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40화
286장 망둥이 치어들의 잔치 (2)
로한은 국회에서 여당 중진 의원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공개식당이다 보니 당연히 보안은 전혀 유지되지 않는다.
당장 이쪽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여당 의원이 감탄했다.
"로한 의원의 식사량은 역시 엄청 나군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설마 매끼 그렇게 드시는 건 아니죠?"
"제가 하루에 4만kcal 이상은 채워야 합니다."
"허어, 세계 수영 챔피언도 2만kcal가 안 된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군요."
"여기서 소모하는 에너지량이 꽤 됩니다."
로한은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치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고, 여당 의원은 납득했다.
'화성유인탐사를 혼자 힘으로 해낸 전대미문의 천재니까 뇌 에너지 소비량도 인류가 겪어보지 않은 수준 이겠지.'
주워듣고 있던 다른 이들도 로한의 대답에 수긍했다.
핵융합, 입자집합명령장치, 반수성금속처리 기술, 우주탐사선 등등 로한이 혼자서 일궈낸 업적이 엄청났기에, 그들 스스로도 의심 없이 납득하고 만 것이다.
사실 로한은 두 가지 거짓말을 했다.
4만kcal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어치우며, 머리가 아니라 몸이 소비하는 에너지가 훨씬 많다.
그는 두뇌파가 아니라 육체파다.
필요할 때에는 프리덤이 읊어주는 대사대로 그냥 따라 말할 뿐이다.
바로 지금처럼.
"1조 달러 대중한 지원을 철회하라는 시위가 너무 거세서 정부로서도 난감합니다."
"그 건은 제가 관여할 만한 게 아닌데요. 저하고는 무관한 일입니다."
"어째서 무관합니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거예요. 로한 의원은 하수영 의원님의 장자요, 공명이 아닙니까?"
"그렇다 해도 제가 뭐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혹시 로한 의원도 대중한 1조 달러 지원에 찬성하는 입장입니까?"
주워듣는 이들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진다.
로한은 마지막 식판을 깨끗하게 비워버린 후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 모습마저 우아하고 섹시했는지, 여성 의원들과 여성 보좌관들이 표정이 더욱 풀어진다.
"정칠원 의원님, 애초에 잘못된 질문을 던지셨으면서 원하는 반응을 유도하시는 모습, 참 당혹스럽습니다."
"허어, 다른 의미는 없었어요. 그리고 잘못된 질문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1조 달러 지원에 찬성하느냐? 이렇게 물어보실 게 아닙니다. 제가 반대로 묻겠습니다. 정칠원 의원님, 신대한국을 1조 달러에 사서 대북방어영역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어떡해야 합니까?"
"그거하고는 경우가 다르지요."
"어떻게 다릅니까?"
"아무튼 경우가 다르지요."
"정칠원 의원님."
로한은 사교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간 정 의원은 머릿속이 쭈뼛거리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꼭 뱀 앞에 개구리가 된 듯한…….
"전 억지 부리는 사람과는 말 안섞습니다."
"뭐요? 아니, 로한의원! 아무리 그래도 내가 4선 의원인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경우가 다르니까요."
로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을 잠깐 둘러본 후, 로한은 의원식당을 나섰다.
한편 정칠원은 로한이 사라지자마자 언제 흥분했냐는 듯 표정이 싹 가라앉았다.
그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끔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봐라? 그래도 반응은 하네?"
그는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었다.
***
오랜만에 하수영을 만난 전성렬이 대뜸 걱정부터 늘어놓았다.
"나야 하 사장 자네가 자네 돈을 어디 어떻게 쓰든 신경 안 쓰지 개인적으로 중한에는 그 정도 투자할 만하다고 보고. 근데 요즘 분위기가 꽤나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어떤데요?"
"이 기회에 한 번 자네를 쳐서 흔들어볼까 하는 놈들이 있는 거 같아."
"제가 그동안 해군에 너무 많이 퍼주긴 했죠? 그거 보고 속으로 욕심솟은 놈들이 많았을 겁니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것뿐이죠."
"솔직히 미국이 자네 뒤에 있다고 해도, 이건 내정 문제 아닌가? 막말로 어느 날 갑자기 자네를 잡아넣고 있는 죄 없는 죄 마구 지어내면 미국이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아뇨, 도와줍니다."
"내정간섭인데?"
"네. 도와줍니다."
전성렬은 조금 놀랐다가
"어떻게? 뭐 CIA 요원들이라도 보내서 자네 노린 놈들 모가지라도 따주나?"
"에이, 미국 체면이 있는데 그런 짓은 안 하죠."
"그럼 어떻게……."
"당장 해상봉쇄 들어가고 부산과 인천항에 미 해병대가 상륙하고, 서울 전역에 공수부대가 떨어질 걸요?"
"……."
"그리고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
"잘 믿어지지는 않는데…… 미국이 그 정도로 자네를 중시한단 말인가? 내정간섭을 떠나 한국 침략까지 해가면서 지원할 정도로?"
미국이 하수영을 중요시여기는 건 전성렬도 알지만, 방금 말한 조치들은 중국과 러시아에 선제 핵공격을 날리는 것 이상으로 막 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1조 달러 철회 시위 이거 장작을 넣는 놈들은 있지만 처음에 일부러 불씨를 틔운 놈은 없는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일어난 여론 반응이다?"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거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1조 달러인데요."
"하여튼 태평해. 이거 또 괜히 나 혼자만 발 동동 구르면서 걱정한 건 아닌지 몰라. 이번에 검찰에 잡혀가도 재빨리 구해줄 거지?"
