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41화
286장 망둥이 치어들의 잔치 (3)
"정창환 검사장이죠?"
하수영이 툭 내던지듯이 한 말에 고윤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애써 표정 관리를 했지만,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유도신문은 부디 삼가주십시오."
"유도신문 아니라 진짜 맞잖아요. 정창환 검사장 딸이 일주일 전에 췌장암 진단받았던데."
고윤무는 너무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딸? 췌장암? 일주일 전?'
이걸 기획한 것은 정창환 검사장이 맞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논의 이기에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을 텐데?
무엇보다 참여한 검사들은 정 검사장의 가족 누군가가 암에 걸렸구나 하고 지레짐작을 했을 뿐, 그게 누구이며 무슨 암이고 언제 걸렸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하수영이 말을 하는 걸 보면 전부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검사장님의 따님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확답을 해주시기 전까지는 누구인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확답은 드렸잖아요. 정식으로 등록 순서를 밟아서 대기 번호를 받으라고요. 지금도 순번 밀린 사람들 천지입니다."
"의원님,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중간에서 의원님을 도와드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부디 제가 열성으로 의원님을 도울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확답을 주십시오."
"그게 확답이었는데요."
"의원님, 정말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고윤무는 아예 머리까지 숙였다.
겉보기에는 진심으로 하수영을 위해서 부탁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는 속으로 이게 진정으로 하영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원님께서 올바른 확답을 주시면 제가 모든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장담합니다. 의원님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검찰이란 칼을 품으실 수 있게 됩니다. 언제든 의원님이 원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칼입니다."
"날이 예리하지도 않고, 한 번 뽑을 때마다 정비 비용이 많이 들고, 굳이 쓸데도 없는 가성비 최악의 칼이죠."
"의원님."
고윤무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아무리 하수영을 흠모한다지만, 검찰을 비난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수영은 피식거렸다.
"제가 좀 게으릅니다. 그래서 내 울타리 안으로만 쳐들어오지 않으면, 울타리 밖에서는 짖든지 배변을 투척하든지 신경 안 쓰고 놔두는 편이죠."
"……."
"근데 정창환 검사장은 기어이 울타리 안으로 비집고 무단 침입을 했네요. 그리고 어설픈 칼 들고 협박까지 하네요? 자, 고윤무 검사님. 내가 이걸 봐줄 거 같습니까, 아니면 찍어 누를 거 같습니까?"
"……."
고윤무의 안색에 비로소 심각한 감정이 퍼지기 시작했다.
"검찰이 기소 독점하고 있어서 그거 하나 믿고 나대는 거 아는데요. 법보다 더 무서운 권력이 뭔지 아세요?"
고윤무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법보다 무서운 권력이라니? 그런게 어디에 있다고?
"보여 드리죠. 바로 이겁니다."
하수영이 올 때부터 들고 온, 기타 백처럼 생긴 커다란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발칸포를 꺼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자 고윤무의 안색이 굳어졌다.
"의원님! 군사 무기를 사사로이 휴대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군사 무기는 맞는데, 사사로이는 아닙니다. 해군 본부 정식 승인 난 겁니다."
"말도 안 됩니다! 이건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간에 알려지기 전에 어서 그 무기를 해군에 반납하십시오."
하수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제가 만약 테러리스트에 납치되거나 살해되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습니까?"
"그런……."
대혼란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
하수영은 후계가 없다. 그의 사후 남은 유산을 놓고 엄청난 아귀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수영그룹은 중분해되거나 여기저기 찢어져서 팔리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일단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불안감에 박살 나고, 국가 경제도 털썩 주저앉을 것이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해군이 붙여놓은 이동식 호신 장비인데, 그렇게 나쁘게 보시면 안 되죠. 실제로 이놈이 아니었으면 전 진즉에 한 번 납치됐을 겁니다."
하수영은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이게 바로 법보다 무서운 권력이에요."
"종이 말입니까?"
발칸포를 놓고 총이라고 하다니.
아무래도 군대도 안 다녀온 모양이다.
"이런 말이 있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정창환 검사장이 아무리 날뛰어도 이 발칸포 앞에서는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할 겁니다."
웃으면서 말하는 저것을 협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농담으로 넘겨야 하는지 고윤무는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검사 앞에서 검사장한테 총질을 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다니.
협박인가, 농담인가?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라고 하세요. 끝까지 가면 발칸포 들고 찾아가서 살점 하나 안 남기고 갈가리 찢어버린다고 전하세요."
절대로 전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했다고 정창환 검사장이 믿지도 않고 자신만 이상한 부하가 될 것이다.
설령 믿는다고 해도 사건이 더 커지기만 할 뿐.
고윤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수영이 이쯤에서 검찰의 힘을 인정하고, 다정히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는 둘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일단은 반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실례했습니다. 중재자가 되어서 어느 한쪽의 입장만 너무 강조한 거 같습니다. 진정한 중재자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 무기, 굉장히 무거워 보인다.
하지만 하수영은 플라스틱 장난감을 다루듯이 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 무단 주거침입을 했으니까 그 벌은 내린다고도 전하세요."
"……무슨 내용인지 미리 귀띔해 주시면 제가 중재에 도움이 되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알아서 대비하라고 할 것도 아니고, 미리 알려주는 바보가 어딨습니까?"
"……."
"농담이에요. 안 그래도 미리 알려 주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핸드폰 못쓸 테니까 그렇게 알라고 전해주세요."
