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266화 (1,266/1,270)

프랜차이즈 갓 1266화

290장 성주신의 병원놀이 (5)

발등에 불이 떨어진 4대 대형병원들은 당연히 한 곳이 아니다.

지역마다 병원을 두고 있기에 그 숫자는 제법 상당하며, 모두가 종합병원이지만 또 전부가 상급종합병원은 아니기도 하다. 당연한 것이다.

종합병원은 병상이 100개 이상이어야 하며, 300개가 넘으면 외과를 필수로 갖춰야 한다.

300개에 달하지 못하면 내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중에서 3개를 필수로 갖춰야 한다.

그런데 300 병상이 넘는 종합병원들은 외과가 아예 삭제됐고, 300 병상이 안 되는 종합병원들은 외과 말고 다른 3개 과목 중에서 추가로 박살이 났다.

"의료법상 종합병원 요건을 상실했는데 언제까지 저렇게 놔두실 겁니까? 지엄한 법의 집행을 서둘러 주세요. 이러니까 공무원들이 게으르다는 소리 듣는 겁니다. 저도 준공무원이나 마찬가지인 기초의원으로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군요."

"의 의원님……."

"이걸 보시죠."

그러면서 하수영은 두툼한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겉면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고발장' 이라고 적혀 있었다.

"준엄한 법의 집행이 이 이상 지체 될 경우, 저는 지체하지 않고 보건 복지부를 게으른 행정으로 행정법원에 고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고정을 좀……."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침착하고 차갑습니다."

장관은 차관의 설명을 떠올렸다.

수영그룹은 식량, 반도체, 전기, 통신에 이어서 의료마저도 독점하고 싶은 것이라고.

"자, 고위공직자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해주세요.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

의료시장의 자유화를 외치는 시위대의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아예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하수영한테 종신으로 맡기자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고, 그런 외침이 광기 가득한 박수를 받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수영그룹이 뒤에서 은밀하게 그런 여론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역시 그런 식으로 통계조작, 여론조작을 통한 마사지식 연출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당연히 하수영도 그렇게 했으리라고 여겼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프리덤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프리덤폰은 비싸서 못 써도 프리덤앱은 다들 쓰고 있지."

"프리덤이 작정하고 유저를 길들이려고 하면 거기 넘어갈 수밖에 없어."

"여의도 연구소에서는 프리덤을 이길 수 있는 정치공학적 홍보 수단은 존재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백날 떠들어봐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요. 아이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프리덤이 한마디 하면 모두 그렇구나 하고 단정지어버리는 시대가 됐단 말입니다."

프리덤은 정치, 종교, 윤리, 그리고 불법적인 것에 관해서는 조언을 하지 않지만,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멋대로 그리 생각했다.

지금 이 현상은 프리덤이 만든 것이라고.

그들 역시 프리덤을 사용하는 유저다.

하지만 남에게 알려져도 상관없는 공식적인 스케줄 관리 등에만 사용 한다.

사적인 일에는 절대로 프리덤에게 묻지도 관리시키지도 않는데.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첩을 만나는 등 남에게 절대 알려지기 싫은 시간에는 무조건 핸드폰을 끈다.

프리덤앱을 비활성화하는 것만으로는 믿지 못해서 전원 자체를 off시키는 것이다.

그마저도 못 믿는다며 방음재로 둘둘 싸서 어두운 구석에 처박아 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프리덤을 쓰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폰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을 시키기에는 너무 간편하고 유능하기 때문이었다.

"청담동에서 얼른 종합병원 자격박탈하라고 하는데,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아니, 그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입니까?"

"의료계를 위한다는 사람이 오히려 칼을 들고 환자들을 협박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종합병원 딱지 뗀다고 병원이 폐업을 하거나 진료가 방해를 받는 게 전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청담동을 호하는해서는 안 될 분위기였다.

"로한 의원은 뭐라고 합니까?"

"늘 똑같죠. 청담동에서 하는 일을 자기와 연관 짓지 말라고 합니다."

"허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의료시장개방은 재벌의 청탁을 받아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신중하게 추진해온 대업이었다.

재벌들은 메디컬 산업으로 안정적인 큰 수익을 올리고, 정치인들은 그 대가로 재벌들로부터 은밀히 목돈을 건네받는다.

그런 비즈니스 사업 구상을 오랫동안 실현하지 못한 것은 국민적인 반감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었다.

잘못 건드리면 고양이 목에 방울은 자기가 달았는데 팽을 당하고, 남들만 그 과실을 누리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안정적인 흐름이 오래 유지되었다.

그런데 그 오랜 꿈이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이뤄질 줄이야. 그리고 그 과실은 정작 엉뚱한 놈이 독차지하게 될 줄이야.

여의도 정치인들 중에서 하수영한테 감히 뭔가를 요구하거나 받아내려고 할 만큼 간이 큰 이는 없었다.

그는 다른 재벌들과는 전혀 달랐다. 재벌이라기보다는 군벌에 가까웠다.

이미 신대한국(중한)의 실질적인 국가 수장이기도 했다. 잘못 건드리면 가족 단위로 인생이 절단 난다.

저번 육군검찰여당 쿠데타 때 다들 확실히 느꼈다. 저건 자연 재앙이라고.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좋은 생각이 있어요?"

"각 병원들에 시정 조치를 내리고 엄히 징치하는 겁니다. 정확히는 하는 척만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끌죠."

"아니, 그런 이야기는 내가 소주다섯 병을 먹고 나서도 할 수 있어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잖습니까?"

"시간을 끌면서 약점을 찾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뭐요? 지금 설마 청담동을 털자는 겁니까? 아니, 이게 무슨……."

동료 의원들은 화가 났다.