"네. 혹시라도 잡혀가시면 그냥 느긋하게 분위기 즐기고 나오세요."
"처음에는 조금 쫄았는데, 이제는 나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을 거 같아."
그때였다.
왕세경 부이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시만요. 네, 부이사장님."
-이사장, 지금 검찰이 병원에 들이닥쳤어.
"오, 거기부터 치는 겁니까?"
-구속영장까지 들고 왔는데? 무조건 날 잡아갈 생각인가 봐. 어떡하지?
겨우 구속 따위가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병원을 비우게 되면 혹시라도 저승차사들이 자신이 없는 틈을 타서 환자들을 데려갈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잠깐 자리 비웠다고 차사들이 뭐 이상한 짓은 안 할 겁니다. 저하고 불가침 약속을 했잖아요."
-그래도 내 뜻이 아닌데 자리를 비우는 건 영 불안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세요. 제가 지금 거기로 간다고요."
-알았네.
듣고 있던 전성렬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검찰이 병원을 쳤나? 무슨 명분으로?"
"없는 죄 때 명분이고 뭐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요. 일단 잡아넣고 마음대로 갖다 붙이면 그만이죠. 저도 많이 해봐서 잘 압니다."
하수영은 태연하게 일어났다.
"잠깐 마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
병원에 도착한 하수영은 검찰청 차와 다수의 경찰차들이 병원 앞에 포진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자들도 몰려와 있었지만, 방송송출용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하수영 이사장이다."
"하수영이야."
기자들은 하영이 나타나자 숨을 죽이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감히 그에게 마이크를 들이 대는 기자는 없었다.
사냥감을 관찰하듯 주변을 슥 둘러본 하수영은 태연히 병원에 들어섰다.
1층 로비 곳곳에 수사관의 모습이 보였고, 의료진과 환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하수영을 보고 흠칫해서 무전기로 상부에 바쁘게 보고했다.
하수영은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이용해서 왕세경이 부이사장실로 쓰는, 그의 전용 VVIP 병실에 도작했다.
안에 들어서자 한가한 듯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40대 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아는 얼굴이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고윤무 검사님 아니세요?"
왕세경이 떨떠름해서 물었다.
"이사장이 아는 검사야?"
"네, 제주지검에서 화이트 스카치 일당을 탕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분이죠. 저도 그때 조금을 조금 드렸고요."
"아, 라테그룹 진석현이 그놈?"
"네, 그놈 유죄판결 끌어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서울로 전출 가셨죠."
고윤무는 애써 태연한 미소를 유지했다.
상황을 보니 하수영은 자신이 라테그룹 그늘에 들어간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임탁정 선배도 아직까지 모르는데 하수영 의원이 알 리가 없지.'
물론 오늘 여기 온 것은 라테그룹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과거의 좋은 인연은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의원님과 함께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한 것은 제게도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로 마주하게 되어 송구하기만 합니다."
고윤무는 하수영을 적대할 마음은 없었다.
가능하면 나중에 그의 스폰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하수영은 임탁정과 조성만 검사 외에 다른 검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검사들이 그렇게 그의 스폰을 받고 싶어서 애간장이 타도 그는 철저히 모른 체로 일관했다.
'의원님, 지금 검찰 내부에 얼마나 불만이 많은지 아셔야 할 겁니다. 의원님 본인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그 불만을 부드러운 형태로 전달하는 일은 자신이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저는 정말 여기에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수영 의원님은 제주도 화이트 스카치 사건 해결을 도와주셨고, 제가 서울로 올라올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는데 제가 어찌 나쁜 일을 들고 의원님을 압박하러 올 염치가 있겠습니까?"
"흐음.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요."
"그러나 제가 아닌 다른 검사 친구들이 병원을 오게 되면 공연히 해를 끼치고 결례를 저지를까 봐 신경 쓰였습니다. 누군가가 어차피 와야 한다면 차라리 제가 오는 게 왕세경부회장님과 수영병원에 그나마 나을 거 같아서 고집을 부리게 된 겁니다. 부디 해량해 주십시오."
"그냥 메신저로 온 건가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겉으로 내세운 혐의는 의료법 위반및 횡령, 배임.
하지만 그것은 전혀 만나주지 않는 하수영과 강제로 접촉하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 낸 명분이었다.
물론 고윤무는 단순히 메신저를 자청한 것뿐이었다.
"말해 봐요. 누굽니까?"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의원님께서 먼저 확답을 해주셔야 비로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용건부터 뭔지 말해 봐요."
"입자집합명령 장치 암 치료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걸 약속해 주시면 저희는 빈 박스를 들고 얌전히 물러갈 것이고, 며칠 후 무혐의 선언과 사과 내용을 함께 발표할 겁니다."
"입집명 암 치료기 1회 비용이 10억인데,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거 죠?"
"어차피 대부분의 환자들은 치료비를 거의 내지 않잖습니까? 전부 병원 복지과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혹시 치료대기자 명단에 등록은 했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다. 암이 발견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하수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당장 등록을 하라고 하세요. 정식 절차대로 밟아서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무리수를 듭니까? 이렇게 자꾸 왕각 보여주면 저도 모르게 다이브한다니까요?"
'왕각? 다이브?"
고윤무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수영은 혼자 작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다이브각 보여주면 나도 모르게 다이브하는데. 이 버릇 너무 오래돼서 잘 고쳐지지도 않는데, 이젠 본능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