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65화
290장 성주신의 병원놀이 (4)
보건복지부 차관은 왕세경 부이사장이 품고 있는 원대한 야망을 드디어 깨달았다.
하수영이 식량, 반도체, 전기, 통신을 독점했듯이 의료시스템도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저 4가지 산업이 모두 하수영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 99%도 아닌 100% 퍼펙트 독점을 이뤘다.
"부이사장님…… 단순히 압도적인 1등이 되고 싶으신 게 아니었군요."
"1등이라……."
왕세경은 옛날 생각이 나는 듯 회한에 잠긴 채 가볍게 중얼거렸다.
그 스산한 표정에 어린 오랜 연륜에, 차관은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네. 서해 그룹과 세경그룹이 경쟁사업 부문에서 1등을 놓고 경합을 벌일 때였어. 이창영이가 이런 말을 했었지."
"……."
"그렇게 바라던 1등을 차지해서 지금은 기분이 좋겠지만, 머지않아 자기들이 다시 1등을 차지할 거라고. 그때까지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일세. 그때 물산과 건설에서 세경그룹이 1등을 먹었거든."
이유 없이 갑자기 철 지난 과거의 영광된 순간을 꺼낸 것은 아닐 것이다.
차관의 예감은 맞았다.
"내가 원한 건 1등이 아니라고 했었지."
"그럼 뭐라고 하셨습니까……?"
"無 등수 따위가 없는 거."
"……."
"1등이라는 것은 2등, 3등, 4등도 존재하는 도떼기 시장판이라는 의미아닌가. 난 1등이 아니라 시장의 유일한 상인이 되고 싶었네. 나 말고 다른 경쟁자는 아무도 없는, 내가 하나부터 천까지 다 해처먹는."
"……."
"이창영, 그 차이 때문에 당신이 잘나가던 물산과 건설 부문에서 나한테 패배한 거다. 이렇게 말하니까 놈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냥 웃기만 하더군."
죽을병을 앓고 완치된 후 재계에서 은퇴하며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혈혈단신으로 거대한 세경그룹을 이뤄냈던 기업가의 욕심은 모두 사라지고, 온화한 보살처럼 환자와 가족들을 아끼고 돌보는 의료종사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말로만 손을 뗀 게 아니라 그룹일에는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배당금 들어오는 것도 고스란히 의료자선사업에만 쓰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 차관이 보기에, 왕세경이 한때 가슴에 품었던 웅장한 갈망은 사그라진 게 아니었다.
단지 그 안에 담았던 것을 모조리 비우고 새로운 것을 담았을 뿐, 갈망의 거대함만큼은 여전했던 것이다.
"늙은이 욕심인가? 탐욕인가? 노욕이라고 생각되나?"
"아닙니다."
"헌데 자네 표정은 그래 보이는군."
차관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변명했다.
"오해십니다."
"오해든 진심이든, 상관없네. 난 이 나라 의료서비스의 질을 천상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리 하수영의료재단이 의료시장을 독점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네."
"부이사장님, 그러나 개인의 병원이 한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대신하는 것은 후대에 큰 문제를 야기할 겁니다."
"그거야 평범한 이들에게나 그렇겠지. 우리 하수영 이사장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닐세."
왕세경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하수영이 세속적인 욕심을 얼마나 초월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인간이 있다니.
"수백조 원을 들여서 해군에 온갖 무기를 증여한 사람을 아직도 못 믿나?"
"저는 다만 그 후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중에 이사장이 어떤 자녀를 낳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자식 교육에서 실패하진 않을 걸세. 자손 대대로 말이야."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다.
왕세경은 더 이상 감성적인 문장주고받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쉽게 가세나 이거 하나만 상상해 보게. 이 나라 모든 대형종합병원마다 입자집합명령 가속기 치료기가 있는 모습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는가?"
"……."
"우리 재단이 인수한 병원은 내가 책임지고 입집명 치료기를 도입하겠네. 그룹 입장에서도 금전적인 손해가 막심하겠지만, 하수영 이사장은 '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해서는 충분히 지갑을 열 사람일세."
"렌탈 형식으로 다른 병원에 제공해 주시는 것은 역시 곤란하겠지요?"
"자네라면 고작 몇 푼 안 되는 렌탈비나 챙기자고, 관리와 보안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남의 손에 그 비싼 치료기를 맡기겠나?"
왕세경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차관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게 낫지. 남의 손에 맡겨놓았다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훔쳐가거나 아니면 안을 뜯어보려는 놈들이 설칠게 뻔한데, 왜 그래야 하나? 하여튼 누가 보건복지부 아니랄까 봐, 왜 그렇게 의료정책에는 무리한 욕심을 내는 건가?"
"죄송합니다. 제가 조급한 마음에 그만 실언을 했습니다."
"실언했으니 혼이 나야지. 돌아가서 얌전히 기다리게."
"요. 용서해 주십시오."
"어허, 더 크게 혼이 나고 싶은 건가? 어서 일어나시게."
왕세경이 조용히 쏘아보자 그 분위기에 짓눌린 차관은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크게 혼내지는 않을 걸세. 적당히 자네가 감당할 만큼만 혼낼 테니까 반성하고 있어."
차관은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실언으로 마음을 어지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내가 지금은 나름 의료산업 관계 자라서 봐주는 거야. 상인 노릇 하던 시절에는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요구 해오면 사람으로 안 보고 상종도 안 했었어."
차관은 몇 번이고 사과를 더 반복한 후 부이사장실을 겨우 나섰다.
'젠장'
결국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수영병원이 깡그리 긁어간 외과의 등 기피 의사들의 타병원 파견 유도는 실패했고, 이제 4대 종합병원들은 종합병원 자격이 취소되기만을 차근차근 기다려야 한다.
