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62화
290장 성주신의 병원놀이 (1)
의대 기피학과 현상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오랫동안 곪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외상외과, 흉부외과, 뇌신경외과 등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과가 배척당하고, 피부, 성형, 안과, 정형 등 생명보다는 삶의 질에 연결된 과에 인기가 쏠리는 게 장기화된 현상.
사람을 살리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런 의사가 되고 싶어서, 혹은 교수의 꼬드김에 속아 진로를 잘못 선택했던 많은 이들은 크게 후회했다.
병원에서 TO 부족으로 밀려나와 로컬 개업을 해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동네병원에서는 받으려 하지 않았으니.
대형병원에서는 돈 안 되는 필수생명학과 예산을 줄여 버리지, 자리는 없지, 개업을 해도 환자들이 안 오지, 그 와중에 피부안과성형은 안정적인 데다가 사람 죽는 거 볼일없으니 멘탈 관리에도 좋지.
"사람 살리는 게 멋있어 보여서 이쪽으로 왔는데 내가 죽게 생겼다!"
"정부고 협회고 국민이고 우리 말은 아무도 안 듣는다!"
"평생 퐁당퐁당 하면서 사는 게 이게 사람 사는 거냐?"
어쩌다가 진로를 잘못 선택한 신세가 된 이들은, 그러나 존버 끝에 빛을 맞이했다.
"수영병원 특별법이 통과됐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까지 수영병원을 옭아매고 있던 보건부 제약이 모두 사라졌다. 의대고 뭐고 간에 수영병원은 이제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이전에도 수영병원은 공격적으로 의사를 모집해 왔다.
하지만 완전한 자유라고는 할 수 없었다. 숫자 등 일부 제약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수영병원은 이제 자체 의대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고, 병원 운영 및 의료진 모집에도 보건부의 족쇄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독점 규제가 풀린 첫해, 청담수영병원은 무시무시한 파워를 발휘했다.
전국의 모든 대형병원들은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지원율을 보고 경악을 토해야만 했다.
"올해 인턴 지원 숫자가 왜 이래? 레지, 전문의는 또 왜 박살 났고? 무슨 일이야?"
"수영병원에 그나마 걸려 있던 모든 족쇄가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전부 저번에 통과된 수영병원 특별법 때문입니다."
인턴 지원 숫자가 처참하게 박살났다.
그나마 인턴 쪽은 괜찮다.
레지던트와 전문의 쪽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기피학과, 즉 생명을 다루는 학과는 지원자가 0이었던 것이다.
0에 가까운 것도 아니고 그냥 0이었다.
"레지, 전문의 외과 지원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야?"
"원장님. 지금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만……."
"뭔 개소리야? 지금 이거 안 보여? 올해 외과 레지, 전문의 채용이 0이라고, 0! 이거보다 더 큰 문제가 지금 어딨다고?"
"우리 병원 외과의들이 전부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뭐?"
병원장은 잠시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수영병원 때문에 그동안 꾸준히 필수학과 인력 유출이 지속돼 왔다.
한때는 종합병원 조건을 아예 유지하지 못할 지경까지 처했다.
300병상을 초과하기에 내과, 외과 등 9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반드시 유지해야 종합병원 자격요건을 지킬수 있는데, '외과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갈 뻔했던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연봉을 대폭 인상해 주며 외과의들을 붙들어 놓았다. 그 덕분에 병원 적자는 더욱 심해졌지만, 종합병원 자격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걸 본 소아청소년과도 가만있지 않았다.
소아청소년과에서도 수영병원으로 집단 이직을 꾀했고, 일이 터지기 전에 연봉을 대폭 올려주며 부랴부랴 틀어막았다.
그런데 그 일이 또다시 일어났다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리 병원이 수영병원 최상위만큼은 못 맞춰 줘도, 중상위권 연봉은 맞춰주고 있잖아."
"워라밸 때문입니다, 병원장님."
"워라밸?"
"아시잖아요. 수영병원은 주3일제라는 거."
"……."
"근무 시간 따지면 사실 우리가 중 상위권 연봉 맞춰주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김 실장, 지금 이 사태를 그냥 지켜만 보자는 거야? 해결책은 없어?"
"우리 병원도 수영병원처럼 운영하지 않는 이상은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렇게 운영하면? 우리는 뭐 흙파서 장사해? 거기처럼 운영했다가는 일 년도 못 가서 문 닫는다고, 문 닫아!"
병원장은 버럭 화를 냈지만, 분노를 터뜨린다고 외과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한 이 상황을 해결할 순 없었다.
게다가 올해 외과 지원율이 0이라니.
이대로는 병원의 미래가 없다.
결국 외과는 없어지고, 종합병원요건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아…… 혈압이, 아……!"
머리가 빙글빙글 돌다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
그런 현상은 전국의 모든 종합병원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었다.
외과 등 기피학과 의사들은 너도나도 짐을 싸들고 수영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국가로부터 독점면허를 부여받은 수영병원은 거침없이 그들 전부를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지속적인 약탈에 신음하고 있던 한국 의료계의 텃밭에서 뿌리까지 모두 다 뽑아와 버렸다.
세경그룹 가신 출신, 고창식 전무가 깍듯하게 보고했다.
"부이사장님, 우리나라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외과의의 90%를 확보했습니다."
"나머지 필수학과는?"
"그것도 70% 이상을 넘어섰습니다."
"조금 아쉽군. 우리 병원 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왜 100%를 달성하지 못했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파격적인 수준이다.
"아무래도 당장 자기들이 이직하면 병원에 남은 환자들이 위험하다는 것 때문에 망설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음……."
