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27화
284장 자본가를 위한 실험 (3)
랩팩토리에 대규모 안드로이드 공장을 만든다는 정보가 퍼지자, 미국로봇 업계에서는 일제히 불안감이 맴돌았다.
로봇 업계가 최근 경기가 좋아진 것은 하수영이 안드로이드 프리덤 실용화를 위해 대량으로 주문을 한 덕이다.
수영농장은 로봇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억 달러 단위로 주문을 했고, 큰손의 현금질 덕분에 로봇업계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규모 로봇 공장을 만든다고 하니, 가장 큰손을 잃지 않을까 불안감에 떨 수밖에.
"알아봤는데 최종 조립 전문만 담당하는 공장이라고 합니다."
"조립만? 그럼 부품은 계속 지금처럼 미국에서 조달한다는 건가?"
"그런 거 같습니다. 제주도에서 랩팩토리 부지 확정을 발표했는데, 안드로이드 부품 주문 발주량은 오히려 폭증했습니다."
부품 공장을 자체적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미국 로봇 업계는 겨우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완제품 조립 및 세팅은 어차피 그 전에도 수영농장에서 직접 하고 있던 것이었다.
수영농장은 브로커를 통해 부품 주문을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수백 가지가 넘는 부품이나 모듈을 개별 업체마다 일일이 접촉해서 직접 주문을 해왔다.
"지금 수영장이 안드로이드 프리 덤 몇 기를 가지고 있지?"
"지금까지 주문한 물량으로 보면 최소 10만 기 이상입니다."
초창기 안드로이드 프리덤 1기당제조원가는 5,0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1기당 15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로봇업체들이 천문학적인 투자개발비를 모두 회수한 덕에, 이제는 합리적인 마진을 붙인 가격으로 부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영농장에만 제공되는 혜택이고, 그 외 바이어들은 더욱 비싼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 봤자 여전히 수영장이 매출의 대부 차지하는 큰손이다.
그 외에는 미 군수업체에서 전투용 로봇 개발시험을 위해 조금씩 사가는 물량이 전부다.
로봇 업체들은 제주도 발표 이후 새로 들어온 주문량을 보고 기겁했다.
"지금 수영농장이 안드로이드 프리덤 10만 기 이상 확보하지 않았나?"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1조 달러 이상은 확실히 썼을 겁니다. 최대 2.5조 달러까지 봐야 한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40만 기 분량을 추가로 주문한다고? 그럼 이게 대체 얼마야?"
"그, 그래도 초기에 주문한 10만 기만큼은 아닐 겁니다. 초창기에 비하면 가격이 1/33까지 떨어졌으니까요."
"그래도 40만 기를 전부 만들려면 6,000억 달러어치 부품을 구매해야 하는데?"
"……."
"맙소사, 이 많은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수영농장신이 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5년 동안은 매출 걱정이 전혀 없겠군요!
수영농장, 만세!"
수영농장이 조 단위(달러)로 팍팍구매를 해준 덕분에 로봇업계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도 회수했으며, 부품 제조원가도 대폭 낮추었다.
그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의미에서 수영농장에는 모든 원가를 공개하고, 30%의 마진만을 붙여서 판매하고 있다.
물론 다른 바이어한테는(미 정부라해도) 수백%에서 1,000%대 이상의 마진을 붙여서 팔지만.
"수영농장이 북미 식료품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긁어가서 정부 철퇴 맞을 줄 알았는데, 안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밥 팔아서 번 돈으로 미국로봇 업계를 살리고 있으니……."
"워싱턴 놈들도 양심이 있으면 수영농장은 절대 못 건드리지. 지금까지 우리 미국에서 꾸준히 사가는 첨단물품을 다 합치면 대체 얼마야. F22만 해도 어휴."
"근데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40만 기나 만들어서 대체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
"글쎄……."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한 기 한 기가 모두 완벽한 '강화 인간 일꾼'의 역할을 수행한다.
