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26화
284장 자본가를 위한 실험 (2)
하수영은 캠핑카를 끌고 제주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경찰청에서 처음 도로통제를 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하지만 이내 국토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서 읍소하며 제발 교통통제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VIP께서 회장님의 안전에 반드시 안전을 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쯧, 장관님도 고충이 많으시군요. 대통령씩이나 되신 양반이 너무 걱정이 많으시네. 알았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수영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피습을 당하거나 사고라도 나면 이 나라 식량안보가 무너진다.
물론 경제도 박살 나지만 지금 이 나라의 경제지표는 수영농장의 식량권력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전화를 끊자 조수석에 앉은 장효주가 호기심을 품고 물어봤다.
"무슨 일이에요? 도로통제니 대통령이니 하던데."
"제가 사고라도 날까 봐 제주도까지 도로통제를 쭉 해주라고 대통령이 당부했나 봅니다. 그 양반은 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뭐 그리 신경 써주는 척하는 건지."
"대통령이 수영 씨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요? 처음 들어요."
장효주는 진심으로 놀라서 물었다.
세간에 떠도는 풍문은 새 대통령이 하수영을 아주 좋아하다 못해 죽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양반, 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육군 장성 출신이 절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근데 전기 통신 사업을 수영 씨한테 다 줬잖아요?"
"엄밀히 말하면 준 게 아니죠. 재벌 카르텔이 시대에 뒤처지면서 헛발질까지 해서 스스로 무너졌고, 전 빈집에 들어온 것뿐이니까요."
하수영은 능숙하게 핸들을 돌렸다.
"그 양반이 3성장군 출신이라 그런지 기본적인 전략 사고는 할 줄 알아요. 날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불가근불가원,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무선 전기가 등장한 이상, 전력 카르텔과 통신 카르텔은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송전탑, 케이블, 중계기, 안테나, 통신탑 등 기반시설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어차피 무너지게 될 산 업, 선심 쓰듯이 하수영이 가지도록 배려를 해준 것뿐이었다.
"그사이 재빨리 개헌안 올려서 실질적 내각제 통과시켰잖아요. 곰한테 먹이 던져주고 한눈 팔린 사이 자기도 얼른 딸기 따서 도망친 겁니다."
"그러니까 수영 씨가 곰이라는 거죠?"
"뭐, 비유하자면?"
"보통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유지한다는 건 기업이 정치판을 향해서 하는 말 아니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기업가가 정치인을 너무 가까이해도, 너무 멀리해도 안 된다는.
"근데 왜 수영 씨와 청와대는 그게 거꾸로예요?"
"글쎄요. 파워에서 오는 차이겠죠?"
"아무리 그래도 국가권력인데."
"중앙권력에서 저 건드리는 순간 바로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해서 미군정 시대 열립니다.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그걸 알고 사리는 거예요."
어느덧 경찰 오토바이와 호위 차량들이 앞뒤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앞뒤로 펼쳐진 도로에서 일반 차량들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프리덤. 지금 호위책임자한테 오토바이는 빠지라고 해. 속도 150km 이상 밟을 거니까 거기에 맞추라고 하고."
-전달했습니다.
"도로통제 걸었으면 VIP는 팍팍밟아서 빨리 빠져주는 게 시민들 도와주는 거지."
도로통제의 효과는 탁월했다.
캠핑카는 순식간에 IC에 진입해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제주도에 도착할 때까지 일반 차량은 단 한 대도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복귀하라고 해."
-전달은 했는데, 책임자가 울상입니다. 청담동 밖은 위험하다며…….
"아, 귀찮게. 해군기지에 연락해서 차 2대 만 끌고 마중 나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호위대는 해군에서 호위를 승계하고 나서야 겨우 물러났다.
장효주가 신기한 듯이 뒤를 자꾸 돌아봤다.
"원래 이 정도로 호위에 신경 쓰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요. 많이 바뀌었네요?"
