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45화
287장 잔칫상을 차지하는 것은 (1)
"역시 인간은 재밌단 말이야."
하수영이 낄낄거리고 웃자 피신을와 있던 정서희가 불안해서 물었다.
"수영 씨는 지금 이 상황이 걱정되지 않아요?"
지금 장효주, 정서희, 미레아, 로마노프는 청담동 저택으로 피신해 있었다.
납치를 당해서 협상 소재로 쓰일가능성이 제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국금지를 당한 전성렬도 가족과 함께 집에 자택연금 수준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쪽에는 로한을 보내 두어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
"재미있죠. 그럼, 별로 손쓰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알아서 거하게 자폭하는데요. 어떻게 된 게 매번 달라지는 게 없냐."
"우리 다 같이 미국으로 일단 피하는 게 어떨까요?"
CIA 출신답게 미레아는 미국행부터 권했다.
러시아 출신 로마노프도 찬성하고 나섰다.
"아무리 미국하고 친하고 힘이 있어도 자국 정부가 작정하고 옭아매려 들면, 그 나라 영토 안에서는 개인이 못 이겨요. 미국이든 어디든 저는 일단 한국을 벗어나야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로마노프 말이 일리가 있어요. 최소한 서울은 벗어나야 할 거 같아요. 해군기지로 이동하는 건 어떨까요?"
급하게 날아온 해병대 특수부대가 저택을 철통같이 에워싸고는 있지만, 공권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면 무력할 수밖에 없다.
군령권을 가진 합참본부는 마비 상태였고, 해병대를 파견한 것만으로도 해군은 충분한 무리수를 둔 것이다.
하수영은 해군원수지만 군령권이 없어 부대에 작전지시를 내리지 못한다.
「마스터, 합참을 덮친 것은 마스터가 해군에 작전지시를 내리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
"뻔한 수작이지, 군령권이 없는데 작전명령을 내렸다고 잡아들이려는거. 이번에는 검찰이 혼자 오지 않고 아마 육군특수부대와 함께 올 거다."
「청와대와 국회도 지금 내부 분열 때문에 상호 피아식별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검찰 대부분은 하수영을 잡아넣으려 하지만, 내부에서 임탁정과 그를 따르는 젊은 검사들이 총장 등 대가리를 잡아넣었다.
법원은 검찰의 의지에 동조하는 편이지만 판이 너무 커지자 괜한 보복을 받을까 몸을 슬쩍 사리는 중이다.
여당대표 이용식은 차기 총리선거 때문에 대통령을 견제하느라 검찰내 반임탁정 세력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용식에게 분노한 대통령은 하수영을 지원하려 했으나, 반 임탁정 검사들이 법무부 장관을 구속시켜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육군 장성 출신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결국 육군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경찰특공부대를 움직이려 해도 반임탁정 검사들한테 제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 내각제 총리는 이용식 의원이야. 그 사람이 우리 검찰을 지지하고 있고, 이제 4년도 안 남은 대통령 믿고 있다가 나중에 경찰 전체가 해체당하고 싶어?'
라는 협박에, 경찰 고위 간부들은 이를 악물고 대통령의 지시를 못 들은 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데 육군이 수영 씨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뭐, 그렇죠. 육군에는 내가 지원해 준 게 거의 없으니까요."
"지원을 안 해줬다고 설마 수영 씨를 잡아가러 오지는 않겠죠?"
"근데 제가 복무하다가 육체적, 정신적 피해 입은 장병들 도와서 국가 소송을 여러 번 해줬거든요. 그래서 인사고과 상처 나서 진급 실패하거나 옷 벗은 간부하고 장교, 장성들이 좀 있습니다."
"……."
"해군이야 제가 전 장병한테 프리 덤 지급해서 부조리와 가혹행위 실시간 전수감시로 근절시켜서 문제가 없었는데, 육군은 그게 아니니까요. 공군은 전투기 때문에 제 눈치 본다고 전 장병한테 프리덤 보급해서 마찬가지로 문제없었고요."
"왜 그렇게 육군만 섭섭하게 했어요……."
"육군이 가장 비대하고 가장 쓸모가 없는데 또 비리 규모는 가장 크니까요. 꼴 보기 싫잖아요. 이제는 해군을 중심으로 우주군, 정확히는 공간군 체제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60만 육군 같은 건 빨리빨리 정리해야 돼요."
