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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254화 (1,254/1,270)

프랜차이즈 갓 1254화

288장 왜 안 망하는지 알아? (5)

수영사채는 국제금융시장의 눈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독특하고 기형적인 금융기관이었다.

단순한 사금고로 취급하자니, 수신액이 5조 달러가 넘고, 은행으로 취급하자니 금산분리, 지분분산, 금융법 요건 등 어긋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신액이 5조 달러고 그중 3조 5,000억 달러가 자기자본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이러면 전 세계어 느 은행도 못 비비지 않나?"

"그런데 은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한 사람의 뜻대로만 굴러가는 것 때문에 건전성의 위험부담이 큰데……."

"위험부담이 크긴 개뿔. AI가 1원하나 새어나가지 않게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데 무슨."

수영사채의 정의성 판단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던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회사명에서 그 답을 찾고는 허탈해졌다.

"SOOYEONG, SACHAE…… 사채가 'bonds' 인 줄 알았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추가로 섞여 있었군."

"한국에서는 그냥 채권업이 아니라 개인의 돈놀이를 가리켜 'SACHAE' 라고 한다는군."

"우리가 한국어 사명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이런 무의미한 고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글로벌 은행들은 수영사채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아울러 수영사채가 왜 적극적으로 수신액을 늘리려 하지 않는지도.

대형은행 몇 개가 폐업 혹은 통합 수순을 밟았지만, 시중은행들은 그래도 맥을 잇고 있었다.

정부의 눈물겨운 은행 지원 덕분은 아니다.

수영사채가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작정하고 고객 유입 쟁탈전을 벌였으면, 대형은행들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수영사채가 한창 체급을 끌어올리던 시절, 기업들은 주거래은행을 수영사채로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수영사채가 비즈니스적으로 압박을 가했다면 대기업들은 얄짤 없이 주거래 은행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영사채는 관대했다.

수영사채는 대금거래를 위한 법인 계좌를 개설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주거래은행을 싹 바꾸라고 요구했다면, 당장 서해그룹과 백두그룹, JS 그룹, 라테그룹부터 전 계열사가 응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재계 50위 안에 들어가는 회사들도 줄줄이 수영사채로 갈아타야 했을 것이고, 시중은행들 또한 전부 폐업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5대은행이라 불리던 은행들은 통폐합 과정을 거쳐 지금은 2개로 줄어 있었다.

***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청담동을 조용히 찾아왔다.

하수영으로서는 대통령 취임식 이후 두 번째로 보는 얼굴.

"축하합니다. 결국 제 말대로 경제부총리가 되셨군요."

전 국무조정실장, 현 경제부총리 황석윤은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장관급부터는 뭐 좀 익숙해질 만하면 휙휙 바뀌니까 정신이 없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기재부장관은 남항순 부총리님이라서. 그 양반, 요즘은 뭐하나요?"

"국회에 들어간 지 제법 됐습니다. 기재부 수장까지 하고 난 뒤면 사실 갈 만한 곳이 얼마 안 되죠. 뱃지를 다느냐, 아니면 사기업 고문직으로 들어가서 은퇴를 준비하느냐. 그 두가지 정도입니다."

"해외로 나간다는 선택지는요?"

"선택지야 존재합니다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머리가 절반 이상 벗겨진 황석윤부총리는 연신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손주뻘인 하수영 앞에서, 어린 황제를 대하는 내시처럼 스스로를 굽힘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의원님, 실은 요즘 국내 수출기업들이 많이 어렵습니다."

"기업들이 언제는 안 어려운 적이 있었나요? 항상, 언제나, 늘 어려웠죠. 저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요. 농사야말로 첨단과학과 기술, 자본, 심지어 날씨하고도 맞물리는 가장 난이도 집약적인 사업이라는 것을요."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은 박사들이 농사를 짓는 시대인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 시대착오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그래도 수영그룹 덕분에 양식장 창업을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나서 정말 한시름 놓습니다."

"양식장주들이 벌어오는 외화가 5대 대기업 하나가 벌어오는 것보다 더 많죠?"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그 외화가 어디 바로 국고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죄다 수영사채에 잠자고 있지 않습니까."

수영양식장은 국내 자영양식장들의 독점수매처 역할을 한다.

자영양식장주들이 출하한 수산물을 해외에 갖다 팔고 수수료 4%를 챙긴다.

이 과정에서 양식장주들에게는 달러가 아닌 원화로 지급하고, 달러는 수영사채가 보관한다.

양식장주들이 열심히 외화를 벌어 봐야 한국은행은 1달러짜리 한 장 구경도 못 한다. 전부 수영사채 미국 금고에 안전하게 들어간다.

"달러 환율이 무섭게 치솟고 있어서 수출기업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전쟁 장기화가 중국 내부 상황 악화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경기가 많이 안 좋습니다."

"죽는소리나 하러 오셨습니까?"

"의원님, 제발 나라를 도와주십시오!"

황석윤은 머리를 바짝 숙였고, 덕분에 훤한 정수리가 하수영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반사율 한 번 좋네.'

"이번에 1조 4,000억 달러의 여유자금이 생기셨고, 늘 그랬듯이 딱히 쓸 데가 없으셔서 무기한 보관에 넣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식량을 팔아서 챙긴 1조 4,000억 달러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 외환보유고의 3배가 넘는 돈.

"그중 어떻게 4,000억 달러만이라도 빌릴 수 없겠습니까?"

"나중에 상환할 수는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틀림없이 상환할 겁니다. 국가의 이름을 걸고 말입니다."

"전 원래 '국가'에 빌려준 돈은 현찰로 돌려받지 않는데요."

"그럼……?"