"요즘 식량 정세가 만만치 않죠.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안에만 있으면 솔직히 그런 거 잘 못 느끼 겠더라고요. 근데 어제 서희 씨가 청담동에서 자고 갔다면서요?"
"술 먹고 놀다가 딱 잠만 자고 갔습니다.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우리 오늘 어디서 자요? 차박도 난 괜찮은데."
"불편하게 무슨 차박이에요. 해군 기지에 전용 관사 지어놨습니다. 일 마치고 거기서 자면 돼요."
하수영은 제주도청으로 향했다.
정문 밖에서부터 이미 도지사, 도의원, 기타 수행원들이 잔뜩 몰려서 마중을 나와 있었다.
기자들의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하수영이 그 점을 강조한 덕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하수영 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지사의 태도는 마치 가신이라도 된 것처럼 한껏 공손했다.
해상철도 및 도로, 서진파운드리 제2공장, 해상농장 및 모항기지 건설.
이 세 가지 사업으로 인해 제주도는 예전과 전혀 다른 지역이 되었다.
나이든 제주도민들은 하수영을 해신이라 높이 떠받들고 있었고, 제주도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하수영 앞에서 얌전한 어린 병아리가 되었다.
먹이를 던져주기만을 얌전히 기다리는.
톱배우 장효주와 함께 단둘이 움직임에도 아무런 수군거림조차 없는 것이, 지금 하수영이 제주도에서 가지는 위상을 보여준다.
"거기, 둘."
"병장 진두엽!"
"병장 오지완!"
하수영이 가리킨 해군병사 둘이 얼른 앞으로 나오자 관등성명을 복창했다.
"여기 이분이 누군지는 알지? 우리 그룹 대표 모델이시다. 따라다니면서 잘 에스코트 해드려라."
"충성!"
톱배우 미녀 스타를 모시라는 임무는 두 병사들에게 차라리 기쁨이었다.
"두 분, 잘 부탁해요. 근데 여기 주변에는 뭐가 맛있어요?"
장효주는 두 병사들과 함께 혼자 시간을 때우기 위해 떠났고, 하수영은 도지사 일행과 함께 회의실에 입장했다.
***
"어쩐 일로 회장님께서 손수 제주도를 다 찾아주시고……."
도지사는 긴장된 웃음으로 하수영을 대했다.
비즈니스 때문에 제주도를 방문하겠다는 통보에 어제부터 밤새도록 도청을 쓸고 닦았다.
"도청 전체가 광택이 반질반질한 게, 저 온다고 대청소를 하셨군요. 그러지 말라고 일부러 어젯밤 늦게 알려드린 건데."
"하하, 아닙니다. 일부러 청소를 한 게 아니라 우리 도청의 상시 청결상태가 이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부터는 도청에 바로 찾아와서 대기표 뽑고 기다리겠습니다."
"회, 회장님!"
"저 온다고 이런 대청소 같은 거하지 말고, 진짜 평소처럼 맞이해 주세요. 안 그럼 진짜 대기표 뽑고 기다릴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밤새 청소하느라고 고생한 고급행정직원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랩팩토리 프로젝트 아시죠?"
하수영이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은 말에 회의실 내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
도지사가 미세하게 손을 떨면서 물었다.
"그, 글로벌 첨단종합연구생산단지 말씀하시는 겁니까? 청담 스코프와 입자집합명령 장치, 핵융합 로켓까지 모든 것을 만드는 만능 공장……."
"맞습니다. 모든 첨단제품을 연구개발하고, 제조까지 직접 하는 초대 형 공단이죠. 우리 농장에서 돈을 얼마나 쓴다는지는 들어보셨나요?"
"2조 달러 이상 투자한다고 들었습니다."
"맞는데, 조금 달라요. 이미 돈은 납입이 된 상태예요. 랩팩토리 수영사채 계좌에 잘 보관 중이죠."
"……."
2조 달러라는 말에 회의실에서 묵직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해상교량이 놓이기 전까지 한 해예산이 5조, 6조 원하던 제주도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금액이었다.