수백kg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운반하고, 섬세한 요리도 할 수 있고, 어린아이나 장애인, 중환자 도우미도 문제없이 해낸다.
특히 수영그룹은 맞벌이 직원 가정에 가사용으로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제공해 주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낳고 있었다.
갓난아기나 거동이 불편한 가족을 집에 두고도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전신마비 환자를 24시간 케어하는 안드로이드 프리덤의 촬영영상이 쿠글 UCC포털에서 1억뷰이상을 찍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비환자의 욕창 및 갑갑함 방지를 위해서 분 단위 간격으로 쉬지 않고 온몸을 주물러주는 헌신적인 모습이 전 세계 중환자 가족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문에 미 로봇 업체에는 아직도 온갖 사업 제의가 들어온다.
영업이사는 불과 얼마 전 돈을 싸들고 회사를 찾아온 텍사스 졸부를 떠올렸다.
"우리도 안드로이드 프리덤과 같은 서비스를 시행하고 싶습니다. 수영농장은 모든 부품을 미 로봇 업계에서 구매해서 조립했다고 들었습니다."
포부를 안고 찾아온 텍사스 촌뜨기는 그러나 좌절의 벽을 맞닥뜨려야 했다.
"하드웨어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와 배터리는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배터리?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안드로이드 프리덤 1.3 모델부터는 배터리가 장착되지 않습니다."
"그럼 그 모델들은 어떻게 움직인 단 말입니까?"
"수영농장에서 자체적인 배터리를 따로 장착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만, 그 외는 우리도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
"그리고 안드로이드 프리덤의 진정한 특징은 바로 바디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인공지능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냥 직접 한 번 보십시오."
풍운의 꿈을 안고 찾아온 투자자들은, 로봇 업체가 보여주는 시운전영상을 보고 좌절해야만 했다.
"이건 깡프리덤에 유비테크,보스톤 다이나믹스, 아이로봇에서 힘을 합쳐 만든 통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겁니다. 바디는 완벽하게 똑같지만, 제어 프로그램만 다른 것을 쓴 것이죠."
영상 속의 깡프리덤은 원본처럼 사람 같은 섬세한 움직임을 전혀 구현하지 못했다.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실험실 로봇 딱 그 수준이었다.
갓난아기나 중환자를 온전히 안심하고 맡길 수도, 주요 공정라인에 숙련된 엔지니어 대신 투입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하드웨어가 1%, 소프트웨어가 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소프트웨어는 오로지 수영농장만이 갖고 있죠."
텍사스 촌뜨기는 결국 좌절해서 돌아가야만 했다.
잠시 얼마 전 일을 회상한 영업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휴식과 불평,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는 로봇 일꾼 40만 기라니…… 그걸 가지고 대체 뭘 할지 상상도 가지 않는데."
"적어도 한국에서 최소 40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하겠군요. 그들에게 유감을 표해야겠습니다."
"겨우 40만? 안드로이드 프리덤 1기 단독으로 동시에 최소 3인의 몫을 해낼 수 있어. 120만 명 이상의 실직자가 발생할 거라고 봐야 할 거야."
"어쩌면 중한 복구 사업에 전부 투입하려는 게 아닐까요?"
"중한이라. 그러면 남한의 일자리 시장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하수영이 지금까지 들여온 10만기는 모두 포장을 뜯은 게 아니었다.
무인공장, 직원 복지, 농장에 투입한 개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기동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40만 기에 해당하는 부품을 추가로 주문했으니, 수영그룹 내부에서도 온갖 궁금증이 돌아다녔다.
"아직 쓸 데 없어서 컨테이너에 담겨 있는 개체만 수만 기는 되지 않아?"
"그런 걸로 아는데."
"근데 40만 기나 추가 발주하다니. 대체 그 많은 것을 어디에 다 쓰려고……."