"제가 중한에 투자한 돈을 나중에 현찰로 돌려받을 것 같나요?"

하수영이 실실 웃으면서 바라보자 황석윤은 소름이 쫙 끼쳤다.

중한은 헌법에 '공화국'이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사실상 전제군주제를 택한 나라다.

양도담보라는 변칙으로 모든 국토를 하수영 개인에게 양도해서 등기 부등본에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공신력을 부여했다.

"그래도 돈을 빌리고 싶으세요?"

"……."

황석윤은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에 휩싸였다.

대외적으로 하수영은 유능하고 욕심을 절제할 줄 아는 선한 자본가다.

경제전문가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자본가라 부르짖을 만큼.

하지만 중반의 경우를 빗대어 생각해본다면, 그는 장사치의 궁극적인 경지를 넘어선 게 아닐까?

"그래도 빌리고 싶으세요?"

"…… 빌려주십시오. 우리나라는 지금 당장 외환 수혈이 필요합니다."

하수영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황석윤은 저 미소가 왠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이 등 쪽이 근질근질했다.

"IMF에 빌리시는 게 차라리 나을 텐데. 아, 맞다. 요즘 IMF도 돈 없어서 허덕이고 있죠? 쯧쯧, 어쩌겠어요. 이것도 다 인간이 만든 업보인 것을."

과도한 산업발전으로 인한 이상기후는 이제 인간에게 그 대가를 청구했고, 식량생산성 감소로 인한 경제적 위기는 전 세계가 조금씩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뭐, 저도 전력이랑 통신, 우주산업을 받은 게 있으니 나라가 어렵다는데 입을 싹 씻기는 뭐하고……. 정말 빌리고 싶으신 거 맞죠?"

세 번째 질문의 반복이다.

그래도 기어이 빌리겠느냐.

황석윤은 문득 악마와 거래를 하기 전, 악마가 거듭 인간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빌릴 것이냐?'

'그래도 빌릴 것이냐?'

'기어코 빌릴 것이냐?'

"의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혹시 얼마까지 빌려주실 수 있는지……?"

"그건 의미가 없어요. 지금 한국이 얼마나 필요한지가 중요하죠. 이율은, 뭐 마이너스 0.0001% 로 해드릴까요? 애국심 이율입니다."

마이너스 채권.

통상적으로는 투자 목적의 현금이 갈 곳을 잃고 신용도가 좋은 우량채무자에 경쟁적으로 몰릴 때나 발행하는 것.

지금 한국의 경우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기에 이것은 악마가 내민 시험의 사과였다.

"……당장 2,200억 달러가 필요합니다."

"저런, 그 정도로 외환 상황이 안좋았나요? 그래도 4,000억 달러는 넘는 줄 알았는데?"

"경제규모는 나날이 커져 가는데, 기준금리는 올라가고 달러는 가파르게 메마르고 있다 보니……."

그러고 보니 달러가 귀해진 것에는 하수영의 지분도 적지 않았다.

3조 5,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쌓아두고 풀지를 않고 있으니, 달러 흡수 정책을 펼치는 미국 입장에서는 하수영의 그런 다람쥐 습성이 그저 고마울 테지만.

그렇게 대한민국은 염라대왕도 쓰지 말라고 기겁하며 만류한다는 '사채'에 손을 댔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부 이름으로 2,200억 달러의 마이너스 이율 국채가 발행되었고, 하수영이 매입했다.

상환 기간은 10년.

국채에는 담보특약을 몇 개 걸었다.

국가재정건전성 및 안전 증진을 위해 하수영이 재정정책을 감사할 수 있으며, 상환이 불가할 경우 원하는 국가기간산업권을 우선적으로 부여 받는 담보특약 등이었다.

이제 기재부는 하영이 요구하면 예산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1원한 장까지 모두 소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이 나라는 의원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사채업자가 뭐 은혜를 베풀려고 돈 빌려주겠습니까? 다 이문 남겨먹으려고 하는 거죠."

국채거래만큼은 하수영이 관공서를 직접 방문해서 진행했다.

중소신문사 기자들을 불러다가 사진도 찍었다.

어느덧 전국구 메이저 언론사로 성장한 울릉군민일보의 기자들이 가장 많이 보였다.

하수영은 황석윤 부총리와 카메라 앞에서 손을 맞잡은 채 활짝 웃는 포즈를 취했다.

포토 타임이 지나고, 서로 팔꿈치를 가볍게 얼싸안으며 덕담을 나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나라가 또 한 번 위기를 넘기게 됐습니다."

"뭘요. 나중에 빛이나 잘 갚으세요."

"하하, 그럼요. 다른 건 몰라도 의원님 돈을 어떻게 감히 떼어먹겠습니까?"

"그때쯤이면 부총리님은 당연히 기재부에서 나온 지 한참 되실 텐데, 더 이상 기재부장관 아니라고 모른 체 하시진 않겠죠?"

"당연하지요. 최선을 다해서 국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할 겁니다."

"뭐 저야 강제추심하면 그만이니까 별 상관은 없는데요."

"……."

"설마 제가 변제소송이라도 걸 줄 알았어요? 전 사실 재판 별로 안좋아해요.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황석윤의 안색이 살짝 새파랗게 질리자 하영이 작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따박따박 잘 갚기만 하면 사채업자만큼 친절하고 정 많은 사람 또 없습니다. 사채업자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큰돈을 이름만 믿고 빌려주겠어요?"

황석윤은 하수영의 미소에서 또 한번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돈 안 갚아도 돼, 뭐하러 갚으려 그래, 현찰 말고 다른 걸로 갚으면 되지, 라는 듯한 사채업자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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