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37화
285장 열도의 여름, 겨울 (7)
먼저 헌법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중한국 모든 주민들의 올바른 의사를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냥 의원님의 잠재 의사를 네가 알아내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성군은 만백성의 마음을 두루두루 살펴서 치세를 베푸는 법입니다. 국가와 권력을 강도질하는 독재자나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할 뿐이죠.」
모든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반영을 한다.
독재왕조 체제에서 평생을 산 윤태호로서는 낯선 개념이었지만, 그것도 수영그룹에 뿌린 내린 문화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주민들의 생각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거지? 당장 우리 중한국 주민들 숫자만 해도 천만 명 가까이 되는데."
「중한국 모든 주민들은 프리덤폰을 갖고 있죠. 저와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아."
「한두 시간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니, 며칠 동안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서 주민들의 의사를 하나로 모으겠습니다.」
그리하여 1,000만 중한 주민들은 프리덤을 상대로 개별 심층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수영 의원님이 장기적으로 중 한을 어떻게 대우해 주었으면 좋겠습니까?」
「중한국이 장기적으로 하수님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수영 의원님께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바라십니까?」
「하수영 의원님을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기꺼이 해줄 수 있습니까?」
「중한국이 이것만큼은 반드시 도입했으면 한다, 라는 국가운영 이념이 있습니까?」
중한 주민들은 절대적인 충성이 익숙하다.
자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자유보다는 아사와 결핍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굶주림과 추위에 익숙하고, 아사로 주변인을 떠나보낸 경험이 몇 번쯤은 있다.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 주민들은 중한에는 없다.
북쪽 북한에는 상당히 많겠지만.
"아유, 의원님께서 우리 중한을 천년만년 보살펴 주면 좋겠지. 그 밑에서 나도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고 싶구먼."
"의원님은 언제 왕위에 오르신다고 하던가? 뭐 들은 것 없어?"
"의원님은 사재를 아낌없어 털어서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 천만 주민들을 먹여 살려주셨다. 다시없을 성군이시다."
놀랍게도 62%의 주민들이 하수영이 왕정제를 부활시켜 줬으면 한다고 밝혔고, 36%의 주민들은 왕이 아닌 형태라 해도 김씨 왕조 이상으로 철저히 지배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2%의 주민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나, 하수영이 이 나라의 국부이며 가장 크고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동의했다.
이 같은 결과에는 윤태호와 측근들도 크게 놀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이게 우리 중한 주민들의 진심이란 말이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만장일치로 의원님을 최고지존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 말이다."
「동공과 눈썹의 움직임, 호흡, 입술떨림, 발성, 제스처 등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면담에 응한 중한 주민들은 마스터가 이 나라의 절대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추종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하수영이 내민 커다란 손을 기억했다.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하여 새로운 헌법을 만들겠습니다.」
그리하여 중한의 새 헌법은 다음과 같은 조항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제1조 제1항 : 신대한국은 국부 하수영의 존엄을 항구적으로 인정하고 추종하며 흠모한다.
제1조 제2항 : 신대한국의 헌법의 전부 또는 일부는 국부 하수영이 언제든지 신설, 폐지, 개정, 정지, 부활할 수 있다.」
국가의 최고통치근본인 헌법 자체를 송두리째 하수영에게 부여한다는 조항으로 헌법 전문이 시작된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와 같은 헌법조문에 전혀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으로 완전한 하수영의 소유가 될 수 있고, 그 통치를 천년 만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흠뻑 젖어 기뻐했다.
특이하게도 헌법 조문에는 공화국, 군주국, 연방국 등등의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 전문가들은 헌법이 외향적으로 공화국 형태를 유지하면서, 내향적으로는 전제군주국가를 바라보고 있음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
헌법 전문이 공고되자 한국은 발칵뒤집혔다.
"이게 뭐야? 군주국이란 말만 없지 사실상 절대왕정 시대로 회귀한다는 내용 아닌가?"
"근데 잘 보면 제1조는 하수영 1대에 한하여 효력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거 아닙니까?"
"국부 하수영이란 문구를 '국부 하수영과 그 가문'으로 나중에 수정하면?"
"……."
"아니면 하수영 회장이 유언장으로 헌법에다가 '내 후계자에게 이 나라의 모든 것을 물려준다.'라고 남기기라도 하면? 하수영 회장은 언제든지 새로운 조문을 신설할 수 있는데?"
"아…… 정말 군주국이란 단어만 쏙 뺐지, 진짜 순수 100% 군주국으로 회귀하는 게 맞군요."
중한의 새로운 헌법이 공고되자 한국에서 시위가 불같이 일어났다.
시위의 내용은 우습게도 '하수영을 중한에 뺏길 수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수영그룹은 국가의 보물이다! 귀중한 보물을 북한 놈팽이들한테 뺏길순 없다!"
중한이 아니라 북한이라고 잘못 호칭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하수영이 수영그룹을 들고 송두리째 중한으로 넘어가는 게 아닌지 두려워했다.
어떤 식으로든 하수영의 확답을 듣고 싶었다. 자신들을 안심시켜 주길 원했다.
하지만 하수영은 공식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불안의 불씨는 더욱 커져서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공고 기간이 모두 지나갔다.
주민들은 개별 조문 하나하나가 뜻하는 바를 언제든지 프리덤한테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었다.
프리덤은 하수영이 언제든지 중한을 사유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제1조는 주민 여러분들과 모두 진솔하게 대화하여 반영한 조문입니다.」
「이 조항은 주민 여러분들의 진실한 열망을 그대로 적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주민들의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왕국이라고 못 박아버리면 안 되나?"
"임금님을 임금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으허허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왕국이란 문구를 넣을 순 없나?"
얼마 안 되는 불만들은 대체로 그런 쪽이었다.
