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68화
290장 성주신의 병원놀이 (7)
4대 종합병원 서울 본원 병원장이 모두 청담동 휴민트타워를 찾았다.
하수영이 근무하는 청담동 의원사무실이었다.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청담동마왕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평범한 옷차림을 한 채 장기를 두거나,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UCC 컨텐츠를 보거나, 김밥을 먹거나, 혹은 TV로 골프 채널을 시청 중인 노인들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노인들이지만, 저들의 개인 재산을 전부 합치면 수십조 원이 훌쩍 넘지 않을까.
"이게 누구야? 장승태 병원장 아닌가?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
귀신같이 자신을 알아보는 노인이 나타나자 장승태는 화들짝 놀랐다.
그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전에 몇 번 신세를 지기도 했던 지역 유지였다.
지 회장님. 여기에는 어떤 일로……."
"나? 하수영후원회 정회원이니까 당연히 여기에 있지."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알면 진작 찾아가서 인사라도 올리는 건데……."
"내가 무슨 나라 벼슬 감투 쓴 것도 아니고, 나라 위해 걸출한 인재옆에서 후광 좀 입겠다는 건데, 뭐 축하할 일이라고 인사를 오나. 자네도 참."
일단 물꼬가 트이자 노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한 번에 집중되었다.
수십 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리자 병원장 넷은 긴장으로 근육이 위축되었다.
아직 마왕은 만나보지도 못했고, 마왕성을 지키는 마족 노기사들만 마주쳤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 오셨습니까? 왜 거기서 서 계세요? 자자, 이쪽으로 들어와서 앉으세요."
그때 가장 안쪽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하수영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병원장들은 엉거주춤 하수영을 따라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 큰 빌딩 1층의 절반을 단독으로 쓰다 보니 사무실이 무척이나 컸다. 국회의원도 이렇게 큰 사무실은 못 쓰는데, 기초의원이 이런 사무실을 사용하다니.
"사무실이 좀 좁고 불편하지만 양해해 주세요. 기초의원 주제에 너무 큰 사무실을 사용하면 또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올 수 있어서요. 그래도 국민들, 주민들 앞에서는 좀 겸손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겸손이라고…….'
'이게 좁고 불편한 사무실?'
1조 원이 넘는, 청담동 알짜배기에 위치한 대형 고층 빌딩 1층의 절반을 혼자서 쓰고 있으면서?
'이게 겸손이라면 작정하고 사치 부리면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라는 거야? 아, 그렇구나.'
병원장 한 명은 혼자 머릿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수영병원 자체가 이미 거대한 사치품이나 마찬가지였지, 참…….'
13조 원이 넘는 항공모함 2척, 초호화 크루즈, 호위함으로 도입한 미국제 아메리카급 경항모와 러시아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 그리고 수십 대가 넘어가는 퀸 스델리온과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기까지.
그중에서도 선박 가격으로만 40조원 가까이 썼다는 것은 이제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번에 수영병원에서 공개적으로 보건복지부를 저격하면서 낱낱이 밝힌 덕분이다.
국민들도 놀랐겠지만, 여기 모인 병원장들도 상상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수영병원은 애초에 경제적인 논리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괴물이다.'
그야말로 하이퍼 리치의 사치스러운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전용기 한기도 없다는 게 더 특이한 점이었다.
"드시죠. 제가 직접 기른 차나무 잎으로 만든 수제 차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머리를 맑게 하는 각성 효과가 있습니다. 아, 일반적인 각성제처럼 약효 끝나면 더 큰 피로 가 몰려드는 그런 건 없으니 안심하세요."
하수영이 직접 차를 우려내서 따라 주자 병원장들은 머리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다도 예절을 애써 끄집어내며 경건하게 마셨다.
하지만 정작 하수영은 1,500ml는 되어 보이는 큼지막한 도자기 잔에 차를 가득 따라서는 원샷으로 마셔버렸다.
'생각보다 별로 안 뜨거운가?'
하는 마음으로 다소 빠르게 차를 마셨던 한 병원장은 혓바닥이 살짝 데서는 켈룩켈룩 기침을 쏟아냈다.
"아, 지금 막 우린 거라서 당연히 뜨겁습니다. 천천히 식혀서 드세요. 저 따라 하시면 큰일 납니다."
"이사장님은 입안이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뭐 별로 뜨겁지도 않아요. 용암 정도는 마셔줘야 입천장이 아 조금 뜨겁구나 하고 놀랄 겁니다."
"……."
"……."
내용만 들으면 영락없는 진담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듯이 무게를 잡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금은 장난스러운 유쾌한 어투가 오히려 진담처럼 들리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어서 드세요. 일단 한 잔 드시고 나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겁니다."
입맛이 없어서 찻잔을 입에 살짝 댔다가 떼기만 한 병원장들은 살짝 진지해진 어투에 놀라서 얼른 찻물을 삼켰다.
입이 데이지 않도록 최대한 살살불어가면서 조금씩.
"자자, 차 한 잔씩 드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본격적으로 편안하게 이런 식으로 한 문장에서 양립을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저는 병원은 돈을 벌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장들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너무 큰 한 방이 던져졌다.
가장 연장자인 병원장이 조심스럽게 하수영에게 질문했다.
"특정 병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말 그대로 모든 병원을 말하는 겁니다. 병원은 돈을 벌면 안 됩니다."
"……."
