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43화
286장 망둥이 치어들의 잔치 (5)
-당장 철수해! 이 병신 새끼들아!
후배 검사들이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채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현 법무부 장관이면 검찰 내에서 총장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고 탄탄 대로로 장관직에 오른 인물, 받들어 모시고 섬겨야 할 대선배다.
'X발, 이러면 나가린데.'
고윤무는 쩔쩔매면서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후배 검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후배들의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윤무는 그것이 체념이 아니라 각오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후배 검사들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선배님,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됩니다.'
'이대로 물러나면 우리 진짜 병신되는 겁니다.'
'영장도 있겠다. 무서울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장관님이 우리한테 뭐 할 순 없습니다. 막말로 기소권이 우리에게 있지, 법무부에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여기선 못 먹어도 고해야 합니다.'
후배들의 절절한 각오가 느껴졌다.
고윤무는 지금 자신이 일생일대의 순간에 섰다는 것을 알았다.
라테그룹 손주의 마약 사건 수습을 도와주면서 스폰 관계를 형성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그래, 어차피 수영병원 압수수색을 시작했을 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검찰과 하수영이 앞으로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도록 메신저 및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는데, 졸지에 선봉대장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이대로 물러나면 나만 병신 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찰총장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부는 무시, 강행할 것.]
부는 아마도 '법무부'를 뜻하는 말이리라.
임명된 지 얼마 안 된 총장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현장 분위기가 실시간으로 총장에게도 흘러들어가고 있을 테지.
'그래, 법무부 장관은 이제 더 이상 검찰이 아니지.'
고윤무는 결심을 굳혔다.
"강행한다."
"알겠습니다."
"영장 제시하고 챙겨야 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압수한다. 지원 요청했지?"
"네, 물론입니다."
"좋아, 움직이자. 속전속결이 생명이다."
장관이 왜 제지를 걸었는지는 알것 같다.
현 대통령은 육군 출신, 그렇다 보니 군부 인사들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통령은 육군 출신을 가장 우대하고 그 다음으로는 해공군 출신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에 몰려든 육군 출신 고위공직자 인사들은 오히려 해군 출신을 가장 경계하는 편이었다.
해군을 대하는 태도에서만큼은 대통령과 육군 인사들의 방향성이 달랐다. 그렇기에 정치였다.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고픈 검찰 입장에서 현 대통령은 은근히 부담되는 존재. 70%가 넘는 득표율이 장애로 작용했다.
법무부 장관은 훗날 대권 도전을 준비하며 대통령한테 살랑거리고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하의 검사가 소총 땅개들한테 고개를 숙이면서 후배들을 핍박하는 게 말이 됩니까?'
오늘로써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내부의 평가와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밀어붙여!"
고윤무는 기세 좋게 부이사장실로 다시 향했다.
하수영과 왕세경은 마치 다 알고 있던 것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윤무는 최후의 통첩을 다시 한번 전달했다.
"의원님, 저희는 사이좋게 같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양보해 주신다면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충성스러운 세력을 한편으로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이봐요, 고 검사."
하수영이 키득거리면서 의자 팔걸이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내가 농장 들고서 중한이나 미국으로 간다고 엄포 한 번만 놓으면 다 깔끔하게 끝나는데, 왜 그런 쉬운 길을 안 가는지 알아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메시지를 전달할 뿐, 의원님 편입니다."
하수영의 불쾌한 감정이 자신을 향해서는 안 된다.
그와 검찰이 최악의 사이로 치닫더라도 자신은 중재자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가장 많은 이권을 누릴 수 있다.
"이상한 낌새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의원님은 즉시 출국 정지될 겁니다. 그룹의 모든 자산들도 동결 조치가 될 거고요. 저는 절대로 의원님과 검찰이 그런 최악의 사이로 치닫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법적인 조치를 취해놓으면 하수영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다.
검찰은 자신들이 지닌 공권력의 무기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출국금지 조치 한 번이면 그를 한국에 가둘 수 있다. 구속영장 한 장이면 그의 신병을 원하는 곳에 묶어둘 수 있다.
안드로이드로 맞대응하면 특공대를 투입할 명분이 되어줄 뿐이다. 검찰이 유리하다.
그것이 고윤무와 선후배, 동료들이 가진 조직원 전체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 안 했는데. 내가 왜 쉬운 길 안 가는지 아냐고요."
"……."
"하도 많이 가봐서 재미가 전혀 없거든."
게임도 모든 컨텐츠를 통달하고 길과 패턴, 장소 특징을 전부 공략하게 되면 흥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 게임을 해야 한다면 플레이어는 변칙적이고 어려운 변태적인 플레이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차포마상사 다 떼고, 그냥 왕말하나로 한 칸 한 칸 야금야금 움직여서 이기는 것 말고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게 됐어요. 내가."
이 자리에서 왕세경은 유일하게 하수영의 말을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지구인 중에서 유일하게 무한전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동료였으니.
"아니, 사실 그렇게 힘들게 이겨도 별로 성취감을 못 느껴."
"의원님, 무슨 말씀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를 조롱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조롱, 맞아요. 그래도 그건 용케 알아들으셨네."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비록 제가 메신저 역할을 자처했으나, 그것은 의원님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한 실드 덧칠을 잊지 않은 채, 고윤무는 마침내 종이 영장을 꺼내 들었다.
"압수수색영장입니다. 수사에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시작해."
영장 제시가 끝나고, 후배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우르르 압수 절차를 시작하려는 바로 그때였다.
