지하는 10대 재벌이 있고 그 다음 2등급 재벌이 50명, 3등급 재벌이 40명이나 된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 그 정치 자금은 그들에게서 받으라는 뜻이다.
“하하하. 대통령인 나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자는 아르진 리, 자네뿐일세. 하하하!”
옐친은 통쾌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그래, 자네에게 동방 무역 독점권과 화폐 발행 권한을 주겠네, 대신 자네가 책임지겠다고 한 월급은 반드시 주어야 하네. 알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전 입 밖에 낸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좋아. 앞으로 우리 자주 만나세. 비서실장.”
“예. 각하.”
“아르진 리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게. 그래야 급한 일이 생기면 직통전화를 할 수 있지!”
“감사합니다. 각하.”
“우리 잘해보세!”
이준과 옐친이 굳게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
“크라스나야 제1 호텔” 35층에 한 사내가 뛰어들었다.
“공작 각하. 화폐 발행권리가 아르진 리라는 자에게 넘어갔습니다.”
“뭣이?”
예후다 로스차일드 공작은 움찔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금융업을 장악하기 위해 해온 모든 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은행경매에서도 매수되었던 자들은 단 1개의 은행도 사들이지 못했다.
또 그날 여러 가지 사고가 일어나 일부는 병원에 입원까지 하였으니 일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폐 발행권리가 넘어갔단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진행해온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러시아의 은행은 끝내 우리 손에 넣을 수 없는가?”
로스차일드가의 모든 조상들은 다른 나라들에 뿌리를 내리고 그 나라의 금융권을 손안에 쥐었다.
빠르든 늦든 그건 어느 나라의 금융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예외였다.
1400년대부터 로스차일드가는 러시아의 은행들을 장악하려고 정열을 기울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차르가 은행이 유대 금융 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 금융 세력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러시아에 조금만 빈틈이 생기면 즉각 공격했다. 그런데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1차 대전 말기, 러시아가 볼셰비키들에 의해 혼란해지자 레닌에게 수억 달러의 정치 자금을 주었다.
차르가 멸망해야 러시아의 금융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레닌은 그 자금으로 붉은 군을 창설했고 러시아를 평정했다. 그리고 러시아제국 차르 가족을 한밤중에 무자비하게 사살했다.
그에 로스차일드가는 환성을 질렀다. 이제 러시아의 금융은 자기들의 손안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레닌은 유대 세력과 한 약속을 대번에 뒤집었다. 절대 러시아의 금융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분노한 유대 세력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을 부추겨 러시아를 침공하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회민주당(멘세비키파)”의 매수된 자들에게 레닌을 암살하도록 지시했다. 그것이 바로 1919년 카츄샤의 레닌 암살 작전이다.
그러나 레닌이 총에 맞아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었어도 유대 금융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스탈린이 모든 전권을 잡았고 유대 금융의 개입을 불허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유대 금융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기회가 왔다. 소련이 끝내 무너지고 러시아민주공화국이 성립된 것이다. 한데 또 밀렸다.
“그 권리를 가진 자가 누구냐?”
“아르진 리라고 이번에 은행 12개를 인수한 자입니다.”
“아르진 리?”
“예. 그자의 아버지는 고려인이고 어머니는 러시아인으로 혼혈인입니다.”
“고려인이라면 한국인이라는 것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놈을 철저히 조사해와라. 놈의 똥 색깔이 어떤 것인지, 여자는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확실하게, 알았나?”
“예썰.”
실장이 나가자 예후다 로스차일드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절대, 이번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러시아의 금융을 장악하는 것은 로스차일드가 선조들의 한이었다.”
***
12개의 은행을 사들인 후, 이준이 한 일은 대대적인 물갈이였다. 이전 은행장들은 소련식 체제, 즉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철밥통을 유지하던 자들이다.
그들은 하는 일 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고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 갔다.
“자넨 은행장들의 행태를 잘 알겠지?”
모스크바 북부은행은 이제 12개 은행의 본점으로 바뀌었다. 북부은행 5층은 바로 아르진은행 총재인 이준의 구역이다. 그 앞에 마주 앉아 있던 막심이 대답했다.
“예. 그들은 그냥 철밥통들이었습니다. 총재님.”