"힘든 기피학과에 지원하고 쭉 남아 있는 것은 보통 사명심으로는 안되죠."
"하긴, 아무리 천민자본주의 시대라지만 모든 의사들이 돈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 오히려 드물게 그런 사명감 넘치는 의사들이라니, 꼭 확보하고 싶은데?"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무슨 방법이 있나?"
"병원에 남아 있는 중환자들을 우리 병원으로 몽땅 전원하면서 남은 생명과 의사들도 챙겨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창식의 말에 왕세경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고 전무 아이디어는 좋아. 흥미가 가네. 하지만 현실성은 없어. 알지?"
"예."
지금 수영병원은 청담본점과 구로 본점 모두 병상이 꽉 찼다.
빈 병상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병원선 1, 2, 3호기는 병상 상황이 여유롭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회장님, 아니, 부이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지금까지 우리 수영병원 문을 두드리지 않고 레거시 종합병원에 끝까지 남아 있는 의사들은 그만큼 사명감이 투철한 귀한 인력입니다. 큰 지출을 각오해서라도 끌어들여야 합니다."
"음……."
"그런 귀한 인력이라면 포드항모병원선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궁금해서라도 설득에 넘어올 거라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왕세경은 그 아이디어에는 끌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은 위중한 환자들과 개별접촉을 해야 하는데, 이건 엄연한 불법이야."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하면 됩니다.」
"프리덤?"
「저는 모든 사용자들로부터 개인 위로를 위해 상시적으로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급받고 있죠. 제가 재단에 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개별적으로 그 환자들에게 '더 좋은 치료 환경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고창식 전무가 맞장구를 쳤다.
"불법은커녕 환자에게도 좋은 일이죠. 물론 병원들에는 안 된 일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이 안 되면 도태되어야지요."
그리고 왕세경은 그 혹독한 자본주의에서 혈혈단신으로 대재벌을 이뤄낸 창업군주.
지금은 속세 시절을 잊고 병원이사장이자 수영병원 성주신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환자의 생명 보호에 있어서는 타협을 하지 않았다.
다른 대형병원 재단의 재정적 출혈과 환자의 치료환경 개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했다.
"그런데 중환자 같은 경우는 이송자체가 거의 어려울 텐데."
"퀸 스텔리온을 이용하면 됩니다. 날아다니는 수술실이자, 중환자실이죠. 다만 항속거리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3척의 병원선은 퀸 스텔리온이 날아갈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다.
포드항모 2척은 각각 미국 캘리포니아 해역, 유럽 지중해에.
초호화 크루주선을 개조해 만든 퀸루나 호는 인도양 아리비아 해역에.
"공중급유를 활용하면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무리 날아다니는 중환자 실이라고 해도 지나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고창식의 말에 왕세경은 결정을 내렸다.
"퀸 루나 혹은 포드항모 한 척을 한국에 불러오는 게 좋겠군. 어느 쪽이 좋겠나?"
"호화 크루즈선을 개조한 퀸 루나는 사치의 극을 달리니만큼 자랑하기에는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병원을 찾지 않고 남아 있는 의사들이라면……."
"포드항모를 어떻게 병원선으로 개조해서 굴리는지 더 관심이 갈 거란 말이지."
"네. 덕후들이 원래 그런 기질이 좀 있지 않습니까? 항모를 어떻게 병원선으로 굴린다는 건지 궁금해 하는 의사들은 많습니다."
「퀸 루나 호는 오히려 포드항모보다는 그런 심층적 기대치가 낮습니다. 원래 초호화 크루즈선이니 병원선으로 개조해도 특급병원 수준이겠지, 하고 당연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좋아. 그럼 캘리포니아에 있는 포드항모를 이동시켜. 프리덤, 너는 그사이에 환자들에게 '질 좋은 정보' 를 제공하고."
「알겠습니다.」
"고 전무. 자네는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네. 저는 스카우트 대상자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설득 작업을 하겠습니다."
왕세경은 느긋하게 팔베개를 하고 의자에 길게 몸을 묻었다.
뒤로 부드럽게 젖혀지는 의자의 푹신한 감촉이 등에 닿으며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준다.
"기대되는군……."
수영병원은 외과 등 필수생명학과 의사들을 블랙홀처럼 집어삼켰다.
대형병원은 종합병원 자격을 상실하기 직전이고, 로컬 개업의들도 장사가 안 되자 개인병원을 접고 수영병원으로 이직해 온다.
망하고 빚만 떠안은 개업의들에게 0.1%의 저금리로 대출을 해줘서 빚문제도 해결해 주자, 장사를 빨리 접고 들어오는 개업의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저인망식 긁어모으기 작업은 불가능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의료망이 최대한 골고루, 균등하게 유지되도록 강제할 권한이 있었으니.
하지만 이제 수영병원은 언터처블이다.
다른 4대 대형병원들을 아예 몽땅 망하게 하고 집어삼켜도 보건복지부는 눈뜨고 구경만 해야 할 것이다.
"4대 병원이니, 5대 병원이니. 뭐 그렇게 번거롭게 나눠져 있을 필요가 있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이, 더 많은 환자만 구할 수 있으면 되지 않나?"
저승차사도 자주 만나고 다니는 각성한 성주신은 세속적인 문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자신의 권역을 더 많이, 더 넓게 퍼뜨려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환자들이 안락한 천수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건강보험공단도 아예 우리 재단 재정부로 편입시키는 게 더 효율적일 거 같은데 말이지."
성주신은 오늘도 완벽하고 절대적인 독점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