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70화
291장 팍스 청담동 (2)
청담수영병원이 정부에 건 소송에서 대국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정부는 소송에 대항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통 큰 양보를 해줬다. 청담수영병원도 정부가 제시한 합의안에 만족해서 소송을 취하했다.
수영병원으로 이직한 의사들을 사찰한 것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전격적으로 사임했다.
또한 대형 사립종합병원들에 강도 깊은 압박 조치를 취했다.
외과가 송두리째 멸종하고 소아과 등 기피학과 의료진의 대거 이탈이 가속화되는 지금, 사립병원들은 종합이란 타이틀을 유지할 힘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 상황에서 종합병원의 요건을 서둘러 충족하지 않으면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압박을 했으니, 각 병원이사회는 뒤집어졌다.
"국립병원을 제외하고, 사립 대형 병원들은 이제 몰락이 예정되어있다."
"정부가 수영병원을 위해서 대놓고 밑밥을 깔아주고 있다."
"머지않아 국내의 대형병원은 수영병원 하나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식량,반도체,전기, 통신에 이어 의료시장마저 수영그룹이 독점하는 미래가 예고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영병원은 건강보험 재정과 무관하게 막대한 사비를 들여가면서 고품질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일반 행정직원까지 모두 대만족하는 곳이 바로 수영병원이었다.
수영병원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의료산업에 이권을 가진 기득권 의료층이거나, 혹은 진상을 부린 환자들이었다.
수영병원은 진상 환자들에는 가차없이 대하기 때문이었다. 환자 본인이든 가족이든 선을 넘는 순간 재단이 제공하는 모든 지원은 취소된다.
-간호사에게 폭행을 행사하셨군요.
-재단의 의료비 지원은 이 순간부터 중지입니다. 그리고 모욕죄로 고소고발 조치하겠습니다.
-그, 그거라면 내가 사과했어요. 간호사 처자도 사과 받아 준다고 했고.
-병원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조치입니다. 당사자 간의 화해 여부는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그러게 누가 병원에서 칼 들고 협박하라고 했습니까?
-그냥 마침 과도를 들고 있어서…… 그리고 전혀 위협할 생각은 없었단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환자와 가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재단의 지원비 중지 조치였다.
역시 물질적 불이익, 즉 돈 문제만큼 가장 사람을 절실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수영병원 입원 환자와 가족들은 하나같이 얌전한 순둥이로 유명했다.
그 개개인의 본심이 어찌 되었든간에, 본심을 감춰야 산다는 사실을 다들 받아들였다.
수영병원의 가드는 진상 환자나 가족에게는 가차 없었으니까.
이사장의 막대한 현질을 통해 의료진과 직원, 환자가 모두 다른 병원에서는 누릴 수 없는 복지를 맛볼수 있는 유일한 병원.
청와대는 기꺼이 청담동을 팍팍 밀어주기로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속보! 수영병원 왕세경 부이사장의 오른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내정!]
[청담수영병원, 마침내 건강보험공단마저 입수하다!]
세경그룹 창업 초기 시절부터 왕세경을 보필해온 고창식 전무가 청담수영병원을 떠나,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영전했다.
수영그룹에 잘 보이기 위한 행정부의 스트립댄스 쇼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재벌들이 운영하는 대형병원들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테니, 그냥 알아서 처신해라. 우리는 모른다.
몰락 직전에 놓인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또렷하게 깨달았다.
자신들이 타고 있는 이 배는 이제 침몰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배 하부에는 구멍이 뚫렸고,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만 남았다는 것을.
***
"제가 이런 영전의 영광을 누려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영전은 무슨, 수영병원 전무에서 공단 이사장으로 가는 게 무슨 영전이라고 좌천시킨 거 아니냐고 나중에 불만이나 품지 말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세경그룹 전무씩이나 하던 커리어가지고 왜 공단 이사장 따위나 시키냐고, 지금 얼굴에 심술이 그득한 거 같은데?"
"아이고, 절대 아닙니다. 그냥 정든이 병원을 떠나려니까 아쉬워서 그립니다, 부이사장님."
"창식이 자네, 이제는 실수로도 회장님 소리는 안 하는구먼."
"부이사장님으로 불리는 걸 원하시잖습니까. 가신으로서 가주께서 원하시는 걸 알아서 모셔야죠."
"하여간 말은 잘해."
왕세경은 조금 복잡한 눈으로 고창식을 주시했다.
그를 부하로 들인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보낸 적이 없었다.
고창식은 자신의 진짜 오른팔 이상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서 처리 해주었다.
고창식은 세경그룹에서 회장으로 은퇴를 할 수도 있었다. 왕세경이 원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주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고창식은 전무 자리도 내팽개치고 왕세경을 따라 병원으로 왔다. 진정한 충신이었다.
"제가 공단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내가 아니, 우리 이사장이 뭘 바랄거 같은가?"
"공단의 힘을 이용해서 수영병원에 특혜를 몰아주는 걸 바라진 않으실거 같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자네 생각이 맞네. 공단의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게. 누가 봐도 역대급으로 일 잘하고 투명하고 올바른 이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공단을 재정비하게."
"대조군이로군요. 수영병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줘야 하는."
"그렇지."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돋보이는법.
공단의 운영이 피폐해지면 피폐해 질수록 수영병원의 존재감은 더욱 더 찬란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둠을 키움으로써 빛의 긍정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임팩트가 오래 가지 못한다.
