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킬러의 법칙.
1,380만 7,037제곱킬로미터의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동아시아지역, 중국의 국경도시 수분하시와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의 국경도시 사크차하시는 수많은 중국인과 러시아인들로 늘 붐빈다.
소련 해체 이후, 이 국경도시는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지점이기 때문이다.
부우우웅~
저녁 9시.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 제5열차가 사크차하시역에 들어섰다. 특등 칸에서 뚱뚱한 대머리의 사내가 플랫폼에 내려섰다.
그의 주위를 검은 옷의 경호원들이 둘러쌌다. 50대 후반의 사내는 붉고 푸른 네온등이 번쩍이는 사크차하시를 바라보고는 곧 벤츠를 타고 역을 빠져나갔다.
4대의 경호 차량이 앞뒤로 호위하며 달릴 때 역 앞의 벤치에 앉아 있던 두 명의 남녀가 옷깃에 꽂힌 핀 형식의 무선기에 대고 말했다.
“불곰이 도착하여 아지트로 이동하고 있음, 오바.”
<알았다. 오바.>
그러자 한 쌍의 남녀는 팔짱을 끼고 공원을 걸어갔다. 다정한 연인처럼···.
***
밤하늘에 온갖 전파가 날아다닌다. 그 수많은 전파는 무질서한 것 같지만 모두 자기 목표를 찾아간다.
여기 사크차하시의 낡은 셋집에서도 한 사람이 무전을 받고 있었다.
러시아연방 정보국(FSB) 국장 로만 쿠르친과 중국 정보부(MSS) 부장 왕계원이 차하스크시의 비밀 안가에서 미팅을 한다.
정보에 의하면 그들의 미팅은 현 북한 정권을 뒤집기 위한 쿠데타 모의를 위해서라고 한다. 놈들의 회의 내용을 알아내며 만약 그것이 어려우면, 모두 지워 버려라. 건투를 빈다. 백호.>
사내는 무선을 받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반도의 통일을 막기 위한 미팅이라···.”
중얼거리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현 북한의 주석은 김정은이 아니다. 2030년 11월, 북한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은정권을 타도하였다.
이로써 8.15 광복 후 85년 동안 3대에 걸쳐 2,300만 북한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던 김 씨 일족의 독재는 끝이 났다.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군부는 위로부터 개방을 시행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서는 남쪽의 자본이 북으로 물밀듯이 흘러 들어가고 북에서는 가히 산업혁명이라 할 정도로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두면 한반도는 하나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에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한반도가 중국이나 러시아를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을 때가 문제였다.
한민족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민족이 아니던가?
중국과 러시아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통일된 한국은 더 이상의 방해가 없이 빠르게 발전할 것이었다.
또 이미 핵탄두를 보유한 국가이며 통일한국은 혈맹인 미국이 뒤를 받치고 있다.
물론 미국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그건 러시아나 중국에는 목구멍에 들이댄 비수가 될 수도 있었다.
또 한국은 간도문제를 트집 잡아 잃어버린 고토를 수복하려 할 수도 있었다.
통일한국의 잃어버린 고토는 만주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극동지방, 즉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일대도 통일한국의 잃어버린 영토에 속한다.
만약 극동지방을 한국에 내어주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러시아의 유일한 길이 막힌다. 절대 그건 안될 일이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중국과 러시아의 비밀회합이 오늘 이곳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주지!”
21살 준수한 외모의 이 사내가 바로 K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K301호 이준이다.
KNSA는 K301호를 탄생시키고는 K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너무도 많은 희생 때문이다. 하여 K301호는 KNSA에서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초특급 요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K301호는 그만큼 능력이 뛰어난 요원인 것이다.
***
차하스크시의 중국 국경 역에 특별열차가 들어선 것은 저녁 11시, 열차에서 내린 중국 국가 정보부(MSS)부장 왕계원은 경호원들의 호위하에 승용차를 타고 안가로 향했다.
“어서 오시오, 왕부장님.”
“반갑습니다. 국장님.”
러시아의 FSB국장과 중국의 MSS부장이 손을 굳게 잡았다. 두 양대 강국의 정보수장들이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자, 안으로 듭시다.”