고윤무의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발신자는 부인이었다.
'하필 이런 때.'
그는 수신거부를 했으나, 전화는 계속했다.
수신거부를 반복하자 이번에는 문자가 왔다.
[전하바더,큰일나써]
얼마나 다급했는지 오타투성이 문자였다.
불안한 마음이 스친 고윤무는 통화를 위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다가, 자신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는 하수영을 의식했다.
'뭐지?'
마치 다 알고 있는 듯한 저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비상구로 나온 그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무슨 일이야? 지금 중요한 공무 수행 중인데 자꾸 전화를 하면 어떡해! 별거 아니면 내가 진짜……."
-방배동 빌딩! 지금 불났어! 아주 활활 타고 있다고!
"뭐?"
고윤무는 순간 안색이 창백해졌다.
혈압이 치솟으며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제주도 마약 수사에서 그는 라테그룹의 편에 조용히 섰다. (임탁정이 아직도 모른다고 혼자서 착각하고 있다.)
그 대가로 그는 라테그룹으로부터 5억 원의 현금과, 현재 기준으로 시가 100억 원이 넘는 방배동 빌딩을 얻었다.
다만 5년 동안은 여전히 라테그룹의 명의를 유지하기로 했다. 재산증가 내역이 드러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즉 100억이 넘는 방배동 빌딩은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불났다고, 불! 아주 불이 활활 났다고! 아이고, 이거 어떡해?
"소방관은? 소방관은?"
-지금 불법주차가 너무 많아서 소방차가 진입을 못 하고 있어!
"그냥 싹 밀어버리고 진입하라고 해!"
-내가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안된대. 그랬다가는 자기들이 물어줘야 하고 징계도 받는대. 아, 진짜 어쩌면 좋아.
"젠장, 거기 소방차 책임자 바꿔!"
-잠깐만.
전화 상대가 바뀌자마자 고윤무는 짜증이 골수까지 치민 채로 외쳤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지금 차량주인들을 찾아 전화를 돌리면서 차를 빼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밀어버리고 들어가라고!"
-죄송하지만 그래서는 저희가 변상책임과 징계를…….
"나 대검 차장검사다. 당신, 나한테 사촌의 팔촌까지 탈탈 털리고 싶어? 닥치고 차 싹 밀어버리고 진출해서 진화하란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상자는 전혀 없습니다. 기껏해야 긁힌 상처를 입은 분들만 몇몇 있을 뿐입니다. 모두 안전하게 구조했습니다.
"뭐?"
지금 내 소중한 빌딩이 활활 불타고 있는데, 사망자가 없으니 안심하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선생님, 아니, 검사님 분노는 이해합니다. 가족이 그 안에 계신 거죠? 프리덤이 확인해 줬는데 화재경보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침착하게 대피를 유도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 한 분까지 모두 안전하게 피난했습니다.
이제 보니 이 답답한 소방관 새끼는 빌딩 안에 자신의 가족이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주변 건물 시민 피난도 모두 다 끝나서 재산피해는 있을지언정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를…….
"이 개새끼야아아!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고윤무의 눈이 벌게졌다.
100억짜리 빌딩, 그게 어떻게 해서 손에 넣은 것인데.
힘들게 제주도 마약 사건을 수사하고, 라테그룹 오너 일가가 얽힌 것을 밝혀내고, 비밀리에 그룹과 거래하여 얻어낸 소중한 자산이다.
그게 불타고 있는데, 뭐?
사상자는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재산 피해로만 끝날 거라고?
"당장 밀어붙이고 화재 진화해! 당장! 당장! 안 그러면 내가 너 이름 알아내서 대한민국에서 절대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해주겠어!"
-검사님? 진정하십시오. 정말 사상자는 한 명도 없이 모두 대피했습니다. 믿어주세요.
"닥쳐! 닥치고 전진하라니까! 내가 그 불법주차한 새끼들도 전부 다 찾아내서 평생 콩밥 먹일 거라고! 이 개새끼야!"
듣다 못한 소방관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고윤무는 분노를 참지 못해서 벽을 발로 몇 번이고 걷어찼다.
'잠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화가 올 때부터 의미심장하게 자신을 쳐다보던 하수영의 시선.
설마?
***
"이사장, 자네 일부러 불을 지른건 아니겠지?"
"그러면 저한테 실망하시게요?"
"난 전적으로 자네 편이야. 사상자는 없다니 실망은 안 하네만 혹시라도 나중에 자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까 말했잖습니까. 차포마상사 다 떼고 해도 쫄깃한 맛이 없다고요."
"그럼……."
"그 냥 제 영혼에 패시브로 붙어 있는 행운이 저주의 형태로 저절로 작동한 겁니다. 그 친구가 저의 재산을 침범한 그 순간에요."
"……."
"상대의 재물에만 작용하는 패시브라서 인명피해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거든요."
"궁금한 게 있는데, 그건 자네가 조절할 수 없는 거지?"
"이게 호흡근 같은 거라서 제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 한은 안돼요. 그래도 요즘에는 좀 나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시도 때도 없이 패시브가 튀어나가서 애먹기도 하고 좀 그랬는 데, 이제는 패시브가 제 취향이나 기호를 반영해서 적절하게 터져주는거 같더라고요."
"패시브를 꼭 인격체처럼 이야기하는군."
"이게 정말 인격이 있다면 한 번 붙잡고 진지하게 물어보려고요. 구체적인 작동 매커니즘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거든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병원 압수수색 기획한 놈이나 승인한 놈, 아마 지금 정신이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