개소리를 해도 참신하게 하면 화라도 덜 나지, 이건 무슨 구태의연한 자기 발등 절구통 빵기도 아니고…….

"청담동을 털자는 게 아닙니다. 저도 절벽에 주먹질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제가 말한 건 이직한 의사들입니다."

"이직한 의사들을……?"

"네. 물론 정치권에서 나섰다는 것은 무조건 감춰야죠.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세무조사든 뭐든 간에 이직한 의사들만 집중적으로 당하면 청담동에서도 결국 알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러니 누가 봐도 안 이상한 명분을 만들어야죠. 다들 아시겠지만 진료행위라는 게 요즘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나이롱 환자들한테 대충 처방해주고 의료비 청구하는 경우가 좀 많아요?"

"호오……."

"그간 줄줄이 새어 나가던 공단의 돈을 모조리 전수조사한다. 라는 명분으로 대대적으로 터는 겁니다. 굳이 청담동으로 이직한 의사들만 따로 노릴 필요도 없어요. 공정하게 모두 사이좋게 터는 겁니다."

동료 의원들이 덕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이좋게 모두 털어버린다면 의심할 여지가 적긴 하죠."

"명분만 확실히 챙긴다면 의료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는 정책적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을 테고."

"그렇게 한 번 해봅시다."

"이거야말로 청담동에서 만약의 경우 우리 의도를 눈치채도 어쩌지 못하는 가불기 아닙니까? 하하하."

***

규모가 클수록 새는 돈은 많아진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건강보험제도는 그 빈틈을 노리는 악의적 소비자들이 많다.

사고가 나자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보험금이나 입원일당 등을 노리고 불필요하게 과잉치료를 받는 경우는 이제 농담거리도 안 되는 흔한 일이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4대종합병원들을 지키기 위해 아예 의료계 전체에 불을 질러버리는 대맞불 작전을 시행했다.

[건강보험재정의 새는 돈을 막겠습니다!]

[보건복지부, 지난 10년간 건강보험재정의 누수를 모조리 찾아낸다! 전수조사 실시!]

[의사들, 지금 떨고 있니?]

그것은 의료계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대중은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오랜만에 국회가 제대로 일을 하려 보나 하고 좋아했다.

겉보기에 명분은 완벽했고, 심지어 전수조사를 추진하는 실무자들도 그 이면에 가려진 진실된 의도를 알지 못했다.

정치권에서 드디어 팔을 걷어붙이고 도둑들을 잡아내려고 작정했구나, 하고 실무진조차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수영병원 분위기는 두 분류로 나뉘었다.

전신이던 윤병원 시절부터 근무해온 의사들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수영병원으로 바뀐 이후 비교적 일찍 이직해 온 이들도 상대적으로 불안감이 덜했다.

하지만 최근에 대대적인 스카우트시즌 때 이직을 해온 의사들은 괜히 불안해했다.

"이거 잘못하다가 전 병원에서 나한테 모두 뒤집어씌우면 어떡하지?"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잡히는 척이라도 할 걸 그랬나? 너무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왔나……."

"미치겠네. 이상한 거라도 나오면 전 병원에서 절대로 좋은 말은 안해줄 텐데."

특히 대형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들일수록 더욱 큰 불안에 시달렸다.

전 직장에서 이 일을 빌미 삼아 자신들에게만 책임을 몰아주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형 병원일수록 대기업을 닮아 사내정치가 무척 심했으니까.

***

왕세경은 고창식 전무한테 보고를 받자마자 입을 열었다.

"이거 우리가 스카우트한 의사들 치려고 꾸민 일 아니야?"

"지금 이직 의사들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폭발에 휘말리고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부이사장님 추측이 맞을 거 같습니다."

"취지는 옳은데, 하필 이런 시기에 벌이는 건 의도가 뻔하지."

왕세경과 고창식은 다른 사람들처럼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연기가 나면 반드시 불이 난 것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면 굴뚝 밑에 지금 불이 붙은 것이고.

"겉보기에는 우리 병원에 이직한 의사들보다는 다른 병원, 특히 4대 종합병원들이 더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서 놈들의 교활한 의도를 섣불리 점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똑똑한 친구들은 돌아가는 상황 재단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을 거야."

"그럴 겁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참 고맙기도 하군."

왕세경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자 고창식은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왕세경 밑에서 그를 보좌하면서 세경그룹이 커져 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봐 온 그 짜릿함이 되살아났다.

"부이사장님, 저희는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하면 좋겠습니까?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고 전무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놈들의 정확한 의도를 저격하면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겠죠. 그럼 놈들도 앗 뜨거라 하고 당황할 겁니다. 빈틈이 여기저기 생길 거고, 쉽게 분열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진흙탕 싸움도 괜찮지. 남들은 지저분하고 끝이 안 좋다고 질색하지만, 실컷 드잡이질하고 나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도 없어."

왕세경은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잠시 표정이 초연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이사장과 어울리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게임이라는 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선 안 돼."

"네? 당연히 내가 원하고 나한테 유리한 방식으로 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병법에서도 그렇게 말을 합니다만."

왕세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보다는 상대가 질색하고 빡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네."

"……아."

우습게도 고창식은 그 한마디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버렸다.

"놈들이 건강보험을 들고 나왔으니, 우리가 이제 거기에 오물 좀 투척해 줘야 하지 않겠나?"

***

[속보! 하수영의료재단, 재단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의료보험 발표!]

[국가보험을 대신하는 민영보험 시대 열린다!]

왕세경은 더 큰 프레임으로 적들이 내세운 프레임을 가둬 버렸다.

어제까지 들끓었던 게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이제 아무도 건강보험공단 전수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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