아마 다른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하면 의료인, 비의료인을 가리지 않고 미친 거 아니냐고 온갖 욕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수영은 수십조 원이 넘는 돈을 병원에 쏟아부었다. 그가 병원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는 것은 여실히 증명되었다.
때문에 이 발언이 새어 나가더라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의사도 아니면서 진정한 참된 인술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으리라.
하수영이 그들을 둘러보고는 피식거렸다.
"조금 오해하신 거 같은데요. 의사와 병원은 서로 별개입니다. 의사가 돈을 벌어선 안 된다고 한 적 없습니다."
"……."
"오히려 저는 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돈 많이 챙겨줍니다. 근무시간도 대폭 줄여서 과로로 인한 의료사고도 예방하고, 또 진보하는 의학 공부에 충분히 시간을 쓸수있게 해줘서 개인 실력도 기르게 배려해 줬죠."
그제야 병원장들의 안색이 조금 편안해졌다.
"병원과 의사가 별개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의사도 한 명의 근로자이자 자영업자니까 돈 벌어도 됩니다. 자격따기 힘들고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까 많이 벌어야 의료 품질이 올라가죠."
하수영은 1,500ml짜리 도자기 잔에 또다시 찻물을 가득 따르고는 단숨에 마셨다.
저 많은 찻물을 저렇게 빨리 삼켜버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정말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병원장들은 하영이 보여주는 원초적인 피지컬 차이를 느끼고는 살짝 질려 있었다.
덩치 크고 몸과 주먹이 단단한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어느 정도 겁을 먹게 마련, 하수영은 찻물 차력쇼로 병원장들의 두려움을 이끌어낸 것이다.
"제가 살아오면서 많이 겪어봤는데요. 병원이 돈을 벌려고 하면 결국 나중에는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사하는 악마가 되더라고요. 엄브렐러사 아시죠?"
"죄송하지만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이름을 보면…… 혹시 우산 파는 회사입니까?"
"원래 바이오제약을 하는 회사인데 돈을 많이 벌다 보니 어느 순간 생명이 아니라 돈만을 쫓는 기업이 돼버렸죠. 그래서 전 세계적인 피해를 주었고요."
병원장들은 그런 회사가 있었나 하고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병원도 마찬가지예요. 수익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병원은 사람 목숨을 가지고 돈으로 거래하는 시스템 신봉자가 돼버립니다. 병원장을 오래 하셨으니 누구보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이 자리에서 하영이 넌지시 뜻한 바를 깨닫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 모순이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병원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근데 그런 기관들 특징이 원래 그래요."
"……."
"생각해 보세요. 만약 국세청 업무가 세수 관리가 아니라 수익 추구가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전국의 모든 국민들이 잠재적 예비 탈세범 취급 받습니다."
병원과 국세청을 비교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전 제 생각을 세상에 강요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케이크가 비싸서 빵도 먹기 힘든 사람들에게 케이크를 강매할 순 없으니까요."
"……."
"또 제 생각을 바꿀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병원을 사비로 운영해 왔던 겁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절대로 세상이 말하는 대로, 항공모함과 미사일 순양함을 보유한 병원이 갖고 싶어서 그랬던게 아닙니다."
지금 '절대로'라는 부분에 기묘할 정도로 강한 악센트가 실린 거 같았는데?
"저는 그렇게 선을 분명히 그어놓고 왕세경 부이사장님에게 모든 걸 맡겨놨습니다. 그동안 병원 잘 굴러가고 있었는데, 대체 왜 그러셨어요?"
"……."
"……."
강한 압박의 기운이 몰려오자 병원장들은 숨이 가빠졌다. 이상하게도 공기가 폐에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압니다, 알아요. 병원장님들이 한 게 아니라 병원 주인이 시킨 거겠죠."
병원의 진짜 주인은 재단을 설립한 재벌들이고, 병원장들은 그저 월급 CEO일 뿐이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단 칼을 뽑았으면 상대방 턴 끝나기 전에는 못 집어넣는 거죠. 여러분들이 시킨 대로 한 죄밖에 없는 건 알지만, 그 시킨 대로 한 죄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을 돌아보고 말았네요."
하수영이 자신들을 전부 불렀단 말을 들었을 땐, 그래도 일말의 살아날 길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이 자리에 부른 것은 최후통첩을 공식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인 것 같다.
문제는 자신들은 특별히 수영병원을 공격한 적이 없다는 점.
"이사장님, 오해십니다. 저희는 시킨 대로 한 죄 같은 것조차 없습니다. 이직한 의사들 건으로 인터뷰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저희 역시 의사이고 이직한 후배들을 부러워하는 입장인데 뭐가 문제라서 그들 갈 길을 막으려 하겠습니까."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병원과 의사는 별개다, 병원이 돈벌려고 하면 결국 나중에는 사람 목숨 가지고 장사하게 된다. 제 심금을 울리는 말씀이셨습니다."
병원장들은 앞을 다투어 하수영에게 자신들의 뜻이 그게 아님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하수영은 다시금 도자기 찻잔에 찻물을 가득 따라 마셨다.
시원하게 입안으로 삼키는 모습은, 마치 찻잔 모양의 맥주컵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증명할 기회를 드리죠. 마지막 기회입니다. 전 어설프게 중간에 멈출 마음이 없습니다. 끝까지 갈생각이니까, 다들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경청하겠습니다."
"사표 쓰시고, 최대한 많은 의사들 데리고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 아, 위중한 환자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됩니다."
하수영은 한 명 한명 눈을 맞추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나라는 민간 병원 법인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하나면 충분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