“자네에게 12개 은행을 관리할 권한을 주겠네. 은행장들을 모두 잘라내고 정말로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은행장을 임명하게, 그리고 은행직원들도 대대적으로 새로 뽑도록. 이게 내쳐야 할 은행원들의 명단일세.”
이준이 서류를 한 권 내놓았다. 그 서류에는 각 은행장의 재산과 그들의 근무태도, 그들이 섬기는 자들과 본인 사생활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또한 이사, 과장, 대리들 중에서도 아부로 출세하고 능력은 하나도 없는 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이, 이런 자료가 어디서 나셨습니까? 총재님.”
“어둠 속에서 내일을 돕는 자들이 있네!”
“아, 그렇군요!”
이 정도면 정보기관 못지않은 조직이다. 하지만 막심 수하노프는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은행장들과 은행원들에 대한 모든 자료는 러시아정보국에서 나온 것이다. 옐친은 이준이 요구하자 흔쾌히 정보국을 사용하는데 허락을 해준 것이다.
이준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시를 안정시키는 것이 자기의 대통령 연임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스크바 종합대학 벽보판.
아침이다. 학교에 들어서던 디나 쿠르코바는 많은 학생들이 벽보판 앞에 서서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디나는 학생들 사이로 벽보판을 바라보았다.
“아르진 8개 은행에서 능력 있고 참신한 은행원들을 뽑습니다. 창구 은행원의 연봉은 60만 원(6천만 원)[email protected], 대리와 과장, 실장에 따라 연봉은 달라집니다.
아르진 은행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은 서류를 접수하시고 면접 통보를 기다리세요. 아르진 은행은 성실하고 참신하며 능력 있는 청년들을 반깁니다.”
“아르진 은행?”
디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학생인 올레그가 말했다.
“이번에 팔린 모스크바 은행 8개를 산 사람의 이름이 아르진이라고 하더군. 그가 자기의 이름을 은행 이름으로 바꾼 거지! 참, 디나 너도 이번 기회에 면접을 보면 되겠다. 너, 유능한 회계사잖아?”
“글쎄!”
디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올레그가 열심히 설명했다.
“은행은 일단 일이 깨끗하잖아. 그리고 아르진 제1 은행(북부은행)은 너희 집과도 가깝고, 한번 도전해 봐. 나도 이번에 서류를 접수하려고 해. 함께 은행에 다니면 좋잖아?”
올레그는 디나를 짝사랑하는 같은 대학원생이다.
디나는 열심히 설명하는 올레그를 보자 갑자기 어떤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납치될 위험 속에서 자기를 구해주었던 사람, 바로 이준이었다.
‘이준 씨!’
왠지 이준과 토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열심히 부추기는 올레그에게 말했다.
“미안, 올레그. 난 전화 할 곳이 있어서 가봐야겠어! 내일 봐.”
그리고는 총총히 걸어갔다.
“디, 디나~”
올레그가 소리쳤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다.
‘흐흐. 역시 가시가 있다. 이거지? 하지만 넌 반드시 내 것이 된다. 나 올레그는 침발라놓은 계집을 놓친 적이 없거든, 클클클!’
올레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디나의 늘씬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올레그 도브리긴은 모스크바 북부 행정구 경찰청장의 아들이다.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올레그는 지금까지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행운남이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여 디나를 본 순간, 자기 것으로 찍었고 졸업반이 된 지금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디나의 마음을 쟁취하지 못했지만···.
7월의 햇빛이 식어가는 저녁, 모스크바강가는 한적했다. 예전에는 이곳이 저녁이면 젊은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데이트 장소가 되곤 했다.
하지만 무법천지가 된 지난 6년 동안 모스크바 강가에서는 강도, 강간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그 때문에 해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다.
특히 젊은 아가씨들은 아예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기다란 금발 머리를 늘어뜨린 이름다운 아가씨 한 명이 느티나무 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보기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는 아름다운 절세의 미녀, 디나 쿠르코바였다.
저 멀리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강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저벅저벅 울렸다. 머리를 홱 돌린 디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것은 마치 흐드러진 수천개의 장미가 활짝 피어나는 것 같았다.
“이준 씨!”
“디나!”
탄력 있는 그녀의 두 다리가 이준을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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