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35화
285 장 열도의 여름, 겨울 (5)
보람찬 하루가 끝나고, 중한 주민들은 저마다 저녁을 준비했다.
대부분의 가정은 비슷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전기그릴 가져오라우."
"엄마!"
"아, 맞네맞네. 전기그릴 가져 와."
깜빡 잊고 옛 사투리를 써버린 모친이 멋쩍어했다. 요즘 중한에서는 표준서울어를 따라 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전기그릴 여겼어요."
"밥솥에서 밥도 퍼서 차려놔. 아빠가 곧 화장실에서 나오실 것이다."
"네."
전기그릴이 열을 받아 뜨거워지면, 두툼한 삼겹살을 그 위에 늘어놓는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을 가위로 싹둑 잘라 마저 노릇노릇하게 익힌다.
다 익은 삼겹살을 상추나 깻잎 위에 올리고, 쌈장과 마늘 슬라이스, 김치, 그리고 돼지기름에 구워진 부추를 올린 다음, 약간의 흰 밥알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소주나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입안을 듬뿍 적신 알콜의 짜릿함 위로 삼겹살쌈을 그대로 쏙 넣는다.
"크, 이거이야말로 천국이다."
"아빠!"
"미안미안. 다시 할게. 크, 이것이야말로 천국의 맛이로구나."
"남조선, 아니아니 한국 동포들은 평생 이런 걸 맨날맨날 먹었다니. 김정ㅇ이 그 아새끼가 얼마나 우리들을 혹독하게 다뤘는지 눈물이 다 나려고 합니다."
"엄마, 발음 조심, 억양 주의."
"알았다니까. 나도 노력하고 있어."
한국에서 올라온 직원 및 군인들을 통해 중한 주민들은 삼겹살과 소주조합의 마약 같은 중독성에 푹 빠져 들게 되었다.
하루를 마치는 저녁은 무조건 삼겹살에 상추쌈, 중한 주민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뿌리를 내린 식문화였다.
수영장은 식재료만큼은 아낌없이 무제한적으로 중한에 퍼부었고, 중 한 주민들은 먹는 것 하나만큼은 일반적인 한국 가정과 대등한 수준으로 누리고 있었다.
소고기와 생선도 얼마든지 구해서 먹을 수 있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돼지고기였다.
바로 상추쌈의 마법 같은 조합 덕분이다.
"이건 참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구나. 평생 동안 이것만 먹어도 괜찮겠어."
"평생 동안 이것만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행복이 아니겠어요?"
"그렇지, 그렇지."
***
중한 심시티, 아니, 심네이션 중간 검토를 위해 하수영은 조용히 중한을 찾았다.
중한의 최고통치자인 윤태호 차수가 직접 하수영을 맞이하여 에스코트했다.
"모든 가정에 전기보일러와 전기밥솥, 냉장고 보급을 완료했습니다. 에어컨은 아직 공급력이 달려서 일부 가정에만 들어가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모든 가정에 공급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조리도구는요?"
"일단 전기레인지, 그중에서 하이라이트식을 우선적으로 보급했습니다. 도시가스 공급망 설치는 여전히 순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사실 가스레인지가 전기레인지보다 월등히 좋긴 한데, 화력 조절이 정말 간편하거든요."
"아이고, 저희 한국에 있어서는 전기레인지만 해도 충분히 사치스럽습니다. 오히려 하이라이트식 전기 레인지가 선진국 문물이라며 주민들이 매우 좋아라 합니다."
전기는 북한에서 가장 편하게, 그리고 값싸고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에너지자원이었다.
모든 가정집에는 새로운 분전반(두꺼비집)이 설치되었다.
분전반 안에는 무선전기 수신칩이 들어 있어 수영발전소에서 직접 전기를 받아서 각 가정에 공급을 해준다.
정부청사 건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윤태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지하 케이블 혹은 전봇대를 통해서 전기를 끌어온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분전반에는 위장용 송전선도 달려있었으니까.
"한국 기업들은 요즘 어떤가요?"
"여전합니다. 우리 중한국 재건사업에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매일 같이 청탁이 들어옵니다. 중한국에 대한 모든 투자는 수영투자를 통해서만 진행한다고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김범석 사장이 과로가 심하겠어요. 안 그래도 없는 머리가 더 빠지겠군요."
"정말이지…… 1, 2 년 전만 해도 앞으로 미래가 어찌 될지 몰라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두 의원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프라임건설은 평양과 개성을 놀라운 속도로 재건하고 있었다.
상하수도, 지하철, 도로를 빠른 속도로 세우며 도시는 점점 세련된 모습을 갖춰 나갔다.
다만 초고층 빌딩은 일부러 많이 세우지 않고, 상징적인 숫자만 채우고 있었다.
"핵융합 발전 시대에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에너지원이 전기로 수렴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시가스 파이프는 일부러 설치하지 않았어요."
"엡."
"가스레인지가 참 편하긴 하지만, 건물에 가스파이프가 없으면 그만큼 또 안전하고 빨리 지을 수도 있고요. 그나저나 하루빨리 전기레인지가 좀 성능 좋은 놈으로 나와 줘야 하는데."
심지어 중한에는 매립형 통신케이 블이나 송전탑, 중계탑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수영은 통신방법까지 아예 무선 전기로 뭉쳐서 도입해 버렸다.
'이왕 버리고 새로 맞춘 본체니까, 깔끔하게 차세대 버전 OS를 까는 게 낫지.'
그런 이유에서 가스 파이프, 송전망, 통신망 따위가 전혀 깔리지 않은 것이다.
중한 주민들은 모르지만, 세계 최초로 100% 무선전기 도입 국가의 영광을 누리는 셈.
"차수님."
"예, 의원님."