그때 멀리서 총음이 울렸다.
권총이 아니라 분명한 소총의 발사음이었다.
하수영은 크게 웃으며 시끄럽게 박수를 쳤다.
"개판이다. 개판이야. 아주 그냥 개판이네."
"우리 괜찮은 거 맞죠?"
"청담동에 탱크는 못 끌고 들어올테니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대비책도 있으니 안심해요."
"그래요? 대비책이 있어요?"
"네."
하수영은 너무 웃은 나머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은 대비책이죠."
***
수방사 사령관은 대통령이 내린 명령을 재차 확인하며 각오를 다졌다.
-지금 육군 중에서 내가 완전히 믿을 만한 부대가 수방사 외에는 없소.
사령관은 그 이유를 안다.
대통령은 육군 출신이면서 육군 전체의 기대를 배신했다. 정확히는 충분할 만큼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육군의 개선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다지는 데만 집중했다.
국방전문가로 국민들에게 어필해서 당선이 되어놓고, 정작 대통령이 되자마자 추진한 것은 내각제 개헌 및 차기 총리출마를 위한 밑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하수영한테 굽히다시피 이런저런 이권을 안겨주었다.
그 대가로 육군을 위한 지원 같은 거라도 얻어낼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넘겨주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은 게 있기는 하다.
하수영은 내각제 개헌 등 대통령의 정치적 야욕 굳히기 작업에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다.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모른 체했다.
만약 하수영이 대통령의 권력 강화가 본인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꼈다면 어떤 식으로든 제동을 걸었을 테고, 개헌은 보기 좋게 실패했으리라.
대통령은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다.' 라는 뜻으로 전기, 통신 등 이런저런 기간사업이 권을 넘겨준 것이다.
-육군 내에 불온한 세력이 있어, 청담동을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오. 수방사의 철저한 방호를 지시합니다.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이자 가장 큰 정적인 이용식 의원 계파를 염려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용식은 대통령보다 육군부 인사와 더 친밀하고, 또 소통을 나눈다.
이용식이 대통령 본인의 행보와 반대로 움직일 거라 예측한다면, 당연히 하수영에 적대적인 행보를 보일테니까.
그때 전화가 울렸다.
[이용식 선배님]
사령관은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네, 고정만 사령관입니다."
-결심은 되었나?
"선배님,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 시대에 자칫 쿠데타로 오인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이런 기회는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않아.
이용식은 차분하게 후배를 설득했다.
-우리로서도 생각지도 못한 황금같은 기회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거네. 멍청한 검찰 놈들이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압수수색으로 청담동을 선공할 줄 누가 알았을까?
젊은 시절을 골방에 처박혀서 법전과 판례만 달달 암기한 놈들이라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른다.
전략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만 있었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오히려 관전자들에게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생겼다.
-이대로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검찰은 몰락할 테고 하수영 회장은 더더욱 잘 나가겠지. 육군은 거듭 찬밥신세일 테고, 언젠가는 '해군육상부대'로 전락하고 말거야.
"……."
분하지만 육사 선배의 비관적인 예측을 반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과감하게 움직인다면, 육군의 번영된 미래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권력까지 손에 넣을 수 있네. 다시 말하지. 이런 기회는 이제 앞으로 절대로 찾아오지 않아.
검찰만큼 강한 세력이 대대적으로 삽질을 하고, 그로 인해 내부 분열까지 찾아왔다. 그리하여 이용식이 검찰의 절반 이상을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되었다.
무심코 동전 여러 개를 던졌는데 그 모두가 정확하게 바닥에 꼿꼿하게 선 결과만큼이나, 앞으로 찾아올 수 없는 기회.
"명분은 있습니까?"
-그건 플레이어들이 곧 만들어줄 걸세. 우리는 그때 합류하면 되네. 속보로 확인할 수 있을 걸세.
전화가 끊어지고, 얼마 후 속보가 떴다.
-검찰은 하수영 해군원수가 군령권이 없음에도 사사로이 자택경비를 위해 해병대 특수부대를 자택에 배치했음을 근거로 체포를 시도했습니다. 이에 해병대 특수부대는 발포로 위협하여 체포를 시도한 검찰 출동팀을 쫓아냈습니다.