"그동안은 부지선정 때문에 온갖 방해를 받아서 진행 속도가 지지부진했습니다."
세간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진실은 다르다.
청담 스코프를 굳이 양산할 생각이 없었던 하수영이, 양산에는 6조 달러라는 투자금이 있어야 한다고 둘러대는 바람에 돈을 마련하지 못해서 늦어졌을 뿐.
하지만 세상이 그럴듯하게 오해하게 놔두는 것이 더 그림이 좋을 것이다.
"고민 끝에 랩팩토리는 제주도에 짓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지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도의원들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 대박에 환호했다.
서진파운드리 공장, 해상농장 도선 기지, 그리고 이제는 만능 랩팩토리까지.
"제주도의 지리적 위치, 그리고 특별자치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다른 지역은 알박기다 토지 보상이다 뭐다 해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삽을 뜨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철저히 준비해서 맞이하겠습니다."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죠. 지금 제주도 땅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많죠?"
"예?"
"전부 몰수, 아니, 수용하세요. 제 주도에서 먼저 중앙정부에 특별토지 수용법안을 건의해서 입법이 진행되는 절차가 자연스럽겠습니다."
"……."
도지사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지금 제주도는 중국 자본으로 인한 땅 투기가 만연하다. 그래서 땅값이 올라서 도민들이 오히려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제주도 관광산업의 중요한 소비자들이다.
내국인 및 일본인 관광객만으로는 관광수입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중국 관광객수입이 줄어든 판인데, 부동산을 강제로 수용한다면…….
"이제 제주도는 관광도시가 아니라, '관광도'하는 종합도시가 되어야죠. 초고소득자들이 득실거리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종합상권이 크게 발전합니다."
"죄송합니다. 비교 자체가 안 될 일인데, 제가 머리가 흐릿해서 잠시 딴생각을 했습니다. 곧바로 청와대에 건의해서 정부발의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진행하겠습니다."
"외국인 구매자들은 그들이 처음 구매한 금액에서 연당 6%씩 물가상승분 고려해서 보상금액을 내주세요. 그 정도면 적당할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아까 얼마라고 했죠?"
"6%…… 아니, 2조 달러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핵융합 발전소도 들어올 겁니다. 반도체, 핵융합, 첨단연구소공단, 해상식량 플랜트까지. 제주도는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도시가 되는 겁니다. 서울보다 더 중요한."
도정부 소속 인물들의 안색이 붉어지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 아름다운 미래가 아닌가.
"자, 질문 있으면 하세요."
잠시 동안 서로 눈치만 살피는 사이, 한 도의원이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윤태욱 의원님, 질문하세요."
"예. 의원님. 영광입니다."
윤태욱 도의원은 목청을 가다듬고 질문을 했다.
"만능공장 랩팩토리에서 가장 먼저 생산되는 제품은 어떤 게 될지 궁금합니다."
"음, 도의원님은 어떤 게 가장 먼저 생산될 거 같습니까? 아니면, 어떤 게 가장 먼저 생산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입자집합명령장치가 가장 먼저 생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가장 제조가 어려운 물건이라서 맨 뒤로 미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슷하게 맞추셨습니다. 입집명장치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에요. 테크트리의 꼭대기에 있죠. 지금으로써는요."
"……."
"가장 먼저 생산되는 것은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될 겁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이요?"
다들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이미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충분한 물량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네,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대부분의 부품을 미국 로봇업체들한테서 사와서 조립만 하면 되니까요. 금방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이라니, 약간 의외입니다. 지금 수영그룹은 충분한 수량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까?"
"판매 좀 하려고요."
"판매라고요?"
"네. 물론 정식 판매는 아니고 렌탈 방식이 될 겁니다. 돈 주고 사라고 하면 그거 못 사거든요."
하수영은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인건비 때문에 불철주야 고민하는 자본가들을 위해서 제가 지원사업좀 해보려고요."