“그러죠!”
두 사람은 밝은 얼굴로 내부로 들어갔다.
밤 1시. 한창 미팅이 본격화되고 있을 때 안가의 안과 밖은 150명의 무장 경호원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밖은 100명의 중-러 경호원들이 안가를 겹겹이 둘러쌌고 내부는 50명의 경호원이 요소요소 자동소총을 들고 경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바람도 새어 들어갈 틈이 없는 어마어마한 경계다. 안가는 빙 돌아가며 자작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그 자작나무 위로 흐릿한 형체가 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소리도, 바람의 파동도 없다. 그야말로 귀신이 지나간 것같다.
“뭐지?”
자작나무 밑에 서 있던 경호원 중 한 명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가 물었다.
“왜. 뭘 봤어?”
“방금 뭔가 지나간 것 같아. 저기서 저 나무 위로···.”
“너, 약 먹었냐?”
동료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친구를 흘겨보았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 나무 위까지의 거리는 최소 35미터는 된다.
사람은 둘째치고 대체 어떤 동물이 저 거리를 점프할까?
그것도 소리하나 없이···.
“그, 그렇지? 내가 헛것을 보았겠지!”
동료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 시각, 그들이 말하던 “뭔가”가 안가의 지붕 위를 소리 없이 통과하여 다락방의 창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러시아의 건물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관계로 지붕의 경사를 거의 60도로 세운다. 그리고 그 안의 공간을 방으로 만드는데 그것을 다락방이라고 한다.
그곳으로 한 인간이 소리도 없이 귀신이 움직이듯 들어섰다.
다락방은 보통 사다리로 오르내리는데 평소에는 치워 놓는터라 사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경호원이 12명, 모두 자동소총으로 무장했다!’
바로 밑의 방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정보 거물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수십 장의 사진과 작전지도를 놓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쿠데타를 일으킬 자들과 죽여야 할 자들의 사진이었다.
“그럼 계획대로 동해안의 청진과 함흥, 원산항은 100년 동안 러시아가 조차하고 서해안의 항구들은 우리 중국이 조차하는 것으로 합의를 봅시다. 어떻습니까? 로만동지.”
중국 국가 정보부(MSS)부장인 왕계원의 말에 러시아 연방정보국(FSB) 국장 로만 쿠르친이 서로 악수했다.
“자, 그럼 10일 후에 일어날 쿠데타의 성공을 위하여, 축배를 듭시다.”
“위하여!”
둘은 붉은 포도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순간이다. 천장의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구멍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 속에서 한 명의 젊은 사내가 스르르 방에 내려섰다.
마치 깃털이 소리없이 날아내리듯!
바로 KNSA의 특급 요원인 K301호, 이준이었다.
K301호가 고양이처럼 살포시 바닥에 내려섰을 때도 12명의 경호원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계원이 그를 발견했다.
앉은 자리 위치상 K301호 이준이 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어, 어어, 헙”
왕계원이 입을 다물었다. 이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손가락에서 파란 점이 빛처럼 쏘아졌다.
퍽.
새파란 점은 왕계원의 반들거리는 이마를 뚫고 들어가 뒤통수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그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제야 왕계원의 죽음으로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경호원들은 평소에 늘 훈련받던 대로 총을 꺼내며 몸을 홱 돌렸다.
그 찰나
이준의 손에서 튕겨진 12개의 푸른 점이 빛살처럼 쏘아져 그들의 머리통을 뚫어버렸다. 그것도 거의 동시에···.
털썩, 털퍼덕!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쓰러진 열두 명의 시신에서도 역시 피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고기가 익는 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다, 당신은 누구,”
“닥쳐. 여기서 질문은 나만 한다. 알았나? 로만 구르친!”
나지막했지만 살벌하기 짝이 없는 스산한 목소리다. 로만 쿠르친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아래위로 세차게 끄덕였다.
자칫하면 머리통에 구멍이 뻥 뚫려 죽을 판이었다.
‘이자는 괴물이다.’
FSB의 국장 로만 쿠르친의 온몸에 솜털이 곤두섰다.
소련 시절 악명을 떨치던 KGB의 후신인 FSB!