공단이 제대로만 돌아갔더라면, 올바른 경영진이 공단을 운영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운 가정이 끊임없이 들고 일어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공단을 재정비하고, 공단의 역사상 다시없이 강하게 빛나는 순간을 가져다 놓아도, 수영병원의 찬란함 앞에서 그 빛이 한없이 초라해진다면?
'이것이 절대 바꿀 수 없는, 천부적인 너와 나의 격차다.'
라고 수영병원이 공단을 꾸짖을 수 있으리라.
진정한 챔피언은 도전자가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어 도전할 수 있도록 언제나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는데도 주먹이 스치지도 못한다면, 도전자의 역량이 챔피언에 비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드러나게 되니까.
"고 전무. 아니, 고 이사장, 건강보험공단은 이 나라 의료계의 챔피언이 될 자격이 없음을, 정정당당하게 온 세상에 보여주게."
"알겠습니다, 부이사장님. 최선을 다해 공단을 재정비하겠습니다. 풀컨디션을 갖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고로 우리 재단에서도 공단에 연 1조 원씩 건강보험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말고. 이 정도는 해줘야 챔피언의 자격이 있지 않겠나?"
최선을 다해 공단을 바로잡고 체질을 개선하고, 하수영의료재단에서는 일 년에 1조 원씩 기금까지 지원해 준다.
이러고도 수영병원을 이기지 못한다면, 수영병원이 진정으로 이 나라 의료시장 챔피언으로 공증을 받는다. 시골뜨기 촌부까지도 그 위상을 각인당하게 된다.
"우리 병원이 공단 역할까지 완벽히 흡수하려면 정정당당하게 체급의 차이를 보여줘야지. 그래야 국민들도 납득할 테니."
"부이사장님께서 진정으로 이 나라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 그것만 생각해서 이런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왕세경에게는 일체의 노욕이 없다.
그는 여생을 불태워서 널리 인술을 베푸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변화를 모르는 이들은 기업가의 마지막 탐욕 정신 때문에 의료시장 독점을 노리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리라.
"상관없네.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니니. 우리 이사장 한 명만 알아주면 나는 대만족이야."
고창식은 떠나기 전 왕세경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
"공단을 접수하러 가겠습니다. 반드시 정정당당한 대결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이사장은 다 끝난 게임이라고 벌써 흥미를 잃은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 상심하진 말고. 꿩 대신 닭이라고 부이사장인 내가 대신 의욕을 불태우고 있으니 말이야."
"이사장님은 또 다른 것에 꽂히셨겠죠. 워낙 자유로우신 영혼 아닙니까."
"이번에 또 일본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일본이라면, 식량 문제 때문입니까?"
화산 대폭발로 인한 일조량 감소는 일본에 치명적인 식량난을 야기했다. 당장 올해 농사는 모두 망했고, 내년에도 수확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수영장은 일본의 식량유통을 손에 쥐고 신나게 흔드는 중이었다.
"식량 문제야 옛저녁에 정리됐지. 일본은 수영농장 아니면 이제 곡물이고 고기고 채소 간에 유통이 불가능한 상황이니까. 이사장이 더 손댈 것도 없을 만큼 완벽하게 접수한 것으로 알아."
"식량 문제가 아니라면……."
"상임이사국 문제라던데?"
고창식은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아아, 역시…… 일본 상임이사국진출 때문이로군요."
"이사장 성격에 일본이 쉽게 상임이사국 되는 건 못 보지. 그거 막으러간거 같아."
"이사장님이라면 백악관에 한 마디해서 쉽게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미국이 거부권 행사하면 끝일 텐데요."
"이사장 성격을 아직도 모르나? 그렇게 쉽게 차단하면 재미없다고, 차라리 미국한테 찬성표 던지라고 할 사람일세."
"아, 제가 잠시 이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그 가치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어렵게 쟁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양반 아닌가."
전쟁 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일본은 오래전부터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또한 갈망해왔다.
그러나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한국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여기에 하수영의 등장은 한국의 국가적 역량을 급속히 높여놓았고, 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걱정거리가 더 늘어난 셈이다.
"참, 내가 이사장한테 웃긴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무엇입니까?"
"이사장이 히사타로 전 총리하고 친하게 지내잖는가. 비즈니스 때문에. 그리고 일본에서 이런저런 사업으로 돈도 많이 벌고 있고, 얼마 전엔 반도체 관련해서 큰 양보도 받았고."
"설마 이사장님이 일본에 호의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까?"
"내각 분위기가 아주 부정적인 건 아니라고 하더군. 그래도 이사장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는 거야."
"……이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도 모르는군요."
***
도쿄, 테이코쿠 호텔.
일본의 대표적인 고급 호텔이자 정계와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는 호텔최상위 스위트룸에서 은밀한 모임이 열렸다.
멕시코, 스페인, 아르헨티나, 이탈 리아, 파키스탄 대사들이 초청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다.
은밀한 모임이라고 하나 일본 정계에는 이들의 움직임이 이미 보고되었을 것이다.
"왜 하필 테이코쿠 호텔일까요? 이래서는 은밀히 모이는 의미가 없을 텐데요."
"은밀히 모이는 척만 할 뿐, 완전히 숨길 의도는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르게 해석하면 일본에 대한 장 난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요."
G4 국가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주요 국가 대사들은, 자신들을 일본의 심장부에 초청한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수영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우선 참치부터 한 접시 하실까요?"
흰 조리복과 조리모를 쓴 하수영이 수백kg이 넘어가는 거대한 참치와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화려한 장식용 검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