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64화
290장 성주신의 병원놀이 (3)
수영병원으로 이직하지 않고 다른 종합병원 기피학과에 남아 있던 의사들은 그만큼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강한 이들이었다.
수영병원으로 이직하면 더 많은 월급에 더 폭넓은 워라밸이 보장되는 것을 알지만, 당장 이 병원에 남는 자기 환자들을 담당할 이가 없다는 것 때문에 이직을 보류한 것이다.
그러나 수영병원은 그런 환자들까지 데려옴으로써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원래 책임감이 남달리 강한 의사들은 포드항모 병원선이라는 새로운 의료 환경에 강한 호기심과 관심을 품었다.
그들은 이 거대한 배가 웬만한 특급병동보다 훨씬 시설이 좋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의료설비만으로 따지면 부족한 게 전혀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심지어 입자집합명 치료기 갖춰놓고 있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병원이 존재할 수 있는 거지?"
"포드항모가 13조 원이라던데, 차라리 전문 병원선을 만들었으면 돈을 더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에이, 항모 개조 병원선이기에 일반적인 병원선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장점을 생각하셔야죠. 바로 기동성입니다. 기동성."
"기동성?"
"캘리포니아에 정박한 채 내륙 수백km 안쪽에서 발생한 환자를 신속히 데려올 수 있는 건, 항모를 개조한 병원선이기 때문입니다. 비행갑판이 없는 다른 병원선은 불가능하죠."
"그렇다면 비행갑판만 추가한 전용 병원선을 새로 만드는 게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죠. 무엇보다 포드 항모를 개조한 것은, 즉각적인 병원선 전용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비행갑판 추가한 전용 병원선박을 따로 건조하려면, 적어도 3년은 소비했을 겁니다."
새로 이직해 온 의사들은 병원 항모의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왜 해외에 직접 병원을 짓지 않고 이렇게 병원선을 운용하는 거죠?"
"병원선을 굴리는 건 해외에 체류중인 한국인들을 위해섭니다. 만약 캘리포니아에 병원을 지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환자를 골라서 받을 수가 없어요."
"아."
"예약제로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죠. 애초에 병원선 자체가 하수영의료재단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고, 국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입니다. 그걸 외국인들에게 나눠줄 필요는 없는 거죠."
"이해했습니다."
병원선은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 흥미를 끌었다.
크루즈선 못지않은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데다가, 연중 8개월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2개월 근무 후 4개월 휴가, 혹은 4개월 근무 후 8개월 휴가,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최소 1개월단위로 끊어서 근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월급은 육상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더 많았다.
'일 년에 겨우 4개월만 집에 안 들어가는데 이렇게나 차이 난단 말이야?'
전 직장하고 수준 차이가 너무 났다.
중간층 의사 급여는 그럭저럭 비슷한 수준이지만, 근무 시간이나 강도를 보면 시급에서는 두 배 이상 훌쩍 벌어지는 수준이다.
똑같은 액수를 받아도 누구는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 이상이고, 누구는 일주일에 3일 하루 8시간이니.
***
왕세경은 요즘 들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대형종합병원 기피학과 의사 대부분, 외과의 전부를 긁어오니 뭔가 업적을 하나 달성한 듯한 기분이다.
"이사장이 왜 그렇게 업적 업적 하는지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니까. 늙으니까 이런 낙이 참 소소하고 좋군."
"즐거우시다니 저도 참 마음이 가볍습니다. 부이사장님."
"고 전무. 보건복지부는 아직 반응없나? 지금쯤 호다닥 놀라서 달려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무턱대고 달려올 수 없으니 아마 머리 맞대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겁니다."
"에잉, 그렇게 머리 굴리느라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직접 부딪쳐가면서 해결하는 게 낫지."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휴짓조각이 되는 게 바로 전쟁 계획.
그런데 보건복지부놈들은 이미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열심히 또다른 전쟁계획만 세우고 있고, 정작 전장이 어떻게 굴러가든 내팽개치고 있으니.
"공무원 놈들은 이래서 안 돼. 쯧쯧……."
"놈들도 쉽게는 움직이기 힘들 겁니다. 우리 병원은 다른 병원들처럼 보건복지부가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지금 시중에서 외과의가 매점매석당했는데 발만 동동구르면서 대책 회의나 한다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가? 회사 임원들이 그랬으면 벌써 싹 다 잘랐어."
그리고 드디어 기다림 끝에 보건복지부에서 왕세경을 찾아왔다.
차마 장관이 직접 오진 못하고 차관과 수행원이 대신 병원을 방문했다.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회장님."
"부이사장이라고 부르게 그룹 일은 오래전에 관뒀고, 현직으로 재단 부이사장으로 있으니 말이야."
"죄송합니다. 부이사장님."
"근데 차관 자네 얼굴이 그리 낯이 익지는 않군. 날 처음 보는 게 맞나?"
"오래전 먼발치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만, 한 번도 감히 말씀을 올린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야 처음으로 부이사장님과 시선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차관은 왕세경 앞에서 잔뜩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얼마 전 법꾸라지 놈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긴 했지만, 뭐 썩 괜찮은 편일세. 그놈들도 결국 지은 죄만큼 벌을 받아서 지금 싹 다 죽었지 않나."
쿠데타에 가담한 판검사들은 엄밀히 말해서 죽지 않았다.
다만 사형집행법에 따라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평생 면회 금지에 사형수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 만나지도 못하고, 세상 소식도 전혀 알 수 없으니.
"불법압수수색이었지요…… 저도 그때 지켜보면서 참으로 황망하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순리대로 잘 풀려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빈말 같지만 뭐 그렇다 치고 넘어 가세."