"지금 중한국은 어찌 되었든 자본 주의 흐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벗어날 수 없어요. 적응을 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윤태호 차수의 눈빛에 결연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도로 확장이나 공단 건설이나 신도시 조성 같은 거 좀 해보려고 하면 땅 때문에 뭘 제대로 하기가 힘듭니다."
"우리 민족이 땅 욕심이 상당하지요."
"뭐 우리 민족만 그렇겠어요? 인간이라면 다 그렇죠. 만능 랩팩토리가 국가를 얼마나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사업인데, 땅 알박기 하는 사람들 때문에 부지 확보를 못 해서 몇 년간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제주도에 부지를 마련해서 다행입니다."
"그것도 외국인들 토지보상금 주고 강제로 쫓아낸 덕분에 겨우 가능했던 겁니다."
윤태호는 하수영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어질 말을 상상하며 바짝 긴장했다.
"지금 서울 교통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도로를 넓히고 싶은데 땅주인들이 땅을 안 내놔요. 땅값이 그렇게 오른 건 국가와 시에서 인프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서인데, 자기들이 투자운용을 잘해서 그런 줄 안다니까요."
"서울 도심 교통혼잡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살인적인 교통량이더군요."
"중한국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었으면 합니다."
"예, 모든 토지는 계속 국가 소유로 두는 정책을 유지하겠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대를 이어가면 국가 통치자들이 결국 딴생각이 들고, 국가 재산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 싶어지고, 그렇게 되거든요. 이건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예외가 없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기에 윤태호는 부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수영의 언행은 무엇이든 간에 반대하고픈 마음도 없었고.
지금 중한국은 하수영 혼자서 국가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형국이다.
"제가 그동안 중한국에 참 많은 씨앗을 뿌렸습니다. 알고 계시죠?"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중한국전체를 몇 번이고 팔아도 도저히 갚지 못할 만큼 큰 투자를 받았습니다."
천문학적인 차관, 식량, 전기, 농장건설, 중앙은행 노릇을 하는 수영사채를 통해 한국 정부의 개입 없는 안전한 원화 도입 등등…….
중한국은 하수영 덕분에 한국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자립을 할 수 있었다.
원화체제를 도입했으면서, 수영사채와 프리덤폰을 통한 100% 전자 화폐 결제 방식 덕분에 지하경제는 아예 뿌리를 내릴 터전조차 상실했다.
외신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전한 국가경제 시스템이 태어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다며 날마다 놀라움을 보낸다.
"전 농부입니다. 의미 없이 씨앗을 뿌리지 않아요. 결국 가을에 수확을 위해서 그 많은 씨앗을 뿌리고, 밭을 갈구는 거죠."
윤태호는 하수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저희가 무엇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수영사채가 중한국의 사실상 중앙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이기도 했다.
당장은 수영사채의 지출이 엄청나지만, 시간이 지나 중한국이 정상국가가 되면 수영사채가 얻는 이익은 막대할 테니까.
하지만 윤태호는 그것을 중한국이 베풀었다고 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 역시 수영농장이 중한국에 내린 은혜다.
"땅을 원합니다."
"얼마만큼의 땅을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만큼 전부 드리겠습니다."
"뭐,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것은 아니고요. 그래 봐야 그거 얼마나 되겠어요? 다만 먼 훗날 교통체증 줄이려고 도로 확장 공사 좀 하려는데 땅 못 내놓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시작부터 막히는 것만큼은 미리 예방해 보려고요."
"……."
"자본주의의 병폐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맞서서 해결해야죠. 그래야 병신들이 이런저런 헛소리를 못 해요."
"자본주의 방식으로 예방하신다면……."
"중한국 모든 땅의 소유권을 제게 넘기세요. 제가 중한국에 지금까지 투자한 것, 그리고 앞으로 투자할 것들에 대한 양도담보 형태로요."
양도담보는 소유권이 채권자에게 넘어가지만, 채무를 변제하면 다시 채무자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윤태호는 이 양도담보를 두번 다시 돌려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한국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수영농장이 쏟아붓는 투자와 지출은 더욱 커진다. 채무액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중한의 모든 토지를 팔아도 부족할 것이다.
언젠가는 중한국의 세수를 모아서 변제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을 갖출 수도 있겠지만, 차곡차곡 국고를 모으고 털어서 변제를 해봤자 남는 게 없다.
경제는 순식간에 파탄이 날 테니.
차라리 그냥 계속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게 낫다.
"전 지금까지 쏟아부은 것, 앞으로 쏟아부을 것들을 별로 돌려받을 마음은 없습니다. 전 국토를 달라는 것도, 중한국 재건운영사업을 방해 없이 진행하려는 목적이 더 커요."
"아무렴요. 고작 땅장사나 하시려고 그러는 게 아닌 건 저도 압니다. 그런 분이라면 그런 조건 없는 후원을 해주시지 않았을 겁니다."
하수영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항공모함, 전투함, 전투기 등등을 사서 해군에 기증한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보증이다.
실시간으로 증강되는 한국해군의 군사력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이런 말 하긴 부끄럽지만, 제가 청담동에서 인심 좋은 건물주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세상 모든 건물주가 의원님만 같았으면 임차인들이 고생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또 악덕임차인에게는 칼같이 대응하거든요. 그게 또 제 매력이죠."
보통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하면 화자나 청자나 둘 다 낮이 부끄러워야 하지만, 윤태호나 하수영이나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새로 일어서는 나라에 토지 자본가는 인심 후한 한 명이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충분하고말고요."
"구국의 큰 결단 내리신 겁니다. 앞으로 중한에서는 부동산 관련된 걱정은 영원토록, 일절 하실 필요 없어요. 그건 저 혼자 몫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