"무인공장을 크게 만들려는 게 아닐까? 이번에 랩팩토리도 제주도에 짓기로 확정했고, 반도체 공장도 제 주도에 추가로 지어야 하고."
"반도체 공장이라고 해봐야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얼마나 쓴다고. 지금 경기도 공장도 200기가 채 안 되는 판인데. 그리고 랩팩토리 발표하면서 공개채용 계획은 오히려 확장했어."
"그럼 역시 중한에 전부……."
"일자리 창출해야 한다고 꼭 필요한 부분에만 안드로이드 프리덤 투입하고, 웬만해서는 중한 주민들 교육해서 투입하는데?"
"그래?"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웬만하면 사람한테 시킨다는 게 중한지부 방침인가 봐."
"그럼 진짜 뭐지?"
그러나 많은 이들의 추측과 달리, 그 답은 동해 건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
도쿄 테이코쿠 호텔.
넓은 연회장 중심 테이블에는 5명의 중년 및 노년의 남자들이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겨우 6인이 만나는 자리인데 이 넓은 연회장을 통째로 빌렸다.
몇 달치 이상 예약이 꽉 차 있어 갑작스럽게 대관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수영농장의 위세가 사뭇 대단하긴 한 모양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5인의 기업인들은 평소에도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도요타,혼다,닛산,미쓰비시,마쓰다.
일본의 5대 자동차 브랜드 순위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기업의 총수들이었다.
세대교체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곳도 있고, 이미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도 있기에 나이 차이는 일정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때 초대자가 마침내 나타났다.
"이거 다들 일찍 오셨네요. 저는 멀리서 비행기 타고 오느라고 조금 늦었습니다."
일본 도쿄 출신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네이티브 그 자체의 발음을 자랑하는 하수영이 나타났다.
그러나 발음과는 달리 직설적이고 간결한 어투는, 그가 일본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한층 더 강하게 강조한다.
"도요타 회장 우치야마다입니다."
"미베라 불러 주십시오."
"닛산의……."
총수와 CEO들은 저마다 하수영한테 인사를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그들은 하수영의 복장에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겉과 속이 다른 민족답게 그런 동요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런 옷을 입었지?'
'우리 기를 죽이기 위해서? 아니면 졸부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강조해서 협상의 우위를 가져갈 셈인가?'
'어느 쪽이든 방심할 순 없다.'
하수영은 온통 황금색으로 번쩍거리는 금속 갑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신발까지 철컹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금속제 군화였다.
진짜 황금으로 만든 갑옷인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택이 듬뿍 난다.
"제가 여러분들을 뵙자고 한 건 간단합니다. 자동차 사업 때문이죠."
"……."
5인의 기업가는 소리 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수영그룹은 자동차 완제품은 만들지 않지만, 대신 모터를 제작하는 수영모터스를 갖고 있다.
얼마 전 수영모터스에서 선보인 차세대 모터의 퍼포먼스는 실로 대단했다.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엔진과 모터도 완벽하게 뛰어넘는 예술품이었다. 백두자동차와 연합해서 양산공정도 이미 갖추어서 찍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향후 북미 및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역시 우리한테 모터를 팔려고 이 자리를 만든 것인가?'
5인의 기업가는 내심 그런 거래를 기대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
한국 기업에서 모터 같은 중요한 부품을 제공받는 게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어차피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라고 애써 자위한 채.
그런데 하수영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자동차 공장, 요즘 인건비가 얼마나 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인건비 많이 들지 않습니까? 그에 비해서 작업 효율은 별로 안 나고. 제가 여러분들 회사의 그 부분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기업가들은 아직까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모터 판매를 언급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공장 인건비라니.
"인건비는 절반, 가동 효율은 두배 이상, 제가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왔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세상에 그런 방법이 존재합니까?"
"공장 직원으로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렌탈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공장들이 지출하는 총 인건비의 절반만 뚝 잘라서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