미국의 CIA와 더불어 세계의 정보를 쥐고 흔드는 기관이다.
하지만 FSB의 그 어떤 보고서에도 손끝에서 푸른 빛을 쏘아 적을 죽이는 킬러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로만 쿠르친, 내가 이것을 품에 넣을 동안 널 살려줄 이유를 찾아라. 아니라면 넌 죽는다.”
이준은 여유롭게 탁자에 놓인 사진과 쿠데타 작전지도를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며 말했다.
“살 이유가 없는 모양이군. 그럼 죽어라.”
이준의 중지와 엄지가 겹친 손가락에 파란빛이 보였다.
‘저, 저것은 죽음의 빛이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가 손가락을 튕기기만 하면 자기의 이마에 구멍이 뻥 뚫릴 것이다. 그렇게는 죽고 싶지 않았다.
FSB국장 자리까지 올라오려고 푸틴에게 얼마나 굽실거리며 살아왔던가?
그런데 이렇게 개죽음당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반드시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 살자면 정말 값비싼 정보를 열려줘야 할 것이다.
“자, 잠깐, 나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하시오. 그럼 중요한 것을 알려주겠소.”
그러자 이준의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눈빛이 로만 쿠르친의 눈 속을 파고들었다.
‘무, 무슨 놈의 눈빛이···.’
“네 목숨을 살려줄 만한 정보여야 할 것이다.”
“스위스 라이히무트 뱅크와 12개의 은행에 있는 구소련의 비자금 1조 6천억 달러에 대한 것이요. 찾는 것은 계좌번호와 암호문 하나면 아무나 찾을 수 있소.
그러니 살려주겠다는 약속만 하면 알려주겠소.”
“1조 6천억 달러라! 흥미가 있긴 한데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나도 당신이 날 살려주겠다는 것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요.”
로만 쿠르친의 말에 이준은 빙그레 웃었다. 킬러답지 않은 부드러운 미소다.
“좋아. 믿어보지, 사실이라면 너를 살려주겠다.”
“계좌번호는 enzmfjr1668이고 암호문은 더 레드 이던 블라섬드(붉은 에덴에 꽃이 폈다.)요.”
“그건 푸틴의 비자금인가?”
이준은 튕기려던 손가락을 풀고 허리를 폈다. 그러자 로만 쿠르친이 말했다.
“아니요. 1941년, 스탈린이 저축하기 시작한 비자금이오. 스탈린이 죽은 후에도 국가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의 많은 양이 계속 저축되었소.
그것은 옐친 시대나 푸틴 시대에도. 말하자면 이돈은 러시아의 비자금이라 할 수 있소.”
스탈린은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최후의 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여 도피자금으로 국가 예산의 상당히 많은 외화를 “KGB”의 비밀활동자금이란 명목으로 배정했다.
당시는 그 누구도 스탈린의 지시에 대해 딴지를 걸지 못했다.
그리고 스탈린 사후에는 이미 KGB의 힘이 강해졌고 소련의 후계자들은 그 돈에 대한 출처를 물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련이 무너지고 옐친이 집권한 후, 로만 쿠르친은 FSB(KGB의 후신) 수장이 되면서 비자금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하지만 로만은 입을 다물었다.
잘만 하면 그 엄청난 돈이 모두 자기의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옐친이 퇴임하고 푸틴이 집권하였어도 로만은 계속 FSB의 수장으로 재직하면서 조금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차기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푸틴도 됐는데 자기라고 안될 이유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자기에게는 그 누구도 모르는 엄청난 달러를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계에 진출할 수가 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시대니까!
그 꿈 때문에 비자금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차기 러시아의 대통령은 망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거금과 자기의 목숨을 바꿨으니 말이다.
“살려주어서 고맙소. 그리고 돈은 정말 있소!”
순간, 이준의 손가락이 퉁겨졌다.
퍽!
로만 쿠르친의 이마에 흔적도 남기지 못 한 채 털썩 쓰러졌다.
“킬러는 자기 얼굴을 본 사람은 살려두지 않는다!”
그 말과 함께 이준의 몸이 스르르 떠올라 다락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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