"예?"
핸드폰을 못 쓴다는 말에 고윤무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말뜻을 알아차렸다.
현재 한국에서 통신사업은 수영통신이 사실상 유일한 상태였다.
3대 통신사들이 막대한 사업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법정관리, 사실상 폐업 처분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법적으로는 4개의 거대 통신사가 존재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수영통신 혼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서비스하면서 알뜰 통신사들에 회선을 나눠주며 챙기고 있는 상황이다.
"의원님, 부디 그러지 마십시오. 그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통신 서비스 사업자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특정 고객에게 페널티를 준다니요."
"법 만지는 공무원이 사사로운 욕심으로 특정 국민에게 불법적인 조작 기소를 하는 건 말이 되고요?"
"의원님."
"아, 이 말도 잊지 말고 전하세요."
하수영은 발칸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하고 육중한 소리가 울리며 고윤무의 심장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내 진짜 속마음은 어설프게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줬으면 한다고요. 기껏 칼 뽑아놓고 슬그머니 다시 넣으면 남자도 아니고 고자라고 비웃었다고 추가해 주세요."
하수영의 미소는 청소년처럼 해맑았다.
"요즘 많이 심심했거든요."
몸이 미묘하게 굳어진다.
고윤무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끄덕였다.
"올바른 협의를 위해서 최대한 중 재해 보겠습니다."
"기대할게요. 고윤무 검사님이 또 어떤 즐거움을 가지고 저를 찾아와 주실지."
병원 압수수색이 즐거운 일이라고?
고윤무는 도대체 이 사람의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벌 회장들도 기소 카드를 가지고 만지작거리면 어떻게든 타협을 보려고 한다.
그의 상사도 하수영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
고윤무는 VVIP 병실을 나와서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정창환 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수영이 한 말을 가감 없이, 하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순화해서 전달하자 정창환 검사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정식으로 등록하고 치료 순번을 받아 기다려라'라는 거절 통보였으니까.
-감히 대한민국 검찰을 무시해? 싹 다 긁어와! 어디 덜어서 먼지 안나오나 보자!
"검사장님. 그런데 하수영 의원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한 번 아닌 건 아니라고 합니다."
-너이새끼, 지금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냐! 내 말 안 듣겠다는 거야, 뭐야!
"그게 아니라 저는 자칫 의원님과 검사장님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생기지 않을까, 그게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이 멍청한 자식아!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눈치만 살금살금 봐 가지고 그 어린놈의 새끼가 우리 검찰을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 이참에 제대로 우리 힘을 보여줘야 한다!
정창환 검사장은 분노에 휩싸여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놈이 해외에서 아무리 힘을 쓰고 알아준다고 해도, 그래 봐야 민간인이야! 이 나라에서는 우리가 최고라고! 재벌 회장들도 우리가 가진 기소권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그놈이 어쩔 거야? 뭐, 공권력에 반역이라도 할 거야, 뭐야?
민간인은 아니고 해군원수라고 대답하면 아마도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겠지?
그리고 공권력에 반역…….
고윤무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현직 검사 앞에서 발칸포까지 꺼내 드는 걸 보니, 조금 생각이 바뀐다. 진짜 막 나갈수도 있다는 암시를 한 게 아닐까?
'애초에 병원에 오는데 왜 그런 무기를 갖고 다니는 거야?'
설마 병원에 압수수색하러 온 검사들을 싸그리 밀어버리겠다는 뜻으로 들고 온 건 아니겠지?
-잔소리 말고 전부 다 챙겨 들고 나와! 어서!
"……알겠습니다."
고윤무는 이제는 하수영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입집명 암치료기 치료 순번 좀 한번 당겨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서, 이렇게 권력과 척을 지는지.
'그러고 보니 임탁정 선배가 전혀 아무 말도 없는 게 조금 이상하군.'
압수수색을 가지고 전화라도 해서 한바탕 퍼부을 줄 알았는데, 마치 이 일을 모르는 것처럼 조용하다.
정말 모를 리는 없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
VVIP 병실로 돌아온 고윤무는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하수영에게 통보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할 건 없고, 할 일을 하세요."
"예."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다.
고윤무는 부하 검사를 불렀다.
전화로 최종 지시를 내릴 수도 있지만, 최대한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하수영의 마음이 변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고.
VVIP 병실로 부하 검사가 들어와서 머리를 숙였고, 고윤무는 지시를 내렸다.
"증거 될 만한 건 전부 긁어모아.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알겠습니다."
명령이 전파되자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검사와 수사관들이 다시금 의료진 및 행정직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며 증거 채집을 개시했다.
사방이 소란스러워졌고, 고윤무는 하수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확답을 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선조치 후보고를 해서 없던 일로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럼 내가 할 일을 하죠."
"예?"
"전부 병원 밖으로 쫓아내."
하수영이 혼잣말처럼 명령을 내리자마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안드로이드 프리덤 부대가 우르르 몰려 나왔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검사 및 수사관들을 무력으로 제압해서 밖으로 내쫓았다.
고윤무의 어깨도 안드로이드 프리 덤에 붙잡혔고,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공무집행방해죄입니다! 어쩌려고 자꾸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드시는 겁니까!"
"영장도 없이 불법 압수수색을 하면서 무슨 공무집행방해라는 거죠?"
"영장이 없다니, 영장은 당연히 있습니다!"
"응, 일단 나가서 다시 살펴봐요. 있었는데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