이왕 해버리는 게, 시원하게 '우리는 군주국이다'라고 선언을 해버리자는 것.
「그 문구는 하수영 의원님이 한국과 미국에서 가지는 현재 신분도 고려를 해서 뺐습니다. 왕국 표현의 유무가 하수영 마스터와 신대한국의 관계의 본질을 흐트러뜨리지는 못합니다.」
신 헌법은 국민 투표에서 97% 이상의 득표를 얻어 당당하게 새로운 국가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
왜 100%가 아니었냐면, 하수영비어천가를 작성하거나 하수영에게 보내는 진솔한 마음의 편지를 쓰거나 하는 등, 무효 처리 된 표들이 제법 나왔기 때문이었다.
뜻 깊은 이들은 신대한국(중한)의 헌법 국민 투표 결과에 깊이 탄식했다.
"남조선이나 북조선이나, 결국 어쩔 수 없는 한민족이라는 건가."
"국민의 주권을 송두리째 들어다가 갖다 바치는구나."
"우리나라 내각제 개헌 통과에 경쟁심리라도 느낀 거 아니야? 남조선에 질 수 없다, 뭐 이런 마음이었나?"
"이런 거지. 내각제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아예 전제군주제를 해버리겠다. 너희 남조선 애미나이들이 감히 따라올 수 있겠나?"
한국은 현 대통령 박부성의 5년 임기를 끝으로 사실상 내각제 시대가 열린다.
내치는 국회의원 투표로 뽑는 총리가 전부 책임지고, 외치는 국민투표로 뽑는 대통령이 맡게 된다.
뜻 있는 지식인들은 국민들 투표로 겨우 4년 해외여행 관광객 당첨자나 만들어주는 셈이라며 분개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하수영 의원이 막으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막지 않았어."
"박부성 대통령이 전력, 통신, 에너지 인프라 등 많은 것을 양보했지. 하수영 의원도 착한 척하지만 결국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가였던 거야."
"다른 재벌들과는 욕심을 내는 분야의 스케일 자체가 달라서 선한 기업가로 보였을 뿐, 결과적으로 그가 한국과 중한에서 챙긴 것들을 한 번 봐라."
하수영 추종자들의 반발 또한 매우 거셌다.
"지랄하지 마라. 그거 싹 다 합쳐 봐야 원수님이 그동안 해군에 기증하신 것들만 따져도 1/100도 벌충못해!"
"월 19,000원짜리 10GB/s 테더링무제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개꼬추로 보이냐?"
"월 전기료 2,000kWh가 9.9만 원이 우스워? 농민 회장님이 탐욕스러운 자본가였으면 저런 혜자 요금제 애초에 내놓지도 않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가? 어디 항공모함 한 척이나 기부하고 그런 말을 해보던가!"
***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초대 수장이 된 윤태호 통령은 신 헌법 및 정부 수립을 공포하는 영광스러운 국가 행사 기념식에 하수영을 초청했다.
"하수영 국부님."
그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하수영을 마치 큰아버지 대하듯이 머리를 숙였다.
그 전에도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존경과 복종의 태도는 있었다.
러나 지금 하수영을 대하는 모습은 명백히 창업군주를 대하는 가신의 것이었다.
"고개 드세요. 저는 왕이 아닙니다. 일개 농민이자, 투자자일 뿐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은 작은 시냇물하나하나까지 국부님의 재산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어찌 함부로 고개를 들겠습니까?"
"국부님."
"국부님."
"국주님."
초대정부 고위공직자 자리가 내정된 윤태호 측근들도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이상한 게 하나 끼어 있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발음이 잠시 샜던 것뿐이리라.
"어휴, 국부니 국주니, 이분들도 참, 저는 외국인이자 일개 농민이자 투자자일 뿐인데, 헌법에다가 제 이름까지 넣어주시고."
이중 몇몇 이들은 틀림없이 속으로는 '좀 큰 별장쯤으로 취급할 땐 언제고'라고 반감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반감을 겉으로 살짝 드러내는 것조차 본인 포함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로, 천만 중한 시민들의 추종은 절대적이다.
"아무쪼록 저희 인민들을 앞으로도 계속 이끌어 주십시오. 신정부 수립을 정식으로 선포하는 이런 경사스러운 날, 저희들에게 귀중한 말씀을 내려 주십시오."
"이왕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았습니다. 앞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철저히 주의합시다."
"예, 국부님."
"프리덤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정부 조직을 운영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프리덤의 성능은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믿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장관이니 국장이니 부장이니 여러 고위 직책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쿠데타를 통해 김씨왕조를 이 땅에서 쫓아낸 군공에 대한 상에 가까웠다.
그들은 권력의 후광을 이용해서 사익을 챙기는 일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꼬박꼬박 나오는 높은 월급 및 은퇴 후 연금과 사회적 명예, 그 정도가 전부이며 그 이상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오늘 새 출발을 널리 선언하는 자리이니 축하 선물이 빠져선 안 되겠죠. 1조 달러를 내놓겠습니다. 같이 발표하면 주민들도 기뻐하겠네요."
"감사합니다. 그 채권 역시 항구적으로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
미국 부통령, 한국의 하수영, 그리고 로한.
해외 귀빈이라고는 이렇게 셋밖에 참석하지 않은 정부수립 선포 행사였지만, 전 세계가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중한을 주목했다.
하수영은 귀빈석에 앉아 지켜만 볼 뿐, 축사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카메라는 틈나는 대로 하수영의 얼굴을 잡아서 인민들 앞에 내보냈다.
누가 진정으로 이 자리를 주관하는지는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또한 하수영 국부께서는 뜻깊은 오늘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1조 달러의 격려금을 내리셨습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
중한, 그리고 북한과 남한에서는 제각각 다른 의미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