저것이 명분이었구나.
해병대가 진실로 총기를 사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총음이 검찰의 자작극인지 아닌지 따질 때도 아니었다.
60만 육군이 30만, 10만, 그렇게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해군육상부대로 전락하는 미래를 막을 수 있는 터닝 포인트는, 오늘이 지나가면 이제 다시는 돌아와 주지 않을 것이다.
사령관은 벽에 걸린 현직 대통령의 사진에 대고 정중히 거수경례를 마친 뒤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는 육군의미래를 택하겠습니다."
검찰이 무리해서 차리려다가 엎어버린 밥상.
그것을 육군이 다시 깨끗하게 세워 준 후, 모든 요리를 독차지할 것이다.
"출동이다."
***
장갑차와 수송차들이 줄줄이 도로를 달려 시내에 진입했다.
이용식의 뜻을 전달받은 경찰이 도로 통제에 나서서 군부대 차량이 손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병사들은 실제작전이라는 말에 불안감에 떨었다.
특히나 목적지가 청담동 해군원수 저택이라는 말에 괜히 술렁거렸다.
"해군이 저택에 쳐들어가서 하수영해군원수님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게 맞아? 우리가 그걸 진압하러 가는 거라고?"
"X발. 진짜 못해도 여럿 죽어나가겠네."
"말이 안 되는데, 해군이 뭐하러 해군원수님을 억압해? 차라리 지키면 지켰지. 너무 앞뒤가 안 맞잖아."
당연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정보통 제가 들어갔다.
병사들이 진실을 알아서 좋을 것은 없다. 사기만 떨어질 뿐이다.
적어도 해병대 부대를 진압할 때까지는.
부대를 제거하고 나면 검찰이 알아서 하수영의 신병을 확보할 것이고, 그럼 게임은 끝이다.
마침내 육군부대가 청담동 저택을 사방에서 포위했다.
공중에서는 공격헬기가 호버링하며 만약을 위해 대기 중이었다.
수방사령관은 부디 저 헬기부대를 사용할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아직까지 청와대에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하수영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제대로 오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적들의 무장 상태는?"
수방사에서는 해병대 특수부대를적으로 규정했다.
"기껏해야 총기류일 겁니다. 어쩌면 기관총을 배치했을지도 모릅니다. 발칸포 종류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실내에 배치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음, 무턱대고 투입하면 인명피해가 크게 나겠군."
"피해보다는 속전속결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출세에 대한 기대감으로 번들거리는 눈빛.
사령관은 자신도 저와 같은 눈빛일까 봐 속이 메슥거렸다.
그때였다.
"사령관님! 수상한 사람들이 접근을, 아니, 사, 사람이 아닙니다!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놀란 사령관이 장갑차 밖으로 몸을 내밀어 확인했다.
과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안드로이드 프리덤들이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아니, 수천 개도 훨씬 넘어 보인다.
게다가 지금도 그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무기라고 해봤자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다.
야구방망이, 청소용 빗자루, 골프채 등 일반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 식칼 같은 날붙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둔기로 쓸 수 있는 일상용품들을 무기로 쥐고 있었다.
사령관은 긴장했다.
안드로이드의 운동능력은 인간을 훨씬 상회한다.
저 많은 숫자와 백병전으로 들어가면 불필요하게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재수 없으면 전열이 붕괴될지도 몰랐다.
"쏴! 쏴버려!"
탕! 타타탕! 타타탕!
명령이 떨어지고 얼마 후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고, 최전방에 선 안드로이드들이 여기저기 구멍이 난 채 쓰러졌다.
안드로이드라고 해봐야 역시 소총앞에서는 당하지 못하는군. 그렇게 사령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사령관님! 놈들이 방패를 꺼냈습니다!"
"뭐야?"
쓰러진 안드로이드들을 밟고 넘어선 안드로이드들이 가로세로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금속제 방패를 꺼내 열을 맞추고, 전열을 향해 거듭해서 다가왔다.
"쏴! 계속 쏴!"
기겁을 한 사령관이 발포 명령을 내렸고, 소총탄이 쉴 새 없이 튀어 나갔다.
그러나 5.56mm탄의 놀라운 운동에너지에 직격당했음에도 방패는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기관총! 기관총을 쏴!"
사령관은 사색이 돼서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