마치 꽁꽁 묶인 채로 점점 목을 향해 다가오는 칼을 지켜보는 포로가 된 것처럼.
***
차관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왕세경이 한 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병원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몇 km도 채 멀어지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도로 위에서 말이다.
"차관님! 수영병원에서 기습 오피셜을 발표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차관님이 부이사장실을 나서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기습 오피셜? 내용이 뭔가? 잠깐, 설마?"
불현듯 구체화되는 상상에 차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운영이 어려운 병원을 제한 없이 인수할 생각이 있으며, 재단 원칙에 따라 모든 병원을 동등한 수준으로 경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입집명 치료기도 예외는 될 수 없다고……."
입자집합명령 치료기는 치료비가 10억 원이 넘어가는 만능 치료기다.
단 한 번만 치료받으면 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암세포가 '일단' 소멸한다.
전이가 되고 싶어도 전이할 암세포가 단 한 개도 남지 않고 모조리 소멸하는 것이다.
암 입장에서는 숙주를 죽이기 위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만 하는 것.
때문에 환자들은 청담수영병원과 구로수영병원에 대기예약을 걸어놓고 자기 차례가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돈이 없어도 괜찮았다.
수영병원의 치료비 지원 정책은 입집명 치료기에도 적용이 되었으니까.
오히려 돈 많은 환자들이 치료비지원 정책을 폐지하고 순수하게 돈으로만 경쟁하고 싶어하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제발 수영병원이 다른 대형병원들을 통합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겠군……."
차관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다른 병원 정상화를 위해 자신이 설득을 하러 찾아왔지만, 병원을 나서자마자 이런 발표를 해버리다니.
이대로 돌아가면 장관한테 어마어마하게 깨지고 말리라.
대체 얼마나 수영병원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기에 헤어지자마자 이런걸 터뜨리냐고, 그렇게 조인트를 깔게 눈에 보였다.
***
「의료시장을 개방하라.」
「영리병원 완전 허용해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어째서 의료의 자유는 없는가?」
「우리는 살고 싶다. 치료받고 싶다.」
「정부는 국민들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
「무엇을 위한 의료시장 통제인가? 누구를 위한 영리병원인가?」
「재벌 기업 챙겨주기식 영리병원허용은 이제 그만 사절!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병원을 위한 영리사업허용하라!」
대중은 아주 어리석지 않았다.
평소에는 선동과 날조에 속아 무엇이 자신들에게 이익인지 오판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렸다.
수영병원에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라는 시위가 연일 이어진 것이다.
서해병원 등 재벌 기업들이 메디컬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기 위해 그간 힘들게 벌인 로비 등의 노력이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은밀히 추진하던 영리병원 사업을 대중이 피켓을 들고 핏대를 세워가면서 허용하라는 시위 광경은 그들에게 복잡한 심경을 안겨 주었다.
심지어 그 혜택은 오로지 수영병원한 곳에만 몰아서 주고, 자신들은 그저 얌전히 손 털고 의료시장에서 빠지라는 내용이었으니.
「보건부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우리에게는 수영병원이 필요하다! 그 외의 대형병원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왕세경 부이사장을 종신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건강보험공단을 하수영의료재단 재무부로! 외과 의사 하나 없는 4대 종합병원들을 수영병원으로!」
소화기로는 끌 수 없는 광기의 불꽃은 매일같이 이어졌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은 절박했다.
더 많은 입집명 치료기가 배치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치료받아서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
입집명 치료기로 새 삶을 얻은 전 직 환자와 그 가족들도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입집명 치료기는 암뿐만 아니라 항원성 질병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였기에(표적으로 삼은 특정 세균과 바이러스를 완전 박멸할 수 있음), 폭넓은 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다.
***
보건복지부 청사를 찾은 하수영은 장관과 함께 청사 외벽 밖에서 시위중인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혼란 방지를 위해 그는 헬기를 타고 청사를 조용히 방문했다.
"이거 장관님이 요즘 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부이사장님도 참,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을 생각 못 하셨나? 그렇게 조급하게 언론에 터뜨려 버리니 이렇게 소란스러워지지 않습니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관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하수영의 비위를 맞췄다.
육군검찰야당의 삼위일체 쿠데타때 활약한 안드로이드 군단을 본 이후, 장관에게 이 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하영이 되었다.
"저도 시위 많이 겪어봐서 아는데 이게 참 힘들더라고요. 내 집, 내 직장에서 편안하게 쉬거나 일하기도 벅찬데 원치 않는 외부 소음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제가 그래서 중앙정치판으로 안 나가고 청담동 구의회에만 머물러 있는 겁니다. 전 이 정도 그릇이 딱 맞아요."
'이 정도 그릇이라니.'
장관은 속으로 참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을 철저히 감췄다.
"의원님, 저를 찾아오신 것은 왕세경 부이사장님 발표대로 다른 병원인수 활동을 법적으로 정당히 보장받기 위해서이신지……."
"부이사장님이 무슨 요구를 하셨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이사장 직함 걸고 있지만 하지만 병원의 실무는 잘 몰라요. 그냥 큰 방향만 제시하고 돈만 댈 뿐입니다."
장관은 그럼 왜 왔는데, 하는 마음을 숨기느라고 애를 먹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4대 대형종합병원들, 지금 외과의가 하나도 없잖아요? 즉 외과 자체가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 그렇습니다만."
"근데 왜 종합병원 티어 그대로 유지시켜 주시나요? 우리 수영병원은 칼같이 상급병원 티어 안 주시면서."
장관은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꼬장 부리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쩍 스쳤다.
"그 병원들, 빨리 '종합' 글자 떼고 '병원'으로 강등시켜주셔야죠. 의료산업 종사자로서 이런 게으른 행정을 참을 수 없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