차관은 움찔했다.
당시 서슬 퍼런 검사들의 압수수색에 맞서 안드로이드 군단이 저항하고, 육군 쿠데타까지 깔끔하게 진압한 광경은 차관의 뇌리에 큰 충격으로 각인되었다.
금력과 권력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무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병원이기에, 조금이라도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된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그래, 무슨 용건인가?"
"부이사장님, 지금 4대 종합병원들이 외과의가 없어서 종합병원 자격을 취소당하게 생겼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건가? 우리가 힘들게 채용한 의사들을 해고라도 하라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수영병원 의사들은 여가 시간이 남아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다른 병원에 파견을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보게 김 차관."
왕세경이 다소 엄한 뉘앙스로 부르자 김 차관은 저도 모르게 찔끔했다.
"우리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여가 시간을 폭넓게 보장하는 것은, 그 시간 동안 공부하고 연구해서 자기 실력을 늘리라는 취지일세. 또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것도 있지. 휴식은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거거든."
"부이사장님. 하지만 지금 4대 종합병원들이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게 진작 의사들 팍팍 늘리고, 기피학과 지원도 팍팍 해주고 그랬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
"사실 그동안 우리 병원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줬나? 하지만 4대 병원들은 그러지 않았어. 우리가 보낸 무언의 경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고 회피했단 말일세."
왕세경은 팔짱을 끼며 혀를 찼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꼭 소를 잃어봐야 외양간의 소중함을 알어. 그런데 그것도 그나마 얼마 못 가. 그러니 소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나?"
"지금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왜 무너지나? 4대병원이 전부는 아닌데. 널리고 널린 게 종합병원일세."
"부이사장님, 제발……."
차관이 아무리 간청을 해도 왕세경은 웃는 얼굴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그러지 말고, 그냥 이참에 우리 재단을 보건복지부 협력재단으로 지정하는 건 어떤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기존 제도에 없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니, 차관이 헷갈릴 만하다.
"우리 재단에서 적극적으로 보건복지부의 의료정책을 도와주겠다 이거야. 특별고문 같은 지위를 주는 거지. 어떤가?"
"그, 그것은……?."
"생각해 보게. 우리 병원은 청담스코프 개발로 맹인도 정상인 이상으로 앞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열었네. 뿐만 아니라 입자집합명령 치료기로 모든 암을 정복했지. 심지어 나라에서 그 어떤 지원을 받은 것도 없어."
"……."
"대체 보건복지부가 우리 재단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가? 하다못해, 돈이라도 우리 재단보다 나은가? 아니잖나."
너희 참 쓸모없다, 라는 말을 돌려서 아프게 뼈를 때리고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건강공단도 우리한테 줘버리고 관리 맡기는 게 낫지 않겠나?"
"그, 그럴 순 없습니다!"
"나도 안다네. 그러니까 우리 재단에 특별 지위를 부여하라는 거지."
"이미 하수영의료재단에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지위와 권한을 부여했지 않습니까?"
졸지에 외과가 텅 비어버린 4대 병원들을 위해서 외과의들 좀 수급 받으러 왔더니, 오히려 공단을 뺏기게 생겼다.
"음, 알겠네. 김 차관 자네가 우리 병원의 대국적인 행보를 가로막은 점, 내 똑똑히 기억하지."
"예? 부이사장님, 혹시……."
"걱정 말게. 내가 뭐 이런 거 가지고 사적인 보복이라도 하겠나? 그저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우리 병원에 자네와 자네 가족들이 입원하게 될 일이 있으면, 자네가 신봉하는 그 규칙과 질서대로 처리해 줄 뿐일세."
차관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나중에 환자로 입원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재단 지원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그것도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이것은 협박이지만, 또 협박이 아니다.
다른 환자들에게는 베푸는 선의를 너에게는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이니까.
'괜히 왔다.'
생각이 머릿속을 잔뜩 지배했다.
"김 차관, 잘 생각해 보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어차피 우리 재단이 선도할 수밖에 없어. 실제로도 지금 그러고 있고, 자, 한 번 생각해보게. 전국의 모든 종합병원마다 입집명 치료기가 한 대씩 놓인 세상이 어떨까?"
"그, 그게 가능합니까?"
김 차관은 조금 전의 충격도 잊고 가슴이 심하게 벌렁거렸다.
입집명 치료기는 모든 암세포와 세균,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
그보다는 덜 주목을 받지만, 당뇨환자의 혈당을 손쉽게 체크할 수 있으며, 신장환자의 투석 또한 주삿바늘 없이 처리해 준다.
적어도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은 신장의 역할을 100% 이상으로 동일하게 수행해 준다.
하지만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귀해서 청담수영병원에만 겨우 몇 대를 간신히 들여놨을 뿐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입집명 장치는 대부분 서 진파운드리에서 반도체 같은 소형 초고부가가치 제품을 찍어내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당연히 가능하지. 어디까지나 예산과 시간이 문제일세. 지금까지는 우리가 굳이 그런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을 뿐일세. 왜 남의 병원 좋으라고 그 귀하고 비싸고 도난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입집명 장치를 설치해 주나?"
이상하게 왕세경의 말이 달콤하게 들렸다.
"하지만 우리 재단 밑으로 들어온 병원에는 입집명 치료기를 설치 못해줄 이유가 없지. 안 그런가?"
"……."
"내 장담하지. 우리가 먹은 병원은 반드시 입집명 치료기를 도입해 주겠네. 우리가 가능한 많은 병원을 차지할수록 이 나라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